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한국 교육 제 4의 길을 찾다 - 야만의 길을 지나 인간의 길로>
이길상 지음, 살림터, 2019.
이 책은 1945년 8.15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학교 교육을 제1,2,3의 길로 나누어 살펴보고 지금까지는 야만적인 교육이었으니까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극복하여 이제 제 4의 길인 인간적인 교육을 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책은 1. 해방 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시대를 제 1의 길.
2.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대를 제 2의 길.
3. 김영삼 정권 이후의 시대를 제 3의 길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제 1의 길은 나의 아버지 세대, 제 2의 길은 나의 세대, 제 3의 길은 우리 아이들 세대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1. 이 책은 제1의 길 - 이승만 정권 하에서는 일본식 교육에서 탈피하여 민주주의 교육을 만들어 냈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1945년 이후 1950년대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결되어 교육도 ‘침체나 암흑’의 시기로 부정적으로만 보아왔는데 저자는 그래도 이 시기가 “민주주의 교육에 대한 교육자들의 신념과 이에 대한 국가권력의 도전이 지속된 역동적인 시간”(170쪽)이었다고 보고 있다.
하기야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에는 거침없이 욕망이 분출되고, 그리고 유행병과 같이 통제되지 않는 폭력적인 사건 사고들이 난무했고, 먹고 살기에 바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매우 한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거의 모두가 가난하였기 때문에 하향평준화되어 단군 이래 가장 평등한 나라가 되었고 모든 것이 매우 유동적인 사회임에도 그래도 교육이 제대로 틀을 잡아 가기 시작하면서 우리 민족의 DNA에 내포되어 있던 교육열망을 통한 ‘신분안정과 출세’욕구가 분출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이 책의 거의 절반이 이 제1의 길에 배당되었는데 저자도 계속 지적하였듯이 이승만 정권과 그 시대적인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워낙 깊게 뿌리박혀 있어 저자가 매우 열의를 가지고 증명해 내려고 했던 그 시대 교육에 대한 ‘민주주의 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그 시대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나에게도 여전히 낯설다.
2. 이 책은 해방이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사건과 변화들과 관련시켜 교육제도의 변천사를 잘 담고 있는데, 내가 1957년생이고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1964년에 입학했지만 저학년 때 생각은 잘 안 나고 5학년 때인 1968년 12월 5일에 국민교육헌장 반포식을 하러 근처 중학교-고등학교 학생들 모두가 우리 김포초등학교에 와서 행사를 한 것을 나는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라고 선생님들이 닦달을 했고 그 당시에는 제대로 뜻도 모르면서 그리고 왜 갑자기 그런 것을 외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외었다. 그 국민교육헌장이야말로 ‘한국교육 제 2의 길’을 상징하는 이념적 기반이었고, 국가권력이 교육을 대한 과잉적인 지배를 상징하는 문서이고, 교육의 정치도구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 국가의 교육과 시험에 대한 통제는 더욱 노골적이고 강경해졌다.
이 이후부터의 모든 교육제도 변화는 나와 우리 가족과 연관된 사건들로 기록될 수 있겠다. 나 때부터 서울에서는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받는) 중학교 무시험입학제도가 실시되었지만, 나는 김포에서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았고 중3때 서울로 전학하면서 마지막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았다. 대학에 가기 위해 모의(模擬) 수류탄 던지기가 포함된 체력장을 먼저 보고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보고 대학에 입학했다. 1990년생인 우리 아들은 저자가 이 책에서 많은 특권을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을 하는 특목고(외고)에 갔고 수학능력시험을 보았다. 우리 아버님은 1983년에 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영재고등학교였던 경기과학고등학교 2대 교장선생님을 하셨다. 그 때부터 대부분의 광역시-도에 과학고가 하나씩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69년7월16일에 미국의 유인(有人) 우주왕복선인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하고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딛으며 우주과학시대를 열고 있을 때 (그 날 우리는 임시공휴일이었고 집에서 라디오로 그 중계방송을 들었다) 우리는 한심하게도 여전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간첩 식별법을 배워야 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되서야 과학발전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과학고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저 경기과학고 학생들은 대부분이 2년만에 조기 졸업하여 KAIST로 진학하였는데 그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가 1992년에 발사되었다(고 우리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이 과학고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특목고의 효시였다.
3. 한국교육 제 3의 길을 떠받치고 있는 이념은 신자유주의적인 선택, 경쟁, 시장이다. 하기야 전세계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교육만이 고고하게 저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을 것이지만 유독 우리나라 교육이 저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교육현장을 지배하게 된 성과주의-획일주의가 한민족 특유의 학벌에 대한 욕망-학부모들의 이기주의와 맞물려 원래부터 있었던 과학고에 이어 외국어고 자율형사립학교(자사고) 등 각종 특목고가 많이 생기면서 교육 기반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보통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붕괴되면서 열등한 학생들만 가는 학교로 전락되었다. 내가 사는 양천구 목동도 먹고살만한 부모들의 교육열이 유독이 높고 학원이 밀집해 있어 학력수준이 높은 지역인데 특목고로 많이 빠지다 보니 이 지역에서 일반계 고등학교(신목고)에 재직했던 정진권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그 학교의 학생들의 수준은 형편이 없다”고 했다.
지금 초.중.고등학교의 아이들은 모두가 SKY로 대변되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사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공교육은 무너지고 평일에도 토요일-일요일에도 아이들은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무한경쟁 속에서 서로가 경쟁상대가 되고 싸워 이겨야 할 적으로 설정되고 나와 내 자식만은 잘 살게 해 보겠다고 학원비에 경제적-정신적으로 엄청난 출혈을 감당하면서 무기력증과 피곤과 고통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4. 제 4의 길의 방향은 - “학생의 특성에 맞도록 항상 재구성 되는 교육과정, 자발적으로 탐구하고 참여하는 수업, 서열화가 아니라 학생의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평가, 우수한 학생 선발이 아니라 우수한 배움 공동체 형성을 위해 경쟁하는 학교, 이런 요소들이 지배하는 학교문화가 일상화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은 숙제다.”
이제 이런 제 4의 길로 가야 하는데 그 길을 위한 첫 번째 과제가 교육특권을 폐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동안 서열화와 특권화에 익숙해져 왔다. 특목고, 자사고,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의 대도시 어디에나 형성되어 있으면서 부동산값을 좌우하는 8학군 학교들이 그러한 것이고, 그 정점에는 서울대학교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저런 특권을 가지고 있는 학교들을 역차별을 하여 저런 학교에 다니는 것이 대학입시에서 오히려 불리하게 취급되어야 특권이 폐지될 것이며 그런 연장선상에서 서울대 폐지론을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 폐지론은 예전에 안티(anti-)학벌 운동을 열심히 하던 내 친구도 주장했던 것으로 간헐적으로 계속 제기되었다. 나도 그동안 온갖 특권과 특혜를 받고 있는 서울대가 사라지면 지금 당면하고 있는 교육문제의 핵심의 상당 부분이 사라져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문제는 현실성 내지는 가능성이 없다는 데에 고민이 있다. 서울대 출신들이 어느 분야에서든 꽉 잡고 있는데 가능하겠는가? 자기 아들 박지만의 진학을 위하여 전격적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없앤 박정희 대통령이나 하루아침에 과외를 금지시켰던 전두환 대통령 같은 야만의 시대도 아니고!
분당에서 이 책 출판기념식을 할 때 내가 저자에게 본인이 당장에 교육부장관이 되면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꼽아 보라 하니까 저자는 교원임명고시를 개편하겠다고 했다. 교원이 인기가 없어 사범대학을 졸업한 학생도 교직을 기피하고 교직을 이탈하던 1970년대의 상황이 지나고 1980년대부터는 교직에 지원자들이 몰리자 교원임명 고시를 보게 되었고 지금은 엄청 치열한 고시가 되었는데, 저자는 이 고시를 “교원 양성 교육의 정상화와 교직을 전문성을 가로막는 1차 장애물”로 보고 있다. 나도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그나마 교직이 안정적인 직종으로 부각되고 새롭게 인기가 치솟아 많은 대졸자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교직에 대한 이런 식의 시험방식 이외에 어떤 객관적이고 공정한, 그리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나의 이러한 의문제기는 이 책에서 계속 문제시하는 시험의 공정성에 대하여 우리 국민들이 가지는 맹목적인 신뢰를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다. 나도 “채용을 위한 검사(테스트, 고시, 시험 등)은 필요악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전형적인 한국사람이니까!
그날 참석했던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이었던 김병욱 국회의원이 말한 대로 지금의 단계에서 교육제도, 특히 시험 제도의 조그만 것 하나를 고치는 것(예컨대 대학입시에서 정시 비율을 높일지 여부)도 서로의 이해관계가 엮어 있어 매우 어렵고 조심스러운 상황인데 교육제도를 싹 뜯어 고치는 차원의 서울대를 없애고 교원임명 고시를 개편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일이겠는가? 1989년에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 차원이었던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운동 같은 것이 그 당시는 많은 변혁을 이끌어 냈지만 이렇게 사회가 고착화된 지금 시기에 일어난다고 하면 그 반향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책은 가장 최근의 상황까지 잘 서술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5천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 중에서 7번째로 3만 달러 국민소득 국가가 되었다는 얘기며 한류와 방탄소년단 얘기도 잘 나와 있다. 이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교육열이 뒷받침되어 가능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교육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무기력증과 피곤함과 고통만을 선사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교육열을 본받자고 하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교육제도와 열정을 모범적인 사례로 거론하곤 했다. 아@@ 황당하다.
5. 나도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교육을 받아왔고 지금도 교육의 제도권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으로서 교육문제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고 문제점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몰라서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 이 교육문제를 단순히 교육문제로만으로 한정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해결이 어려운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의 시대가 끝나가면서 온통 서열과 특권이 판을 치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신분이 고착화 되는 상황에 있는데 우리 국민들은 교육을 통하여 저런 사회경제적인 불안을 해소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그렇지만 저런 총체적인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종속변수인 교육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다고 본다. 교육제도 하나하나를 바꾸어서 될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구조와 오래된 국민들의 의식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확고한 듯 보이는 저런 구조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학교와 교육의 변혁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급격한 혁명이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게 된 지금의 시대에 그래도 여전히 희망은 교육에 있다는 얘기다. 전적으로 찬성한다.
저자인 이길상 교수는 교육학을 전공했고 오랫동안 교육문제를 연구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나름 결론으로 교육의 특권들 제거, 교원임명제도 개선, 교권 회복, 교육을 국가권력과 시장의 영향으로부터 차단, 혁신학교 같은 것을 만들기 등의 방법을 제시한다. 하기야 적어도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여진 교육분야에서의 적폐가 어느 하나의 제도들을 고치고 개혁적인 대통령-교육부장관이 나온다고 해서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 교육의 고민과 과제를 담은 이러한 책들이 계속 발간되고 읽고 토론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이 꼭 있어야만 서서히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고 교육이 인간의 길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6. 이 책은 전문 교육학자가 그 동안 갈고닦은 연구의 노고와 업적이 집대성되어 있는 완성도가 높은 책이다. 인용과 예시가 적절하고 주장이 확실하고 표현이 매끄럽다.
이 책은 해방이후 각 시대별로 일어났던 우리나라와 전(全)세계의 사건사고가 우리 교육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예시를 적절하게 들고 있어 내 기억 속에 있던 과거 시절을 회상할 수 있어 흥미로웠고 지루하지 않았고 비(非)교육학자가 보기에도 무난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내 기억 속에 없는 1960년 이전 얘기는 전문 교육학자가 아니면 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이 책에는 우리를 가르쳤던 이상갑 선생님이 <새교육>이라는 잡지에 1975년에 쓰셨다고 하는 글이 간단히 인용되고 있다.
“비생산적인 교육, 비생산적인 지식은 오히려 무식보다 해롭다”
이 글과 이 책을 읽으며 지금 내가 교육자가 아닌 월급 받는 직업인으로서 저런 비생산적인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