2023.02.05.주일. 천국의 삶. 눅17:20-21.
불신자나 신자 모두 관심이 제일 큰 것이 무엇일까? 라고 질문한다면
불신자들(예수외에 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을 총칭) 은 ‘福’을 말할 것이고 신자들(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天國’에 대한 생각이 많을 것입니다.
그만큼 복과 천국은 사람이라면 가장 중요한 말이자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즉 불신자의 관점은 복이요 신자의 관점은 천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의 소망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며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 최종의 목적일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이런 삶을 살겠죠?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본문과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땅의 비유와 천국의 비유 즉 땅의 사는 사람들의 모습들의 비유들을 통하여 생명있는 말씀을 증거하십니다.
기적과 치유를 통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하신 후 결국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영생과 천국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은 답답하고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아 백성들의 삶을 황폐해졌고 로마의 권력에 기생하는 기득권층들은 자신들의 안일한 삶을 누리면서 구세주 왕인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나라가 이뤄지기를 갈망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니 그들의 눈에는 진짜 메시야인지?
정치개혁가인지? 서민들의 선동자인지? 탐탁지 않는 언행에 못마땅해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인자에 대한 소개를 저자인 누가는 의사답게 인간적인 측면에서 소상하게 복음서를 작성했습니다.
모든 영역에 대한 인자의 권위를 잘 설명하면서 전도하고, 가르치며, 제자를 양육시키는 예수님의 다양한 인간적인 권위로 행한 사역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권위도 돋보입니다.
사단, 질병, 자연, 죄의 영향력, 유전, 모든 백성을 지배하시는 그리스도로서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시의 지배층이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인자에 대한 믿음이 생겨가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적대시하는 이중적인 반응들이 점점 커져갑니다.
결국에는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귀신들린자라고 고소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화가 임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사역여정 가운데 예루살렘 여행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가르치시는 가운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항상 못마땅하게 여기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예수님을 곤경으로 몰아가는 일들을 벌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영생의 삶을 살게 하기위한 가르침을 차근히 진행해 나가시는데 바리새인들의 관심은 엉뚱한 질문으로 자신들의 관심사항을 질문으로 던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 올것입니까? ”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켜보아서 눈으로 확인하는 것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에 지켜보아서 (관찰이라는 ‘파라테레시스’ ‘볼수있게’) 라는 말은 신약에서 딱 한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교육을 받거나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잘 조사하고 파악을 해서 관찰을 하는 것을 말하는 데 이러한 관찰을 통해서 미래를 말하고 대비하려는 속셈이었다.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과학의 힘과 인간적인 지식을 총 동원하여 대비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로마제국으로부터 어떤 놀라운 표적을 원하고 하늘에서의 어떤 표적을 원했는데 그들의 의도를 잘 아시는 주님은 정반대의 말씀을 하시죠.
21- 또 여기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고 전혀 예상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미 왔고 예수님의 재림으로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 이미(already) 그러나 아직(yet) ’ 의 기간에 살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죠?
1. 예수님이 이미 이땅에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것이죠.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은 이미 마음속에 천국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모신 사람들은 이미 천국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물리적인 종교, 즉 물질에 의한 종교가 아니고 행위적인 종교가 아니다라는 것을 다 아실 것입니다.
즉 돈이 다 아니고 재산, 명예, 권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천국의 삶에 방해가 됩니다.
내 마음에 참 된 평화가 오기 위해서는 바리새인 같은 표적, 지식, 현실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뛰어 넘어야 합니다. 초월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마음과 몸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영, 혼, 육의 완전한 조화가 있어야 합니다.
영혼도 잘 되고 범사도 잘 되어지고 몸도 건강하시기를 기도하세요
일반인들이야 물질의 복과 건강의 복을 추구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의 성숙함을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 성숙함의 결과가 심령의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2) 다시 오실 예수님의 때에 하나님의 왕국이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한 말씀은 다음기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본문의 내용만 말씀드립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지상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야 왕국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에 자신들을 압제하던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정치적, 경제적 부유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물리적 의미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시고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주장하셨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며 통치가 실현되는 곳은 어디나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관해 질문한 이유는 구약에 예언된 주의 날이 이미 도래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이며, 예수의 답변을 통해 그가 메시야인가를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저들의 질문은 하나님 나라의 성격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도래의 시기에 관해 물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성격에 관해서는 이미 굳어진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 앞에서 가르침을 주시고 계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메시야로 영접하면 하나님나라가 임하였음 깨달았을 터인데 그들은 양면성이 있어 궁금해 하면서 예수님을 곤란에 빠뜨리려는 속셈을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나라는 ‘너희안에 있다’는 단호한 말씀을 하시고 가르침의 대상인 제자들에게 22절 이하에 재림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
저는 이미 (already) 천국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안에 있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다는 말씀을 무엇을 말하는 것이죠?
1. 개인적인 마음의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자체가 천국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라고 외치셨습니다.
‘회개하다’- ‘메타노에오’ (동사. 현재, 명령. 능동, 2인칭, 복수 )
회개의 어원을 조사해보았습니다.
마음을 바꾸다 , 속사람을 바꾸다(특히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하여) .다르게 생각하거나 나중에 생각하다, 즉/재고하다 (도덕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
회개는 근본적으로 마음의 문제입니다.
회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 ‘슈브’ 역시 ‘마음을 찢는 행위’입니다.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 결심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신을 삶의 주인으로 삼던 데서 벗어나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회개란 하나님이 마음에 그분의 나라를 세우는 사건이므로 예수님은 첫 설교에서 회개와 천국을 연결시킨 것입니다.
예수님께 마음을 드리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니 나의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이 가시죠?
기독교의 진짜 가치는 나의 마음에 담겨져 있습니다.
왜요? 내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죠
2. 공동체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에는 공동체의 의미도 있습니다. ‘안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토스’는 영어로 ‘inside(내부)’도 되지만, ‘among(사이에)’도 됩니다.
천국은 개인 속에 세워지지만 사람 사이에도 세워집니다.
폴 투르니에는 사람이 혼자 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결혼이고,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의 영성은 반드시 공동체영성 다른 말로 사회적 영성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영성은 사람들 사이에서 진위가 드러납니다.
믿음생활은 잘 하는 것 같은데 독불장군 식은 안 됩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남의 탓 잘하고 공동체 탓 잘하는 것 등은 곤란합니다.
긍정적 사고전환이 필요합니다.
혼자 잘 하는 것은 도인이요 수도자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황금률 말씀을 되새겨야 합니다.
마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바른 신앙은 언제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는 말씀은 단순히 신자들이 모여서 예배할 때 함께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모든 사랑하는 관계는 하나님이 계시는 증거이며 사랑하는 사람이 모인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곧 천국이라는 의미입니다.
만약 우리가 연합하여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고 이해하고 섬기고 있다면, 천국은 이미 우리 사이에 있습니다.
3. 성령님의 내주하심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오직 성령 안에서입니다.
성령 충만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지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적극적인 도우심과 내주 충만하심의 역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말씀으로 꽉 채워지며 말씀을 늘 되새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히12: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는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천국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실제적으로 은혜와 평강과 기쁨이 있습니다.
항상 예수님의 은혜의 햇살이 가득한 삶을 살아갑니다.
나 자신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는 삶을 살아가면
다시 말해 내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살면 천국의 진가를 느낍니다.
어떤 힘든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천국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