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땅 끝 마을 '영목항' 가는 길
3월의 첫머리를 맞이하면서 바다와 하늘이 맞닿을 듯 서해안의 끄트머리 안면도 땅끝 마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서로가 바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밀렸던 감성과 느낌을 충전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으므로 간직하고픈 추억과 내가 밟았던 흔적들을 되짚어 보기로 한다.
그동안 안면도에 대해서는 꽃박람회를 수차례 소개한 바가 있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꽃지해수욕장을 뺀 나머지 해수욕장과 주변 풍경을 위주로 자세하게 훑어보기로 했다. 서산에서 출발하여 40여 분 지나면 안면읍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또 다시 15분정도 자동차로 달리다보면 신선하고 예쁜 이름의 '샛별 해수욕장' 안내판을 볼 수가 있다.
처음 '꽃지해수욕장'이 그랬듯이(지금은 너무 많이 알려져서 설렘이 사라짐) 이곳 역시 개장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다. 하지만 조약돌 투성이의 넓은 해변을 마주하면 동해의 해변을 연상하게 되며 푸른 바닷물은 더없이 맑고 깨끗하다. 오붓하게 가족과 함께 백사장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기에 참 좋을 것 같다.
태안반도의 서쪽 끝 안면도의 마지막 항구인 영목항을 가다 보면 고남면 소재지를 조금 못미처 서해에서 동해의 푸른 물결을 느낄 수 있는 '바람아래 해수욕장'의 입구가 나온다. 굽이굽이 비포장 포장도로를 타고 갈대밭과 소나무 숲을 지나면 반짝거리는 파도가 모든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게 되고 이곳을 처음 방문한 피서객은 우선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골과 골 사이로 형성되어 있는 백사장이 매우 이채로우며, 용이 승천할 때 큰바람과 조수 변화를 일으켜 조개 바탕과 모래 둑이 형성되었다는 이곳.
서산에서는 매년 YMCA 단체가 다양한 체험행사를 계획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해안의 해수욕장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백사장의 고운 모래와 아름드리 소나무의 그늘이 인상적이어서 언제든 마음 훌훌 털고 또 오고 싶은 곳이리라.
이번엔 안면대교를 지나 차량으로 약 25분 정도 가다 보면 고남면 소재지가 나타난다. 고남면 소재지를 진입하다 보면 우측에 장삼포해수욕장 안내 표지판이 있어 찾아가기에 어렵지 않다. 백사장 전체가 길게 이어진 해안선으로 조개잡이 및 게 잡이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마리아와 여인숙'이라는 영화 속의 해변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난 여태 그 영화를 보지 못해서 구체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어려움이 남아 있다.
장삼포 해수욕장 주변 마을을 '대숙밭'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대숙이란 바닷가 바위틈에 서식하는 나사조개의 일종이란다. 이곳에서는 갯바위낚시와 야간의 배꼽고동잡기를 즐길 수 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붕장어구이, 자연산 생선회를 먹을 수 있다. 이곳 역시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살짜쿵 연인과 함께 데이트하기 좋다.
장삼포 해수욕장을 지나노라면 그 곁에 바짝 붙어 있는 조용한 해변마을이 나온다. 일명 장곡해수욕장으로 불리기도 하며 해변의 폭이 크지 않은 아늑하고 조용한 해수욕장이다. 주변은 농경지와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야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민박이 가능하며 시골의 인심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역시 우선 해변이 안전하기 때문에 가족끼리의 한적한 피서 즐기기에 적당한 것 같다.
생활에 찌든 스트레스를 부서지는 파도의 하얀 물거품 속에 과감히 던져보자. 아직은 주변 시설과 먹거리 등이 풍부하지 않은 인상을 담고 왔지만 언젠가는 가슴 풋풋하고 따스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람과 어느 날 훌쩍 인적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을 때 생각날 것 같은 장소다. 친절한 사나이의 훈훈한 인심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지 모른다.
운여해수욕장은 지포저수지, 법정사 입구에서 약 3Km 지점 장곡3구에 있다. 입구에서부터 모래가 주변을 뒤덮인 것이 마치 태안 원북에 있는 신두리 해수욕장을 연상하게 된다. 완만한 백사장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이 인상적이었고 흐린 날의 석양과 구름 떼가 만들어내는 경관은 정말 아름다웠다. 자그맣고 아담한 모습은 한 아름 가슴속에 폭 들어올 듯 껴안아 주고 싶다.
또한, 이곳은 안면 제일의 사구가 발달하여 바람아래해수욕장과 더불어 해마다 안면도 예술축제가 열리는 장소라는 것도 꼭 잊지 말아야겠다. 모든 해변이 사구에 둘러싸여서 차량은 통행할 수 없으므로 운여해수욕장에 들어가려면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가야 한다. 이참에 차라리 연인과 함께 어깨동무하며 두런두런 이야기할 수 있으니 더없이 좋지 않을까.
출렁이는 바다와 구름 많이 낀 하늘을 뒤로하고 땅 끝에 있는 마을 영목항을 향했다. 오른쪽 길가에 장엄한 건축물이 눈에 띈다. 이곳이 바로 고남면 고남리 '패총박물관'이다. 사실 그렇게 많이 오갔음에도 무관심 속에 그냥 스쳐 갔던 곳이다. 이번엔 직접 차에서 내려 내부를 둘러보고 머릿속 한 귀퉁이 자리를 내어 주리라. 패총박물관 하면 괜스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고남리 패총에서 출토 및 수집된 유물을 중심으로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시대의 토기, 석기 등이 전시된 곳이라고 이해하면 훨씬 편할 것 같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이용했던 도구를 직접 접할 수 있으며 문화체험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박물관이라는 곳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보고 나면 외려 머릿속이 텅 비는 멍함이란.
이제 많은 눈 씻음과 장관들을 마무리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땅 끝에 있는 마을 하면 전라도 '해남'을 연상하게 되는데 충남 서해안 안면도에도 육지의 마지막 간절함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곳이 있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뭔가 새로운 이상을 쫓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못내 다다를 수 없는 끝자락에 선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영목항'이 바로 그곳이다.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마지막이라는 느낌으로 찾게 되는 곳. 주말 이어서일까? 휴일이라서일까? 많은 사람이 북적대고 있었다. 선착장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은 갈매기와 파도, 그리고 사랑을 기다리고 있겠지. 올망졸망 늘어선 작은 섬(원산도, 효자도, 추섬, 빼섬, 삼형제 바위)들이 나를 오라 유혹을 하지만 계획된 일정이 없어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 서러움만 가득하다.
다른 항구에 비해 어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도 사람 사는 정을 느낄 수 있는 영목항에서 싱싱한 횟감으로 소주 한 잔 걸치고 나니 이 세상 어느 것도 부러울 것이 없어라. 조금만 벗어나서 탈출을 시도하면 즐거움과 기쁨으로 남은 나날들이 활기차고 희망 가득 아름답게 꾸며지리니 우리는 그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가족들과의 여행을 접고 편안하고 여유롭게 쉴 수 있는 보금자리로 향했다. 천장 높은 통나무집 민박을 얻어 온 가족이 함께 윷놀이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 먹으면서 보내는 밤은 한없이 깊어만 갔다. 서울 막내 제부가 준비해 온 귀하디귀한 21년산 밸런타인 위스키를 비우고 또 비워내도 취하지 않는 안면도에서의 하룻밤은 두고두고 못 잊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작성일: 200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