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젓가락(箸:하시)
일본은 <젓가락의 나라(箸の國:하시노구니)>이다.
젓가락(箸:하시)은 중국이나 한국에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젓가락(箸:하시)은 밥이나 반찬을 먹는데 사용하며 국에는 수저(匙:사시)를 사용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젓가락(箸:하시)은 반찬을 먹는 것이고 국이나 밥은 수저(匙:사지)로 먹는다.
이처럼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젓가락(箸:하시)과 수저(匙:사시)를 구분해서 사용하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모든 식사를 젓가락(箸:하시)으로만 먹는다.
그러나 일본은 순수하게 젓가락(箸:하시)만으로 식사하는 나라이다.
젓가락의 나라(箸の國:하시노구니)라고 불리는 만큼 일본에는 실로 많은 젓가락(箸:하시)이 있다.
소재로 나누면 나무젓가락(木地箸:기지바시), 대나무젓가락(竹箸:다께바시), 합성수지젓가락, 상아 젓가락, 금속젓가락. 만드는데 있어서는 둘로 쪼개는 나무젓가락(割箸:와리바시)과 옻칠을 한 젓가락. 형태로 보면 양쪽 끝이 가는 젓가락(兩細箸:료우보소하시), 끝으로 갈수록 얇아지는 젓가락(片口箸:가다구찌하시) 등. 여기에 용도에 따라 각각 그에 맞는 길이의 젓가락(箸:하시)이 만들어지며 그것도 남녀별, 성인용, 어린이용으로 구별된다. 식사용 이외의 젓가락(箸:하시)은 덜어먹는 젓가락(取の箸:도리바시), 요리용 긴 젓가락(菜箸:나바시), 생선요리용 젓가락(眞魚箸:마나바시), 숯을 집을 때 사용하는 젓가락(火箸:히바시) 등도 있어 실로 다종 다채롭다.
젓가락(箸:하시) 없이는 식사를 할 수 없는, 젓가락(箸:하시)을 제외하고는 식사를 논할 수 없는 일본은 실로 <젓가락의 나라(箸の國:하시노구니)>이다.
- 젓가락(箸:하시)의 발달과정
지금 젓가락(箸:하시)하면 두 개로 이루어진 젓가락(箸:하시)이지만 아주 오래 전 젓가락(箸:하시)은 대나무나 나무의 중간 정도를 구부려서 만든 핀셋 모양의 접이 젓가락이었다.
지금의 천황의 즉위에 따른 대상제(大甞祭)가 행해졌을 때 신찬(神饌신센:신에게 바치는 음식)이 TV로 방영되어 이 핀셋형 접이젓가락이 나온 것을 기억한다. 원래 젓가락(하시)은 접이젓가락의 끝이 새의 부리와 닮았다고 해서 <하시(嘴)>이며 또한 음식과 입과의 사이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하시(橋)라고 부른다.
젓가락(箸:하시)의 기원을 언급할 때 항상 인용되는 유명한 일화로 <나가레바시(流れ箸) 전래>가 있다. 이것은 『古事記』의 이즈모(出雲)신화에 나오는 얘기이다.
…須佐之男命가 高天原에서 出雲國의 斐伊川의 鳥上의 땅에 강림했을 때 강 상류에서 젓가락이 떠내려 왔다. 그것을 본 命은 강 상류에 사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니 노부부가 어린 소녀는 가운데 놓고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연유를 물으니 머리와 꼬리가 여덟 개씩 달린 八俣遠呂智가 나타나 딸을 먹어버렸다고 한다. 須佐之男命은 노부부에게 명해서 여덟 통의 술을 담은 배에 술을 가득 채워 마시러 온 遠呂智를 十拳剱으로 퇴치한다. 그리고 목숨을 구해준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出雲國의 주권이 된다…는 내용이 <나가레바시(流れ箸) 전래>의 줄거리이다.
노부부는 딸의 위기를 구하고자 신찬(神饌 신센:신에게 바치는 음식)을 만들어 신에게 바치며 소원을 빌었다. 신찬(神饌 신센:신에게 바치는 음식)은 소원이 이루어지면 강에 흘려보내는 것이 관습으로 흘러내려온 젓가락은 신찬에 바친 젓가락이었던 것이다.
이 나가레바시(流れ箸) 전래는 젓가락의 발생의 동기를 말해주고 있다.
젓가락(箸:하시)뿐만 아니라 도구류는 인간의 손이나 손가락을 대신하는 것으로서 그 인간의 손가락은 원래 부정한 것으로 생각했다.
신에게 바치는 음식을 부정한 손가락으로 만지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로서 그로 인해 젓가락(箸:하시)을 생각해낸 것이다. 따라서 젓가락(箸:하시) 그 자체의 발생기원을 생각해볼 때 현재의 젓가락(箸:하시)처럼 음식을 입에 가져가는 도구가 아니라 음식을 조리해서 나누는 도구, 신찬(神饌 신센:신에게 바치는 음식) 을 신과 더불어 나눠 먹기 위한 도구, 신에게 바치는 일종의 제기로서 탄생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첫댓글 젓가락의 나라! 새로운 지식을 알게됬습니다 ^^
반기용님! 고루 다니면서 여러가지 좋은 글 주시네. 다독하면 정말 좋지요. 독서보다 더 좋은 성생님은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