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움은 하늘끝에
“강식아! 빨리 가자. 한시가 넘었다. 준비 다 안 됐니?”
“누나! 나 화장실에 좀...“
“애는 꼭 갈려면 화장실이더라.”
“먹고 싸는 게 우선 아니야?”
“에이! 더러운 소리는...빨리 갔다 와 늦다.”
“알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일단 먼저 나가 있을게.”
“알았어.”
순미는 동생과 같이 먹을 간식 보자기와 물통을 챙겨들고 대문을 나섰다. 초여름인데도 날씨가 제법 서늘하고 구름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다. 오늘은 또 어떤 사람들이 배를 타러 오려나?
선창가에 도착하니 옆집 기수네는 벌써 한배 가득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수네는 어제 읍내에 사는 사촌으로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을 소개받아 예약을 해 두었던 것이었다.
마을은 강을 끼고 있는데 전제가 채 이십가구가 못된다. 대부분이 작은 배를 가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거나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작은 동네지만 바다를 상대로 살아가다보니 이런 저런 배사고로 이미 운명을 달리한 남자들이 많아 전체 주민들은 여자가 월등하게 많은 편이다. 순미의 어머니도 순미가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인 어릴적에 남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행방불명이 되었었다.
오늘의 물때는 사리 중에서도 그믐사리라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져나가는 날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조개잡이를 나서고 있었다. 강식이 선창가로 나오고 뱃전을 살펴가며 출항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얼마 되지 않아 이삼십 대로 보이는 아가씨들과 아줌마 한 무리가 들이닥쳤다.
족히 열댓 명은 되어 보였는데 어느 마을에서 단체로 조개잡이를 나선 모양이었다. 그녀들은 저마다 양동이나 대야 등의 조개를 담을 그릇과 호미와 간식 보따리를 들었다. 그중 나이가 제일 많이 들어 보이는 아줌마 차림의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이배 지금 나가는 거여요?”
“예! 지금 가요. 그런데 몇 명입니까?”
“우리요? 열다섯 명인데 한배에 다 타도 되요?”
“글쎄요. 누나 어떡하지?”
“그냥 다 태우자.”
“많은데...안 힘들겠어?”
“뭐 어때. 다들 타세요.”
순미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꼭 누구를 만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그녀가 나간 바다 한가운데서 누굴 만날일은 처음부터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그러한 기분으로 동생의 말에 그렇게 자신감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들 타셨지요. 지금 출발하면 바다까지는 30분정도 걸릴게예요. 그리고 바다에서 조개잡이를 하다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배로 돌아오세요. 혼자 행동하시지 말고 모여 다니셔야 해요."
“우리누나가 선장입니다. 저는 보조고요.”“그래요? 그럼 처녀 뱃사공이네요.”
사람들은 동생인 건장한 사내를 두고 가냘픈 몸매의 아가씨가 뱃사공이란 말에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조금은 미덥지 않다는 표정들이다. 드디어 순미는 배의 후미에 올라 노를 잡았다. 노를 젓는 것은 리듬을 잘 타야 하는 것이다. 힘이 세다고 힘으로만 노를 젓다보면 배가 잘 나아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쉽게 지치게 된다.
그래서 여름철이 되면 농사일이 한가한 틈을 타서 간혹 젊은 사내들이 동네 처녀들과 바람도 쐴겸하여 바다로 조개잡이를 오기도 하였는데, 그럴때면 처녀들이나 순미앞에서 힘자랑을 한답시고 자신이 노를 저어 보겠다고 나섰다가는 뜻대로 되지않아 이내 포기를 하고 겸연쩍어 하고마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늘은 바다로 향해 나아가는 뱃길이 매우 수월했다. 가만히 있어도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조류의 방향에 따라 배가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가볍게 노를 저어주면 되었다. 날씨도 쾌적하고 강물의 흐름도 좋아 무리 없이 배가 바다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순미가 노를 젓는 모습은 마치 옛 그림에서 신선들이 배를 띄우고 유흥을 즐기는 모습과 같아 보였다. 바다엘 나오면서도 순미는 기다란 얇은 치마를 입었다.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에 순미의 치마가 흩날리며 그녀의 감추어진 허리며 엉덩이 곡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사람들은 그러한 순미를 바라보며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론 조금은 애잔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 중 누군가가 처녀 뱃사공이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낙동강 강바람에 치마폭을 적시며 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강식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소리를 들으며 누나를 바라다 보았다. 이젠 누나도 나이가 차서 누군가와 짝을 이루고 아들 딸 낳고 잘 살아야 할터인데 언제나 지나간 세월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것이 안타깝기만 하였다.
바람이 잔잔하고 날씨가 좋다보니 배에 탄 승객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강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마치 여행을 떠난 듯 즐거운 표정들이다. 물살이 빨라지며 강물의 폭이 넓어지는 곳에 다다랐다. 그때 갑자기 배의 뒤편에 자리를 잡고 있던 강식이 강물을 향하여 뛰어들었다.
순간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의아해 하며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런데 강식은 능숙한 솜씨로 건너편 작은 언덕을 향하여 헤엄을 쳐가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지...
언덕위로 올라간 강식의 모습이 잠시 보이지 않는 것 같더니 이윽고 커다란 수박한통을 가슴에 안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서둘러 강물에 뛰어들더니 빠른 동작으로 수박을 안고 배영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다음순간 건너편에서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고함을 지르며 좆아오더니 강식을 향하여 돌멩이를 던져댔다. 그러나 강식은 이미 30여 미터나 헤엄쳐 나오고 있었고, 더구나 수박을 앞에다 안고 배영을 하고 있으니 돌이 설사 날아온다 하더라도 수박으로 얼굴을 가려 돌멩이를 피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곳에서는 저렇게도 수박서리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재치 있는 강식의 모습이 왠지 얄밉게 보이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강식이 따온 수박은 배에 탄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 이를테면 사람들 모두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수박서리의 공범이 되고만 셈이었다.
일반적으로 큰강의 주변에는 간혹 홍수로 인하여 한때 강이 범람함으로써 상류에 있는 토사가 퇴적퇴어 토지가 비옥해 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러한 땅에는 배나무 같은 과수나무가 잘자라고 수박, 참외 등의 과일 농사를 많이 짓는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여름철이면 과일을 사기 위하여 이곳으로 몰려들기도 하는데, 때론 현물인 곡식을 가져와서 과일과 바꾸어 가지도 하였다. 그래서 '보리주면 외(참외)준다.'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고...
하오의 햇살이 제법 따갑게 내려 쬐지만 바람이 가볍게 불고 있어 더위를 느끼지는 않았다. 이름하여 처녀뱃사공. 노를 젓는 순미의 행동은 매우 유연해 보였다. 두 다리를 조금 벌리고 허리를 적당하게 굽혀가며 노를 젓는 모습은 그것이 그녀의 생업이 아니라면 정녕 낭만이 깃들었다고나 해둘까? 그녀의 그림자가 강물에 비쳐져 물결의 파장에 따라 형태가 변하고 있었다.
자신의 누나가 노를 젓는 것을 바라보던 강식은 매양보는 그러한 모습이 지루했던지 강물에 뛰어들어 배의 꽁무니를 잡고 헤엄을 치며 노를 젓는 누나에게 물을 튀기기도 하며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여름철 누나 또래의 마을 처녀들이 모여 놀때면 강식은 읍내에 가서 아이스케키를 한통 가져다가 누나들에게 억지로 다 팔아넘기던 시절도 있었다. 그땐 지금도 그렇지만 자신에게 누나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였었다.
오늘따라 승객들이 모두 또래의 아가씨들이거나 조금 나이가 많은 젊은 아낙들이다 보니 마음이 조금 설레기는 당연지사일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붙들고 말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뭍에서라면 몰라도 엄연히 그의 누나가 같은 배에 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강식은 아직은 누나가 함께 하고 있는 삶이 자신에게는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미는 따뜻한 햇살아래 노를 젓다 가끔씩 하늘을 쳐다보았다. 너무나 맑고 푸른 창공이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동녘하늘엔 제트비행기 한 대가 지나간 자리에 하얀 구름 띠가 생겨났다. 저 제트기를 타면...아니 저 구름을 따라 올라가면 그분들을 만날 수 있으려나...
문득 두해 전에 자신의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버린 아버지와 영철이 생각났다. 그날도 오늘처럼 초여름이었었고, 아침날씨가 정말 좋았던 날이었었다.
3년전 이었던가?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도회지에서 취직을 할 줄 알았던 영철이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왔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이 바다에서 살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순미의 아버지를 따라 바다에 나다니기 시작했었다. 사람들은 영철이 순미를 놓칠까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수군거렸었다. 순미도 그게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한동네에 살면서 소꿉장난을 하며 자랐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었고, 그러다가 영철은 가까운 도회지로 나가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순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가 없는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영철이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의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급속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영철은 배가 나가지 않는 날이면 순미와 같이 바닷가를 거닐기도 하고, 순미네 집안일을 자기 일처럼 도우고 나섰다. 두사람은 가족들 몰래 장래를 같이 하기로 약속을 하였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갖고 한단계씩 실천해 나가자고 언약을 하였었다.
그러한 것을 눈치 챈 순미의 아버지는 일치감치 영철을 순미의 짝으로 인정하는 것 같았고, 영철도 마치 장인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복한 생활은 오래 가질 못하였다. 결국 행복이란 천사의 축복과 악마의 저주라는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잘 포착하여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부마항쟁 사건이 발생하였던 그해였다. 그날따라 영철은 기분이 좋은 듯 선창가 그물더위 뒤에 숨어서 손을 흔드는 순미의 배웅을 받으며 휘파람을 불어대며 그녀의 아버지를 따라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조개를 잡는 사람들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고기잡이 낚시를 하기 위하여 바다로 나간 것이었다.
그러나 아침나절에 그렇게도 좋았던 날씨가 오후가 되자 갑자기 서편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세찬 돌풍이 불기 시작했었다.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길 없었고, 모두들 선창가로 나와 뱃사람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었다.
그날 오후 밤이 되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은 서둘러 뱃길을 돌려 마을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순미는 그날 밤새 잠 한숨자지 않고 아버지와 영철을 기다렸지만 사흘이 지난 다음에야 먼 바닷가에서 그들의 싸늘한 시신을 맞이해야했던 것이었다.
어머니를 대신한 아버지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지만, 영철과는 어릴 적 소꼽장난을 할 때부터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놀앗었고, 학교를 같이 다닐 때에도 항상 가까이 행동하여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기가 일쑤였었다. 그러한 놀림을 받으면서도 순미는 왠지 크면 영철과 자신은 부부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사랑하는 남자를 한꺼번에 떠나보낸 순미는 한동안을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도저히 이 바다를 떠날 수 없어 지금의 작은 배를 구입하여 동생과 같이 뱃사공 노릇을 하게 된 것이었다.
순미의 눈가엔 어느새 가느다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 얼굴을 돌린 채 노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바람이 세진 않지만 바람의 방향이 어느새 역방향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다를 향해 나아갈수록 건너편 산능선의 높이가 점차 낮아지고 작은 섬들이 한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순미는 그 작은 섬들을 바라볼 때마다 정말 아름답고 정겨움을 느꼈다. 저 작은 섬에서 사람하는 사람과 오붓하게 보그자리를 꾸몄으면 하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비록 허름한 집이나마 아침 저녁으로 갈매기 울음소리를 듣고 바닷가에서 주운 미역이며 파래로 빈약한 밥상을 차릴망정...
그녀는 오늘따라 아버지와 영철이 간절히 보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돌아올 수 있는 그들이 아님을 안다. 부는 바람에 은색물결이 가볍게 물보라를 일으킨다. 멀리서 통통배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배에는 만선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간밤에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던 배인 모양이다. 점차 강폭이 넓어지더니 5분여를 가니 드디어 바다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너른 바다에 다다르니 군데군데서 배를 정착시키고 바닷물이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미도 평소 자신들이 잘 다니던 곳에다 배를 세우고 기다렸다. 사람들은 채 물이 다 빠지지도 않았는데도 얕아진 바닷물에 뛰어들고 있었다.
순미는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수심이 낮아 위험하지도 않았고, 뭍에서 사는 사람들이 모처럼 바다로 나와 평소 마음속으로만 동경해왔던 넓고 푸른 바다에 직접 몸을 맡겨보는 것은 그들로서는 더할 나위없는 즐거움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끝없이 펼쳐진 바다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서니 어디가 어디인지 도저히 방향감각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거대한 바닷물이 한꺼번에 어디론가 빠져 나간다고 생각하니 정말 자연의 섭리가 오묘하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순미는 뱃전에 서서 사람들에게 주의사항을 말해 주었다.
“물이 다 빠지면 우리 배를 중심으로 가까운 곳에서 작업들 하세요. 너무 멀리 나가시지 마시고요. 너무 멀리 나가시면 배를 찾기가 헷갈립니다. 그리고 물이 들기 시작하면 재빨리 배로 돌아와 주시구요. 물이 차면 배가 출발할 거니까 그리 아세요.”
“여기엔 뭐가 많이 잡혀요?”
아줌마 한 사람이 물었다. 그러자 강식이 나서서 대답했다.
“여긴 바다가 오염이 전혀 되지 않아서 뭐든지 많아요. 그리고 참조개가 아주 많아요. 불통은 너무 많아서 버릴 지경이고요. 그리고 돌 밑에 자세히 보면 게도 있습니다. 불통은 되도록 잡지 마세요. 다른 것으로 채워도 무거워서 다 가져가지 못하니까.”
“깔게도 있어요.”
“깔게는 배가 작아서 못 싣고 갑니다. 깔게를 잡으시려면 배를 따로 한척 빌리세요. 안 그러면 잡지 마세요. 이젠 물이 거의 다 빠졌으니 내리셔도 됩니다. 조개 잡는 도구 외에는 배에다 두고 가세요. 거추장스럽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봅시다."
사람들은 한두 명씩 짝을 이루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강식은 호미와 마대를 들고 조개를 캐기 위하여 이미 뱃전을 내려갔고, 순미는 우두커니 뱃머리에 앉아 사람들이 조개잡이를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쯤 이었을까? 아버지와 영철이 그 무시무시한 파도를 만났던 장소가.....
순미는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스라이 먼 곳에선 수많은 갯지렁이가 용이 되어 승천을 하는 양 그러한 형상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영철의 영혼이 저 끝자락을 통하여 하늘로 올라가고 남겨진 시신이 그 바닷가에 밀려왔던 것일까? 아니면 저 아지랑이 따라 하늘로 오르려다 시신이 안타깝게도 바다에 떨어지고 만 것일까? 그녀에게서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일찍 여윈탓으로 더 깊은 정이 쌓였었고, 영철 또한 어릴적부터 함께해 온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는 사랑을 간직한 소중한 사람이었다.
파도소리 그치고 갈매기 날지 않는 바다는 그래도 뭍 생물들의 보금자리임을 인식시키듯 그들은 활기찬 생업활동을 지속하고 있고, 그러한 적막하기만 한 바다 한가운데서의 순미는 마음은 고요함을 품은 채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저 하늘 어디로인가를 향하여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순미가 그러한 상상에 접어든 순간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먼발치 바라다 보이는 곳에는 대여섯 사람이 모여 있는데 문어를 잡은 사람은 팔을 올려 문어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부러운 듯 쳐다보며 웃고들 있었다.
순미는 천천히 배에서 바다로 내려갔다. 바닷물은 여름햇살에 담금질되어 제법 따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나아간 바다 가운데방향을 향하여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지금쯤 조개잡이를 위해 열심히 호미질을 하고 있을 터인데 오늘은 아침부터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이었다.
너른 바다임에도 사람들이 호미로 바닥을 파헤친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그러나 그 파헤쳐진 흔적은 어느새 다시 모래로 채워지기 마련이었다. 먼저 지나간 사람들은 까마득히 멀어져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바닷물이 다시 들어 올 시간은 멀었고, 그 시간이면 사람들이 지쳐 배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다가운데라고 다 평탄한 것은 아니다. 육지처럼 가느다란 굴곡도 있고 작은 돌들도 하나 둘 눈에 보인다. 순미는 발 앞에 있는 작은 돌을 들어내고 흙탕물이 일어난 돌 밑에다 손을 살며시 넣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황급히 팔을 움츠리고 말았다. 돌 밑에서 숨어있던 딱지가 자신의 손등만한 꽃게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순미의 손가락을 공격한 것이었다. 잠시 놀란 것이지 그렇다고 순순히 순미가 물러 날리는 없다. 어릴 적부터 강과 바닷가에서 생활을 해 온 그녀가 아니던가?
“요 녀석 봐라! 어딜 감히...”
어느새 꽃게는 순미의 손에 등딱지를 잡힌 채 억울하다는 듯 열심히 거품을 품어내고 있다. 게를 잡은 순미는 배로 돌아와 양동이에다 던져 넣었다.
먼 바다를 향해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었고, 그 뒤를 따라 바닷물이 서서히 물결치며 다가왔다. 모래밭을 기던 깔게들도 황급히 자신의 집을 찾아 들고 머리 여기저기에서 조개잡이를 나온 배들이 출발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너른 바다를 한 바퀴 돌고나니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는지 처음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자신들이 타고 온 배를 찾더니 이윽고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배를 향하여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순미가 소리쳤다.
“많이들 잡으셨어요?”
“아이 구! 뭘 잡아야 하는지...너무 많아서 정신을 못 차리겠네요.”
“그랬어요? 여긴 참조개가 많으니 참조개만 잡으면 돼요. 어서들 타세요.”
강식이 다가와 순미에게 말하였다.
“누난 왜 오늘 아무것도 안 잡아?”
“그냥! 조금 생각할게 있어서...”
“어디 아파?”
“아니야! 머리가 조금 아파서.”
“또 아버지랑 영철이형 생각했지? 정말 그러지 말아. 이젠 그만 할 때도 되었잖아.”
“그게 아니야!”
“아니긴 누나 이젠 정말 정신 차려라. 그런다고 죽은 사람들이 돌아온다나? 답답해서 원.”
“미안하다.”
“미안 할 것 까진 없고. 나라고 아버지 생각 안 나겠어. 됐어 갈 준비나 하자. 갈 땐 내가 할게.”
강식은 사람들이 잡아 온 조개를 담은 그릇들은 들어서 배의 중간지점에다 가지런히 쌓아 올리고 사람들을 질서있게 앉게 했다.
“안 오신 분 없죠. 이젠 출발합니다. 올라갈 땐 물이 넘실거리니까 자리를 움직이지 마세요. 아시겠죠?”
그러면서 강식은 주변의 바다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모두들 많은 수확을 일구었다는 만족감에 마음이 느긋해 보였고, 그 중에는 초여름 하오를 누빈 바다를 두고 떠나는 것이 사뭇 아쉬운지 수평선쪽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어느 듯 해는 서산을 향하여 밝은 빛을 발하며 다가가고 있었고, 다른 배들도 바다에 남은 사람들을 태우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강식이 노를 젓고 순미는 뱃머리에 앉았다. 단련된 강식의 억센 팔에서 나오는 힘이 노에 전달되자 배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바람이 조금씩 일기 시작했다. 다행이 바람의 방향이 강 상류를 향하여 불기 때문에 배가 진행하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강 하류에 접어들자 해가 서편 하늘에 걸리고 있었다. 따스한 햇볕을 쬐며 주인따라 산보나온 강아지처럼 마음이 들떠있던 올 때와는 달리 어둠이 다가옴으로 인하여 강물의 색깔마저 변해있고 거기에다 만조가 가까워지는지 강물의 유량이 매우 많아졌다. 그래서 수면이 뱃전에 출렁거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겁이 나서 조바심을 태우기 시작했다.
순미는 뱃머리에 앉은 채로 생각에 잠겨있다. 그러한 모습을 보는 강식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신이 홀로 남은 그녀와 같이 살아가고 있지만, 지나간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누나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어느새 산그늘이 지고 어둠이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점차 세게 불어오기 시작하자 물결이 뱃전을 넘실거렸다. 배를 처음 타보는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배의 가장자리를 움켜잡았다. 강식은 이럴 때 누나가 나서 사람들을 안정시켜주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다.
서편하늘에 검은 구름이 점차 드리우면서 어둠이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강식은 사람들이 동요하자 괜스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정도의 물결이야 여느 때도 있을 수 있지만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정말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배는 낮에 강식이 수박서리를 하던 곳을 지나고 있었다. 지형의 영향으로 이곳은 물결의 흐름이 조금 빠르게 변하는 곳이다. 배가 조금 기우뚱거리자 사람들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골에 살면서 농사일을 도우며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 시장엘 다니고, 그래도 바람이라도 쐰 사람이라면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고 치넉집을 다녀 올 정도일 것이고, 난생처음으로 배를 타본 아낙들 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조그마한 배우 움직임에도 매우 예민하게 행동하여 배의 중심을 흐트려놓기 싶상이었다.
“아우-배가 기우러진다.”
그러자 강식이 사람들을 향하여 소리를 질러댔다.
“제발 가만히들 있어요. 움직이면 큰일 난다구.”
“가만있으란다. 다들 움직이지 마라.”
그러나 한번 기우뚱거린 배는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뱃전에 물이 출렁거리며 넘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러다 배가 뒤집혀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있었고, 큰소리를 쳐대던 강식도 이젠 긴장이 되어 두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만일 배가 전복이라도 된다면 자신이나 누나야 이까짓 강물을 헤엄쳐 벗어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만 제대로 헤엄을 치지 못하는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강식은 누나를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누나! 그래서 내가 사람들 많이 태우지 말자니까 많이 태워가지고 이 난리를 피우게 만들어.”
그러나 순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강식의 고함소리에도 아무런 대꾸가 없다. 화가 난 강식이 다시 고함을 질렀다. 어쩌면 강식은 지금의 위험보다도 누나가 또 과거라는 어지러운 상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 듣고 있는 거야. 내가 뭐랬어. 사람 많이 태우면 안 된다고 했잖아. 내말 들어 안 들어? 에이 씨!”
강식은 누나를 향해 고함을 쳐대면서도 속으로 누나에게 연민의 정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며 홀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것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비록 부자 아니래도 가난하나마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함께 행복한 웃음지으며 살아갈 수가 있었으면...
강식의 등줄기에선 식은 땀이 흘렀다. 정말 지금이라도 누나가 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격려의 말이라도 내뱉어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면서도 누나가 건재하기만을 바랐다.('누나! 제발 이젠 그 지그 지긋한 악몽에서 돌아와 줘.')
강식의 고함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녀는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아버지와 영철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영철이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였을까? 아마도 이까짓 난관쯤이야 쉽게 해결해 나갔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구름 낀 서편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의 형상이 마치 아버지와 영철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마음도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그 하늘가에로 다가가며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고 있었다.
“아버지! 그리고 영철씨!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
(2012. 2. 20, 부평초)
* 잠못 이루는 긴 밤에 써 본 글입니다.
첫댓글 기억이 가물거리는 어린시절 앞서가신 누님의 친구들 틈에 끼여 먼 바다로 조개잡이를 갔던적이 있었다. 노젖는 배의 선원은 남매였었는데, 나는 그때 처녀뱃사공이란 의미가 생각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