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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익조 * 현종과 양귀비 * 연리지
칠월 칠석날 밤 장생전[長生殿],
밤 깊어 사람 없자 이불 속에서 은밀히 속삭였던 말,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사랑과 맹세의 말,
" 하늘에 나면 비익조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 되리 "
비익조(比翼鳥)는 암수가 각각 눈과 날개를 하나씩만 가지고 있어 함께 하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의 새입니다.
연리지(連理枝)는 뿌리가 서로 다른 두 나무에서 각각 생겨난 가지가 서로 얽혀 이루어진 가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은 비익조와 연리지의 시어[詩語]로 승화, 이토록 애틋합니다.
6월 10일,
<장한가(長恨歌)>의 여주인공, 양귀비를 만나러 중국 서안[西安]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일행은 모두 13명, 84세의 이사장님을 선두로 <육하학원> 의 가족끼리 가는 3박 4일의 역사체험 여행입니다.
서안 ( Xian) 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던 진시황이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으로 수도로 정한 이후,
서한, 북진, 요진, 서위, 수, 당나라등 13개 왕조의 1,000년 고도(古都)였으며, 지금은 섬서성의 서울입니다.
명나라 때 서안으로 이름이 바뀌어졌지만,
동서양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천년 전에 이미 인구100만을 넘은 큰 도시입니다.
경력 8년이라는 현지 가이드 김광화씨,
시인 윤동주의 고향인 용정중학교를 나오고 연변 대학을 졸업한 조선족 청년인데,
경상도가 선조들의 고향이라서 우리들을 더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첫 번째 주의사항은 짝퉁 중국돈을 조심하라,
거스름 돈을 받을 때 모택동 초상 어깨를 만져보아 까칠까칠거리면 진짜,
돈을 불빛에 비쳐보아 모택동 얼굴과 꽃 그림 나오면 역시 진짜, 그러나 중국돈 쓸 기회가 없어 시험은 못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은 후,
곧바로 당나라 고조의 능에서 나온 돌사자가 파수꾼으로 있는 <섬서역사박물관>으로 갔습니다.
1층과 2층을 오르내리며, 선사시대에 살았다는 남전원인(藍田猿人)의 머리 부분과 ,
반파유적지에서 나온 그릇과 석기들을 구경했습니다.
또, 주나라가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거북의 등 껍데기를 태워 그것이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점을 쳤고,
그 결과를 껍데기 뒷면에 적어 놓았다는 갑골문자와, 진시황 병마용에서 출토된 부장품,
진나라 때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든 인공하(人工河)의 자취, 당나라 때 왕족의 묘에서 출토된 채색벽화가 볼만했습니다.
두 번째 코스는 당나라 고종(高宗)이 그의 어머니 문덕황후(文德皇后)를 기리기 위해 세운,
대자은사(大慈恩寺) 안에 있는 7층짜리 대안탑(大雁塔)입니다.
인도를 향해 가던 현장스님이 어느 날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렸는데,
그 때 어디에선가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와 길을 인도해 주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기러기로 현신하여 자신을 도왔다고 생각한 스님은,
훗날 인도에서 돌아와 이 곳에 탑을 짓고 ‘안탑’(기러기탑)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탑입니다.
날은 덥고, 비행기 타고 오느라 몸도 피곤하니,
탑은 멀리서 보는 것으로 셈하고, 벤치에 앉아 낮술 한 잔 씩 나눠 마셨는데,
이사장님은 길가에 세워 놓은 부자영감 동상에게 다가가 악수 한 번 하자고 손을 내미셨습니다.^^^
6월 11일,
새벽에 일어나 혼자서 중국사람 어떻게 사나, 보려고 내가 묵고 있는 호텔 <호세계대주점>을 나섰습니다.
20년 전, 북경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호텔 이름이 <수도빈관>이어서 그 차이를 알아봤더니,
' 대주점(大酒店)' 은 연회장 같은 공간이 비치된 호텔을 가리키고, ' 빈관(賓館) '은 공무적인 접대장소라고 합니다.
사람이 많은 중국이라서 그런가, 6시도 안 된 새벽길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대주점 옆 골목 길에 <연호공원>이라는 간판 아래 작은 철문이 있어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작은 문과는 달리 공원 안은 보트도 여러 대 묶어놓은 제법 큰 호수가 있었는데,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빙돌게 되어 있는 공원길 어디에나 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태극권, 합기도, 창술과 봉술, 체조, 요가, 붓글씨, 새 훈련 등등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무예로 몸을 단련하는 모습을 보니,
'대국 [大國]" 중국의 무서운 힘에 맞서야 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정신 차려 !!!>가 절로 우러났습니다.
당나라 현종은 56세 때 며느리이자, 아들 수왕의 아내인 양옥환의 춤 추는 모습을 보고 흑심[黑心]을 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2살 연하인 며느리를 품게 된 현종,
정사[政事]도 팽개친 채 온천으로 유명한 이 곳 화청지(華淸池)에 궁전을 짓고 열 뜬 사랑에 마지막 사랑을 불태웁니다.
이름도 아름다운 해당탕(海棠湯), 연화탕(蓮花湯), 성진탕(星辰湯).
그러나 "벌거벗은 사랑"은 안록산의 난으로 파멸을 부르고, 성난 군사의 위협 속에 양귀비는 목을 매고 죽습니다.
어찌할거나 , 호위하던 여섯 군대 모두 멈추어 서네.
아름다운 미녀 굴러 떨어져 말 앞에서 죽으니
꽃비녀 땅에 떨어져도 줍는 이 아무도 없고
황제는 차마 보지 못해 얼굴을 가리고 돌아보니 피눈물 흘러 내리네. ----------------------------<장한가> 중에서.
1300년 전 슬픈 사랑이지만, 관광객들은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눈이 쏠려 부드러운 몸이 풍기는 색향에 코를 내밉니다.
화청지 안쪽 끝에는 장학량이 서안 사변을 일으켜 장개석을 감금해 두었던 오간청(五間廳)이 그대로 있습니다.
항일전쟁이 우선이냐, 공산당 토벌이 우선이냐,
1936년 12월 12일, 공산당 토벌이 먼저라고 보는 국민당의 장개석은 서안에 주둔하고 있는 부하 장학량을 독려하기 위해
서안에 와서 이곳 화청궁에 머뭅니다.
그러나 항일전쟁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장학량은 총격전을 벌여 장개석을 감금하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과 항일투쟁을 요구하는 서안사변을 일으킨 역사의 장소가 화청궁이기도 합니다.
서안사변은 결과적으로 그 후 세력을 팽창한 모택동 공산당이 장개석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혁명을 달성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의 역사적 의의가 큰 사건입니다.
문학과 역사를 좋아하는 이사장님의 역사 강의가 오간청 앞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역사라면 일가견이 있는 황철주 이사님도 옆에서 거들며 역사가 남기는 교훈을 곰곰 되짚어 보게 하였습니다.
벽에 난 총탄 자국, 서안사변의 주인공들의 사진이 들어 있는 벽보, 집무실의 책상과 의자.
역사는 명백하게 남아 있는데, "그 때 그 사람들" 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아 인생무상, 절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