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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동창회를 다녀와서~!!!
최 현 수
여보게~! 내가 잊지 못할 멋진 친구들아!
금년 동창회를 다녀 온지도 벌써 두 달을 향해서 뭔가에 쫓기듯 가는 세월이 원망스럽지 않은가?
그때의 짧고도 아쉬웠던 시간들을 돌이켜 더듬어 보니 잊을 수 없는 친구들 모습이 나의 뇌리에 지금도 맴 돌고 있네~^^이 이야깃거리들을 기행문(紀行文)형식을 빌린 산문(散文)으로 내 생각을 담아 몇 자 적어 보고자 하네~. 혹, 이 글에 불편한 친구가 있으면 그 냥 못 본 체하고 넘어가 주려무나~^^. 그래 줄 수 있지?
특히 우리들의 카톡방에 직접 쓸려고 하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에 부득이 연재(連載)로 몇 번 나누어서 나의 동창회 참석(1박2일) 여정(旅程)에 따라 올리고자 하오니 많은 이해 있길 바라네.
♡ 1 ♡ : “출발”
2024년4월27일~♡
오늘 아침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어김없이 동이 트며 날 이른 잠에서 깨우는구나~!
아침 산책을 다녀온 후 간단한 샤워를 하고 1박2일 동안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설레는 마음으로 챙기면서 휴대폰에서 오늘과 내일 거창 날씨를 검색해 본다. 어~라! 거창 날씨가 "최고 29°c"라는 예보가 내가 입고 또 가져갈 옷 선택에 혼란을 가져 온다.
난 금년에는 처음 가는 고향길이라 다소 들뜬 마음으로 보따리에 멋진 친구들 만날 설레임도 함께 넣어둔다.
그저께, 우리 재부 총무인 강순점이가 친절하게 직접 전화를 해 "현수야~! 27일 오전 10시 정각 부산교대 앞 한양아파트 앞에서 신용문 차편을 이용해" 라는 지시(?)를 받은 지라 시간에 늦지 않게 챙겨둔 보따리를 등에 메고 집을 나선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이겠네~다음에 또 안녕♡
♡ 2 ♡ : “건망증”
집을 나선지 얼마나 됐을까?
이 허전한 느낌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본다. 뭐지? 하면서 상〮하 주머니 마다 손을 넣어 봐도 잡히지 않는다.
"아~! 지갑!"
등에 메고 있는 백팩을 내려놓고 여기저기 뒤져 봐도 없다.
"어디 갔지?" 설마 집 탁자 위에?
혼자 말로 중얼중얼거리며 다시금 발걸음을 집으로 되돌린다. 거실에 들어 서니 지갑이 "왜? 날 버리고 갔냐고?" 하듯이 탁자 위에 놓여있다.
왜? 건망증이 이토록 심할까? 혼자 투덜거리며 급히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총총걸음으로 다시금 집을 나선다.
집에서 약속 장소가 멀지 않기에 나는 걸어서 가기로 한다. 조금 전에 지갑으로 소동이 있었지만 그래도 상쾌한 기분에 콧노래를 옹알거리며 가벼운 걸음걸이로 목적지에 도착하니, 먼저와 있는 신용출이가 벤치에 앉아 반갑게 맞는구나~^^.
곧이어 오영수가 몹시도 힘들어 하는 얼굴을 보이며 나타난다. "잘 지냈어?" 라고 인사가 끝나자마자 "아~! 죽겠네 ㅠㅠ, 간밤에 늦게 까지 한잔 했더니만~~" 하고 말 끝을 흘린다. 먹은 술에 아직도 숙취가 남아 있는 듯이 괴로워 하면서 "나 오늘 앞 좌석에 타야겠다고 사전 양해를 구한다.
“그러면 우리 용문 차에 오늘 몇 명이 타는 거야? 4명?, 5명? 자~보자. 나, 오영수, 최현수, 운전하는 신용문 뿐인가? 정종현이는 서상대 차에 타기로 했고, 또 박천식이는 개인 사정으로 참석 못한다니까 그럼 4명이네~~" 확인하면서 용출이가 전화를 한다." 지금 어디야?" 전화 받는 용문 "다 왔어 근처 다리야" 하는 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 오는가 싶더니 약속시간에 정확하게 도착한다.
서로간에 인사와 함께 난 용문 친구에게 "오늘, 낼 신세 좀 많이 지자고" 하고 차에 오르니 용문 " 무슨 별 소리 다하냐고" 대답한다.
비록 얼마 전 정기 모임에서 만났지만 그래도 또 보면 반가운 것이 옛 고향 친구들 아니냐! 싶다.
여기서 편의상 1박2일 동안 우리 일행 길라잡이 역할을 할 서상대 차를 1호차. 뒤 따르기로 한 신용문 차를 2호차로 부르기로 한다.
모두가 탑승 확인하고 "지금 출발 하겠노라고" 용출이가 1호차 순점에게 전화를 하니 그쪽 차는 이미 출발하여 동서고가도로를 지나는 중이라면서 칠서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는다.
우리가 탄 2호차도 동래역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해서 만덕 터널을 향해 거창 동창회 대장정(大長程)에 오른다. 오늘 여기까지~ 안녕! 다음에♡
♡ 3 ♡ : “내 고향 거창으로”
미남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에 앞을 보니 무척이나 낯이 익은 만덕터널이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잠시 나도 모르게 생각에 빠져든다.
남의 차에 몸을 싣고 고향 길을 가려니까 왠지 좀 어색하다.
터널 안으로 들어서니 향상 내가 직접 운전을 하고 가족을 태워 고향을 가거나, 또 매일같이 몇 년을 출퇴근하며 다니던 터널이 아니던가~!.
현직생활 중에 지금도 우리나라 최대 컨테이너 터미널로 자리매김한 “부산신항 부두시설 축조공사" 에서 근무 할 때 먹고 살기 위해 새벽에 이 터널을 지나다녔던 그때의 일들이 불현듯 주마등이 되어 내 가슴을 아리고 지나간다.
우리 2호차는 터널을 지나면서 오늘(신기에서 1박)과 내일(동창회)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낙동강 다리를 지나 남해고속도로 톨게이트에 들어선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이런저런 이바구들로 많이 웃기도 했지만, 그래도 오늘 이야기의 주된 꺼리는 누가 뭐래도 얼마 전(4월 10일)에 치러진 22대 국회 의원 선거였지~~!
윤석열 대통령, 이재명 대표, 한동훈 위원장들의 이번 선거에서 미친 영향 이나 활약상에 대한 친구들의 평가는 내로라하는 정치 평론가를 능가하는 날카로움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야기를 들어 본즉 모두가 나이 때문인지, 지역 탓인지 보수적인 색이 짙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싶다.
특히 부산 수영구 선거에 대해 차내의 누군가가 "수영 구민은 정말 현 명하다 못해 모두가 위대하다고" 극찬까지 하며 너스레를 떤다.
아마도 처음 국민의힘에서 여러 정치 패널로 유명세를 탔던 젊은 정치 지망생 "장예찬"에 대한 정치적 판단 실수(?)로 민주당, 국민의힘, 무소속 장예찬의 3강 구도가 된 것이 모두의 관심거리가 됐기 때문일 꺼다.
당초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크게 지지율이 높았던 장애찬이가 과거 막말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 되면서 출마를 포기 않고 무소속으로 나왔기에 당선 예측이 초미의 관심 지역으로 떠올랐지만 결과는 장예찬의 비참한 득표와 국민의힘 정연욱 큰 표차가 민주당 유동철의 이부자리 당선 기대를 쑥스럽게 만든 뒷이야깃 거리들로 차 안이 후끈 달아 오른 것을 시원하게 식혀 주겠다는 듯 진영 휴게소를 지나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내달린다.
잠시 후 고속도로 전광판에 "북창원 22km 정체"라는 알림판이 우릴 당황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모두가 오늘 토요일 이 시간 쯤엔 당연히 정체가 된다고 느긋함을 보인다
다들 다녀본 경험에 수긍하면서도 어쩌지? 하는데 요즘 거창을 자주 다니는 용출이가 "내 경험상 이곳에서 정체구간이 10km이내면 그래도 직진이 낫고 그 이상이면 마산 쪽 옛 고속도로 우회가 빠르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용문이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마산 쪽 우회도로로 진입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 4 ♡ : “묻지마 관광”
너나 할 것 없이 옛날에 고향 가면서 많이도 다녔던 길인지라 낯설음 보다 오히려 정감이 가는 길이라 기분이 좋다.
누군가가 1호차가 궁금했는지 "지금 어디냐?" 고 물으니 그쪽도 우리와 같은 길로 앞서가는 모양이다.
잠시 후 톨게이트에 진입할 쯤 하이패스 아닌 일방통행 구간이 2곳이 보인다.
안쪽 면은 승용차 3대, 바깥 쪽은 큰 버스가 1대가 있다.
우리 베스트 기사님! 용문
잽싸게 바깥쪽으로 진입하길래 내가 운전을 해도 이쪽을 택하리라 생각하며 참 운전을 재치있게 잘 한다고 생각하던 순간, 웬~걸~!
앞서가던 버스가 요금 정산에 뭐가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차가 고장인 지 비상 깜빡 등을 켜놓고 요지부동이다.
후진을 할까 하고 뒤를 봐도 승용차가 뒤 따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투덜거리며 기다린 시간 3~4분 후에야 그곳을 벗어 날 수 있었다.
오늘처럼 자동차 여행의 즐거움을 나누던 중에 누군가가 "묻지마 관광" 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실감나게 풀어 놓는다.
보통은 여자와 남자 구성 비율(7:3내지6:4)로 여자가 훨씬 많다든지 또 그날 잘 얻어 먹으려면 큰 가방을 메고 오는 여자분과 같이 하면 배부르게 얻어 먹을 수 있다는 둥 알토란 같은 꿀 팁까지 알려 준다.
묻지마 관광을 꽤나 뚫고 있듯이 너스레를 떤다.
듣고 있자하니 난 솔직히 많이도 궁금하고 솔깃해지면서, 나는 왜? 한번도 이토록 재미있는 경험을 못했을까? 자문해 보면서 지금이라도 나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에 올려 실천해 볼까?
잠시 생각해보며 그저 웃고 만다.
묻지마 관광으로 한 바탕 웃는 사이 2호차는 남해고속도로, 구마고속도로 갈림길에서 주저 없이 구마고속도로 진입하자.
용출이 말하기를 "왜?" 이길로 가냐? 직진해서 산청으로 넘어가면 훨씬 빠른데"하며 아쉬워한다.
용출이 말을 받아 용문이 말하기를 "몰라~ 네비게이션에 거창군청을 찍었더니 이렇게 안내하네~헤헤” 하고 웃는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지 "이 길로 가면 88고속도로에서 큰 화물차가 앞서가면 추월도 어렵다며" 하고 말 꼬리를 흘린다.
하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름만 88고속도로였지 왕복 2차선에 그것마저도 꼬불꼬불한
오르내리막이 얼마나 많았던가~
또 높은 시대에 도착하면 기압차로 귀까지 멍멍할때도 있었지~.ㅋㅋ.
하지만 지금은 구마에서 바로 88고속도로로 연결됨과 동시에 도로가 개선되어 많이도 좋아졌고, 약속한 칠서 휴게소로 갈려면 이 고속도로 가야 한다며 이해를 시킨다.
오늘은 여기서, 다음에 또~♡
♡ 5 ♡ : “오계회 모임”
드디어, 칠서휴게소 큰 안내판이 시야에 들어오자, 1호차에서 먼저 도착 해 자리잡고 있는 위치를 용문에게 알려 온다.
“주유소 있는 위쪽으로 오라"고 그곳을 찾아 2호차가 정차를 하고 모두가 뻣뻣해진 몸을 기지개를 켜며 어렵게 차에서 내린다.
먼저와 자리 잡고있던 1호차의 낯익은 친구들 "하종현, 서상대, 정종현, 강순정, 장경남." 모두가 활짝 웃는 얼굴을 보이며 반갑게 맞이해준다. "야~! 어서와!" 하면서.
벌써 간이 벤치에는 방금 휴게소에서 사왔다는 따끈따끈한 효도과자, 입에 착 달라 붙는 쑥떡, 돼지고기 편육, 순점이가 직접 만들어 왔다는 물에 절인 빈대떡, 빠지지 않은 술과 음료. 거기에다 영수가 담금주로 가져온 오미자(?)진액 등으로 넉넉한 먹거리가 늦은 아침 겸 새참을 앉거나 서서 서로간의 얼굴을 마주하며 먹는 맛이야 말로 우리들의 모임을 더욱 풍요롭고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준다.
비록 염치 없는 중년 남녀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종이컵 커피를 마시며 끈떡지게 앉아 우리들의 모습이 부러운 듯 구경하다. 우리 여자분들이 챙겨 주는 떡을 받아 들고 "잘 먹겠습니다" 하고 유유히 자리를 떠는 게 눈에 거슬렸지만~^^.
한편 오늘 자기집에서 1박 하기로 한 서상대는 많은 심적인 부담감 때문 인지 간단한 오늘 일정을 알린다.
“거창 도착해 점심을 먹고 구경 좀 하다, 저녁까지 읍에서 먹고 자기집으로 가자고" 모두가 그렇게 하기로 하고 각자 1호차, 2호차에 탑승한다.
여보게 소중한 나의 옛 벗들아~!
각 지역별로 "오계국민학교 20회 동창회 모임"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내려온 발자취가 있듯이 재부 오계국민학교20회 모임도 지금으로부터 약35년 전쯤인가? 아니 더 됐냐? 덜 됐냐? 정확한 년도는 기억 못하지만 남자, 여자 따로따로 가져오던 모임을 누군가 통합하자는 말에 따라 처 음으로 함께 모였던 장소가 범어사 입구 근처 어느 식당으로 기억된다.
그때 총 인원수가 30여명 가까이 되지 않았나 싶네.
그 장소에서 처음 만남 때 우리 모두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상당한 세월이 흘렸던지라 얼굴도 긴가 민가? 생소하고 낯설기도 해 얼마나 서먹서먹 했었는지~^^
그 속에서 "오계회" 라는 모임으로 재탄생(?)했었지.
그로부터 기나긴 세월의 흐름 속에 개개인의 사정으로 탈퇴와 가입이 거듭됨과 동시에 또 불행히도 그 좋았던 몇몇 친구들이 저~~멀리 떠나 가기도해서 지금은 비록 그때의 절반 정도인 15명만 남았지만 오계국민학교 6년이라는 깊은 뿌리 속에다 부산지역 인연 35년을 더해서, 약40년 이란 길고도 긴 세월을 같이한 끈끈한 정으로 묶여 모두가 서로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진정한 친구 중에 친구들로 자리매김한 “오계회” 모임이라네.
여보게 친구야~ 앞으로도 영원할 "오계회" 모임 정말 멋지지 않니?
그럼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다음에♡
♡ 6 ♡ : “휴대폰”
부산에서 출발해 거의 3시간 정도가 지날 무렵 "거창"이란 고속도로 안내판이 "어서오세요!" 하고 반갑게 맞이 해준다.
거창 진입과 동시 용문이 1호차에 "어디로 가야 돼?" 물으니 "옛날 개성상회 앞 00 추어탕집" 이라고 하는 말을 듣자 바로 네비게이션에 음성으로 "거창읍 00추어탕" 명령(?)한다.
정말 놀라운 세상이다.
그래 친구야!
이제 거창도 다 왔고 잠시 그 놀라운 세상 휴대폰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하고 가자구나~^^.
지금으로부터 148년 전인 1876년 미국인(스코틀랜드 출신)벨이 처음으로 전화기를 발명한 이후 최근 50년 동안 전화기 진화는 우리들에게 소름을 돋게 할 정도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지~~.
여보게 친구야~! 기억이 나냐?
너나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 책 속 그림으로만 보았던 전화기! 또 우리가 성장해 객지에서 생활하면서 부모님께 안부를 물으려면 마을마다 유일하게 회관이나 이장 댁에 놓여있는 공공전화기(?)를 이용했던 시절,
그 시절엔 가정집 백색 다이얼 전화기도 인기가 대단했었지~!
이 모두가 지금 생각하면 "아~참! 그땐 그랬지?"하고 기억이 새록새록 나지 않는가~?
그러했던 전화가 우리들 상상을 뛰어넘는 무선에 의한 이동통신이 지금의 휴대폰의 효시가 됐지 않나 싶네.
큰 회사(?) 사장이나 중역들이 승용차 뒤 높디높은 안테나가 큼직한 카폰(carphone)이 있네 하고 알려주는 권위의 상징이었지~ㅎㅎ.
또 잠시나마 호출 기능을 가진 삐삐(?)가 외근하는 직장인, 병원 의료진이 얼마나 용이하게 이용되던 중에 송,수신기능만 가능한 묵직한 개인용 휴대폰 등장이 우리들을 얼마나 설레게 했던가?.
그러던 휴대폰이 지금은 친구에게 아니 사랑하는 아들, 딸, 손자, 손녀에게 어떠한 물건(?)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지 한번 묻고 싶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지하철, 길거리, 집 등 장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 이 휴대폰과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그려 보구려~.
본래 목적인 통신기능은 극히 일부가 되고 만능기능을 탑재해서 친구가 원하는 모든 걸(?) 해결 해주는 요술방망이(!)로 둔갑한 휴대폰이 아니든가~?
난 그저 무서울 따름일세~^^.
우리들은 얼마 전만 해도 지도만 차내에 두면 어딜 가도 큰 불편함 없이 다녔거늘. 하지만 이젠 너도나도 네비게이션 없이 운전은 고사 하고 낯설은 길 나서기도 무서울 정도니 말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 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나는 깨닫게 된다.
우리 베스트 드라이버 용문이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거창 톨게이트를 지나 한들을 통과해서 창남초등학교 옆을 지나 드디어 옛 개성상회 앞에 도착한다.
내가 살았던 고향마저 이젠 네비게이션에 의존하여 길을 찾아가는 모습이 못내 섭섭함은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다음에 또 ♡
♡ 7 ♡ : "추어탕집 수저"
“어~! 하종현이가 저기 있네" 누군가가 본 모양이다.
"날보고 너희들 안내하라"하고 1호차는 정윤자 태우려 갔다며 떡 하니 기다리고 있다.
식당 앞에 차를 주차시키고 내린다.
아침에 날씨 검색 확인했던 대로 거창 봄 날씨가 장난이 아닌 듯 후덥지근함이 우릴 빨리 식당으로 들어가라는 암묵적인 재촉을 하는 듯 하다.
식당 안은 오후 1시가 넘어가고 토요일 이라 그러한지 비교적 조용 하다.
갑작스레 많은 손님이 들어서니 주인장은 살짝 놀라 당황해 하면서도 무척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반겨준다.
식탁에 자리를 잡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먼저 시원한 막걸리(신원)를 시키고 안주를 뭘로 주문할까 하는데 벌써 주방에서 "찌짐을 준비 한다 "고 알린다.
하긴 막걸리의 안주로써 찰떡궁합인 찌짐을 빼놓고 말을 할 수가 없지~!
비 오는 날이면 더욱 금상첨화겠지만~ㅎㅎ
이어서 윤자까지 합쳐 추어탕 10그릇을 주문한다.(잠시 추어탕이냐? 추어국수나? 했지만 ~^^) 잠시 후 1그릇 취소라며 1호차에서 전화가 온다.
아마도 순점이가 추어탕도 낯가림을 하나보다 생각하고 바로 총 9 그릇으로 정정 주문한다.
주문한 막걸리가 식탁 위에 올려 지고 시원한 술 한잔을 하려고 수저를 꺼내는 하종현~!
"이게 뭐야~!" 하고 수저를 잡고 흔들며 몹시도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
아뿔싸~!.
덜 씻긴 몇 개의 수저가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충분했다.
찌짐을 들고 온 아주머니에게 "수저 한번 보이소? 이게 뭐냐고?" 하니 미안해하는 바깥 표정과는 달리 속으로 그럴 수도 있지 뭘 그까짓 갖고~" 하는 거 같아 보여 내가 더 당황스럽다.
그래서 문득 생각이나 적으려니 좀 쑥스럽네~^^. 그래도~ㅋㅋ.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우리 집 식탁 앞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저녁을 먹으려고 식구 모두가 둥근식탁(옛 앉은뱅이 드루판상)에 앉아 아버님이 수저를 집으시기를 기다리던 중 수저를 들자마자 방바닥에 내팽개 치시며 노발대발 하신다.
모두가 놀라 아연실색하며 숨을 죽이고 "왜? 이러시지 무슨 언짢은 일이?" 하는 궁금증은 "덜 씻긴 수저" 임을 바로 알게 됐다..
어머님과 누님에게 그토록 역정을 내시고 꾸중하시는 사이 눈치 빠른 여동생이 얼른 수저를 주어 부엌에서 씻어 가지런히 아버님 밥상 옆에 살며시 놓으며 눈치를 살핀다.
“시멘트가 미쳐 말라 붙기 전 지나간 발자국처럼 내 가슴속에 선명히 남아 강산이 다섯 여섯 번 바뀐 지금까지도 새삼스레 떠 오른다.
오늘 덜 씻긴 수저를 보니 말이다.
아~! 엄격함 속에 푸근함을 늘
간직하고 계시던 부모님이 뵙고 싶어요.
잠시 내 감정을 추스르고 뒤편으로 나가니 용문이가 먼저 나와 앉아 있다.
"현수야~! 집 정원이 꽤나 아름답다 그지?" 하며 감상을 한다. "그래~! 분재 소나무, 과일수, 조경 자연석, 바닥의 잔디가 나름대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원이네~" 하고 공감을 한다. 앙증맞게 서있는 대문을 보니
원래는 잘 지은 가정집이 식당으로 개조해서 당초 앞마당이 뒷뜰로 변해 버린 것 같다.
윤자를 앞세우고 1호차 일행이 식당 안으로 들어 선다.
비록 휴게소에서 새참 겸 간식으로 맛나게 먹었건만 늦은 점심이고 보니 "시장이 반찬인지라” 내가 좋아하는 무씨래기는 온데간데 없고 배추씨래기만 푸짐하게 담아 나온다.
고향이란 조미료 맛이 곁들여져인지 모두가 잘 먹는다.
식당 안 벽에는 약간의 풍자스러운 민속화 그림 몇 점이 걸려있다.
어떤 뜻을 담은 그림일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옆구리를 꾹 찌려며 "야~! 현수야! 그림 뜻 알겠냐?" 하고 하종현이가 묻는다.
아래 위에 그려진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뭔 뜻일까?" 하고 재차 묻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상상의 나래를 펴 마지막 퍼즐을 맞추어 보려 해도 심오한 뜻 해석에 둘 다 실패하고 커피만 한잔씩 들고 식당을 나선다.
1호차에 정윤자가 탑승함으로서 정종현이가 2호차로 옮겨 타고 우리 일행은 길라잡이 1호차를 따라 거창 창포원으로 향한다.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다음에 ♡
여보게~! 오계20회 나의 친구들아~~.
내가 틈틈이 올린 글이 자칫 우리들의 카톡방 청량제 역할은 커녕 더럽히지는 글이 될까 조심스럽네만 친구니까 이해해 주리라 믿고 또 적어 볼련다~^^.
♡ 8 ♡ : "거창 창포원"
거창읍에서 창포원까지 차를 타자마자 도착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짧은 거리임에 틀림이 없다.
또 행정구역상 거창읍이 아닌 남상면에 속해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다.
난 웬지 지하동 정무리 밑으로는 남상이 아닌 타 면처럼 생각했던 것이 아직도 내 마음속 그대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지난해에도 지금의 부산 친구들과 용출이 잘 지은 고향 펜션(?) 집들이 가던 길에 이곳에 왔었는데 ~~^^.
어쩌면 창포원 방문이 우리의 매년 연래행사가 되려나 싶다.
오늘이 4월 말인데도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30 ℃ 가까이 치솟는 기온에 우린 도착하자마자 저번에 와서 다같이 맛있게 음식을 먹었던 그 나무 그늘막 평상마루를 찾아 갔건만 명당(?)자리인가 벌써 돗자리까지 깔고서 누군가 누워있다.
그 주변을 아쉬운 듯 엉거주춤, 쭈뼛쭈뼛하며 서성거리고 있는 우리들 이 신세가 되고 보니 모양새가 영 말이 아니다~ㅠㅠ.
흐르는 땀을 손수건에 닦으며 어쩔 도리 없이 바로 창포원 구경길에 나서기로 했다.
새빨간 앙증맞게 활짝 핀 많은 꽃들이 그래도 우릴 고향 손님이라고 함박웃으며 "어서오세요" 하고 반겨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는구나~^^
꽃 길 옆에 맺여져 있는 그네에 슬쩍 올라 굴려 보니 마음과 달리 잘 안 된다.
옆에 있는 용출이는 보란 듯이 멋있게 잘 타네~! 부럽다.
그네를 뒤로하고 다시 꽃 길을 걷다 보니 앞에 정자가 보인다.
경남이 "우리 저기 가서 쉬자" 하니 그곳에 있던 분이 살며시 자리를 뜬다.
우리 여자 친구들 점령군처럼 당당히 정자에 오른다.
우리는 여자분들을 정자에 남겨두고 조그마한 전망대에 올라 창포원 전체를 한눈으로 내려 본다.
저~ 멀리 여러 곳에서 중장비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공사 가 진행중인 모양이다.
이때 이곳 관광 해설가보다 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정종현으로부터 "거창창포원" 개발 초기 때 토지 보상 시 숨은 뒷이야기를 비롯해서 향후 국가정원공원 추진계획까지 꼼꼼히 맛깔 나는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그래~! 작년에 종현이의 설명을 듣고 창포원 검색해 보니 더욱 놀라울 뿐이다. 어쩌면 그리도 많이 알까?
종현이의 설명과 같이 거창 창포원은 행정구역상 남상면 창포원길 21-1.
앞에 흐르는 황강은 거창군 고제면 삼봉산(해발: 1254m)에서 발원 하여 거창군을 남류하여 합천군을 거쳐 여러 하천과 합류되어 낙동강 본류에 합류하는 길이 111km강을 1982년 착공 89년5월 준공한 합천댐을 조성하면서 수몰지역으로 생겨난 축구장 66배 크기의 대규모 수변을 황강의 수변 경관과 어울리는 생태공원을 조성하면 서 100만본 이상의 꽃창포의 군락지로 만든 공원임을 알았다.
더위 속에 창포원 구경을 마친 후 어렵게 찾은 나무 그늘 밑 한곳에 모여 윤자가 가져온 거창사과를 손과 칼로 쪼개 나누어 먹으며 오늘 남은 일정을 어디로? 근계정? 심소정? 하며 큰소리로 시끌벅적 하는데~!
바로 앞 나무 벤치에 혼자서 반듯하게 누워있는 초중년의 여자~!
설마 곧 자리를 뜨겠지 생각하는 우리를 보란 듯이 아랑곳하지 않고 곧곧이 누워있는 뚝심에 모두가 놀라워 할 뿐이다.
10여분 뒤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자리를 뜬다.
하종현 "와~! 저여자 정말 대단하네” 그저 감탄(?)한다.
먼 곳을 쳐다보고 있던 서상대 불현듯 갈 곳을 결정했는지 "출발~!" 크게 외친다.
1, 2호차 모두가 창포원을 떠난다.
오늘도 여기까지 안녕~! 다음에.
♡ 9 ♡ : “신원면에 들리다.”
엉겁결에 차에 타고 보니 뭔가 빠뜨린 허전한 느낌은? 왜 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별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창포원 앞에 흐르고 있는 황강과 그 건너편 야트막한 산까지를 어울케 조성한다면 더욱 멋진 내 고향 거창의 자랑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바램을 가져보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1호차를 뒤 따른다.
우리 2호차에는 이젠 이야기의 달인인 정종현이가 타고 있기에 여행길이 더욱 즐거울꺼라 기대해 본다.
큰 대로를 벗어나 작은 길로 집어 들자, 아니나 다를까 차가 월평 마을에 이르자 종현이의 이야기 보따리가 서서히 풀어진다.
이곳은 종현이 처갓집이 있는 동네이기에 자연스레 옛적 연애와 결혼 때의 뒷이야기로 재미를 더한다.
종현이의 이야기 속에 어느덧 우리는 고즈넉한 시골 길에 접어 들었다.
차창 밖에는 이름 모를 새와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고요한 길, 엇비슷한 바깥 풍경이 달리는 우리 차 뒤로 주춤주춤 물러간다.
내가 "이 길로 어디로 가느냐?" 물으니 차 안 친구들 모두가 "남상 촌놈이 남상면에서 신원 가는 길도 모르냐?"
한심하다는 듯 힐끗 날 쳐다보고 웃는다.
난 지금껏 남상면에서 신원면 가는 길은 오직 감악산을 넘거나 아님 진목, 춘진 쪽으로만 있는 줄 알고 있는 길맹 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목적지가 궁금하던 차에 앞서가던 1호차가 신원면 소재지에 위치한 신원 양조장 앞에 선다.
우리도 차에서 내리면서 모두가 크게 기지개를 켠다.
난 솔직히 말로만 들어오던 신원면을 난생 처음으로 직접 땅을 직접 밟아 보며 묘한 기분을 느껴본다.
70을 넘긴 나이이지만 모든 게 신기한 양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점심때 식당에서 먹으면서 유명하다던 "신원 막걸리" 를 상대와 순점이가 몇 병을 사 들고 양조장을 나온다. 그리고 바로 차를 되돌린다.
"야~! 어디로 가?" 물으니 또 "그냥 따라 오라" 는 말만 되풀이 한다. "좋은데 가겠지" 하고 따른다.
지나가는 길 옆의 마을들에 대한 얽힌 이야기를 주로 종현, 용출, 용문이가 하고 오늘따라 몸 컨디션이 별로인 영수와 나는 보이는 새로운 것을 가끔 묻거나 듣는 쪽이었다.
얼마나 왔을까?
도로 이정표에 친숙한 그 이름 “감악산 연수사" 라는 조그마한 푯말이 크게도 눈에 띈다.
푯말을 본 용출이 "감악산 고개를 넘어 현수 너의 동네 매산으로 가나 보다" 하면서 이제 어디로 가는지 알겠다는 듯 말을 한다.
"그럼 우리가 지금 신원에서 감악산을 넘어 남상을 간다고?" 내가 되물으면서 생각해 본다 왜?
감악산 하면 여기 다른 친구들보다 더 가까이 살았건만 나만 모를까? 어쩜 난 바보(?)인가 봐~!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다음에 ♡
♡ 1 0 ♡ : “감악산 연수사”
감악산을 넘는다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잔뜩 흥분되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래, 이 감악산을 넘어서면 연수사가 있고 지금의 내가 철없이 뛰놀았고 또 가끔씩 꿈에서 그리워하던 동네 "매산" 이 아니냐?
비록 차 안이지만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고 차창 밖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듯 크게 눈을 부릅뜨고 살핀다.
여보게~! 나의 옛 벗들아 ~!.
자네는 "연수사" 하면 뭐가 먼저 생각이 나는가?
우리네 모두가 어릴 적에 한 두 번은 다녀갔지 않았던가~!
난 감악산 연수사 골짜기 아래 매산에 살았기에 정말 많이도 들락거리곤 했었지만, 마지막 연수사를 본지도 지금 생각해보니 50년이란 세월이 훌쩍 더 지나갔구려~ㅠㅠ.
내 그때의 상상력을 더듬어 남아있는 잔상(殘像)으로 50여년전의 연수사 풍경화를 글로써 그려보면~^^
오솔길 옆에 자리잡고 있는 큰 은행나무를 조금 지나 작은 돌계단 올라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면 감악산 큰 능선을 뒤로하고 큰 법당 대웅전이 자비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웅전 앞마당이 꽤나 넓고 거기서부터 좌측으로 2~30m(?)가면 큰 바위에서 떨어지는 약수터가 나온다.
여보게 친구 어떠한가?
우리들의 주변엔 하루가 멀다 하고 재개발이니 뭐다 하고 변해 갔건만 내 가슴속에 연수사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모습을 간직한재 남아 있길 바라며 그려 봤네~^^ 자네가 그려보는 연수사와 별반 다른 게 없지?
색감 없는 그림이 더 좋지 않냐?ㅎㅎ.
여보게 친구야~!
저마다 어릴 적에 보고 느껴본 일이 평생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듯 이 나도 이곳 은행나무 하면 65년 전의 일이 아직도~!!!.
내가 열살 전후때 쯤으로 기억이 된다.
그날도 어느 날과 다름없이 오후에 소 먹이로 가는 일은 내 몫이었다.
동네 모든 집집마다 소들을 다 함께 몰고가 연수사 골짜기 아래 중간 쯤에 소를 풀어 놓고 어린 내 또래 친구들과 함께 뜀박질해서 연수사에 오른다.
물론 그날도 한 여름 휴가철이라 많은 사람이 연수사 피서길에 오른다.
난 친구들과 같이 뛰어 오르느라 가쁜 숨을 쉴 겸 은행나무 밑 그늘에 잠시 쉬기로 하고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우리 옆에 아이스깩기(?) 지금의 하드 장사가 박스를 열 때마다 하얀 연기(?)가 안에서 슬금슬금 피어내며 팔고 있었다. 그때 하나 가격이 5원이었나 싶다.
우리에게 그당시 아이스깩끼는 한 겨울 초가지붕 밑에 달려있는 기나긴 고드름 이었는데~ㅋㅋ.
그때 어느 젊은 아가씨가 그 아이스깩끼를 사 먹지 않고 팔등 좌우에 갖다 대고 문지른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를~! 우린 그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하며 우리들은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지~ㅠㅠ
난 지금도 막대 얼음 케익을 보면 그때 내가 받았던 문화충격은 아직도 떨쳐내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담세~ㅎㅎ.
여기에 덧붙여서 위 어른들로부터 구전(口傳)으로 전해 듣고 내려 오는 연수사 만이 간직하고 있는 3가지를 알고 있는가?.
첫번째: "물".
연수사(演水寺)라는 한자가 말해주듯이 물과의 깊은 인연은 신라 헌강왕이 이곳 약수물을 먹고 중풍이 나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 전설에서 비롯 된지는 알 수 없으나 대웅전 좌측에 자리잡고 있는 약수터는 큰 바위 위에 큰 대나무(?)로 물통 길을 만들어 Y형으로 남탕과 여탕으로 흐르게 했었지.
한 여름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물맞이 명소가 되있었다. 얼기설기 싸리나무와 억새풀로 가림막을 만들어 안쪽 편은 여탕, 바깥쪽은 남탕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물 낙차 높이는 어림짐작 약 2m정도로 추정된다.
얼마나 물이 차가웠는지 여름이면 많은 휴가철 관광객들이 "연수사 물맞으로 간다 또는 땀띠 죽이러 간다" 하고 모두가 연수사로 몰려 들었다.
그때 땀띠는 농촌에서 일하는 누구나 있었던 여름 질병(?)이었지~^^
두번째: "은행나무"
사찰 아래에 늠름한 자태로 우뚝 서 있는 은행나무~!
수령600년이 넘는 이 은행나무에는 고려 왕손에게 시집가 유복자를 낳고 속세를 떠나온 애절한 여승의 전설이 있다.
거기에다 나는 지금의 무촌 마을 앞에 있는 큰 은행나무와 서로서로 마주보며 부부의 인연 맺은 은행나무로 살아가고 있다는 구전(口傳)이 더 애절하고 실감나게 한다.
세번째: "창건역사"
천연고찰로서 내 어릴 적에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은 해인사의 말사로 있지만 당초 창건 연도는 해인사 보다 앞서기에 해인사의 큰집(?)이라고 들어왔다.
하지만 확인 할 길은 없다.
검색해 봐도 신라 800년대쯤 비슷한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만 보인다.
어떠한 문헌에도 고증 (考證)된 바는 없어 보인다.
꼬불꼬불한 길을 오르니 싶더니 바로 연수사 옆을 지난다.
이때 운전하는 1호차 상대와 2호차 용문이가 많이도 밉다.
날 약 올리려고 엑셀레터를 더 밟는 것 같다. "야~! 그러지 말고 천천히" 하고 내 마음속을 알려준다. 내가 "아마 이럴 꺼야!" 하고 머릿속에 상상하고 있는 풍경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고 전혀 낯 설은 길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연수사를 떠난다.
오늘도 여기까지~^^♡ 다음에 또,
♡ 11 ♡ : "달라진 산 골짜기"
놀랍도록 낯설어진 연수사 주변을 의아스럽고 아쉬운 듯 물끄러미 쳐다보며 "그래 ~! 여기는 내가 살았던 동네와 너무 멀리 떨어져 그럴 꺼야~!" 하고 내 마음속을 달래 본다.
이때 용출이 "왼쪽에 보이는 집이 문길수 집이야~!" 하고 가리킨다.
모두가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길수 내일 오겠지" 하며 지나온다.
운전대를 잡은 용문이는 내 마음을 아랑곳 않고 1호차를 따라 속절없이 달린다.
그러나 날 실은 차는 계속 아래로 아래로 내리 달려 가지만 내 가슴속 깊숙이 녹아있는 어린 동심의 세계는 그 자리에 머물고 만다.
여보게 친구야~!
자네나 내나 어릴 적에 고향 땅에서 있었던 추억들이 지금도 가끔씩 고향을 그립게 만들듯이 내게도 그런 것들이 이 산골짜기에 많이도 묻혀 있다네~^^. 지루할지라도 잠시 들어 주게~!.
내가 국민학교 입학 전 어린 시절 어머님들의 연수사 피서길에 나도 따라 가겠다는 나의 옹고집 덕분(?)에 엄마 손을 잡고 연수사 갈 적 만해도 가는 길이 좁디도 좁은 외길만 있는 오솔길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땐 울 엄마도 30대 중반쯤으로 모처럼 차려 입은 모습이 너무나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넘 그립고 보고 싶다. 울 엄마~!.
그러하던 길이 정확한 년도는 기억에 없지만 감악산 산판(소나무 벌목)용 길이 만들어 지고 제무시(그때 그렇게 불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미국 제네럴 모터스 자동차 GM)트럭이 오르락내리락 다녔었다.
그 후로 그 길로 연수사 구경갈 때나 우리들이 소먹이로 다니는 길이 넓어 너무나 좋아했었지~ㅎㅎ.
계곡에 생긴 자연 소(沼)의 맑은 물은 우리가 소먹이로 와서 멱을 감고, 옆에 있는 높은(약3m) 바위는 담력을 키워준 다이빙대가 되어 멋진 물놀이 장소가 되어 주었지.
물론 물에 들어 가기 전에 자네들도 했듯이 마른 쑥을 손바닥에 비벼서 귀마개를 만들어 귀에 넣기도 했고~ㅎㅎ.
또, 지금처럼 여름 휴가철에는 연수사 피서를 다녀오는 아가씨들을 상대로(남자는 무서워서?) 짓궂은 장난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지~.
오후 5시가 넘어서며 피서객들이 하산하기 시작한다. 이때 우린 먼저 연수사 쪽을 쳐다보고 내려오는 아가씨들 사냥감(?)을 물색하고 작업(?)에 들어간다.
길을 횡단하여 흐르는 작은 실개천 건너편에 아카시아 가시를 촘촘히 심고 다음엔 길에 질기디 질긴 풀을 서로 동여매어 놓고 우린 멀찌감치 숲 속에 숨어 성공할까 말까? 콩닥콩닥 마음 졸이며 지켜 본다.
"아~!" 하고 발에 찔린 고통스러워 하는 소리와 넘어지는 모습에 얼마나 희열을 느끼며 재미있어 했지~^^
그땐 모두가 고무신에 치마를 신고 입었기에 성공확률은 거의 100%였었다 ㅋㅋ.
또 한번은 내게 이런 일도 있었다네~! 이 골짜기에 소먹이로 와서 해가 질 무렵이면 다 함께 집에 가기 위해 소몰이에 나선다.
그리고 난 후 확인해 보니 남의 소는 다 있는데 우리 소만 유독 보이지 않는다.
겁이 난다. 무섭다. 어쩌지?
하면서 도리 없이 찾으러 나선다.
나도 모르게 울면서 고무신을 칡넝쿨로 단단히 동여매고 이곳 저곳 소가 있을만한 장소들을 산중턱까지 울면서 헤맨다.
가시에 찔리고 돌 뿌리나 칡넝쿨에 걸려 넘어져도 아프지 않다.
오직 소를 찾아야 한다는 의지가 모든걸 잊게 만든다.
얼마나 헤매었을까? 내 눈앞에 우리 소가 보인다.
그때 그 감격과 환희는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뛰어가 소의 코뚜레를 어린 손으로 움켜 잡고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소의 얼굴에 나의 얼굴을 대고 비비댄다. 너무나 반가워서~ㅋ
나의 콧물, 눈물, 땀과 소의 콧물이 서로 범벅이 된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목에 감겨있는 소 고삐(?)를 풀어 손에 잡고 개선장군이 된 양 내려 온다.
모두가 장하다고 말해주고 또 기다려 주어 넘 고마웠다.
그래, 분명 이곳들은 내가 어린 시절과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골망태를 어깨에 메거나 또는 지게를 등에 지든지 매일 소먹이로 다니던 곳 "아홉살이, 백정골, 불개미골, 다리평전." 등 골짝골짝 내가 안 가본 곳이 없는 그 정답게 붙여진 골짜기 지명들인데~~~! 어찌 잊으리.
나의 어린 시절의 호연지기를 길려준 수련장 아니었던가~!
"봐라~! 친구야~!
이곳 "다리평전" 지명이 말해 주듯이 그토록 넓었던 골짜기가 왜?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것도 아닐 텐데~!
세월이 흘렸다고 좁은 협곡으로 변했냐" 고 달라진 산 골짜기에 탄식하며 넋두리를 많이도 나타내지만 동승한 친구들 다 이해한다는 듯 표정으로 공감의 뜻을 내게 보내준다. 또 이곳에서 줄곧 내 이야기만을 들어주는 그 멋~!!!
고맙다. 그러기에 나의 진정한 친구들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런 내 마음 속을 읽고나 있는 듯 2호차는 매산 저수지에 다다른다.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다음에 ♡
♡ 12 ♡ : "그리운 내 고향 매산"
"매산 저수지" 는 내가 정든 고향을 떠난 지 10여년이나 지난 후 조성된 것인지라 하늘에서 뚝딱 떨어져 내린 것 같아 내겐 그냥 낯설기만 하다. 그러기에 아무런 감흥도 없이 저수지를 지난다.
근데 이건 왜 이러지?
상매산과 하매산의 거리가 이처럼 가까웠단 말인가?
믿어 지지 않는다.
어릴 적엔 아주 먼 남의 동네라 생각했고 또 서로간의 왕래도 매우 적었는데~~. 지금 보니 한 동네였구나~^^.
그래서 상, 하매산 이라고 지명을 붙였구나 생각이 든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 용출이 "세월이 다 그렇게 만든 거야" 하고 위로해 준다.
이런저런 내 가슴속 애틋한 느낌을 동승한 친구들게 하소연하다 보니 2 호차는 어느덧 하매산 다리 앞 '숲"(모두가 그렇게 불렸다)에 도착한다.
여보게 친구야~!
자네도 어릴 적에 뛰어 놀았던 동네 놀이터가 있었듯이 나도 그러하다네~^^
이곳 숲은 누군가가 내게 "살아 오면서 가장 잊지 못하고 생각나는 곳이 어디냐" 고 묻는다면 조금도 주저 없이 말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내 머리가 멍해 오면서도
나도 모르게 옛날 살았던 집(지금은 문중 제실)으로 눈이 돌아 간다.
눈에 익숙한 대문에 눈길이 멈추고 새로운 기왓장으로 교체 했는지 지붕이 번쩍번쩍 빛이나 보인다. "왜 지붕이 저럴까?" 하니
이때 정종현이 말을 받아 "지금은 기존 기와집을 덧쒸우기로 저렇게 한다" 고 설명을 해준다.
또 동네 앞 작은 하천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근데 너무나 썰렁해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듯 애절하게 느껴진다.
우리네들 천수답 논바닥이 거북 등처럼 갈라지고 벼가 말라 타 죽어가는 가뭄의 무서움을 자네나 내가 어찌 모르리~? 그 가뭄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업용수 저수지로 조성된 밝은 면을 어찌 낸들 부정할 수 있으리만~~~~!
저수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 내가 사랑하는 동네 매산은? 왜냐고?
여보게 친구 ~!.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어릴 적을 떠올려 보니 저수지가 생기기 전까지 동네 앞으로 흐르는 작은 하천은 사계절 공동 빨래터였고, 지금처럼 더운 여름날엔 멱을 감을 수 있는 천연탕이었으며, 겨울에는 애들의 썰매장이 되어 주고, 거기에다 손이나 족대를 들고 고기를 잡거나, 밤이면 횃불 을 들고 야치기(?)로 천렵(川獵)까지 할 수 있도록 말 그대로 모든걸 내어 주던 생명줄 같은 작은 하천이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흐르는 물 한 방울 구경은 커녕 잡초만 무성한(지금은 거름용으로 풀도 베지 않음)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날 화(?)나게 만드는 어두운 면도 있다네~! 그러나, 어쩌겠나~ㅎㅎ.
또 동네 앞 애들의 놀이터였던 숲~! 지금은 널찍한 공터를~!
왜? "숲"이라 불렸을까?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전 옛날에는 많은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었기에 그렇게 불려져 내려오는 것으로 추정해 본다.
나의 어릴 적 기억에도 위쪽에 크나큰 포플러 나무가 있어 봄이 되면 그 꽃가루 솜털로 주변이 하얗게 날렸지, 가운데는 정자나무가 자리잡고 있었기에
또래 끼리 옹기종기 모여 공기놀이, 땅 따먹기, 고무줄놀이 땅에 그려놓고 하는 꼰(?)뜨기와 비석, 구슬, 딱지, 자치기 등으로 왁자지껄 웃음소리와 싸움소리가 함께 들려오듯 느닷없이 지난날 모습이 또렷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그리고 저 멀리 강아지 풀 몇 가닥에 가득 꿰어진 메뚜기를 손에 들고 해 맑은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오는 어린 내 모습도 보인다.
또 우리들의 엄마가 "애야~! 제발 숲에 가서 놀아라 귀찮게 하지 말고" 목청 높여 하시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귓전에 맴돈다 ㅎㅎ.
이렇게 어린 시절을 그려보며
동네 앞 숲을 지날 때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날 가지 마라 끌어 당기고 뒷걸음질 치게 하기에 많은 생각에 빠져 들고 말았다.
정말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
여기가 내가 살았던 동네라고~!!! 분명 아닐 꺼야~!
그때 같이 잠자리와 반딧불 잡고 놀았던 친구들은 지금 어드메쯤 무엇을 하고 있으리~^^ 보고 싶어 지는구나~!.
꿈속에 항상 품고 있던 그 정다운 모습은 온대 간대 없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하고 씁쓰레한 웃음을 짓는다.
그래, "고향 산천만 변한 게 아니라 나도 또 지금 옆의 내 친구들도 많이도 변했지 않았던가~!" 하고 스스로 자위(自慰)하면서 꼭 다시금 이곳에 와 오늘처럼 어릴 적 일에 젖어 고향의 푸근함을 생각하며 걸어서 연수사 탐방 길에 오르고 말리라 내게 굳게 약속하면서 그리운 내 고향 매산을 떠난다.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다음에 또~^^,
♡ 13 ♡ : "버섯 전골로 저녁을"
감악산을 넘어 매산 동네 앞을 지나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까마득하게 잊고만 살아왔던 고향의 향기에 젖었던 황홀감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1, 2호차는 내달린다.
무촌을 바로 앞에 두고 차 안의 누군가가 "저기 가봤어" 하기에 뭘 보고 말하는 낄까? 하고 앞을 보니 "신비의 돌" 이라고 쓰여진 작은 팻말이 좌 측에 보인다.
"별것 없어" 하고 실망스럽다는 투로 누군가가 말한다. 난 가 보았는지 알쏭달쏭하다.
그래. "신비의 돌" 이란 이름 아래 여러 관광지나 사찰에서 많이도 보지 않았던가~?
그 곳마다 영혼의 계시(啓示)를 받은 돌 인양 설명하지만 사실 관광객들에게 호기심을~! 신도들에게는 믿음을~ 이끌어 보려는 심리는 아닐는지~^^.
근데~! 이곳은 관광지도 사찰도 아니기에 장소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하나의 다리를 건너 무촌에 도착한다.
무촌하면 순성이, 종이 그네 집을 내 집처럼 밤낮으로 들락거리곤 하며 진정한 친구로서 함께 놀았건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 진다" 는 옛말이 우리를 두고 한 말인가 싶구나~! 그냥 미안하다~ 친구야~!!!
우리들의 차는 남상지서와 남상(옛 중앙)초등학교 가운데를 지나 자전거 등굣길을 엄청 힘들게 하던 불고개 오르막길을 넘어서니 옛날 그 시절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계림농원" 에 다다른다.
옛 경이롭고 멋스러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거무죽죽한 모습이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쓰레한 기분 숨길 수가 없네 구려~ㅠㅠ.
"지금은 군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기에 그나마 저 모습이라도 유지되고 있다" 고 정종현이가 설명을 해준다.
이런저런 이바구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2호차는 읍내로 진입하여 우리가 사전에 저녁 장소로 약속했던 거창중학교 근처에 위치한 거창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00 버섯 전골집에 도착한다.
보통 때라면 저녁 먹기에 다소 이른 시간인지라 식당 안은 조용했고 내 부가 깔끔해서 일단 마음에 든다.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아직까지 내 가슴속에 남아있는 동네 "매산"에 대한 향수를 생각하며 같은 동네에 살았던 1호차의 경남이 생각이 궁금해 "경남아 감악산 넘어 동네 지나 올 때 기분이 어떠했니?" 물었더니 "난 멀미가 날것 같아 눈 감고 잤어" 한다.
하긴 오후 내내 다녔던 길들이 많이도 꼬불꼬불 했기에 아~! 그럴 수 도 있겠다 싶다 하면서도 그 대답에 못내 서운했다.
그래서, 난 그곳으로 오후의 여행 코스를 잡아준 모든 친구들에게 다시금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진다.
이때 우리들의 총무 강순점 "야 야~ 조용조용" 하더니 "뭘로 할래?" 하고 모두에게 묻는다.
메뉴판을 보니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
결국 각자 취향에 따라 나누어 먹기로 하고 2가지 종류를 주문한다. 이곳 거창도 정말 몰라보게 변했구나 하면서 저마다의 추억을 이야기를 하던 중에 주문한 버섯전골 냄비가 식탁 위에 놓인다.
모두들 소문난 맛집 맛인지 고항 맛인지 몰라도 만족감을 느끼며 먹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후 저마다 이쑤시개를 하나씩 입에 물고 믹스커피 한잔씩 손에 뽑아 들고 식당 밖으로 나선다.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 다음에.
♡ 14 ♡ : "오계국민학교"
"자~! 우리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이고 또 내일 동창회 부산 친구들 전야제를 할 신기 서상대 집으로 출발~!" 이라고 누군가의 큰 외침 소리와 함께 1호차에 이어 2호차도 뒤 따른다.
유유히 흐르는 황강을 옆에 끼고 돌아 어느덧 남상 길에 들어 선다. 이 때 용문이 "나 잠시 마트에 좀 들렸다 가자" 하며 하나로마트 앞에 주차한다.
용문이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동안 내부를 들어가 보니 생각 보다 규모가 크구나 싶다.
다시 우리 2호차는 목적지로 향해 출발 하고, 이야기 재주꾼 종현이 이곳 마트 지점장에 대한 얽히고 설킨 일을 빼놓을 수 없다는 듯 실감나게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시간 전에 왔던 길을 다시금 되돌아 가 것만 낯익은 지겨움보다는 푸근함을 느끼는 길이다.
왜냐고? 나의 고향길 이니까?
생각하던 중에 내가 탄 차는 도꽂지(?)에 다다른다.
이때 내가 "용문아~!" "우리 오계국민학교 앞에 내려 구경 좀하고 가자" 하니 용문이 "오케이" 한다.
내 마음속 환상(幻想)의 초특급 열차는 벌써 몇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어렴풋이 생각나는 학교와 그 주변을 그려 보고 있다.
{교문 앞에서 정면으로 앞을 보니 운동장 보다 약간 높은 (약1m)곳에 일직선으로 길게 선교사(校舍)가 보이고 좌측에 화장실 작은 건물도 있다.
앞에 작은 화단도 길게 보인다.
좌측으로 높디높은 국기게양대엔 태극기가 펄럭이고 그 옆 아래 운동장에는 아침 조회 시 교장 선생님 훈시 하시던 연단(演)이 놓여있다.
또 넓은(?)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빽빽하게 줄지어 서있다.
뒤편으로 제2의 교사가 있고 작은 밭을 지나면 야트막한 뒷동산이 학교 전체를 품어주듯 자리 잡고 있다.
학교 정문 앞에는 신작로가 길다랗게 지나가고 바로 앞에 집 한 채(황이유 집?)가 있다.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학용품과 먹거리를 팔고 있는 우리 친구 백재현집 가게가 보인다. 건너편에 이발소도 아른거린다.}
어느덧 2호차는 오계국민학교 정문 앞에 도착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차에서 내려 굳게 잠겨있는 철제문을 움켜 잡고 우두커니 서서 앞을 바라 보며 조금 전에 내가 그린 상상 속의 그림을 투명지에 복사하여 지금 바로 보이는 모습 위에 살포시 얹어 비교해 본다. 위치와 크기는 틀림없건만 뒷동산 말고는 같은 게 하나도 없구나~ㅠㅠ.
오랜만에 찾아간 내 모교 “오계국민학교” 는 이처럼 폐교되어 우리가 뛰어 놀았던 운동장은 밭으로, 탱자나무 울타리는 철제로 바뀌고, 책걸상에 앉아 공부하던 교실은 다른 용도로 변해 세월의 무상함을 내 눈으로 직접 실감나게 느껴본다.
여보게 친구야~!
우리 여기서 다 함께 국민학교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나 추억 한 번 되새겨봄 어떨까 싶네~^^.
뭐가 생각 나는가? 자네는?
나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그때를 돌이켜 본다.
등굣길을 동네마다 모두 함께 줄지어 가는 모습,
책보를 어깨나 허리에 매고 메뚜기 떼가 풀썩 풀썩 뛰는 하굣길의 농로길,
운동장에서 축구 놀이하다 잘못 찬 공이 울타리로 가면 탱자나무 가시는 저승사자가 되어 여지없이 고무공을 쪼그라 트려 우릴 울먹이게 했지,
소풍 때에 빠지지 않은 보물찾기와
가을운동회 때는 만국기가 운동장에 걸리고,
100m 달리기를 하기 위해 뒤에 쪼그리고 앉아 차례를 기다릴 때 왜?
그리도 소변이 자주 마려웠는지~^^.
출발 선상에 서면 그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곤 했지~ㅎㅎ,
점심시간을 알리는 손주머니(?)로 소쿠리 터트리기,
선생님 지명(?)을 받아 칠판 앞에 서서 분필은 잡고도 문제의 답을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이 애처롭게 보인다.
여보게 친구야~!
우리 몸에 좋다는 인삼은 6년근이 최고의 특등상품을 만들 듯이 우리네 국민학교 6년이란 세월이 자네나 내가 동고동락 하였기에 지금과 같이 멋진 옛 친구로 남아 있지 아니한가?
우리도 6년근의 인삼처럼 지난날 6년 추억들을 되살려 다같이
"오계국민학교 20회" 라는 명품으로 만들어
그 추억 속에 한번 흠뻑 빠져 봄도 우리네들 건강에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하며 지난날을 되짚어 본다.
이때, 자칭 관리인이라는 분이 나와 "어떤 일이 세요?" 하고 묻는다. “아~! 우리 60여년 전에 이곳 졸업생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아~! 그러세요" 하면서 가끔 우리들처럼 찾아오는 졸업생분 들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가 다 바뀌었다" 하면서 "저 위쪽에 있는 은행나무가 그 당시의 유일한 것이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우리는 "고맙다" 고 하고 쓸쓸히 돌아선다.
지나가는 길에 관리인이 알려준 은행나무를 보아하니 모든 가지가 다 짤려 나가고 몸통만 우두커니 서있다 보니 연령대가 가능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내 뇌리에도 은행나무가 있었던 기억이 없기에 실망하고 나의 모교를 쓸쓸히 떠난 나온다.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다음 또♡.
♡ 15 ♡ : “고향이 뭐 길래?"
우리들은 "오계국민학교" 모교에 대한 향수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금 달리는 차는 왼쪽, 오른쪽에 보이는 마을들의 정다운 그 이름(먹동, 갈밭, 동령, 둔동)만은 변치 않고 그대로 간직한 채 맞이해 주는 것만 같아 너무나 좋다.
이윽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 신기 마을에 도착한다.
1호차에 탔던 하종현이가 길 옆에 서있다.
누군가가 "왜 거기 있어?" 하고 묻는다.
“아~! 고향 온 김에 선진 묘소에 들렸다 가려고 해" 한다.
그러자, 용문이가 차를 우회전해 어느 집 마당 앞에 정차 시킨다.
차가 정차해서 우리가 내린 곳이 하종현 형수님 댁~!
아~! 용문이가 이 동네 살았기에 종현이 집을 잘 아는 구나~!.
선진 묘소는 형수님 댁 바로 옆에 아주 잘 조성된 가족묘지였다. 물론 종현이가 참배 후 묘 조성과 묘비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해준다. 가족 묘 조성 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설득, 자기 누님의 재정적 큰 도움, 종현이 적극성을 더해 후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에 정성을 드렸 음을 큰 묘비가 말해 주듯이 웅장하게 서있다.
나는 묘비에 적힌 비문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비문을 읽어보니 우리 시골 내 사람들의 진솔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선천의 살아 생전의 삶을 조금도 과장되거나 꾸밈새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를 옮겨 놓은 글 같아 너무 좋아 보였다.
내가 더욱 놀란 것은 연로하신 형수님이 홀로 묘지 바로 옆에 생활하시면서 관리하고 계신다 하니 말로만 들어 오던 ‘3년 시묘(侍墓)살이’가 아니라 ‘평생 시묘살이’하는 열부(烈婦)처럼 보였다.
그렇잖아도 오전에 차를 타고 오면서 고속도로 주변에 잘 조성된 묘지를 보면서 우리들의 생각은? 묘지, 납골당, 수목장 등에 대한 장,단점을 비교해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자네나 내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또 각자의 사정에 맞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명답이라 했던 터라 하종현이의 가족 묘를 보니 이젠 우리도 나이가 들어 남의 일이 아님을 새삼스레 느껴본다.
여보게 나의 옛 벗들아 ~!
지금 고향 하면 자넨 무엇? 어떤? 생각이 드는가?
국어사전엔 "태어나 자란 곳" 단 6글자로 기술(記述)해 놓았건만~~~!
철새들의 이동, 연어의 회귀본능(回歸本能), 동물의 귀소(歸巢)본능이 그러하듯 인간의 추억과 향수. 즉, 옛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곧 고향이 아닐까 싶네~^^. 그렇지 않은가?
연어는 강에서 부화(孵化)해서 치어로 자라다 자네나 내가 알다시피 먼~ 바다로 나가 수년간(3~4년) 성장하다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다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강으로 물살을 거슬러 되돌아 와 산란 후 7일 이내에 아름다운 삶(?)으로 마무리 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들의 동창회도 매년 거창에서 열리고, 신용출, 서상대 등 많은 친구들이 별장(?)을 짓고, 조금 전에 본 하종현 가족묘를 조성하는 곳이 결국 "고향" 이라는 공통된 단어로 설명되지 않을까 싶네~! 나만의 생각일까~?
꽤나 오래된 몇 수년 전에 모처럼 같이한 아들과 술자리에서 다 큰 녀석 이 "아빠~! 난 고향이 어디가 맞죠?" 하고 생뚱맞은 질문을 한다.
순간 난 얼음이 되고 만다.
"어~~! 그게" 하고 대답이 머뭇거려진다.
내 표정을 본 아들 녀석 쓴웃음을 짓고 있다.
그래~! 출생지는 순천이 확실하기에 그럼 고향은 순천? 강원도 도계? 부산? 아님 거창? 하다 보니 아들이 말하기를 "거창은 아빠 고향이지 난 몇 번가 봤다고 고향?"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술 한잔을 냉큼 비운다.
그래 맞다. 너에게 진정한 고향은 없다.
직장이란 핑계로 전남 순천(광양제철 부지조성공사)과 강원도 도계(태백-삼척간 국도확장공사)에서 몇 년씩 떠돌이 생활이 "연어 치어가 자란 곳을 잃게 했듯이" 내가 그처럼 좋아하는 고향을 내 자식들에게 만들어 주기는 커녕 송두리째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어 단숨에 술 한잔을 원샷 한다.
선친 묘소를 나온 종현이 형수님께 용돈을 전하며 작별 인사를 한 후 자기는 걸어서 상대집에 간다기에 나도 뒤 따르기로 했다.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다음에~!.
♡ 16 ♡ : "박사 학위"
여보게~!.
이 글을 읽어 주려는 나의 옛 친구야~!
지금 날씨가 밤 낮을 가리지 않고 한증막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우리에게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고 늘 건강이 최고임을 부디 유념해 주길 바라면서 오늘도 몇 자 적어 볼까 한다네~^^.
종현이가 가는 길을 성큼성큼 뒤따르다 보니 양쪽 밭 사이로 조그마한 언덕에 좁디도 좁은 샛길이 보였다.
어릴 적 이 길로 나무지게와 골망태를 메고 수백 번을 넘나 다녔던 길 이라면서 옛 추억에 잠긴 듯 하더니 "야~! 살다 보니 자네하고 이 길을 같이 걷다니" 하고 스스로 의아스러워 한다.
종현이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바로 상대 집에 이르렀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과 함께 집 주변을 둘려보니 뒤편으로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꽤나 널찍한 단층으로 자리를 하고 있다.
앞마당 옆엔 널따란 밭이 있고 지대가 약간 높아 앞이 확 트여 전망도 좋아 전원생활 하기에 안성맞춤 같아 보였다.
이때 용문이 마트에서 구입한 선물을 들고 집안 아저씨 댁을 찾아 뵙고 들어 오고
새집 외곽 구경을 다한 우리들은 집안으로 들어 간다.
거실 안에 들어 서니 어여쁜 여자친구 경남, 순정, 윤자는 주안상을 준비 하느라 분주하고 집주인 상대는 이것저것 챙겨 주느라 바쁘다.
이때 상대가 이 집을 지을 때 있었던 일들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이 큰 집을 도목수(都木手) 혼자서 지었다고 한다.
"그게 가능해?"
물었더니 자기도 처음 이해를 못했다면서 목수가 말하기를 "자기는 혼자해야 한다" 고 하기에 지켜보니 무거운 상남 목재도 체인불록을 이용해 혼자 하는 걸 보고 참 특이한 목수로구나 했단다.
특히 천장이 꽤나 높아 거실이 시원하고 더 넓은 느낌을 준다.
또 내부 시설은 가능한 현대식으로 꾸미려던 노력이 구석구석 눈에 들어 온다.
내부 거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고 있는데 이 집주인 상대가 한 권의 책을 슬쩍 내밀며 "한번 보렴~! 난 대체 도통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어" 한다.
"뭔 책이지?" 하고 책장을 넘겨보니 영문으로 난해한 공식에 각종 실험 데이터와 그래프 등으로 가득 수록된 아들의 따끈따끈한 박사학위 논문 집이었다.
쳐다보고 있노라니 머리가 멍해 온다~^^.
상대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가히 들어 육사를 졸업하고 지금 장교로 군 복무 중임을 알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 과학의 요람이라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니 똑똑한 아들을 둔 상대 친구가 많이도 부러웠다.
"그래~! 얼마나 아들이 자랑스러울까?"
생각하며 “축하한다." 는 말을 다시 전해 주고 싶다.
벌써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 위에는 신원 양조장까지 직접 찾아가 구입한 싱싱한 막걸리, 쑥떡, 돼지편육, 그리고 순점이가 직접 꿀에 절인 빈대떡이 놓여있고 과일과 견과류까지 거나하게 차려 놓고는 "현수야~ 너 뭐하냐? 빨리 내려와!" 하고 경남이가 술 자리에 앉으라고 독촉한다.
여기서 잠깐~!
장경남이는 자네들도 알다시피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았고 더욱이 어린 시절 우리 누님과 친구로 지냈기에 나에겐 지금도 누님 같은 동창일세~ㅋㅋㅋ
"아~! 그래~좋지" 하고 술상 앞에 앉는다.
앞에 놓여진 음식을 보며 "정말 좋구만~!" 하고 다같이 술잔을 높이 들고 건배를 한다.
여보게 나의 옛 벗들아~!
한번 이 그림을 상상해 보려무나~!
마주앉은 친구들과 오순도순 잃어버린 옛 이야기 꽃을 다시 피우며 마시는 술 맛을 그 무엇과 비교 하리까~~!!!.
내 곁에는 내 못난 이야기도 들어주고 웃어주는 친구가 있기에 나의 삶이 어드메쯤 가고 있는 줄 몰라도 지금이 너무나 좋다.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다음에~!
♡ 17 ♡ : "택호(宅號)*
오늘 온종일 같이 다니며 있었던 일로 왁자지껄 웃고 있는 중에 현관문이 스르륵 열리고 "모두 오래만이야~!" 하고 누군가가 들어 선다.
모두가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누군가 하고 궁금해 한다.
이때 집주인 상대가 "같은 동기 000라" 고 여자분 이름을 알려준다.
부득이 해 오던 이야기 화제가 바뀐다.
물론 너무나 오랜 만에 보기에 모두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다.
어쩜, 국민학교 졸업하고 처음 만남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를 들어 본 즉, 젊은 시절 이웃동네 아님 같은 동네 총각과 눈이 맞아 일찍이 시집을 와서 지금껏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또 몇 년 전에 부군(夫君)께서 먼저 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할 땐 눈시울이~~~ㅠㅠ 보인다.
결혼 이야기를 듣자 하니 문득 나의 부모님 생각이 난다.
나의 어머님도 같은 동네 아버님과 결혼 하셨다.
한 동네 에서 결혼? 그럼 아버님과 어머님이 그 당시에 연애 결혼(?) 하셨냐? 생각했는데 먼 훗날 사실 확인 즉 아버님의 총명함(?)과 외가댁의 부유함(?)으로 맺어진 중매 결혼임을 직접 중매하셨던 동네 할머니로부터 듣고 많이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하다 보니 자연스레 어머님은 "본동띠기(댁)"라는 택호(宅號)를 얻게 되고 덕분(?)에 아버님도 함자(銜字) "최덕환" 이라는 이름은 뒤로 사라지고 항상 본동양반(어르신)'이라는 택호로 두 분이 평생을 사셨지~^^.
여보게 친구~!
자네 모친께서는 무슨 대호로 불렸는지 알고 있는가? 궁금하네 그려~^^.
하긴 이 정다운 택호마저 세월의 뒤안길로 서서히 물러가고 지금은 “00엄마" 로 불러지고 있지 않은가~! 그지?
난 어릴 적 또래 친구들이 방학 때 자기 엄마 손을 잡고 먼 외갓집을 다녀오는 모습이 얼마나 내게 자랑스럽고 멋져 보였는지~?
난 외갓집에 대한 애틋하고 즐거운 추억보다 왠지 모르게 못마땅했던 생각만이 남아 있었기에~ㅠㅠ. 어린 내가 그때
오죽했으면 “난 장가는 꼭 아주 아주 멀리 갈꺼야~!" 하고 혼자 다짐까지 했었을까 싶다..
그러고도 내 다짐처럼 성공(?)은 못했지만~ㅎㅎ.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던 중 순점이가 최춘자한테 전화를 해 "내일 거창읍으로 오지 말고 바로 가조행 버스를 타라"고 알려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윤자 "지금 바로 가조행 시간표 확인해보라" 한다.
아마, 춘자가 오늘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동행을 못하고 내일 동창회는 참석 하겠노라고 총무 순점이한테는 말했던 모양이다.
오늘도 같이 했더라면 분위기도 더욱 살릴테고~ㅎㅎ,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 해 본다.
그래, 내일 혼자서 시외버스를 타고 동창회라도 온다니 그 열정에 놀라워 큰 박수를 보낸다~! 히히.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용출이 이때다 싶었는지 슬그머니 자리를 뜨고 뒤이어 영수도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며 사라진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렸을까~?
하종현이가 참다 못해 한마디 하고 만다.
“오늘 왜 이래~! 술 좀 하는 놈은 다 저 모양이고” 하며 "술자리가 흥이 없어 술 맛이 안 난다고” 투덜거리자~ㅠㅠ
경남이 말을 받아 “종현아~! 조금만 기다려라 내 꼭 끌고 나올 테니” 하자, 모두가 크게 웃는다. 그러자 하종현 “역시 장경남이 뿐이야!” 하고 만족감을 표시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다음에 ♡.
♡ 18 ♡ : "술자리 친구"
경남이의 호언장담이 통할지~?.
하기는 지금 술자리 옆에 앉아있는 사람은 나를 비롯해 술에는 젬병인 서상대, 신용문, 정종현, 거기에 여자 친구들 뿐 모두가 술에 허당들 인지라~^^
항상 우리들 모임에서 하종현이의 술 친구가 되어 온 영수와 용출이가 자취를 감추고 보니~ㅠㅠ.
하종현이가 넋두리를 했던 거지~^^.
그래도 분위기를 이어 가려는 듯 경남이 술병과 술잔을 함께 들고 벌떡 일어나 반 강제(?)로 젬병들에게 숨을 권하다 말고 뭔 생각이 떠 올랐는지~?
권하던 술병을 탁자 위에 내려 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여보게 친구~!
술에 관한 우스꽝스러운 설화(說話)를 소개하고 갈까 하네~ 한번 들어 보게나~^^.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는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서 사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녔다.
그때 마침 용한 의원에게 아버지의 병은 선비, 광대, 광인(狂人) 세 사람의 간을 먹어야 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낫을 숫돌에 날카롭게 갈아 의원의 말대로 세 사람을 찾아 다녔다. 마침내 찾던 사람을 만나 배를 가르고 간을 꺼내 아버지께 드리니 정말 보란 듯이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아들은 자신이 죽인 사람의 시신을 한 곳에 수습해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 무덤에서 밀이 돌아 났고 밀알을 살펴보니 세로로 긴 자국(간을 꺼낸 흔적)이 남아있다.
이 밀로 빚은 술에는 죽은 세 사람의 혼(魂)이 깃들어 있기에 이 술잔을 처음 들 때는 선비처럼 점잖은 행동을 하다, 두 번째 적당히 취하면 말도 많고 흥이 올라 춤추고 노래하는 광대 모습을 보이다가, 마지막 잔에 만취하고는 미친 놈의 광기가 들어나게 된다 한다~ㅋㅋ]
결국 이 설화는 우리에게 술은 적당히 먹고 즐기고 과음은 하지 마라는 교훈을 알려주는 것 아닌가 싶다.
큰방, 작은방을 몇 번을 들락날락 하더니 기어코 경남이의 웃는 얼굴 뒤에서 잠에서 깨려는 듯 눈을 비비며 "아직이야?" 하고 쓴웃음 지으며 용출이가 끌려(?) 나온다.
모두가 이 모습을 보고 크게 웃는 소리에 용출이 마지 못하고 자리에 앉는다.
자신감을 얻은 경남이 똑같은 모습으로 영수도 끌고 나와 자리에 앉히고는 "종현아~! 봤지?" 하고 약속을 지킴을 뿌듯해 한다.
모두가 다시 함께한 자리~!.
경남이가 용출이와 영수에게 자리를 임의로 이탈한 벌주라며 강제로 술을 권하면서 우리는 2차로 술자리 건배를 외치며 분위기를 돋군다.
2차 술자리가 얼마나 흘렸을까?
초저녁에 놀러왔던 00친구가 일어서며 “난 가야한다" 고 한다.
밖에 딸이 엄마 모시러 왔다고 전화를 한 모양이다.
"그래, 그럼 내일 동창회 같이 가자고" 누군가가 권하자,
“사정이 있어서 못 가"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한다.
벌써 시계는 자정을 향해 가고 있다.
“자~! 그럼 우리도 앞에 있는 술잔을 다 같이 비우고 멋진 내일을 위해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하자” 했더니만 모두가 "좋아" 하고 술상 뒷정리에 힘을 보탠다.
각자 씻고 있을 쯤 이곳 저곳 잠자리를 준비 하느라 집주인 상대는 몹시도 바쁘다.
이부자리, 베개, 담요 등을 여기저기 갖다 놓는다.
큰방엔 여자 친구들, 작은방엔 영수, 용문, 용출이 거실은 나름 비롯해 두 종현이, 작은 골방(?)은 주인 상대, 이렇게 자연스레 방 배정이 되었다.
이때 경남이 “야~들어 봐~! 내일 아침은 7시야~! 시간 어기면 아침밥 없어~!" 하고 경고를 날린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잠자리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종일 이곳 저곳 다니느라 피곤했는지, 술 기운인지는 몰라도 고향의 푸근함을 가슴속에 껴안고 곧장 꿈나라로 빠져든다.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다음에 또 ♡
♡ 19 ♡ : "추억들을 남기고~!"
이튿날 아침~! (4/28,日)
아침 운동에 습관화된 용문과 용출이 벌써 집 밖으로 나선다.
뒤이어 영수와 정종현이와 함께 나도 뒤따른다.
작년엔 진목 용출이 집에서 오늘은 신기 상대 집에서 아침을 맞는구나~! ㅋㅋㅋ
그래서 그런지 집 밖의 이른 아침 날씨는 고향이라 엄마 품 같고 쾌청하여 우리들의 아침이 감회가 새삼스럽도록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난 작년에 이어 금년 말고는 언제 고향 땅에서 아침을 맞았는지 기억에도 없구나~ㅠㅠ.
동구 밖을 나와 윗쪽 도로를 따라 주변의 야트막하면서도 아늑함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 풍경을 보며 저마다 옛 추억을 되새기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덧 진목(남진)까지 다다랐다.
건너편엔 작년 7월초에 집 앞뜰에 다같이 나와 앉아 야외 쇠고기 구이와 푸짐한 술과 먹거리로 걸판지게 먹고 즐겼던 용출이 집이 눈에 들어온다.
이때 용출이 “집에 가서 모닝커피 한잔 하고 갈래?" 한다.
"야~! 작년에 신세 진 미안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또 뭔 소리야 아침 밥 얻어 먹으려면 지금 되돌아 갈 시간이야" 하고 모두 발걸음을 되돌리기로 한다.
공사용 덤프트럭이 정말 무섭게 내 달린다.
차 속도감에 섬뜩함이 저려와 내 가슴에 와 닿는다.
기사님 입장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시간이 곧 돈이니 말아다~ㅎㅎ.
고향 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레 고향 누군가의 이름이 나오자 우리 "인맥 백과사전"인 정종현이 입에서 그분에 대한 나이, 성격, 학벌, 직업, 가족관계, 사돈까지의 이야깃거리로 만들어져 고구마 뿌리처럼 줄줄이 따라 나온다.
물론 나는 정종현이와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기에 오래 전부터 가끔 등산이나 산책을 함께 하면서 친구의 인맥에 대한 비범(非凡)함에 가히 들어와 알고 있었지만 오늘 여러 친구들 앞에서 듣는 이 모두가 정말 놀랍고 신기하기도 해 감탄사를 연발한다.
어떤 지금 TV 인기프로인 "세상에 이런 일이!' 에 출연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이 든다.
종현이의 이야기를 듣고 놀랍고 신기해 하면서 웃던 중에 어느덧 동네 입구에 이르자, 누군가의 전화기 소리가 울린다.
"지금 어디냐?" 하고 재촉하는 것 같다.
아마 아침이 다 준비 되었다는 모양이다. "다 왔어" 하고 전화를 끊는다.
방에 들어 서니 식탁 위에 반찬은 가지런히 놓여 있건만 밥은 줄 생각 않고 구시렁거리며 밥솥만 쳐다 보고 있다.
아마도 우리 여자친구 분들은 시골에 와서는 정지간(부엌)에 들어가 부뜨막에 놓인 새까만 가마솥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부지깽이로 쑤셔가며 불 조절해서 짓는 밥에는 명인 임에 틀림없것만 생뚱맞은 전기 밥솥에 밥을 하려니 낯가림을 하는지 취사 버튼을 잘못(?) 눌러 놓고 밥솥 탓 만하고 있었다 ㅋㅋ. 이 모습을 보고 모두가 크게 한바탕 웃는다.
드디어 밥솥에서 "다 됐다" 고 친절하게 알려 준다.
밥 그릇이 식탁 위에 올려 지고 정구지와 다진 땡초를 재첩국에 넣어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근데 왜지? 여자 친구들이 앉지 않고 계속 서있다.
아침에 지은 밥이 적었던 모양이다~ㅠㅠ.
남자 친구들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밥을 많이도 먹기에 이런 일이 생겼냐? ㅎㅎ.
"햇반" 몇 개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다.
아!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우리네 어머님들이 옛날엔 식구들을 미리 챙겨주고 난 다음 남은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시던 애잔한 모습들이~ㅠㅠ.
지금 우리 여자 친구들이 들고 있는 "햇반" 이 어머님들의 그때 모습을 보는 듯 내 마음을 애잔케 한다.
또 한편 우리네 옛 추억들을 스멀스멀 기어 나오게 하는 향수를 뿌리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은 나쁘지 않는구나~!.
밥솥 밥과 햇반으로 정구지와 땡초를 넣은 재첩국은 우리 모두를 맛나게 아침 식사를 마시게 해주었다.
우리 어여쁜 여자친구들 경남, 순정, 윤자와 주인 양반인 상대에게 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너무나 고생했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진심으로 다같이 전한다.
모두가 먹고 남은 것들을 간단히 분리수거에 동참해서 정리한 다음 추억 등을 남기고 상대 집을 나선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또 안녕~♡
♡ 20 ♡ : "가조온천호텔"
우리는 전날 밤에 동창회 전까지 오늘 일정을 약속했던 대로 가조 온천으로 1, 2호차는 신기 동구 밖을 벗어나 호젓한 남상 도로 길을 내 달린다.
그래도 남상 이란 단어에서 묻어 나듯 누가 뭐래도 내 고향, 꿈에서도 나타나는 길이라 떠나오는 마음이 왠지 허전함과 애틋함을 숨길 수가 없나 보다.
이 길을 언제 또 오게 될지 기약도 없고 보니 계속 뒤돌아 이곳 저곳 고향의 내음을 맡으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우리들의 차는 거창 읍을 거쳐서 가조 온천 지역에 다다랐다.
앞서가던 1호차가 어느 건물에 들어가나 싶더니 바로 되돌아 나와 어디론가 방향을 바꾸더니 조금 옆에 떨어져 있는 "가조온천호텔" 이란 건물 앞에 선다.
모두가 차에서 내려 호텔 건물을 쳐다보고 시계를 보니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때 동창회 회장인 상대가 "오늘 동창회 참석 시간을 생각해 10시20분까지 이곳에 나와 달라"한다.
주차장에서 호텔 입구까지는 약10m 거리에 조금은 오르막 길이다.
"호텔의 온천이라~" 생각하니 온천 내부가 대충 그려진다.
아마도 럭셔리하고 고급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같이 호텔 입구로 발걸음을 옮긴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여자 친구들을 앞서 갈려는 찰나~!
“현수야~!" 하고 경남이가 부른다
걸음을 멈추면서 “응~ 왜?" 하고 대답하니,
“너 온천탕에 가서 놀지 말고 구석구석 잘 씻고 나와!" 하고는,
덧붙여서 "내가 꼭 확인 할 꺼야~" 라고 말한다.
참 어릴 적에 많이도 들어봤던 소리다~ㅋㅋ. "알았어" 하고 대답하니 듣고 있던 모두가 웃음 바다가 된다.
한바탕 웃고는 모두가 호텔 프런트에 서서 상대와 순점이가 계산하는 사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가격표를 보니 너무나 저렴(?)하다.
성인이 ₩8,500원로 적혀있다.
호텔 내 온천욕 가격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는 티켓을 받아 들고 남탕 입구라고 적힌 방향으로 들어 선다.
신발장을 거쳐서 옷장 탈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용문이 "어~! 나 티켓이 왜? 2장이지? 누가 안 받았냐고?" 하고 묻는다.
모두가 어리둥절하면서 용문이를 쳐다 본다.
모두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야~! 그거 한 장은 앞 사람이 사용하고 버린 거야~!" 하고 하종현이가 말한다.
듣고 있던 용문이 “아~! 그래~!" 하고는 티켓을 마룻바닥에 홱 내 팽개친다.
모두가 또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호텔 온천에 일요일이라 많이도 혼잡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손님이 적어 아늑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어 다행이다.
간단한 샤워 후 온탕에 몸을 담그고 보니 물이 밋끌밋글(?)해 첫 느낌이 온천 물이 좋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온다.
친구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갖는 표정이다.
내부 시설은 딱 동네 목욕탕 수준이라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아~! 비로소 가격이 저렴한 이유가 있구나~ 하면서도 잠시 머물다 가는 우리에게 더없이 안성맞춤 같아 좋았다.
온탕, 냉탕, 사우나실을 한 두번 오가며 온천욕을 즐기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시간에 맞춰 다같이 나온다.
여보게 나의 친구야~!
자네는 혹시 목욕탕하면 이런 생각 해 본적은 없는가~?
목욕탕에서 나이 좀 드신 어르신들(?)이 고온탕에 들어가 "어~ 시원해~!" 하시고는 만족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3~40대 까지만 해도 이해를 못 했던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던 우리가 이젠 그 모습을 우리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지지 않는가~?
거참~! "세월이란 스승이 심오한 진리를 우리들에게 늦게나마 깨달음을 알려주나" 싶네 구려~ㅎㅎ.
수건으로 몸과 머리를 닦으며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중에 옆에 서 있던 하종현이 “현수야~! 오늘 같은 날은 선크림을 발라 줘야 돼" 하면서 불쑥 선크림을 내민다.
"어~! 그래" 하고는
참~! 종현이라는 친구는 정말 몸 관리를 잘 하는구나~! 생각하며 손바닥에 받아 얼굴에 찍어 쓱쓱 발라 본다 ㅎㅎ.
상쾌한 기분으로 호텔 밖 약속 장소로 나왔다.
여자 친구들이 보이지 않아 기다리기로 한다.
악속한 시간을 훌쩍 지나서야 모습을 들어 내는 여자 친구분들~!
그래 나이가 들어서도 여자이기에 시간이 걸리나 보다~ㅋㅋ
얼굴이 모두가 뽀샤시(?) 해서 더욱 예쁘다.
그 와중에 최춘자가 어제 저녁 전화로 약속했던 대로 벌써 동창회 장소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온 모양이다.
정말 그 열정에 놀랍고 멋진 친구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다음에 또.
♡ 21 ♡ : “목적지에 도착하다"
우리는 온천욕을 즐겁게 마친 후 다시 1호, 2호차에 올라 최종 목적지인 동창회 모임 장소로 향한다.
장소가 "성산가" 식당이라 이름도 생소하거니와 찾아 가는 길도 생각보다 꽤나 깊숙한 계곡 속에 위치해 있나 보다.
올라 가는 중간중간에서 차를 세우고는 "어딜 가시냐?" 고 물어 보며 일일이 차량 통제를 하는 걸 보니 이 계곡이 지금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Y"형 출렁다리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난 아직 가 본적이 없기에 이 길도 처음이다.
한참이나 가는구나~! 생각하던 참에 우리들을 실은 차는 목적지인 성산가 식당 앞에 도착한다.
마당 앞에는 먼저 온 몇 대의 차들이 눈에 보인다.
"아~! 드디어 다 왔구나" 하고 모두가 차에서 내린다.
식당 앞에는 "오계국민학교 20회 동창회" 라는 깜찍하면서도 또렷한 현수막이 살랑살랑 손짓하며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 해준다.
차에서 내린 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식당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입구에서 백재현이가 크게 웃음 띤 얼굴로 "어서 오라" 며 악수를 청하며 모두를 맞이 해준다.
식당 안으로 들어 서니, 아까 부산에서 혼자 버스 타고 먼저 왔다던 최춘자도 보이고, 낯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거창 주변의 친구들이 먼저 와 함박 웃는 얼굴로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손을 잡거나 껴안으며 따뜻하게 반겨준다.
그런데 난 대부분 여자 친구들의 이름이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럴 때 이름이라도 불러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건 아마도 우리들이 남자들은 여자친구들을, 여자들은 남자친구들의 이름이나 얼굴에 익숙히 못한 것은 오랜 세월의 탓이 크겠지만 또 한편으론 우리들의 국민학교 시절을 되돌아 보면 고학년(4~6학년) 3년 동안을 남학생, 여학생 반으로 나누어 지낸 학교 생활도 크나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잠시 후 반가운 대구 친구들이 뒤이어 들어 서니 식당 안은 더욱 왁자지껄 소란스러워 진다.
왜? 서울 친구들이 많이 늦네~! 하던 중에 "우리도 도착했노라" 하며 보고픈 친구들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모두가 반가웠다. 그래도 그 중에서도 옛적에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친구들이 더욱 보고 싶은 건 숨길 수 없다.
동창회 때만 만날 수 있는 이건자, 최영애, 고윤선 또 누가 있었지? 올해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하고 입구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건자와 윤선이는 보이지 않고 영애만이 눈에 띈다. 정말 반가웠다.
거의 매번 참석하는 친구들인데 이번에 사정이 있겠지 하고 아쉬움을 달래며 내년을 기대해 보기로 했다.
우리 매산이란 동네도 큰 동네에 속해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ㅠㅠ.
지금은 다들 어디서 무얼 하는지 궁금도 하고 보고도 싶구나~^^.
이 와중에 모두가 주목하는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무촌에 "추영숙"이 온 것이다.
우리들의 카톡방에서는 가장 자주 얼굴을 내밀며 동정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동창회 모임 참석은 아마도 오늘이 처음으로 보인다.
내 기억으로도 마지막으로 본지가 70년도 초로 생각되니 5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나 보다.
건강한 모습이라 더욱 고맙고 반가웠다.
여보게 친구야~!.
나이가 들고 보니 반말을 할 수 있고 또한 외설적인 농담을 서로가 할 수 있는 친구가 있기에 좋고, 가끔은 음담패설을 들려 주어 모두를 웃음 짓게 하는 친구가 있어 더욱 좋다.
이런 친구가 바로 국민학교를 같이 한 친구가 아닐까 싶네~^^. 그렇지 않은가? 친구야~!.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다음에 또.
♡ 22 ♡ : “만남의 기쁨"
식탁 위에는 여러 가지 푸짐한 먹거리가 놓여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그간의 안부와 있었던 이야기들로 이곳 저곳에서는 대화의 방이 만들어 지고 밝은 미소를 머금고 만남의 기쁨을 모두가 즐기고 있어 보여 보기가 좋았다.
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그쪽으로 돌려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 서니 옆에 있던 친구가 "어디가?" 한다.
"아~ 그쪽에서 부르네" 하고 웃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앞에 다가가서 "왜?" 하고 물으니 "그냥 앞에 앉아" 한다.
그저 웃으며 앉는다.
앞에 놓여진 여러 가지 먹거리 중에 유독 눈에 띄어 손이 먼저 가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잘 삶아진 "찰옥수수" 였다.
오랜만에 맛있게 먹어보는 옥수수~!(옛날엔 강냉이라고 했었지, 사과를 능금이라고 말 했듯이)
아마, 우리들이 어릴 적에 우리네 어머님들이 다 그러했듯이 밭에 다녀 오시면서 밭 옆에 심어 놓은 옥수수대에서 몇 개를 꺾어 소쿠리에 담아 오셔서 섬뜰에 놓으면, 섬뜰에 앉아 껍질과 수염을 벗겨 깨끗이 손질하는 것은 우리 애들의 몫이었지~^^ 잘 삶은 옥수수를 우리들의 손에 쥐어 주며 먹으라고 주시던 그때의 그 옥수수 맛~!.
그래 나는 그랬었지~^^.
옥수수를 받아 들고 손톱으로 한 알 한 알 떼어 아껴 먹기도 하고, 양손으로 잡고 하모니카 불 듯 입에 대고 뜯어 먹던 그 맛!
그 별난 경험은 아무리 사소했어도 그 맛이 입술 언저리에 남아 오늘날까지도 달빛처럼 또렷이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더욱 맛이 있었지 않을까 싶네 ㅎㅎ.
옛날처럼 입에 한입 물고는 "웬 옥수수 지?" 하고 궁금해 하니 듣고 있던 경남이가 "옆에 앉은 *조영숙* 친구가 직접 농사를 지어 우리들을 위해 삶아 온 것이라고" 알려준다.
아~ 그렇구나! 하고는 목례와 함께 “맛있게 잘 먹겠노라" 고 고마움을 전하면서 생각해 본다.
"난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자문해 본다.
내가 밭에 나가 옥수수 대에서 직접 꺾어 와 껍질을 벗기고 깔끔하게 손질해서 큰 솥에 넣어 옛날 우리네들 어머님이 했듯이 정성 들여 삶아서 이 곳까지 그 많은 양을 가져와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배려하는 그 큰 마음~!
난 솔직히 그 번거로움까지 감내할 자신이 없기에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몇 개를 계속 먹다 보니 "오늘의 주 메뉴인 오리백숙은 못 먹을 것 같구나~!" 하면서 서로가 마주보며 웃는다.
곧이어 오늘의 메인 요리인 "오리백숙" 냄비가 식탁 위에 올려져 자리를 잡고, 능숙한 손 솜씨로 백숙을 손질하여 앞 접시에 담아 여기저기 나누어 주며 "자 먹어봐" 하며 경남이가 주변 모두에게 권한다.
방금 전에 먹었던 다과류, 과일, 특히 옥수수 등을 많이 먹어 더 이상 못 먹을 것 같더니만 혹자들의 말과 같이 "밥 배 따로, 술 배 따로 있다"는 것을 확인 해주듯이 백숙이 들어갈 배의 공간(?)은 있는 모양이다. 모두가 맛나게 잘 먹는다~ㅋㅋ.
그래, 지금 우리가 이처럼 만나 즐거워하는 이 모습들이 언제까지나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다음에 또~^^.
♡ 23 ♡ : "동창회 회의"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식사가 마무리 되어 갈 무렵 회장 서상대가 동창회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마이크로 알린다.
이어서 오늘 회의 사회를 맡은 정종현이가 마이크를 넘겨 받아 “그럼 지금부터 오늘 회의를 식순에 따라 시작하겠다." 고 선언한다.
앞에 붙여진 미니 현수막엔 식순은 진행순서 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 진행 순서 ☆
1. 개회 선언.
2. 고인 동창에 대한 묵념.
3. 회장 인사.
4. 지역별 회장 인사.
5. 공로 동창 감사패 전달.
6. 감사 보고.
7. 경과 및 결산 보고.
8. 차기 임원선출(거창).
9. 기타 토의.
회의는 위의 식순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 됐다.
이번 회의 중에 가장 특이할 만한 사항은 차기 회장 선출이었다. 코로나19로 현재 회장 임기가 불가피하게 조금 연장되어 왔다.
동창회 회칙에 의하면 회장은 윤번제에 따라 부산 다음으로 거창지부에서 맡기로 되어 있고,
또한 총무는 회장의 지명으로 선임되는 모양이다.
여러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거의 만장일치로 "백재현" 이가 차기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물론 이용술이가 뭔가 생각이 달랐는지 강력한 이의제기가 있었지만~~ㅠㅠ. 개인적인 의견에 그치고 만다.
모두가 큰 박수와 함께 재현이가 수락 소감을 함으로써 회장 선출이 마무리 됐다.
마지막 기타 토의 건으로 회장이 동창회에 처음 참석한 추영숙에게 소감을 듣기로 하고 마이크를 건넨다.
의자에서 일어난 추영숙이 오랜만에 친구들 건강한 모습을 보니 너무 좋았고, 또 모두가 반갑게 맞이 해줘서 더욱 고마웠다" 고 인사를 했고 모두가 환영의 큰 박수를 보내준다.
"이로써 오늘 동창회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회장이 선언한다.
모두가 우르르 밖으로 나간다.
나도 믹스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와 늦은 봄 나뭇가지의 초록색 이파리를 쳐다보며 4월 향기의 감미로움에 빠져 든다.
우측 저편에 큰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슬금슬금 다가가서 보아하니 "성산 김씨" 네의 문중 비석이다.
비문은 성산김씨네 내력이 적혀있고 현존하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전 거창군수와 경남도지사를 역임하고 현 국회의원인 김태호가 있다.
아~! "성산가" 란 상호가 궁금했는데 이젠 알 것 같다.
성산 김씨에서 따온 것으로 김씨 문중과 직, 간접적으로 관계 있는 식당으로 여겨진다.
되돌아 와 식당 앞 평상에 앉으려니 그때 누군가 뒤에서 부른다.
돌아 보니 서울 정용호다.
“야~! 부산에 현수야! 그간 잘 지냈어? 집사람은?” 하고 안부를 묻는다.
"아~! 용호구나 그저 그래 자네는?" 하니 "똑같지 뭐"하고 대답한다.
얼마 동안 세상살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지금 핫 이슈가 된 의대중원 문제와 국회의원 선거까지 약간의 정치이야기까지 나누던 중에 식당 안이 왁자지껄 한 소리가 들려온다.
"용호야~! 우리도 들어 가자" 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흥겨운 노래가 흐르고 그 박자에 맞춰서 몇몇 친구들이 벌써 신명 나게 춤과 노래로 분위기를 한껏 북돋아 올리고 있다.
나는 오늘 우리들의 동창회 뒤풀이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살짝 쿵 기대 해 보면서~?.
오늘은 여기서 안녕 ♡ 다음에 또.
♡ 24 ♡ : "뒤풀이가 시작되다".
조금 전까지 식사와 회의를 했던 식당 내는 어느덧 노래방으로 변신해서 "풍악을 울려 보자." 며 크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 속에 매번 빠지지 않고 이런 자리를 함께 하는 경남, 춘자, 복자와 또 이름 모르는 여자친구들 몇 명만이 눈에 띈다.
이때, 여자친구들 만을 위한 독무대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신용출이가 마이크를 손에 잡고 멋 떨어지게 한 곡을 뽑으며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몇 사람이 돌아가며 자기 애창곡을 한번씩 열창을 하더니 뭔가 아쉬운 듯 생각을 바꾸어 누군가가 우리들 나이에 맞는 "연속 멜로디”로 더욱 신나게 흔들어 볼 심산으로 선곡한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는 직원을 불러 연속 멜로디 선곡 예약을 부탁한다.
이제야, 신나는 계속되는 노래 속에 흥겹게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고 기대 하면서 직원의 리모컨 조작을 주시한다.
"안된다고?"~ㅠㅠ.
아뿔싸~! 다른 직원이 와서 재시도 해봐도 안 된다.
"아마도 이 기계는 젊은 신세대에게만 맞게 세팅 되어 있는 모양이라며" 하고는 직원마저 슬며시 자리를 뜬다.
우리는 나이를 원망하랴~!.
세월을 원망하랴 하면서 다시 처음처럼 부르고 싶은 곡들을 선곡 예약하고 노래한다.
그때 용출이가 다시 부른 노래 점수가 100점 빵빠레가 울려 퍼진다.
“용출아~! 100점이야~! 노랫값 내라"고 장경남이 용출이에게 두 손을 내민다.
용출이 "왜? 아니야~! 하고는 그러면 다음 곡이 95점 이상이면" 하고 제안 하자.
용출이 노래 실력을 알고 있는 경남이 "오케이 좋아" 하고 쿨하게 응한다.
다시 부른 노래 점수는 94점, 용출이 마이크를 넘겨 주고는 뒤로 물러선다.
이를 본 경남이 "뭐야?" 하고는 다시금 마이크를 용출이에게 안긴다.
마지못해 다음 곡을 부르는 동안 경남이 이젠 노랫소리 보다는 점수만 95점이상 나오라고 "간절히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모습이 옛적에 우리네 어머님들이 자식들 잘되라고 우물가나 장독대 옆에 정화수 떠놓으시고 두 손 모아 읖조려 비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 것을 보고는 모두가 배꼽을 잡고 크게 웃는다.
노래가 끝나고 모두가 곧 나올 모니터의 점수에 눈길이 모아져 있을 때 "지성이면 감천이라" 고 하듯이 "99" 라는 점수가 뜬다.
모두가 크게 환호성 지를 때 경남이 "결국엔 해냈지~!" 하는 승리자의 웃음을 머금고 당당히 용출이에게 손을 내민다.
용출이 또한 알았다는 웃는 표정을 지으며 지갑 속에서 속배추잎(50,000원) 한 장이 경남이 손에 전해진다.
여보게 친구야~!
난 여기서 술과 노래에 나의 대한 나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이해해 주리라 믿네~ㅎㅎ.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오늘처럼 갖게 되는 지인들과의 모임(회식 포함) 뒤풀이뿐 아니라 특히 직장생활 때 건설회사의 특성상(?) 잦은 접대문화 적응에 어려움을 느껴 항상 "나도 남들처럼 술도 적당히(?) 먹을 줄 알고, 노래도 뛰어나진 않더라도 보통(?)정도라도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늘 갈망해 왔건만 결국 이루지 못했던 것이 오늘도 그 아쉬움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하기에 ‘술상무’ 라는 직책(?)까지 생겼나 싶다.
그 긴 세월 동안 술은 체질적으로 받지 않음을 확인했고, 노래는 노래연습장이 생겨 나에게 많은 도움은 되었지만 그래도 음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지금의 용출이 모습이 많이도 부럽다.
또 한편으론 누군가가 남긴 말처럼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뼘만 낮았어도 온 지구의 역사가 변했을 것이다" 라고 허무맹랑한 말을 했듯이 “내가 술과 노래를 좀 잘했더라면 직장생활이 많이도 달라졌을 것" 이라고 푸념하며 웃어 본다. ㅎㅎ
경남이가 속배추 잎 한 장을 이마에 붙이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고 모두가 다시 한 번 환호성 지르며 큰 박수를 보낸다.
다시 노래는 서로서로 마이크를 폼 나게 잡아가며 춘자, 복자 여러 친구들 이 돌아가며 맛깔 나게 한 곡씩 부르면서 흥겨운 즐거움에 빠져든다.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다음에 또.
♡ 25 ♡ : "뒤풀이가 막을 내린다"
앞서 누가 부른 노래에
"우~와!" 하고 잘 부른다고 감탄사를 쏟아 내는 중에 다음 곡이 나에게도 익숙한 노래가 흘러 나오고 누군가가 마이크를 내게 넘긴다.
엉겁결에 잡은 마이크를 손에 쥐고 다 함께 노래를 열창하고는 뒤돌아 서서 자리를 뜬다.
이때 "현수야~~ 너 어디가? 노래 점수가 97점 이야~!" 하고는 내 앞에 손을 쑥 내민다.
아마 다같이 불렸던 노래가 모니터에 "97"을 나타낸 모양이다.
"뭔 소리야~ 왜 이래~! 내가 한 노래 아니야"
내가 혼자서 부른 노래도 아니고 다 함께 불렀잖아~!^^(참고로 마이크는 2개임). 그럼 먼저 모두가 잘 부른다고 감탄했던 춘자나 복자는 뭐냐? 고 크게 소리지르며 불공평함을 항의도 해 봤지만~!!! 옆에 서 있던 친구들 중에 내편은 보이지 않는다~ㅠㅠ.
이때 "너는 남자잖아~!" 하는 말 한마디에 모두가 맞다는 듯 크게 웃으며 박수를 친다.
"야~! 아뿔싸~! 이럴 때만 남자 타령하냐고~ 말이 돼?” ㅋㅋ
“노래라도 남들처럼 멋들어지게 잘 불렀으면~ㅠㅠ" 하는 아쉬움을 표시했지만 경남이가 내 노래 실력(?)을 잘 알고 있기에 그냥 지갑을 열어 나도 당(?)하고 만다. ㅎㅎ
그래도 왠지 기분은 좋다. ㅋㅋ
여자 친구들 돌아가며 노래하는 틈틈이 경남이 더욱 신이 나는 듯 본격 적으로 사냥감(?)을 찾아 나선다.
난 커피 한잔을 들고 잠시 밖으로 나간다.
식당 밖의 분위기는 안에 와는 사뭇 다르다.
시끌벅적하고 무척이나 소란스럽다.
"왜 이러지?" 하고 주변 상황을 살펴보니 무슨 연유(緣由)인지 모르지만 이용술이가 크게 언성을 높이며 백재현에게 불만을 들어내면서 곧 큰일을 낼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다. 몇몇 친구들이 말려 봐도 오히려 더 흥분하여 싶게 진정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아무리 구경 중에서 제일 꿀 재미나는 것이 "불구경과 싸움구경" 이라고들 하지만~^^.
오늘 같은 동창회 자리에서 그것도 친구끼리 싸움질(?)이라 내 씁쓰레한 기분 숨길 수 없다.
결국 얼마간의 시간이 흘렸을까?
주변의 친구들의 중재로 서로 화해를 하는 모습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경남이 하종현이를 손을 잡고 앞으로 끌고(?) 나와서 마이크를 건넨다.
하종현이 노래 실력은 자타가 인정하는 솜씨지만 이젠 점수는 모두가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냥 노래가 끝나면 경남이는 손을 내밀고 그 결과에만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내가 잠시 밖에 다녀오는 사이 남자 친구들 누구누구가 또 희생양이 된 줄 모르겠다. ㅎㅎ
하종현이 뒤를 이어 김수문, 김홍중 뒤늦게 들어오는 이용술이까지 모두가 희생양(?)이 되고 만다.
아무리 좋은 일에도 너무 지나치면~ㅠㅠ.
하고 걱정이 될 무렵에 절묘하게도 왁자지껄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며 보낸 시간을 큰 박수와 함께 아름답게 마무리 한다.
모두가 열기(熱氣)를 식히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갖기 위해 밖으로 나선다.
식당 밖으로 나온 많은 친구들 오늘의 동창회가 끝나감을 아쉬워하며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눈다.
뒤따라 나온 경남이를 보니 흠뻑 젖은 옷, 헐떡이는 숨소리와 함께 흘러 내리는 땀을 손으로 얼굴을 훔치는 모습이 오늘의 뒤풀이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 모습이 멋있고 아름답게 보여진다.
이때 누군가가 4시경에 이른 저녁을 먹고 떠나는 걸로 하자고 전해 온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렸을까~!
식사가 다 준비 되었다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식당으로 들어선다.
다음 마지막회를 남겨두고 오늘은 여기서 안녕 ♡.
♡ 26 ♡ : "이별의 시간이 되다"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모두가 식탁 앞에 앉는다.
이때 백재현이 앞에 나와서 조금 전에 소란을 피워서 불미스러웠던 일에 대해 모든 친구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한편 경남이는 오늘 뒤풀이 때 남자 친구들한테만 강요함(?~^^)에 부담감을 느꼈는지 자기부터 시작해서 식탁에 앉아 있는 여자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반강제(?)로 배추잎(10,000원)한 장씩을 받은 후 여자친구 한 명과 함께 앞으로 나간다.
뭘 하려는 거지? 궁금해 하던 차에~!
같이 나온 친구에게 하나, 둘, 셋~~ 세어 가며 지폐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공개석상에서 총 금액을 확인한다.
"일금:000,000원이야~!” 하고는 "총무님 나오세요" 하자,
강순점 총무가 나온다. 꽤나 많은 돈이 총무에게 전달된다.
모두가 이 모습을 보고 오늘의 즐거웠던 시간들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큰 박수를 보내 준다.
이어서 저녁 밥상이 따스한 한 공기의 밥과 시락국이 약간의 나물반찬과 함께 식탁 위에 놓인다.
배불러 먹었던 점심마저 얼마 동안 다 함께 흥겹게 노래하고 신명 나게 온 몸을 흔든 덕분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고 익숙한 음식 내음이 고향의 맛 토종 시락국이 내 입맛을 한껏 돋우는구나~^^.
슬쩍 곁눈질로 친구들을 보아하니 모두가 하나같이 잘 먹는다. 아마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맛나게 먹고 있나 보다.
왜냐고?
비록 지금은 서로가 삶의 공간이 다르지만 어릴 적에 모두가 한 고향 땅에서 자랐고 나이도 엇비슷하기에 먹는 식성마저도 아직까지는 크게 변치 않는 공통점이 있으니 말이다.
모두들 달콤한 저녁을 마치고 이쑤시개를 입에 물거나 손에 들고 또 다른 손에 믹스커피 한잔씩 들고 배부른 만족감을 엷은 미소로 드러내며 밖으로 나온다.
오늘의 마지막 이벤트 ☆다함께 사진촬영☆ 을 하기로 했다.
어디가 좋으려나 장소를 물색함에 있어 "이곳이다~! 아니다 저곳이다." 하며 모두가 사진에 전문가인양 한마디씩 한다.
장소 선택마저 쉽지 않구나~!ㅎㅎ
하기야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사진작가 맞다.
개인 휴대폰으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어 봤을 테니 말이다.
어찌저찌 하여 한 곳을 최종 결정하고 "오계국민학교20회 동창회" 현수막을 앞에 펼쳐 들고 우리 멋진 친구들 옹기종기 모여 앉거나 서서 예쁘게" 김치~!" 하고 찰칵 사진을 찍고 나니 드디어 이별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생각해 봤지~^^.
지금 석별의 아쉬움을 악수를 하고, 껴안고, 등을 두드리며 서로를 격려 하고 있는 모습은 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너와 나의 모교인 오계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철없이 뛰어 놀았던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상상의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 듯 하다~^^.
이젠 우리들의 인생도 후반생으로 접어들어 70을 훌쩍 넘기고도 서로를 향한 그때의 우정이 아직까지도 몸에 배어 남아 있지 않나 싶구려~^^
내년의 만남을 굳게 약속하면서 서울, 대구, 부산 그리고 고향의 거창친구들 모두가 지역별로 타고 온 차에 올라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향한다.
우리도 1, 2호차에 나누어 타고 잠시나마 1박2일간 고향 향기를 맛 보았던 아쉬움을 뒤로하고 "성산가" 를 떠나 88과 부마고속도로에 진입해 칠서휴게소에 도착한다.
잠시 내려 찌부둥한 몸을 스트레칭으로 간단히 풀면서 1호차에 전화하니 바로 집으로 가자고 하는 모양이다.
다시 차에 올라 도로 정체 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어제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부산 만덕터널을 지나고 있다.
벌써 집 앞이다.
나와 정종현이를 집 앞까지 용문이가 데려다 주기에 편하게 집에 도착한다.
간단한 샤워 후 시계를 보니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다.
어제 오늘 고향 땅에서 일들을 가슴에 껴안고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이른 잠자리에 빠져든다. ♧끝♧.
♧ 감사의 말 ♧
여보게 나의 친구야~!
내가 "거창 동창회를 다녀 와서" 라는 제목으로 기행산문을 우리들 카톡 방에 틈틈이 연재하여 올린 지가 어언 3개월이란 많은 시간이 흘러 구려~!
이번 글로 1박2일 고향 여정을 여기서 마무리 하면서 지금 되돌아 보니 많은 오타와 부족했던 어휘와 때론 적절치 못한 내용들로 아쉬움도 있었고 또 한편으론 친구들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도 된다네~!.
그래도 부족한 글을 읽고 많은 친구들이 직간접적으로 격려와 응원을 해준데 대해 정말 고마웠다.
모두가 끝까지 읽어준 나의 옛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네~
고마우이~♡♡♡. 안녕~!
매산의 옛 촌아이 현수가 부산에서 전한다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