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보살은 사유의 방에서 다리 꼬고 앉아 뭘 하고 있나?
- 사유란 무엇인가?
* 하늘 가신 님들을 기리는 백중을 앞두고 보시하는 글
곧 백중이 다가온다. 가까이서 숨쉬고 함께 웃고 떠들다가 하늘로 가신 분들을 기리는 불교 명절이다.
내게는 아직도 내 가슴에 매달려 떠나가지 못하는, 어쩌면 내가 보내주지 못하고 있는 한 아이가 있다. 완전 시각 장애견으로서 8살 때 여기서 밀려나고 저기서 밀려나다가 마침내 내게 떠밀려와 함게 살다가 올해 봄에 떠난 맥스(시츄, 15살)다.
그러고도 먼저 가신 어머니, 아버지, 숙부, 고모, 형, 동생, 친구들이 있다.
그래서 흰 연꽃등 다는 것도 해마다 똑같이 하다 보니 내가 시들해지고, 이번에는 마음 다해 명복을 빌고 싶어 이 글을 제단에 올린다.
국립박물관에는 <사유의 방>이 있다. ‘다리를 꼰 채 앉아 턱 괴고 사유하는 방’이란 뜻이다. 도솔천이라는 다른 세계에서 열심히 공부 중인 미륵 보살이다.
이 미륵 보살이 다리를 꼬고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하고 있다는 ‘思惟’란 무엇인가.
‘사유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이 말뜻을 올바로 알아야만 한다.
사유는 불교에서 온 말이다. 바르고 곧고 빠른 절대지혜인 '반야'를 깨우치기 위해서 반드시 꼭(그렇건만 승려들도 잘 안하지만) 해야만 하는 수행법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 사유하다(思惟) - 대상을 두루 생각하다.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을 하다.
- 사고하다(思考) - 생각하고 궁리하다(도돌이표 사전답게 ‘궁리하다’를 또 찾아봐야 한다)
- 궁리하다(窮理) :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다.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하다.
말이 바르지 않으면 뜻이 흐트러진다. 말과 말뭉치(句 ; 글귀), 글이 어지러우면 뜻도 그와 같이 어지러워진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마치 아지랑이나 신기루 같아서 듣는 사람에게 바르고 곧은 진실을 알려주기가 어렵다.
화살대가 곧고 발라야만 과녁을 꿰뚫을 수 있는 것처럼 말과 글은 또렷할수록, 바를수록 다른 사람의 귀와 심장과 머리에 마치 화살처럼 제대로 꽂힌다.
한 분자와 다른 분자와 또다른 분자가 양과 차례와 온도와 압력에 딱 알맞게 섞여야만 새로운 화합물이 되듯이 말이나 단어 역시 씨실과 날실을 알맞게 엮어야 멋진 글이 된다.
표준국어대사전 설명을 보고 사유, 사고, 궁리가 진짜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보자. 물론 내 사전이다.
- 사유하다(思惟) - 머리와 심장으로(思) 골똘히 생각하다(惟). 思는 머리(囟)와 심장(心)으로 생각하는 것을 나타낸다. 惟는 마음(忄)이 새(隹)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새가 이 나무 저 나무를 날아다니듯이 두루 생각하고 살피다.
불교에서는 思를 위해 아나파나 사티를 하여 삼매(집중)에 들고, 惟를 위해 비파사나를 하여 이것과 저것을 잇고, 말과 글의 징검다리를 이리저리 건너다닌다. 즉 아나파나 사티(참선)을 하고 비파사나 수행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다리 꼬고 턱 괸 것이다. 이렇게 사유해야 절대지혜를 꿰뚫어 알게 된다(洞察)는 뜻이다.
- 사고하다(思考) - 思는 위와 같다. 考의 뜻은 참으로 깊다. 丂는 본디 巧였는데, 솜씨가 뛰어나다, 아름답다는 뜻이다. 따라서 考는 늙은이(耂)의 슬기(丂)다. 늙은 사람이나 늙은 코끼리는 오래 살아오면서 터득한 슬기가 많다. 그러므로 사고는 경험이 많은 노인처럼 깊이 잘 살핀다는 뜻이다.
- 궁리하다(窮理) : 굴(穴)이 좁고 낮아서 몸(身)을 활(弓)처럼 굽히다. 좁은 굴을 파고 들어가듯이(窮) 이저저리 결을 살펴가며 깊이 따지다(理).
이제 비로소 사유가 무슨 말인지 알게 되고, 사유의 방이 무엇을 하는 방인지, 미륵보살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사유의 방에 가보시라.
열반경 제6권에 ‘믿고 기댈 수 있는 4가지(四依法)’란 구절이 있다.
미륵 보살은 지금 이렇게 사유하고 있다.
- 법(法 ; 진실, 절대지혜)을 믿고 따르되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바른 뜻(善知識)을 믿고 따르되 말과 글을 의지하지 말라.
팩트(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의지하고 느낌(意識)을 의지하지 말라.
참말(了義經)을 믿고 따르되 거짓말과 꾸미는 말과 꼬는 말(未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
* 쓰고 보니 오래 전에 페이스북에 이미 같은 주제로 올린 글이 있다.(2021.12.4)
- 오늘 동무들이 국립박물관 '사유의 방'으로 '다리 꼰 채 아나파나하는 고타마 싯다르타(78호, 83호)'를 친견하러 갔다.
나는 바빠 가지 못하고, 대신 사진으로 감상한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태자이지만 왕이 될 미래를 버리고, 스스로 거지가 되어 숲으로 갔다. 그러고는 고민했다.
사람들은 '다리 꼰 채 아나파나하는 고타마 싯다르타'를 보고 아름답다, 한국조각예술의 걸작이다, 이런 정도로 이해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고타마 싯다르타는 왕위를 벗어던질만큼 그를 괴롭히는 존재 문제에 빠져 지금 '우주적으로 계산' 중이다.
그는 지금 들숨 날숨을 바라보며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오류를 하나하나 물리치며 본질에 다가가려 노력하는 중이다.
당시 사람들은 고타마 싯다르타가 '생각을 계산하여 마침내 변하지 않는 진리'에 접속, 붓다가 되기 전의 그를 태자라고 불렀다. 이 상은 아직 붓다가 되지 않은 수행자 시절의 모습이다. 붓다 이후 이 상은 미래불인 메시아(마이트레야, 미륵)의 상상도로 옮겨간다.
'다리 꼰 채 아나파나하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원형은 서산마애삼존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가 당나라군대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키려 쳐들어오던 그 아득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백제인들은 자신들을 구해줄 미래불을 간절히 원한 것같다.
백제인의 얼굴로 나타난 붓다와 미륵을 감상하시라.
서산에 오신 이 마애불은 현세불인 석가모니가 중앙에 있고, 오른쪽에는 그의 스승이자 과거불인 연등불이, 왼쪽에는 미래불인 메시아(마이트레야)가 나란히 서 있다.
* '다리 꼰 채 아나파나하는 고타마 싯다르타 像'의 원형인 서산의 '바위 깎아 만든 세 부처님(마애삼존불)', 서산에 미래불로 나타난 메시아(마이트레야, 미륵), 국립박물관의 보물 78호, 83호. 사유의 방 현장사진(황병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