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9장 1-27절
찬송가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1-27절)
성경을 읽다 보면 장, 절과는 별도로 고딕체의 ‘소제목’이 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번역본인 ‘개역개정판’ 성경의 잠언 30장을 보면 바로 앞에 ‘아굴의 잠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31장 앞에는 ‘르무엘 왕을 훈계한 잠언’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제목은 성서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말씀의 내용을 좀 더 쉽게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 달아 놓은 주석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인 29장에는 그 어떤 소제목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니 25장 바로 앞에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잠언의 저자로 솔로몬을 가정 먼저 떠올립니다. 잠언 1장 1절만 보아도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잠1:1)고 시작됩니다. 그리고 잠언 10장을 보니 바로 위의 소제목도 ‘솔로몬의 잠언’이라 쓰여 있습니다. 10장과 25장의 소제목이 동일한 것이지요. 그러나 엄밀히 볼 때 잠언 10장부터 22장까지의 본문과 잠언 25장부터 29장까지의 말씀 본문은 다음과 같이 구분이 됩니다.
잠언 10장 1절은 ‘솔로몬의 잠언이라’(잠10:1)고 시작됩니다. 25장도 10장과 동일하게 ‘솔로몬의 잠언이요’(잠25:1)라고 시작됩니다. 그러나 25장 1절에는 이어서 다음 구절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니라’(잠25:1) 앞선 새벽기도회에서 이 자리에 서셨던 목사님들께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잠언 25장부터 29장까지의 본문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 그동안 묻혀 있던 솔로몬의 지혜들을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입니다. 소위 ‘솔로몬의 제2잠언’이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동안 어떠한 이유로 정리되지 않고 묻혀 있다가, 솔로몬 사후 약 200년이 지난 뒤인 히스기야 왕(B.C 716-687) 시기에 이 잠언들이 빛을 드러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 왕은 누구인가요? 첫째, 남 유다의 왕 가운데 몇 안되는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자’입니다. 둘째,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했던 당시의 왕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병들어 죽을 운명이었으나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으로부터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은 자였습니다. 이같은 사실만 보면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참 행복한 시대에 살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8-19장에 나타난 당대의 시대적 배경에 따르면 히스기야 왕의 통치시기는 국제적으로 매우 험난한 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대제국을 건설했던 앗수르가 수시로 위협하고 침략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미 히스기야 왕 재임기인 B.C722년에는 같은 민족인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은 개인적으로 죽을 병에 걸리기도 했지요.
종합해 보면 히스기야에게는 대내외적으로 주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의지할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특별히 잠언 25-29장의 ‘솔로몬의 잠언’은 위와 같은 히스기야 왕 시절 신하들이 찾아내고 편집한 것이기에 ‘우리가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에 대해 더욱 명확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 삶 속에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 29장은 그러한 배경에서 묵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우리들은 우리의 주장대로 고집을 피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지만 때때로 우리 자신의 완곡한 주장으로 인하여 그 길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또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친구나 동료, 선배 등 사람을 의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목이 곧은 사람’은 바로 그러한 자를 의미합니다.
(3)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와 사귀는 자는 재물을 잃느니라. (4)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5)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6) 악인이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7)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흔히 지혜와 지식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지식은 단시간 내에 인간이 학습하고 노력하며 쌓을 수 있지만, 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고자 늘 사모하며 노력합니다. 그리고 지혜를 얻은 자는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이를 받았기에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때문에 200여년 후, 유다가 앗수르라는 외부의 거대한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 히스기야의 신하들은 국난을 극복하고자 일부러 지혜가 담긴 솔로몬의 잠언을 찾아 편집하고 히스기야에게 전달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신하들이 건네준 솔로몬의 잠언을 읽으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지혜를 얻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5절에서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는 구절은 사람만을 의지하는 자에 대한 솔로몬의 경고였던 것입니다.
(8) 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9)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 (10)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11)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12)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 (13)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외부의 어떤 위협이 있더라도 모든 일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16)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18)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19)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20)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21)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자는 국가 만이 아닌 가정과 사적인 모든 관계까지도 분쟁과 다툼없이 슬기롭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뿐 아니라 때론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채찍도 주십니다. 그 채찍을 지혜롭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가운데 자식을 징계하거나, 종에게 엄격하게 대하라는 구절은 바로 성장과 성숙을 위한 지혜임을 명시해야 할 것입니다.
(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24)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 (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26)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27)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맏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잠언 29장의 23절 이하는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편집한 솔로몬의 잠언, 즉 솔로몬의 제2잠언의 소위 결론과도 같은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이 낮추시고, 마음이 겸손한 자는 하나님이 영예를 준다고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다고 합니다. 또한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합해보면 솔로몬이 29장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란 그 누구도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고 의지하다가 오히려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 그저 사랑해야할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대고 의지해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주님입니다. 히스기야가 신하들을 통해 건네 받은 솔로몬의 잠언을 읽고 내린 결론은 29장 25절에 쓰여 있는 문구 그대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여호와를 의지하고자 했던 히스기야에 대해 열왕기하 18장 5절은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왕하 18:5)
한편 새번역 성경에는 개역개정판과는 다르게 잠언 29장 위에 ‘상식’이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신앙인으로 갖춰야할 상식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하루도 순간순간 여호와를 힘입어 나아가기를 기도 드립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새롭게 오늘 하루를 열어 주시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속에는 나 자신이 주인으로 나를 지배하며 살아갈 때가 너무 많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내 삶을 주관하시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유익과 욕망을 쫓아 주님을 잊을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늘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힘입어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인간의 지식을 앞세우기보다는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사모하며, 그 지혜를 따라 숨쉬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를 힘입기 보다, 타인을 힘입기 보다 주님을 힘입어 살게 하소서.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보지 않게 하시고, 그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