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이웃에 있는 학교에 갔을 때의 일이다. 건물 한 켠에서 학생이 교사에게 꾸중을 듣고 있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학생이 교사용 화장실을 '함부로' 썼다는 것이다.
꾸중하는 교사는 너무도 당당했고, 꾸중을 듣고 있는 학생은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합니다'와 '잘못 했습니다'만 연발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동안 마음이 편칠 않았다. 급한 김에 교사용 화장실을 좀 썼기로서니 그게 무슨 죽을 죄라고 아이를 매섭게 을러대는가 싶어 영 마뜩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놓고서 교사용 화장실의 청소는 아이들에게 시키지 않는가.
기초적 생리욕구를 해결하는 화장실을 쓰는 데에도 교사와 학생을 갈라놓고 규제하며 그것이 마치 대단한 권위인 양 하는 학교문화가 결코 아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어보였다.
더구나 대부분의 학생용 화장실은 교사용 화장실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는 시설임을 감안한다면 좀더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화장지나 방향제가 제대로 마련돼 있는 학생용 화장실은 드물고, 손을 씻고 나서 닦거나 말릴 수 있는 장치가 설치돼 있는 곳도 아직은 일부러 찾아야 눈에 띌까말까하는 정도이다.
남녀공학인 학교의 경우에는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의 대·소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제7조 1항)"는 규정을 지키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 10분은 너무도 짧기만 하다. 매점에도 다녀와야 하고, 칠판도 지워야 하고, 옆반 친구에게 체육복이나 책을 빌리러도 가야 하고…. 물론 화장실에도 가야 한다. 그것도 아주 길게 줄을 서서 말이다.
▲ 전교조 평택안성사립지회에서 지역의 학교들을 대상으로 교사용-학생용 화장실 실태조사를 했다. 19개 중고교가 설문에 응답을 한 가운데 '학생들이 교사용 화장실을 이용하다 들키면 꾸중이나 징계를 받는다'고 대답한 학교가 12곳이나 됐고, 교사용 화장실을 학생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곳은 2곳에 불과했다.
ⓒ 임정훈
심지어 일부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교 밖의 관공서나 병원 등 비데가 설치된 화장실을 찾아 원정(?)까지도 마다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냄새나고 불결한 학교 화장실을 거부하는 것이다. 학교 화장실에도 비데를 설치해 달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해서 교육적 효과를 거두던 시대는 지나갔다. 화장실조차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교사와 학생을 나누어 통제하고 차별하는 것도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다.
어린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교사는 그들에게 강요하고 차별하면서 스스로의 권위를 말할 수는 없다. 나아가 그것을 '권위'라고 인정해 줄 사람도 없다.
세계인권선언 제30조는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위해 사용될 수 없다"고 말한다. 교사와 학생 사이도 예외는 아니다. 교사의 권리(권위)를 위해 아이들의 권리와 자유를 꾸짖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가 교사로부터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때 아이들도 진심어린 존중을 교사에게도 보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