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나 잇몸이 아닌 다른 곳의 원인이 치통으로 우울증 주부·스트레스 직장인 등 심리적 요인도
[조선일보 이지혜 기자] 최모(여·46)씨는 며칠째 계속되는 치통을 참다 못해 치과에 갔다가 의사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심장내과에 빨리 가보라”는 것이었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새벽에 잠이 깰 정도로 왼쪽 아래 어금니가 심하게 아팠던 최씨는 처음엔 도무지 이해가 안 됐지만 의사의 권유에 따라 설마하는 마음으로 심장내과를 찾아갔다가 협심증 진단을 받았다. 이후 협심증 치료를 받으면서 그토록 고통스럽던 치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의사들은 이를 ‘비치성(非齒性) 치통’으로 설명한다. 이는 치통을 느끼지만 치아나 잇몸이 아닌 다른 곳에 원인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환자는 치과를 찾아가 검사를 해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설혹 이상이 나타나 이 신경 치료를 하거나 발치(拔齒)를 해도 통증이 심해지는 게 특징이다.
연세대 치과대학병원 구강내과 김성택 교수는 지난 2년간 구강내과를 찾은 환자 1만4000여명 중 약 1%인 134명에게서 비치성 치통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비치성 치통이 나타나는 원인은 10여가지로 다양하지만, 신경통이나 근막통증, 이를 갈거나 악무는 나쁜 습관 때문인 경우가 가장 흔하다”고 설명했다. ■신경통
치통을 일으키는 신경통은 말초 신경통과 중추(삼차) 신경통 등 두 가지가 있다. 잇몸 아래나 턱 주변을 지나는 말초 신경에 통증이 있는 경우 인접한 치아가 아픈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 대개 통증이 종일 지속되고 한 쪽에서만 나타나는데 이때는 치과 치료를 받아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대신 신경통 약을 복용하거나 캡사이신 성분의 연고를 바르면 완화된다.
중추 신경통은 안면 감각과 통증을 관장하는 신경인 ‘삼차신경’에서 통증이 비롯되는 것이다. 주로 눈·코 주위나 아래 턱 부위에서 하루 수차례 예리한 전기적 통증이 오는데, 종종 대뇌가 이를 치통으로 오인하므로 환자는 치통을 느끼게 된다. 환자의 80% 정도는 약물 치료로 호전되며, 심하면 외과적 시술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근육통은 국소적이지만, 근막통증은 신체 어느 부위로나 통증이 옮아갈 수 있고, 실제 통증이 발생한 부위와 전혀 다른 정상적인 곳에서 통증(연관통)을 느낄 수도 있다.
특히 볼에 있는 깨무는 근육(교근)의 근막통증은 위·아래 어금니의 통증을 일으킬 수 있는데, 전문의들은 교근의 신경 전달과 어금니의 신경 전달이 중추에서 합쳐지면서, 대뇌가 교근에서 온 신호를 교근 근처에 있는 어금니에서 온 것으로 혼동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때는 통증클리닉 등을 찾아 이가 아닌 근육을 치료해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악물거나 자면서 이를 가는 사람이 많다. 이 경우 치아 마모도 심하고, 그 충격으로 치통이 생길 수 있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 나쁜 습관을 고쳐야 통증을 없앨 수 있다.
특히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를 악물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의식적으로 긴장을 풀어주고, 평상시에는 윗니와 아랫니를 너무 꽉 다물지 말고 2∼3㎜ 정도 간격을 유지하도록 한다. 자는 동안 이를 심하게 가는 경우에는 치과에서 만든 보호 장치(스프린트)를 착용하면 효과가 있다.
심리적인 원인도 치통의 원인이 된다. 주로 우울증이 있는 중년 여성이나 스트레스가 심한 직장인 또는 수험생에게 많이 나타난다. 통증의 양상이나 부위가 시간에 따라 변하고, 환자 자신도 통증을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때는 치과 대신 정신과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침샘에 돌이 생긴 경우에도 이가 아프다고 느낄 수 있다.
침샘의 관이 석회화된 물질에 의해 막힌 것이 타석증인데, 혀밑샘이나 턱밑샘에 돌이 생기면 아랫니가 아픈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특징은 레몬 주스 같은 신음식을 먹으면 통증이 아주 심하다는 것.
신맛을 느끼면 침샘에서 침이 많이 분비되는데 이렇게 침샘에 고인 침이 돌 때문에 막힌 관을 통해 잘 흘러나오지 못해 통증을 느끼게 된다.
축농증 등으로 생긴 고름이 상악동(위턱 위에 있는 빈 공간)에 고여 주변 치아 신경을 건드리게 되면 위 송곳니나 어금니가 아픈 것처럼 느껴진다.
머리를 감을 때처럼 주로 고개를 숙이거나 움직일 때 통증이 나타나는데, 이비인후과에서 엑스레이 진단으로 쉽게 확인되며, 상악동염 치료를 받으면 좋아진다.
중이염으로 인한 통증을 치통으로 착각하는 수도 있다. 중추가 귀에서 온 통증 신호를 귀에 가까운 치아에서 온 것으로 오인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치과 검진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고 귀 염증이 의심된다면 이비인후과를 찾을 필요가 있다.
안면 편두통이 치아나 턱의 통증으로 오인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메스껍거나 구토를 동반하는 치통을 느끼고, 치과 검진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편두통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같은 심장 질환이 있을 때 주로 왼쪽 치아나 아래턱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간혹 있다. 심장의 통증을 전달하는 미주 신경과 안면 통증을 전달하는 삼차신경이 중추에서 합쳐져 전달되면서 대뇌에서 혼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심장 발작의 전조 증상일 수 있으므로 심장병력이 있는 환자가 원인 모를 치통을 호소하면 빨리 응급실로 가서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구강 내 생긴 종양 또한 치통을 유발할 수 있다. 어금니나 혀 밑에 암이 있으면 그 주변 이가 아픈 것으로 느낄 수 있다. 구강 종양이 나타나는 혀나 점막을 자세히 검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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