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여행(Healing Travel)
요즘 미디어를 통해서나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주 접하게 되는 단어가 "힐링(Healing)"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힐링 캠프"라는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힐링"이라는 말의 대중화에 한 몫을 했다고 여겨진다. 힐링이란 의학적인 면에서 몸이나 마음을 치유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본래 몸과 마음은 하나이며 마음의 완전한 치유를 통해서 삶의 새로운 에너지를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빠른 변화와 흐름을 겪으며 지쳐가는 심신의 피로를 풀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한 때 "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 " 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어가 된 적도 있었다.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혹적인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여행이란 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안겨주기 때문에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력이
있다.
지난주에 딸과 같이 며칠간의 타스마니아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서 내가 느꼈던 진정한 힐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순수한 자연의
기운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를... .
11월의 끝 무렵, 타스마니아의 주도인 호바트로 여행을 다녀왔다. 브리즈번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26도가 넘는 날씨였지만 호바트 공항에 도착하니 싸늘한 공기가
초겨울을 연상시켰다. 미리 호바트에 가있던 딸의 도움으로 렌트카를 타고 호바트 시내의 구석진 곳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을 찾아서 구경했지만 허접한 물건들을 파는 어두운 골목길 같아서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시내 부둣가에
인접해있는 살라만카 마켓(Salmanca Market)으로 발길을 돌렸다. 살라만카 플레이스(Salamanca Place)는 호바트의 중심부에 있는 고풍스런 거리로서
디자이너들이 직접 만든 장식품이나 아트작품들은 전시하는 갤러리와 카페,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유럽풍의 모습을 지닌 오래된 건물 안에는 다양한 미술작품과 수공예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지만 특히 아트 갤러리 안에서 멋진 이방인의 모습으로 비쳐지는 게 좋다. 호바트에 왔으니 타스마니아 산 신선한 연어 회도 맛을 보았다. 부둣가에 정박해 있는 삼각형
모양의 돛을 단 하얀 배들 그리고 끼룩거리며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이 아름다웠다.
해가 지기 전에 호바트의 명소인 웰링턴국립공원( Mt. Wellington National park)으로 차를 몰았다. 구불구불한 산 정상으로 향하는 낯선 길이 멀고 길게 이어져 있어서 마치
흐릿한 회색 풍경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산정상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정경은 지평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하늘가로 퍼져가는 수많은 구름의 조각들, 천연의 돌무더기들, 어름처럼 차가운 물과 얼굴이 얼얼해지는 찬바람이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진한 감동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음날은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있는 부루니 섬(Bruny Island)에서 쿠루즈 여행이
예약되어있었다. 보트를 타고 3시간 정도 섬 주변을 여행하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서 바다 물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수십 마리의 돌고래가 사파이어 색깔의 청량한 물밑에서
헤엄을 치거나 하늘로 솟구치고, 다시마가 치마처럼 절벽 밑을 둘러싸있고 두 절벽 사이에는 구멍이 뚫려있었으며
높은 절벽 위에는 흰색의 독수리 한 마리가 거만한 모습으로 앉아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의 왼편 바닷물을
보면 사파이아 보석이 깔린 듯 파란 색의 청량감이 엿보이고 또 오른 편을 쳐다보면 초록 빛 에메랄드 보석이 흩어진 바다 물로 보였다.
드넓은 바위 위에는 나이든 물개들이 팔자 좋게 누워있고 어린 물개들은 바다로 뛰어들며 헤엄을 치고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비릿한 생선 냄새와 함께 아기 물개들의 뿌~ 뿌 하던 장난질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파도가 절벽에 부딪히며 물기둥 형태의 폭포로 변해서 다시 튀어 나오는 전경을 보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천혜의 자연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감탄과 함께 창조주의 예술적인 안목에 새삼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비포장도로의 뽀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한동안 달리다보니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모래 길과
숲속에 놓인 아주 긴 나무다리가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경치를 보게 되었다. 흐릿한 바다 물안개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셋째 날 아침에는 호바트에서 이름을 날리며 역사가 있는 Dacy and Dacy Baker라는 빵집에 들어가서 맛있는 빵과 파이를 골고루 먹었다. 진열장 안에 전시된 케이크와 파이가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고 예뻐서 사진을 찍어서 기념으로 남겼다. 우리는 동해안을 따라서 북쪽 방향으로 길을 잡으며
와인글라스 베이(Winglass Bay)를 향해서 여행을 이어갔다. 운전하고 가다가 작은 마을을 만나면 잠시 멈추어서 "for sale" 팻말을
붙여놓은 낡은 건물들을 구경했다. 거리의 코너에 있는 조그만 가게에서는 특색 있게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
장식품만을 판매한다고 주인할머니가 말해주었다. 또 수많은 조개가 무더기로 깔린 해변을 산책하기도 하고 굴
농장에 들러서 신선한 생굴에 레몬을 뿌려 먹으며 굴의 상큼한 향기에 취해보기도 했다. 럽스터는
12월부터 잡는다고 하니 구경도 할 수 없었고 잡히는 양의 95% 이상을 대부분
중국의 큰 도시로 수출하기 때문에 어부들도 맛을 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부루니 섬에서 여행할 때 한 선원은
전복이나 럽스터가 먹고 싶으면 직접 다이빙해서 잡는 다고해서 관광객들의 부러움을 샀다.
와인글라스 베이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파이어(Saffire)라는 이름난 호텔은 디자인이 특이하고 전망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하룻밤 숙박료가
2000불이라고 해서 놀랐다. Freycinet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호텔에 여장을
풀어놓고 와인글라스 베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산 정상의 전망대까지 1시간 반 정도 부시워킹을 했었다.
헐떡거리며 언덕을 오르고 난 뒤에 산 정상에 서서 내려다보는 와인글라스 베이의 경치는 정말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타스마니아를 천혜의 자연이 살아있는 섬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자연의 품속에서 하나로 어우러지고 있었다. 호수 같은 파란 바다를 바로 곁에 두고
붉게 내려앉는 석양을 바라보며 저녁식사를 했다. 신비로운 기운이 잔잔하게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쳐있던 내 몸과 마음은 어느새 힐링이 되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졌던 모든 시간과 공간에 감사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