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13-25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절대 반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반지의 제왕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영화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이 반지를 지니는 자는 탐욕에 휩싸이게 되며 수명도 비정상적으로 연장되고 실질적인 힘과 권력도 세집니다. 대부분이 반지를 보는 순간 탐욕에 휩싸여 살인을 저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반지의 유혹은 정말 강력합니다. 주인공 프로도는 반지를 파괴할 사명을 가지고 길을 떠납니다. 영화의 마지막, 우여곡절 끝에 화산에 도착해서 반지를 파괴하려는 순간 골룸이 반지를 손에 넣지만 결국 그는 끓는 용암 아래로 떨어져 반지와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인간의 욕망 역시 이처럼 한순간에 사라지게 됨을 깨닫게 해 줍니다.
오늘 본문에도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또한 그 욕심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바로 아도니야입니다. 다윗이 죽기 전에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왕위가 이어지도록 하셨고, 다윗이 죽은 후에 솔로몬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견고하게 세워져 갔다고 말씀합니다. 그때 한 번 그릇된 욕심을 품었던 아도니야가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한번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강구합니다.
아도니야의 계략(13-18)
(13)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다 실패했지만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면 그는 자중하면서 조용히 지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이기지 못해 밧세바에게 찾아갔습니다. 아도니야는 솔로몬보다는 밧세바를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이 자신의 계략을 펼치기에 좀 더 수월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밧세바도 처음에는 아도니야를 경계하듯 일상적인 인사가 아니라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의 교묘한 논리와 동정심을 유발하는 듯한 말에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14-15) 또 이르되 내가 말씀드릴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그가 이르되 당신도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아도니야는 두 가지 개인 의견, 주장을 피력합니다. 첫 번째는 본래 왕의 자리가 자신의 것이었다는 주장입니다. 형들 중에 암논, 압살롬은 죽었고 다니엘도 죽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도니야가 제일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왕이 될 가능성은 컸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주장 곧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아도니야가 왕이 될 것으로 바랐다는 말은 그의 야욕에서 비롯된 착각이었습니다. 아도니야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다고 말로는 인정하면서도 속으로는 아직도 그 욕망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밧세바에게 구체적인 요청을 합니다.
(16-18) 이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그가 이르되 청하건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그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밧세바가 이르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아도니야가 밧세바에게 아비삭을 요구한 것은 그가 젊은 처녀인 아비삭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아직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밧세바로부터 동정심을 유발시켜 확실한 답을 얻어 놓은 후에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밧세바는 아도니야에게 측은한 마음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또한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하고 이미 나라의 안정을 찾은 것으로 생각해서인지 아도니야의 청을 아무 경계 없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이것을 솔로몬에게 요청하겠다고 화답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로 흘러갑니다.
솔로몬의 단호한 결정(19-25)
(19-21)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왕좌에 앉고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자리를 베푸니 그가 그의 오른쪽에 앉는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 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소서 내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르되 청하건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왕의 형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소서
밧세바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아도니야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으로 아들이 왕이 되었기에 그 정도 청은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으로만 판단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어떤 상황 앞에서 무엇이 바른 결정인지 먼저 하나님께 여쭙고, 성경적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 바른 것인지 올바른 행동인지를 조언을 구하며,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밧세바의 요청에 솔로몬은 사태를 직시하여 단호하게 말합니다.
(23) 솔로몬 왕이 그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하고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살려둔 것만으로도 큰 자비를 베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의 절제하지 못한 요구에 어머니에게도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를 돕는 행동은 곧 반역을 돕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도니야의 계략이라는 것을 즉시 간파하였습니다. 젊은 솔로몬이었지만 그에게는 지혜와 바른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이는 솔로몬이 앞으로 지혜의 왕이 될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밑작업이 됩니다. 결국 솔로몬의 정적 제거는 명분을 갖게 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이 견고한 왕국으로 세워져 감을 암시해 줍니다. 본문은 아도니야의 죽음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23-25)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그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열왕기상 2장에는 다윗, 아도니야, 요압, 시므이 네 사람의 죽음이 언급되는데,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는 다윗의 자연스러운 죽음과는 달리, 나머지 세 사람은 솔로몬의 정적 제거 과정에서 타인에 의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이 죽는 장면을 보며,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용어입니다. 고대 로마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개선 행진을 하게 되는데, 얼굴을 붉게 칠하고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면서 시내를 가로지르는 퍼레이드를 했습니다. 이런 대접을 한 몸에 받게 되면 그 사람은 말 그대로 신으로 숭배받는 듯한 벅찬 감동에 젖는다고 합니다. 그때 노예 한 사람을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러한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래서 죽음을 준비해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본문의 아도니야는 욕심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착각에 빠져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잘못된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욕심으로 자신이 덫에 걸리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힌 삶을 위해 계속해서 말씀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또한 천성을 향해 가는 길에 늘 우리의 마음을 잘 지키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허영의 시장과 같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더 많이 가지도록, 더 많이 즐기도록, 더 높이 올라가도록 부치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늘 경계하며 더욱 영적인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욕심을 이기지 못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에 이른다’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죄의 본성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바라바와 같은 욕망이 끊임없이 올라올 수밖에 없는 연약한 죄인들임을 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늘 자신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항상 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가지고 삶과 관계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것에 시선을 두려고 하기보다 영원의 시각으로 나 자신과 이 땅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승리하신 주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 일하여 주심으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욕심의 결과는 그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죄된 본성으로 인해 욕심과 욕망이 끊임없이 올라오지만 말씀으로, 복음의 능력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들을 제어하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날마다 말씀이 이끄시는 삶이 되어 지혜와 분별력으로 행할 바를 잘 결정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이기신 주님과 동행함으로 삶의 자리가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예배와 섬김과 친교의 현장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아도니야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삶에서 제어하기 힘든 욕심이 계속 일어나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2. 욕심을 제어하기 위한 영적인 방법은 무엇이며, 구체적인 실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3.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계략을 즉시 간파하고 단호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단호하게 끊어내야 할 잘못된 생각, 행동은 무엇입니까?
4. 오늘 하루 이기신 주님과 동행하며 죄를 멀리하고 말씀을 가까이하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최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