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대하여
프란시스 베이컨(수상록 중에서)
외계의 우연이 운명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일이다. 즉 은혜, 기회, 타인의 죽음, 장점을 발휘하는데 알맞은 환경 등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대체로 말하면, 인간의 운명을 형성하는 것은 그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로마의 한 시인은 “모든 사람은 자기 운명의 건축가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외부적인 원인 가운데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어떤 자의 어리석음은 다른 자의 행운이 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과실에 의한 경우만큼 급속히 출세하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뱀은 다른 뱀을 삼키지 못하면 용이 되지 못한다.”라는 그리스의 격언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 잘 띄는 덕성은 확실히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은밀히 숨겨져 있는 덕성이 행운이 가져오기도 한다. 어떤 종류의, 뭐라고 이름지울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처신법이 있다. 에스파냐어의 데셈볼투라(Desemboltura)라는 말이 어느 정도까지는 이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성격 가운데 얽매임이나 저항이 전혀 없고, 그 마음의 수레바퀴가 그의 운명의 수레와 잘 조화되어 굴러간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고대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는 당시에 있었던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끈 카토를 평하여 “그는 위대한 육체와 정신의 힘을 가졌고, 따라서 어떠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갔을 것이다.”라고 한 다음, “그는 어떤 방면으로나 특출한 재능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만일 뛰어난 사람이 날카롭게, 또한 마음을 집중해 관찰한다면 ‘운명’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운명 자신은 장님이지만, 그 모습이 아주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운명의 길은 하늘의 은하수와 비슷하다. 은하는 숱한 작은 별의 모임, 또는 덩어리로서 그것은 하나하나 분리되지 않고 한데 뭉쳐서 반짝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다수의 작은, 거의 판별할 수 없을 만큼의 덕성(혹은 능력과 습관이라고 하는 편이 알맞을지도 모르지만)이 있고, 그것이 사람의 운이 좋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은 그러한 것 가운데 인간이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두세 가지 점에 착안하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성공만 하는 인간을 평가할 때, 그에게도 ‘다소 어리석은 점’이 있다는 것을 여러 조건과 함께 드는 것이다. 사실 다소 어리석은 점이 있는 것과 너무 많은 정직함을 갖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만큼 더 운이 좋은 성질은 없다. 따라서 자기의 나라, 자기의 주인을 극단적으로 사랑한 인간 가운데 운이 좋았던 자는 별로 없었다. 또한 운이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까닭은 사람이 자기 이외의 것에 지나치게 마음을 기울일 때는 자기의 길을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얻은 행운은 투기꾼이나 방정맞은 인간을 만들 수가 있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얻은 행운은 유능한 인물을 만든다. 행운의 두 딸인 ‘자신감’과 ‘명성’만으로도 칭송되고 존경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것은 전자는 자기 자신 속에, 그리고 후자는 타인 속에 각인된다.
모든 현명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장점으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시기를 받지 않기 위해, 보통 행운을 섭리와 운명 탓으로 돌려버리려 애쓴다. 그러면 그것을 마음 편히 소유할 수 있고, 그리고 또한 보다 높은 힘에 의해 지켜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행복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폭풍우 속에서 수로 안내인에게 “그대는 카이사르와 카이사르의 운명을 인도하고 있다.”라고 했고,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 술라는 ‘위대한(Magnus)’이라는 말보다 ‘행운(Felix)’이라는 호칭을 택했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드러내어 자기 자신의 지혜나 재치로 돌리는 사람은 그 끝이 불행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 티모테오스는 정부 당국에 보낸 보고서에서 “이 점에 있어서 운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고 하는 구절을 자주 삽입하곤 했는데, 그 뒤 그가 시도한 일은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상에는 확실히 역사적인 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이나 세상을 바꾼 위대한 정치가처럼, 다른 시인의 시구보다 뛰어나게 부드럽고 경쾌한 시구를 가진 호메로스처럼 운을 가진 자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 사람 자신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다.
첫댓글 내용이 정말 좋아 옮겨 보았습니다.
이 번에는 원문 그대로가 아니고 제가 많이 고쳐보았습니다.
그러나 원래 영어 원문의 문체를 살리려고도 애써보았습니다.
사실 다소 어리석은 점이 있는 것과 너무 많은 정직함을 갖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만큼 더 운이 좋은 성질은 없다. 따라서 자기의 나라, 자기의 주인을 극단적으로 사랑한 인간 가운데 운이 좋았던 자는 별로 없었다. 또한 운이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까닭은 사람이 자기 이외의 것에 지나치게 마음을 기울일 때는 자기의 길을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도 정말 새겨야 할 대목이 아닐까요? 다만 누구를 위해 이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는데 겉으로는 그러더라도 속으로는 그런 이유 외에도 진정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새 베이컨을 공부하는 모양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용이 객관화 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 좋은 생각들인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 중의 뛰어난 몇 가지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현명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장점으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시기를 받지 않기 위해, 보통 행운을 섭리와 운명 탓으로 돌려버리려 애쓴다. 그러면 그것을 마음 편히 소유할 수 있고, 그리고 또한 보다 높은 힘에 의해 지켜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행복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말도 참 멋있잖아요!
네. 깊이 있는, 철학적인 얘기입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이런 글과 꽁트의 중간 어디쯤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균형추를 이쪽으로 혹은 저쪽으로 조금씩 기울여 가면서 말입니다. 이 글은 많이 무겁고, 일반적으로 꽁트는 너무 가벼우니까요. 결국 가벼운 글이면서도 속에 메세지가 있는 글! 이런 글을 쓰려고 목하 노력중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수필을 보면 샘이 말하는 것과 같더군요. 격조는 높지만 생활주변의 일을 소재로 하여 인생의 이치를 설파하고 있었습니다. 꼭 서양과 같을 필요는 없겠지요.
헉! 이규보의 수필까지 읽으셨어요? 대단하군요. 나름대로 역사를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저는 역사속에 있는 문학에 대해서는 책 제목밖에 모르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네요.
뭐 그럴 것까지는 아닙니다. 수필가 비평에서 한상렬선생님이 연재하기에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명수필 책에서도 몇 개 읽었습니다. 고려시대의 이규보선생 수필은 정말 명문장이었습니다. 빈데, 이, 승려, 종, 관직 등 다양한 것을 주제로 썼는데 결론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전집이 영어 등 외국어로도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정지상, 이규보 등의 작품을 국역하느라 바쁘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