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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분 순삭] 완벽에 집착하는 미친 교수가 《상위 0.0001% 엘리트》를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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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영화리뷰 결말 인물 해석
2021. 7. 3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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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쉬' 포스터
위플래쉬감독데이미언 셔젤출연마일즈 텔러, J.K. 시몬스개봉2015. 03. 12. / 2020. 10. 28. 재개봉
위플래쉬 리뷰
위플래쉬는 일류 드럼 연주자가 되기를 꿈꾸는 앤드류가, 마찬가지로 일류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방식도 고수하며 학생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교수 플레처를 만나 겪는 좌절과 각성을 담은 성장 비극영화이다.
여느 음악영화처럼 밝은 분위기, 아니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보면서 이토록 고통스러운 영화는 잘 없었는데, 위플래쉬가 그랬다. 드럼은 주인공이 치는데 영화를 보는 내 팔근육이 다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이번 리뷰는 인물의 특징, 비슷하고도 다른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크게 5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답으로 핵심 내용을 요약했다.
1. 플레처는 미친 x 인가?
소리 지르는 건 기본. 혹여 단원들이 실수라도 하면 입에 담기 어려운 수준의 욕을 퍼부으며, 뺨을 때리거나 의자를 던지는 등 심각한 물리적인 폭력도 행사하는 플레처. 과연 이런 방식도 교육을 위해서라면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너무 낯설고 당황스러운 방식이라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경험을 절로 하게 된다. 주인공인 앤드류가 첫 연습에서의 모욕적 경험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드럼을 더 잘 연주하게 되기 때문에도 더욱 그렇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플레처의 행위에 대해 정확히 선을 긋고 '그렇지 않다'라고 답한다. 플레처의 옛 제자 '션 케이시'의 이야기가 확실한 표식이다. 션 케이시는 플레처의 지도를 통해 음악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링컨 센터의 수석 연주자가 되었지만, 불안과 우울을 떨쳐내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을 맸다. 플레처의 가혹한 훈련 방식으로 인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동시에 정신적으로 고통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의미에서 참 대단한 플레처는, 이런 안타까운 옛 제자의 죽음마저 학생들의 자극제로 사용한다. 중요한 사실은 '자살'이 아닌'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며 감쪽같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을 숨긴 것은 자신의 가학적 교육 방식으로 인해 션이 받았을 고통을 짐작한 것은 물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자신도 책임을 느낀다는 방증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걸 보고 싶다'라는 염원을 이유로 고집하는 학대에 가까운 훈련이 정상 범주를 넘어섰고, 그것을 인정하지만 결코 고칠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위선적 면모가 명백히 드러난다. 감정이라곤 분노밖에 없을 것 같은 그가 션 케이시 이야기를 하면서 흘리는 의외의 눈물은 진실을 알고 보면 단원들과 션 모두에게 기막힌 기만이자 위선이다.
결론적으로 플레처는 훌륭한 교수가 아니다. 학생의 인권(너무 당연히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서 어색하기까지 한)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발생한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2. 그렇다면 앤드류는?
스튜디오 밴드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첫 연습에서 플레처로 인해 주눅 들고 눈물짓던 앤드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눈물 따위는 사치, 결말에 다다라서는 오히려 플레처를 당황시키는 대담함을 보인다. 초반에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그가 마지막엔 플레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연주하는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플레처 못지않게 앤드류도 '만만찮은 인간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사실 앤드류는 플레처를 만나기 이전에도 유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버디 리치와 같은 '최고의 드럼 연주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세이퍼 음악학교에 왔고, 우연히 플레처를 처음 만난 순간에도 연습실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플렛 처가 앤드류에게 잊지 못할 모욕을 선사한 첫 연습 이후로 앤드류는 눈빛에 어수룩함을 거두고 점차 더 '완벽'에 미친 사람이 되어간다. 개인 연습실에서 숙식을 해결할 만큼 연습에 하루 종일 몰두하고, 헤져 온통 피가 나는 손의 통증을 잊기 위해 얼음 물에 손을 담근다. 조심스러웠던 니콜과의 관계도 일방적으로 내치듯 정리해 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중요한 공연의 메인 드러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리해서 차를 몰다 교통사고까지 났음에도, 피를 철철 흘리며 공연장으로 달려와 끝내 드럼을 연주하려 하는 광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광기가 순전히 플레처로 인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스튜디오 밴드에 있던 다른 드럼 멤버 코널리와 결국 음악을 포기하고 의예과로(포기하고 간 곳이 의예과라니.. ) 갔다는 태너도 플레처의 영향을 받았지만 결국 이토록 지독한 집념을 보인 것은 앤드류 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손사래를 치고 떠날 텐데, 만만찮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처음엔 그저 플레처의 희생양처럼 보였지만, 그의 무시와 폭력을 자신의 의지를 태우는 장작으로 이용하고, 또 잠재 돼 있던 광기를 터트리는 시발점으로 삼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최고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 역시 플레처를 이용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또 앤드류가 플레처에게 처음으로 저항하는 순간은 그가 연습 중 도가 지나치게 앤드류를 몰아붙일 때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 위협을 느낄 때, 즉 최고가 되기 위한 기회를 누군가에게 빼앗길 위험에 처했을 때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여간 독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앤드류는 애초에 뚜렷한 목표를 가진 인물이었고, 플레처라는 트리거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극에 달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했다. 그리고 그도 미친 사람의 면모가 있다.
3. 앤드류는 왜 플레처를 고발하지 않았을까?
학교에서 제적당한 후 플레처의 가학행위를 의심하는 조사관이 찾아왔을 때, 도대체 앤드류는 왜 그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았을까? 그동안의 불합리한 대우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울분을 토해도 모자랄 만큼 호되게 당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앤드류는 한때나마 플레처 교수와 그의 방식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그렇게만 한다면'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최고의 자리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주는 존재가 바로 플레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도 고통스러웠지만 드럼에 대한 열정을 있는 대로 쏟았던 시간과 자신의 모습을 증언을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가여워하거나 부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자신의 성장 중심에 있던 플레처를 부정하는 것은 곧 드럼과 그때의 자신도 부정하는 일과 같다고 여겼을 것이다.
조사관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앤드류가 어린 시절 드럼을 치던 영상을 보며 눈물짓고, 연습실의 장비를 정리하는 장면이 교차된다. 그동안 애정 했던 드럼과의 지난날들을 떠나보내는 조용한 이별. 이렇게 드럼을 가슴 한편에 묻어야 하는 상황에서, 가타부타 이야기하며 떠올릴수록 아린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심리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4. 앤드류와 플레처는 도대체 무슨 사이인가?
조금 황당하게 들릴지 몰라도 앤드류와 플레처를 보면 마치 한 연인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이들의 관계가 오묘하다. 연습실에 갑자기 찾아온 플레처 앞에서 앤드류가 떨리는 마음으로 연주를 해 보이지만, 이내 말 한마디 없이 가 버려 닫힌 문을 보며 '뭐가 문제였을까' 탄식했던 첫 만남. 이후 연습, 또 연습을 거듭하는 치열한 날들을 지나서 갈등이 극에 달해 이내 헤어지게 됐던 더넬런 경연. 그리고 거리의 한 재즈 바에서 이뤄지는 우연하고도 어색한 재회까지,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 같다는 것이다. 특히 재회한 바에서 두 사람이 이전의 감정은 다 내려놓은 편안한 눈빛으로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비하인드스토리를 꺼내는 장면의 분위기는 정말이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재회씬을 오마주 한 것만 같다.
물론 우스갯소리이다. 이 둘의 '관계'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다. 선생과 제자같이 위아래가 명백한 관계로는 이들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앞서 앤드류와 플렛 처가 각각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했는데, 그래서 이 두 사람이 부딪히면서 어느 지점에서 맞물리고, 어떤 부분에서 파편을 남겼는지 얘기해 보고자 한다.
앤드류는 플레처와 닮아있다. '일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또 최고가 되기 위해서라면 목에 날아오는 심벌즈에 감사하며 각성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같은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앤드류가 원래 그랬는지, 아니면 플레처를 답습한 것인지 모르지만 오로지 역할과 능력으로만 연주단원들을 평가하고 하대하는 경향 또한 비슷하다.
메인 드러머 자리를 놓고 벌인 세 사람의 치열한 경쟁 끝에 마침내 앤드류가 해내자 플레처는 즉시 나머지 두 사람에게 ‘보조들은 드럼에 튄 피 나 닦아’ 라고 말한다. 그리고 더넬런 경연 날, 그렇게 어렵게 따낸 메인의 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놓이자 코널리에게 ‘너는 보조에 맞게 악보나 넘겨’ 하며 앤드류가 분노에 차서 말한다. 연습실에서 홀로 연습할 때도 플렛 처가 자신에게 그랬듯 스스로에게 욕을 하고, 드럼을 찢는 등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닮은 구석이 있지만 두 사람이 재회해서 하는 대화를 보면 그들의 차이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만하면 잘했어" 요즘엔 그런 게 대세니, 재즈가 죽어 갈 수밖에.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야"
선은 지켜야죠. 너무 세게 몰아붙이면 제2의 찰리 파커도 좌절할 거예요.
굳이 적지 않아도 각각의 누구의 대사인지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앤드류는 분명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이고 플레처는 그런 것 따위 없다. 피가 철철 나고 몸 성한데 하나 없이 무대에 오른 앤드류를 보고도 '괜찮냐'라는 말 대신 '넌 끝이야' 하고 말했던 전적이 있으니 기대할 것도 없다. 똑같이 일류를 지향하지만 인정사정없는 플레처와 인간적인 교류와 관계를 (물론 플레처에게만 집중) 원했던 앤드류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앤드류는 플레처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인정을 최대한 절제해 왔다. 그리고 플레처와 강제적으로 분리된 이후에는 점차 본 모습을 되찾아 갔다.
위플래쉬 결말 해석
파국으로 끝났던 두 사람이 재즈 바에서 다시 재회한 날.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JVC 재즈 페스티벌에서 드럼 연주를 맡아 줄 것을 부탁한다. '너 같은 사람 또 없어' 하며 설득하는 것을 보면 조금 유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 플레처도 사실은 앤드류에게 조금의 애정이라도 있었던 거 아닐까?' 하는 엄청난 착각을 하게 만든다.
대망의 그날. 중요한 공연에서 실수라도 하면 평생 '찍힌다'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희대의 발 연주를 하는 트라우마를 안긴다. 앤드류는 무대 백스테이지로 뛰쳐나갔다가 이내 결심한 듯 다시 무대로 오른다.
그리고 플레처의 말을 끊고 홀로 카라반의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앤드류가 그토록 템포에 집착하며 앤드류를 괴롭혔던 바로 그 곡. 드럼이 먼저 시작하자 앤드류의 신호에 맞춰 다른 악기도 점차 소리를 내며 카라반을 완성한다. 항상 플레처의 템포에 맞추고, 끌려다녔던 앤드류가 처음으로 자신의 리드로 그를 끌고 가는 복수의 순간이었다.
엉겁결에 시작한 카라반이 끝나고, 곧바로 또 다른 연주를 시작한 앤드류. 처음에는 무척 당황한 기색의 플레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연주를 돕는다. 앤드류는 늘 플레처의 인정을 갈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완벽을 스스로 실현하는 앤드류를 완전히 인정하는 모습이 짜릿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자신만의 세상에서, 무아지경으로 드럼을 연주하는 순간의 성취는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극한의 고통을 사한다.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의 모든 것을 전부 내던지고, 오로지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서로 눈을 맞추는 화합의 장과 다름없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어느 한쪽은 멱살을 잡거나 몸을 날려 넘어뜨려도 상관없다. 다만 이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다그치는 채찍도 즐거울 뿐이다.
앞서 위플래쉬를 '성장 비극'이라고 소개했다.
분명 앤드류는 플레처로 인해 성장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서히 자신과 생의 행복들을 도려낸다. 최고를 위해 자신을 더 강한 광기로 물들여 온 앤드류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션 케이시처럼, 그리고 그가 그렇게도 존경했던 버디 리치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진정한 결말을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한 노력이 무엇인지. 알을 깨고 나오려는 몸부림이 얼마나 처절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 주었다. 그런 면에서 위플래쉬는 성장 영화로도, 한 편의 우울한 상실 다큐멘터리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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