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구역(땅끝마을-보성)-셋째 날(6월27일 금요일 맑다가 흐림)
잠에서 깨니 새벽 04:50이다. 어제 밤, 푹 자려고 도가니탕을 안주로 소주를 한 병이나 마셨는데도 7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어차피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주섬주섬 짐을 챙겨 05:20에 출발했다. 내일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으니 오늘 가능한데로 많이 가야한다. 김남희처럼 강진읍에서 장흥군 장동면까지 30.5킬로를 가면 내일은 보성까지 9킬로만 걸으면 된다. 그러면 비를 맞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른 아침이지만 이미 동이 터서 밖은 훤하다. 뺨에 부딪히는 아침 공기가 시원하다. 어제 마신 소주가 과했나, 갈증이 난다. 김남희는 강진까지 오는 동안 발에 물집이 생겼다지만 나는 아직 괜찮다. ‘이진영’이 술 좀 작작 마시면서 다니라고 걱정이더니…. 05:40, 해가 떠오른다. 아침 햇살이 눈부신 걸 보니 오늘은 무척 더울 것 같다. 06:30, 해남군 군동면 농협 앞을 지난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공짜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게 유감이다. 이 곳 면사무소에도 어김없이 ‘인구감소 해결’현수막이 걸려있다. 07:30, 너무 일찍 일어나서 출발한 탓에 아침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파온다. 배낭에서 초콜릿, 비스킷을 커내서 일단 허기를 달랜다. 훨씬 났다.
08:20, 명암마을 앞을 지난다. 논에서 일하던 50대 중반의 사내가 어디까지 가느냐고 말을 걸어온다. 자기는 명암마을에 사는 사평 신씨란다. 날더러 머리가 흰 것을 보니 갑신생 정도로 보인단다. 을유생이라고 답을 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이 사내는 날 아주 무식하게 보았을 게다. 적지 않은 나이에 힘들겠다며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사는 명암마을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를 설레발이다. 농투성이라고 우습게보지 말라는 투다. 자기 동네에는 과거에 경찰 총경까지 한 사람도 산단다. 자칫하면 나도 이 사내에게 휩쓸려 나도 한 때는 잘 나가던 사람이라고 할 뻔 했다. 이 사내는 친절하게도 오늘이 장흥장이라며 장에 들려 막걸리라도 한 잔 하고 가란다. 아, 그렇구나. 마침 잘 되었다. 장흥 장에 들려 아침 겸 점심을 배불리 먹으면 되겠구나.
08:50, 순지 삼거리(영전마을)에서 23번 국도로 갈아탄다. 장흥읍내가 바로 코앞이다. 60대 아주머니 두 분이 손수레를 끌며 장에 간단다. 요즈음은 시골 아낙들도 힘들게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거나 이고 다니지 않는다. 가벼운 손수레에 물건들을 싣고 끌고 다닌다. 어떤 할머니는 유모차에 물건도 싣고 몸을 의지하며 밀고 다닌다. 힘들면 그 자리에서 쉬고…. 09:30, 장흥 장터 한 복판의 화장실은 ‘아낙네 측간’ ‘남정네 측간’으로 나뉘어 있다. 겉모습도 옛날식 황토벽으로 만든 집이라서 그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 과연 이 시골에도 이런 여유와 멋을 아는 사람이 있구나! 장흥에는 한우 쇠고기를 사서 식당에 가져다주면 600그램에 6천원만 받고 구워준다. 나도 300그램을 8천원에 사서 ‘한라 국밥집’에서 구워먹었다. 막걸리 한 병까지 시켰는데 5천원만 내란다. ‘박제건’에게 전화를 해서 약을 올렸다. 무슨 쇠고기가 돼지 삼겹살 보다 싸냐며 시비다. 낸들 아나. 산지에서는 싸게 팔아도 되나보지.
10:30, 충분히 쉬고 어슬렁어슬렁 장흥을 출발했다. 12:30. 20킬로를 넘게 걸어서 피곤이 몰려오던 차에 ‘만남 보양탕’ 간판이 보인다. 에라, 여기서 쉬어가자. 보신탕 한 그릇에 8천원이다. 탕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깜박 잠이 들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탕을 먹으라고 깨운다. 좀 더 자게 내버려 두지. 오늘 아침 너무 일찍 일어났나보다. 탕을 먹고 나서 주인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내쳐 잠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 푹 잤다. 아주 기분이 상쾌하다. 이제 또 걸을 수 있겠다.
2:10, 부산면과 갈림길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구도로(2번국도)와 4차선 신도로(2번국도)가 합치나 보다. 하는 수 없이 신도로로 올라섰다. 대형트럭이 많아서 멀리서 보기에는 위험해 보였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갓길이 넓어서 그리 불안하지는 않다. 반대편에 젊은 학생 3명이 굵은 글씨로 ‘목포’라고 쓴 마분지를 들고 지나는 차들에게 손을 흔든다. 아마, 히치하이킹으로 목포까지 갈 모양이다. 좋은 때다. 젊은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815미터 길이의 호계터널을 지나면서 신도로로 걷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했다. 대형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하도 소리가 요란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또 신도로는 주변 과 단절되어있어서 물 한 모금 마실 곳도 없다. 그냥 한 없이 단조로운 도로를 따라 걷는다는 것이 엄청난 고통이다. 지루한 가운데도 가끔 생사를 확인하는 아내의 전화가 반갑고 ‘최병은, 강현옥, 양윤희’ 등의 응원 전화가 고맙다. 하도 심심해서 이정표 사이의 거리와 내 걸음 수를 비교해 보았더니 1,500보가 1킬로 쯤 되었다. 드디어 내 만보계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화가 났다. 내 만보기는 실제보다 훨씬 덜 찍힌다. 빌어먹을…. 서울 가면 우선 만보기부터 사야겠다.
4:00, 기진맥진한 상태로 드디어 장동에 도착했다. 우선 장동휴게소에 들려 물과 아이스 바를 사서 먹으며 잘 곳이 있는지를 물었다. 웬걸, 여관은커녕 민박도 없단다. 60대의 휴게소 아주머니는 이제 4시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보성까지 가기에는 ‘헛벅하시것소’란다. 넉넉하다는 의미란다. 나는 휴게소의 평상에 벌렁 누워버렸다. 도저히 더 걸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32킬로를 걸었는데 또 킬로를 걸으라고? 다시 한 번 김남희의 기행문을 읽어보니 김남희는 이 곳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 집을 찾다가 잠자리를 얻었단다. 그러니까 이 곳에 여관이나 민박이 없다는 말 만 안했을 뿐이다. 30분 정도 빈둥거리다가 할 수없이 다시 보성으로 출발했다. 면사무소 옆을 지날 때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계집아이 하나와 사내아이 둘을 만났다. 이 녀석들은 내 행색에 호기심이 동했나보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 어디로 가느냐고 꼬치꼬치 묻는다. ‘700원만 내면 버스를 탈 텐데 왜 걸어가요? 돈이 없어요?’ 여기에는 잘 곳이 없어 보성까지 간다니까 저희들이 잘 곳을 알려준다며 따라오란다. 미심쩍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따라갔다. 녀석들이 안내한 곳은 사각형의 마루정자였다. 사면을 비닐천막지로 막았다지만 마루바닥에서 잘 수는 없는 일이다. 하릴없이 보성을 향해가다가 되돌아보니 세 녀석들이 내 쪽을 바라보다가 손을 흔든다. 귀여운 녀석들.
아무리 가도 이정표는 거리가 줄지 않는다. 짜증도 나고 뭐 하러 이런 생고생을 하나 싶다. 이십 리 길이 이렇게 멀다니…. 오리 로스구이 집의 물끄러미 내다보는 오리들도 싱겁고 밥값을 하다고 낯 선 행인을 보고 내달으며 짖어대는 강아지도 밉살스럽다. 이젠 만사가 귀찮다. 다리는 물집이 잡히고 허기마저 진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시간도 넉넉해서 드디어 7:00분 보성에 도착했다. 우선 요기를 하려했더니 마땅한 집이 보이질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1구역은 끝났고 어차피 내일은 비가 와서 서울로 가야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광주로 가서 야간 버스를 타자. 터미널의 기사식당에서 라면으로 허기를 메우고 8:00 광주행 버스를 탔다.
오늘 걸은 길 : 강진읍-2번 구국도-장흥-2번 구국도-부산면-2번 신국도-장흥군 장동면-2번 구국도-보성, 41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