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을 찬양하는 노래들이 수없이 많다. 내가 가장 많이 부른 노래가 구노의 아베마리아다.
그 다음이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카치니의 아베마리아가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성모님의 대한 신심이 많이 부족한 사람인데, 아베마리아만 부르면 나도,
듣는 사람들도 모두 깊은 감동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특별한 은총이다.
내가 11살 때 고향인 춘천에서 어머니를 따라 천주교신자가 된 후, 성당을 참 열심히
다녔다. 그곳에서 피아노도 배우면서 나의 음악의 길이 열렸고, 기억하건데, 특히 하얀
성모님상 앞에서 기도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성모님의 그 우아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신비스로움까지 느끼면서 성모님과 친해지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졸업 후 독일에 가서도
그 어느 성모님 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성모님은 내게 위로자였다.
나의 모든 고통을 알아주시고 위로하시며 도움을 주시는 분으로 내안에 지리잡고 있었다.
내가 어른이 되고 유명해지면서 성모님의 존재는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의 삶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성모님의 존재는 추상적인 인물로
밖에 생각되어지지 않는 그런 ‘오만과 편견“의 시대가 나에게도 있었다.
13년 전 유명한 성모님 발현 성지에서 회개의 은총을 받고 나의 삶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모든 것이 나의 어린시절, 성모님을 신뢰하고 의지했던 그 믿음이 나를 그 성지로 이끌었고,
나는 그곳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께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성모님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 같이 성모님 이름만 들어도 자지러지는 그런 신심은 내게는 없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품으셨고 키우시며 그분의 공생활을 멀리서 바라보시며 수난에 동참했던 한 여인
마리아를 요즘은 묵상하게 된다. 그 마리아, 성모님이 나와 함께 하시려
이곳 아프리카 말라위 카롱가까지 따라오셨다.
감사하게도 남양성지 이상각 신부님께서 큰 성모상을 가져가라고 선물로 주신 것이다.
깨어질까봐 나무로 상자를 짜서 잘 모시고 왔더니 세관원이 제일 먼저 열어본 것이 마리아상이었다.
그래서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위로를 받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 성모님상을 루수빌로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는 70명( 그중 10명은 유아들임)의 고아들의 어머니로
모시고 싶어서 베아트리스수녀님께 좋은 자리를 봐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몇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으셨다. 고아원이 오래되어 낡은 상태라 새롭게 건축을 해야 하는데, 아직 장소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자 속에 갇혀계신 성모님께도 죄송하고, 또 지루한 일상 속에 사는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이벤트를 제공해
주고 싶어 미국으로 떠나시는 수녀님께, 내가 알아서 다 준비할테니 시작하라는 지시만 내려달라고 청하니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이분들이 결정을 못하는 것은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경비의 문제인 것이다.
모든 것이 돈이 드는 일이니까, 생명을 뒤흔드는 일이 아닌바에는 그냥 미루며 살아가니,
아이들이 거주하는 환경이며 의복등이 이루 말 할 수 없이 누추한 것이다.
나는 그것이 늘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의 표정은 굳어있고 활력이 없다, 기쁨이 없다.
그래서 나는 수녀님이 안 계시는 동안 루수빌로 어린이마을(Children's Village)에 개혁의 칼을 든 것이다.
"나는 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줄 것이다". "엄마는 아이들이 행복한 것을 바란다".
나는 보모들을 모아놓고 나의 마음을 전했다.
“내 아이들에게 더 이상 누더기를 입히지마라”. “찢어진 옷과 신발들을 다 버려라”
“앞으로 더러운 옷이나 찢어진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면 너희들에게 책임을 묻겠다”.
나는 결국 그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나는 다음날 컨테이너로 가득 싣고 온 옷 상자들을 열어 보모들과 함께 아이들에게 맞는 옷들을 골라 입히고
신발을 사주었다.(우선은 슬리퍼로 하나씩, 다음에는 운동화가 될것이다)
아이들의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무룩하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이 아이들이 필요했던 것은 사랑과 관심이었다. 그 많은 직원들이 곁에 있어도 일에만 관심을 쏟고
막상 고아들에게는 관심을 안 가져주니 아이들이 기가 죽어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숙제를 봐주는 교사를 채용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음악과 미술.스포츠를 지도하는 교사도
채용했다, 음악과 댄스는 내가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며 논다.
큰 남자아이들을 위해서는 한국에서 가져온 탁구대를 놔주고 축구게임기구를 사주었다.
건축하는 사람에게 성모님을 모실 자리를 정해서 성모님 동산을 만들라고 했더니
성모님을 모실 작은 집을 벽돌로 지어놓았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도난을 당하니
그 누군가가 성모님을 훔쳐갈가봐 집을 만들어 유리문을 달고 열쇠로 열을 수 있게 해놓았다.
아, 이일을 어쩌나 ! 나의 기대와는 달라졌지만 임시로라도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들이 부를 수 있도록 쉽게 아베마리아를 라틴어로 작곡했는데, 가르치다보니
반 이상이 외국어를 못하는 아이들이고 악보는 모두 못 읽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어서
툼부카로 성모님 노래를 준비시켰다. 성모님께 봉헌할 꽃을 사러가니 생화는 구경도 못하고
아주 이상한 조화들만 있어서 고민하다가 있는 꽃 모두 23송이를 사들고 와서 여자아이들에게 주고,
남자아이들에게는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초를 봉헌하도록 준비시켰다. 묵주도 하나씩 준비해서 나누어 주었다.
몇일 전에 성모님께 드릴 편지를 쓰라고 예쁜 편지지를 나누어 주었더니 모두가 잊지않고 편지를 써서
가져온 것이 아닌가! 정말 성모님을 자신들의 어머니로 생각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기뻤다.
드디어 베아트리스 수녀님과 피터선교사님이 미국여행에서 돌아오신 어제, 월요일,
루수빌로직원들은 환영파티를 열었고, 나는 성모님을 모신 곳으로 아이들을 안내하여
꽃과 촛불과 편지를 봉헌하게 하였다. 모든 이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행복한 고아들의
아베마리아를 들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나도 울었다. 바로 이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감기에 시달리며
준비해온 그 모든 수고를 성모님께서 알고 계신듯 내게 미소지어주신다.
Ave Maria ! 정든 남양성지를 떠나 이 먼 곳까지 함께 와주시어 감사합니다.
첫댓글 사랑하는 아녜스님 !!!나도 지금 울고 있습니다 성모님을 그 불쌍한 아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갖게해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주신 그 모든 과정들....정말 자상하고 지혜롭고 사랑이신 성모님을 닮으셨네요 결국 그 아이들에게 까지 기쁨과 웃음을 갖게 해주시고요 주님은 우리가 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지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분의 은총이
가득하실것입니다
* 평화의 전도사 아녜스님~~~ ^*^ 이 감동..!!!
예수님 탄생 예고를 알리는 가브리엘 천사의 "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1,28]
온유와 겸손의 마리아님..!! 세레자 요한의 母 엘리사벳 방문길에 " 주님 말씀을 믿으신 복된女人".이란 칭찬에..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 [루카1,16-55] 하시며
찬가를 주님께 바치는 성모님의 모습을 ...!! 봅니다.
아네스님으로 재현 됨이 아닌지요.. ?!! 기쁩니다. *^^* 감사합니다. 짱.!!! ^*^
하시는일 하나하나 모두가 그들에겐 늘 새로운 시도고 새로운 개혁이겠지요.
어려운길을 택하신 선생님이시지만 항상 혼자가 아니시라는거..
든든한 지원자가 위에서 그리고 또 곁에서 바라보고 계시니.. 외롭지 않으시겠어요! ^^
아 정말 감동스러운 일입니다. 성모님이 왜 작은 집에 갇히셨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그런 문제점이 있어서 그랬군요.
어머니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소중한 존재인지요. 그 몫을 성모님께서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참으로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대단한 발상으로 그들에게 희망과 빛을 주시는 교수님께 성모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