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안니발레 카라치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1560-1609)는
미술가 가문인 카라치 가문에서 가장 창의력이 풍부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화가였다.
카라치 가문은 16세기 후반부터 볼로냐에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안니발레는 화가를 직업으로 삼는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사촌 루도비코의 공방에서 형제인 아고스티노와 함께 미술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엄격한 이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정제된 자연주의 양식을 추구했으며,
형식과 기교에 주력한 매너리즘 화가들의 양식을 제거하고자 했다.
카라치 가문은 초기 바로크 시대를 이끌며 새로운 회화를 탄생시켰고,
그들 중 선구자가 바로 안니발레 카라치이다.
그는 사실적인 표현을 추구했고 피렌체의 구도주의와
베네치아의 풍부한 색채와 입체적인 빛 표현을 절충하여
역동적이고 극적이면서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바로크 회화 시대를 열었다.
차분하며 정적인 르네상스 회화에 비해 바로크 회화가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는 이유는
종교개혁의 여파로 개신교가 등장하고 가톨릭의 위엄이 떨어지자
종교화를 통해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였다.
바로크 화가들은 관람자의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고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인물들의 감정표현과 역동적인 동작을 강조했다.
예수님의 고난을 극적으로 묘사한 안니발레가 그린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은
르네상스 시대에서는 그려지지 않은 주제 중 하나였다.
아름답고 이상적인 그림을 추구하는 르네상스 회화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표현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니발레 카라치의 이 작품에서는
바로크 회화의 특징인 사실적인 인물과 인물의 감정을 표현했고,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는 장면을 세 복음서에 기록했다.
군사들은 예수님을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 관저였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서는,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인사하기 시작하였다.(마르 15,16-18)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조롱하였다.(마태 27,27-31)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하였다.
군사들은 또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나서,
그분께 다가가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그분의 뺨을 쳐 댔다.(요한 19,1-3)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셨다는 사실을 간단하게 묘사했지만
바로크 회화에서는 예수님께서 가시관 쓰시는 고통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천사들을 추가로 등장시켰다.
가시관을 쓰신 채 피를 흘리는 예수님의 표정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그분은 온 몸은 이상화 된 몸이 아니라
채찍을 맞고 가시관에 찔려 피가 흐르는 고통에 지쳐 있는
축 쳐진 몸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예수님의 몸을 부축하고 있는 천사들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넋을 잃고 하늘과 관람자들을 보고 있는데,
관람자들이 천사들의 표정을 보면
그 슬픔에 금방이라도 동화되지 않을 수 없다.
바로크 미술은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통해
관람자가 그림을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처럼 느끼게 하면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