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3.
운조루
타인능해(他人能解). 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라도 열어 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의 글자가 새겨진 큰 뒤주로 유명한 집이 있다. 주위의 배고픈 사람에게 쌀을 나눔으로써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선비라면 풍요를 민초와 나눌 수 있어야지. 그렇지 않다면 군자에게 풍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를 많이 가진 자들이 기부를 생활화한다면 빈부격차가 지금보다는 줄어들어 조금 더 평등한 사회로 가지 않을까 하는 짧은 생각을 해본다.
운조루 이야기다. 운조루를 지은 문화류씨 류이주(1726~1797)는 호가 귀만와(歸晩窩)이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정도로 힘이 넘치는 무관이어서 이 집 솟을대문에 그가 잡은 호랑이 뼈를 걸어 두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귀하디귀한 호랑이 뼈는 누군가 하나둘 집어 가고 이제는 엉뚱한 짐승의 뼈가 대신 걸려 있다. 안타까운 일지만 무슨 짐승 뼈인들 어떠랴? 용맹한 조상 류이주가 지은 집이 이렇게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섰는데.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의 기쁨을 생생하게 그린 시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아는가. 시구의 첫 자를 합한 것이 이 집의 당호다. 의미를 알고 나면 마음이 짠해진다. 운.조.루.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봉우리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날다 지친 새들은 집으로 돌아올 줄 아는구나!
운조루 누마루에 올라 차를 대접받은 적이 있다. 누마루에서 보는 초여름 풍경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좋았다. 마냥 이리 앉아 향 좋은 차나 들이키며 살랑대는 바람에 취하고 싶었다. 운조루 종부 할머니의 인생을 알기까지는 그랬다.
운조루 종부는 시할머니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다. 시할머니는 집안일 하는 누군가 나뭇단에 쌀자루 숨겨놓았다는 말을 듣고 고자질한 사람을 나무랐다고 한다. “네 이놈! 손대지 말고 가만히 두거라. 오죽 굶었으면 그랬겄냐!” 당신 딸들에게는 누룽지를 먹이면서도 굶주리는 이웃의 헤아리는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운조루 덕분에 인근의 농민들은 부자에 대한 분노를 키우지 않아도 되었고 굶주림 끝에 똥값으로 땅을 넘기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때론 안타깝다. 종부 할머니는 허름한 옷에 수건을 덮어쓴 모습으로 지금도 봄부터 가을까지 밭에서 일을 한다. 관광객의 눈으로는 운조루 타인능해는 뒤주 하나만으로도 족할 듯하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300년 이어온 운조루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조금은 알 듯하다. 그대는?
첫댓글 그렇지 다 같이 먹고 살아야지 그게 좋은거지 참 기분좋은거지
이 사람들은 물질만능주의인 지금도 그리 살고 있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