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3장 1-17절
찬송가 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욥의 탄식
욥기 22장에서 엘리바스가 욥을 다그칩니다. 참 끈질기게도 욥을 공격합니다. "욥아, 지금의 시련은 네 죄가 원인이란다. 하나님께 회개해라! 하나님과 화해해야 해! 욥아, 너는 참 교만하구나,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라!"이에 대한 욥의 답변이 오늘 본문 23장입니다. 그런데 욥은 엘리바스의 말에 대꾸하지 않습니다. 욥은 이제 친구들의 그 바른 소리, 그 옳은 지적, 그 신앙적 당위, 당시의 종교적 전통의 언급에 지쳤습니다. 아니 질렸다고 해야 더 옳은 표현입니다. 대신 욥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 하소연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원통함을 쏟아냅니다. 23장은 쓰라린 욥의 탄식입니다. 무죄한 자의 탄원입니다. 절규에 가깝습니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새번역 성경으로 한 절 한 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2절입니다.
욥이 대답하였다. 오늘도 이렇게 처절하게 탄식할 수밖에 없다니! 내가 받는 이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그분이 무거운 손으로 여전히 나를 억누르시는구나!
욥은 '오늘도' 처절하게 탄식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입니다. 어제처럼, 또 다시, 어제의 탄식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절한 욥의 삶의 자리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욥의 탄식의 이유는 자신의 경제적 파산, 자식을 잃음, 자신의 질고 때문이 아닙니다. 그랬던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분명히 아닙니다. 지금 욥의 탄식의 이유는 '하나님' 입니다!
3-4절입니다.
아, 그분이 계신 곳을 알 수만 있다면, 그분의 보좌까지 내가 이를 수만 있다면, 그분 앞에서 내 사정을 아뢰련만, 내가 정당함을 입이 닳도록 변론하련만.
욥의 소원은 단 하나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무죄함을 탄원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의 사정을 속시원하게 아뢰고 싶어합니다. 욥은 그렇게 자신의 변론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명히 "욥은 무죄, 욥은 죄없어!" 라고 선언해주시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무죄를 선언하는 것을 듣고 싶어합니다. 욥은 간절하고 절박합니다.
5-7절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무슨 말로 내게 대답하실까? 내게 어떻게 대답하실까? 하나님이 힘으로 나를 억누르실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씀을 드릴 때에,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실 것이다. 내게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하나님께 떳떳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것이다. 내 말을 다 들으시고 나서는, 단호하게 무죄를 선언하실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사정을 토로하고 싶은데, 만날 길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8-9절입니다.
그러나 동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은 거기에 안 계시고, 서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을 뵐 수가 없구나. 북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분을 뵐 수가 없고, 남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분을 뵐 수가 없구나.
욥의 탄식은 아무리 반복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도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 것에 있습니다. 욥은 그것이 무척 괴롭습니다. 우리는 보통 10절을 -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하나님께서 내게 시련을 주셔서 단련시키면 내가 순금처럼 변할 것이다.' 지금의 힘겨움은 단련의 시간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본문의 맥락에서 보면 10절 역시도 욥의 탄식이요 한 숨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원문대로, 본문의 맥락 속에서 적절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발 한 번 옮기는 것을 다 알고 계실 터이니,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게 흠이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련만!
공동번역 성경의 해석도 비슷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의 걸음을 낱낱이 아시다니, 털고 또 털어도 나는 순금처럼 깨끗하리라
그러니깐 10절은 다음과 같은 욥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시잖아요. 하나님 저의 걸음을 잘 알잖아요. 저를 시험해보고 샅샅이 심문해주세요. 저를 털고 또 털어봐 주세요. 그리고 나서 제게 흠이 없음을 다른 사람에게 말 좀 해주세요. 저의 순금처럼 깨끗함을 선고해주세요."
욥의 절규에 가까운 탄원이요 탄식인 것입니다. 그 탄식은 다음 구절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11절입니다.
내 발은 오직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만 성실하게 걸으며, 길을 벗어나서 방황하지 않았건만! "저는 오직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살았잖아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길만 걸어갔잖아요."
12절입니다.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계명을 어긴 일이 없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늘 마음 속 깊이 간직하였건만!
"저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일이 없잖아요. 저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살았잖아요."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저에게 일어난 것에요. 도대체 왜요? 하나님 한 번만 속시원하게 말 좀 해주세요."
하지만 이런 욥의 탄식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욥은 절망합니다. 그리고 쓰디쓴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내뱉습니다.
13-17절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한번 뜻을 정하시면, 누가 그것을 돌이킬 수 있으랴? 한번 하려고 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고 마시는데,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많은 계획 가운데, 나를 두고 세우신 계획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고야 마시겠기에 나는 그분 앞에서 떨리는구나.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분이 두렵구나. 하나님이 내 용기를 꺾으셨기 때문이고,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떨게 하셨기 때문이지, 내가 무서워 떤 것은 어둠 때문도 아니고, 흑암이 나를 덮은 탓도 아니다.
"그래, 지금 나의 이 처절한 상황은 하나님이 정한 뜻이지.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이시지.
하나님은 그렇게 한 번 정한 계획과 뜻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니깐!
그래서 그 하나님이 두렵고 무서워..."
지금 욥의 아픔은 자신 당한 짙은 어둠의 상황과 흑암 때문이 아니라고 토로합니다. 욥은 고백하기를, ‘내가 무서워 떨며 두려운 이유는 어둠 때문도 아니고, 흑암 때문도 아니다. 하나님 때문에 두렵다’는 것입니다. 욥의 아픔은 하나님입니다! 욥은 단 한 번도 "자식을 살려달라. 재물을 찾아달라. 건강을 회복하달라"고 몸부림하지 않습니다. 욥의 몸부림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욥의 탄식의 제목은, 욥이 진짜 알고 싶은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왜요? 하나님 이 상황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이에요?"
"하나님, 왜요? 하나님은 저의 무죄함을 아시잖아요. 그런데 왜요?"
"하나님, 이 상황이 아프고 고통스러워 숨쉬기가 힘겹지만, 그래도 견뎌볼게요.
그런데 견딜 수 없는 아픔이 제게 있어요. 이 질문에 한 마디만 답해주세요.
하나님, 왜요? 왜 이 상황을 저에게...
하나님 어디에 계시는 거에요?
하나님, 침묵하시지 마시고 한 마디만 해주세요."
욥의 고백
욥의 질문은, 그리고 욥의 싸움은 "나는 왜?"가 아닙니다. "하나님, 왜?" 입니다. 그렇게 욥은 그 질문을 붙들고 처절하고 절박한 길을 외롭게 걷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길을, 답이 없는 그 길을, 쉼이 없는 고단한 그 길을, 때로는 소리를 지르며, 때로는 신음을 내뱉으며, 쓰린 걸음을 걷습니다. 욥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걸음이었을 것입니다. 알 수 있는 것이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그 걸음 말입니다. 그런데 욥은 그 절망의 길 끝에서, 마침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욥기서 42장 5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욥은 먼 길을 걷고 걸으며, 주님을 뵈어갑니다. 귀로 듣던 하나님을, 귀로만 알았던 하나님을, 지난한, 잔인한, 질퍽한 인생 길을 걷고 걸어 마침내, 하나님을 눈으로 봅니다.
"아, 하나님, 하나님이시군요! 하나님이셨군요!"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 이제서야 하나님을 봅니다! 드디어 하나님을 알겠습니다! "
우리는 '오늘도', 네 맞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뵈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한 삶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욥기서가 오늘의 삶의 몫을 고단하게 살아내는 우리에게 주는 용기요 위로입니다. 기억하십시다. 매일 분투하며 하나님을 알아가고 경험해가는 삶은 결코 헛짓의 삶이 아니요, 매일 신묘막측한 생명의 지도로 엮어가고 있는 부활 생명의 삶이 분명합니다.
기도
하나님,,,이 아침, 욥의 탄식과 신음이 더 절절하게 들려옵니다. 저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고백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절절히 알아가고 뵈어가고 있는 우리를 오늘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