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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4-18절.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 ‘자기 욕심’ 이 말은 육신을 충족시킬 어떤 것을 즐기거나 얻으려는 인간 영혼의 강한 욕망을 가리킨다. 헬라어 문법에서 이 ‘욕심’은 사람의 범죄의 직접적인 동인 또는 원 인임을 표시한다. 참고, 마 5:18-20.
마 5: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 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끌려 미혹됨이니’ 사람들이 당하는 내부적인 시험의 원인이 인간 내면에 있는 죄성과 욕심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야고보는 욕심을 인격화하여 욕심이 갖고 있는 큰 힘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따라서 계속적이고 폭발적인 욕심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 의 은혜의 힘이다(롬 6:15; 고전 15:10).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 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 나님의 은혜라
♠ ‘끌려’ 함정에 빠지게 하는 거친 시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동물들이 매력적 인 미끼에 끌려 죽음에 이르는 것과 똑같이 유혹은 어떤 좋은 것을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해로운 것이다.
♠ ‘미혹됨이니’ ‘잡다’, ‘미끼로 잡다’라는 뜻의 낚시 용어로 ‘끌려’와 유사한 표현이다(참 고, 벧후 2:14, 18).
벧후 2: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 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들이라
벧후 2: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 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는 단순히 무의식적 인 행동이 아니라 결말이다. 야고보는 유혹을 의인화하여 유혹이 비슷한 순서에 따라 치 명적인 결과와 함께 죄를 생산함을 보여준다. 죄가 신자로 하여금 영적인 죽음으로 귀결 되지 않을지라도 신체적 죽음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전 11:30; 요일 5:16).
고전 11: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나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고 적지 아니하니
요일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 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좌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와 사망을 동물적인 생산에 비유한 말로, 죄는 어 떤 독립적인 한 개의 죄가 아니라 고리와 같이 계속 이어지는 집단적인 것으로, 죄의 신 속한 오염성(吳琰性)관 인간의 전적 부패성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고립된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다(엡 2:3).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 ‘속지 말라’ 이것은 오류를 범하는 것, 잘못된 길로 나가는 것, 방황하는 것을 가리킨 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죄에 대하여 자신을 탓해야 한다.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은사 로 번역되는 헬라어의 두 단어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의 완전성과 포괄성을 강조한다. 완 전성은 주는 행위를 가르치고, 포괄성은 그것을 받는 대상을 가리킨다.
♠ ‘빛들의 아버지’ 창조주 하나님을 표시하는 고대 유대교의 표현으로 ‘빛들’은 태양, 달, 별을 가리킨다(참고, 창 1:14-19).
창 1:14-19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 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 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반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으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기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천체의 움직임, 회전에는 서로 다른 국면이 있지만, 하나님은 불변하시다(참고, 요일 1:5).
요일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 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 ‘첫 열매’ 추수한 가장 좋은 곡식을 가리키는 구약의 표현으로, 처음 익은 곡식을 하 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장차 완전한 추수에 대한 약속을 이루실 것임을 믿는 믿음 의 행동이다(잠 3:9-10).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새 창조의 첫 번째 증거이며(참고, 벧후 3:10-13), 현재 새 생명 안에서 미래의 영광을 미리 본다.
잠 3:9-10 네 제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 고 네 포도즙 틀에 포도즙이 넘치리라
벧후 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 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 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자기의 뜻을 따라’ 요점은 중생은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의 능동적인 표현이며,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뜻을 이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의 주권적인 뜻이 새 생명의 원천임을 강조한다.
♠ ‘진리의 말씀’ 참고, 요한복음 17:17.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말씀의 능 력을 통하여 죄인을 거듭나게 하신다(참고, 고후 6:7; 골 1:5; 살전 2:13; 딛 3:5; 벧전 1:23-25).
요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고후 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 라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러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벧전 1:23-25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 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 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의 손길로 이루어진 거듭남 또는 신생이다(참고, 겔 36:25-27; 요 1:12-13; 엡 2:5-6, 5:26).
겔 26:25-27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 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 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 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엡 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성경 : 야고보서 1장 14-18절.
제목 : 참된 복은?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잘 되려고 하는 것이 남보다는 조금이라고 낫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놀고 쉬고 있을 때에도 자기는 제 나름대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남들이 보기에 아하 저 사람은 성공했다고 다들 이야기하는 수준에까지 올라가려고 모두들 오늘도 쉼 없이 노력하고 애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같은 것들의 대부분은 선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보다는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들, 심지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마저 이 같은 길이 맞다고 여겨 거기를 향해 달려가면서 성공을 향해 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14절에서 이렇게 따라가는 것은 지기 욕심에 이끌려 결국에는 죄를 낳고 그 죄가 점점 커다보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길이 정도인줄 알고 따라가는데, 이 길은 마태복음 7장 13절에 나오는 넓은 길이며, 그 길은 결국에는 인간들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하는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고 또한 가려고 하는 그 길, 즉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는 길은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본문 14-15절의 결론이 16절에서 속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절의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는 것은 명령형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서 말씀하듯이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들이라고 합니다. 군사는 그 어떤 명령이라 할지라도 위에서 하달되는 명령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무슨일보다도 주님을 먼저 생각해야 돠지만,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 임금인 마귀의 궤술에 쉽게 넘어지고 자빠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귀는 우리들보다 힘과 궤술이 뛰어나며 파워가 우리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조금만 방심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의 궤임에 빠져 마귀의 하수인 노릇을 할 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무엇보다 욕심을 품지 말아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죄를 낳게 하는 시발점이 되고 그것이 장성하다보면, 다시 말해서 자꾸 생각하다보면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이 바로 욕심이며, 그 욕심이 지나치면 죄를 짓게 되어 있고, 그것이 점점 발전하다가 보면 사망에 이르는 길로 속히 달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죄를 짓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는 길을 가지 않기 위해서 우리들이 해야 될 것은 무엇일까요? 17절에 답이 있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 바로 주님이십니다. 세상에서 우리들이 성취하는 복과 권력들은 끝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죽을 때까지 쓸 수 있는 돈이 어마어마해도 그 돈도 언젠가는 없어지기 마련이며, 만약에 없어지지 않더라도 내가 죽으면 내 돈은 어느 누군가에게 넘어져 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복은 무한정이 없는 것입니다. 즉 한계가 있으며, 끝이 있는 법입니다.
그에 비해 하나님께로 오는 은사와 선물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본래부터 하나님을 알았던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어둠에서 마귀의 그늘에서 살아온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거짓을 일삼으며,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구원시켜서 자기의 자녀로 만드시고, 이제껏 삶에서 전혀 다른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믿게 한 우리들에게 주님은 무엇이든지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이 본문 17절에서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이 세상의 것처럼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그 복을 주시는 분이 어떤 분입니까? 17절 하반절에 보면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분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지금도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바로 그분으로부터 은사와 선물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은 없어지지 않는 복이며, 영원히 주어지는 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목인 참된 복은 과연 무엇일까요? 진리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은 보이는 하나님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때껏 주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이유는 주님은 의인이지만, 우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나았을 뿐만 아니라, 늘 죄의 구렁터기에서 살았기에 의인이신 주님 앞에 그 누구도 감히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하여 주님이 새생명의 원천인 동시에, 우리들의 신분을 완전히 탈바꿈 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순간 우리들의 영원히 지을 수 없는 죄에서 완전히 탈바꿈이 되어 의인으로 삼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아들로 양자 삼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이제부터 이 땅에 살고 있는 의인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복 중에 최고의 복인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복이 가장 귀한 것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다른 복들을 구하는데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 복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복인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 우리들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복을 받은 사람들임을 깨달았을 때, 우리들이 할 일은 무엇일까요? 언제 어디에서든지 주님을 높이고, 우리들에게 좀 부족한 무엇이 있더라 하더라도, 우리들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복을 받은 사람답게 당당하게, 기쁘게 살아가며, 주님의 이름을 늘 높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