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은 시 자체 전체를 설명하려는 일반 시론이라기보다, 시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시적 이미지, 그중에서도 공간 이미지에 대한 철학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바슐라르는 시인이 아니라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과학철학자이자 인식론자로 출발한 사상가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과학적 이성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세계를 계산하고 분석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억하고 꿈꾸고 상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이 상상력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시에 깊이 천착하였다.
『공간의 시학』에서 바슐라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시의 운율, 형식, 행갈이, 문체, 사회성, 역사성 전체가 아니다. 그는 시 전체를 포괄하는 종합 시론을 세우려 한 것이 아니라, 시 속에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미지의 발생에 주목했다. 특히 집, 방, 서랍, 상자, 장롱, 둥지, 조개껍질, 구석, 안과 밖, 원 같은 공간 이미지가 인간의 기억과 꿈과 정서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는지를 탐구했다. 그러므로 『공간의 시학』은 엄밀히 말해 시학 전체가 아니라 이미지의 시학, 그중에서도 공간 이미지의 현상학이라고 볼 수 있다.
바슐라르에게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다. 집은 사람이 사는 건물이 아니라 유년의 기억, 보호받은 느낌, 가족의 흔적, 고독, 상처, 안식이 쌓여 있는 내면의 장소이다. 서랍과 상자와 장롱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감추어진 기억과 비밀을 품은 내밀한 공간이다. 둥지는 생명이 의탁하는 원초적 보금자리이며, 조개껍질은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존재의 형식이다. 구석은 방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바슐라르에게는 고독한 인간이 물러나 자신을 숨기고 회복하는 장소가 된다.
바슐라르는 이러한 공간 이미지를 분석할 때,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가만을 묻지 않는다. 그는 “이 이미지가 인간의 의식 속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 이미지가 독자의 기억과 상상력을 어떻게 흔드는가”를 묻는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이미지의 현상학이다. 시적 이미지는 단순한 장식이나 비유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속에서 갑자기 살아나는 상상력의 사건이다. 예를 들어 시 속의 “빈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상실, 고독, 유년, 부재, 그리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빈집은 하나의 시적 이미지가 된다.
그러나 시적 이미지가 곧 시 자체는 아니다. 시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리듬, 언어, 구조, 화자, 정서의 흐름, 사유, 침묵, 반복, 생략, 주제 의식 등 여러 요소가 함께 작용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은 시 전체에 대한 완전한 이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시를 이루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인 이미지, 특히 공간 이미지에 집중한 부분적 시학이다. 다만 여기서 ‘부분적’이라는 말은 사소하다는 뜻이 아니다. 바슐라르에게 시적 이미지는 시가 독자의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핵심 통로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시학』의 목차도 이러한 방향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집’에서 시작해 ‘집과 세계’, ‘서랍과 상자와 장롱’, ‘둥지’, ‘조개껍질’, ‘구석’, ‘미니어처’, ‘내밀의 무한’, ‘안과 밖의 변증법’, ‘원의 현상학’으로 나아간다. 처음에는 집이라는 큰 내밀 공간에서 출발하고, 점차 서랍과 상자, 둥지와 조개껍질, 구석 같은 더 작고 은밀한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작은 공간들이 어떻게 인간의 내면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밝힌다. 이 점에서 『공간의 시학』은 공간의 크기를 줄여 가면서 오히려 인간 내면의 깊이를 넓혀 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바슐라르가 시인이 아니면서도 시에 천착한 이유는, 시를 창작하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시를 통해 인간의 상상력과 내면을 철학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과학이 세계를 객관적으로 설명한다면, 시는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느끼고 기억하고 꿈꾸는지를 보여준다. 바슐라르에게 시는 문학 장르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하면 시를 통해 인간의 상상력과 존재 방식을 연구한 것이다.
결국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은 시 자체 전체에 대한 연구라기보다, 시를 이루는 핵심 요소인 시적 공간 이미지에 대한 연구이다. 그는 시 속 공간 이미지가 인간의 기억, 꿈, 고독, 안식, 상처, 보호 욕구를 어떻게 불러일으키는지를 탐구했다. 따라서 이 책은 일반적인 시론이라기보다, 시적 이미지가 인간의 의식 속에서 발생하고 울림을 형성하는 과정을 밝힌 이미지 현상학이며, 그중에서도 공간 이미지에 집중한 철학적 시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공간의 시학』은 시 전체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시를 가능하게 하는 이미지와 상상력의 한 핵심 영역을 깊이 파고든 책이다. 바슐라르는 시인이 아니었지만, 시 속 이미지가 인간의 내면을 가장 생생하게 드러낸다고 보았기 때문에 시에 깊이 천착했다. 그러므로 그는 시를 쓴 시인이 아니라, 시적 이미지의 철학자라고 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