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불이 가사를 벗어 던진 사연2
지족의 입에서 끈적끈적한 탄성이 터졌다.
황진이의 그 말이 왜 그토록 살갑게 들리는지
모를일이었다.
황진이는 지족의 품 안 깊숙히 파고들어
지족의 가사 고름을 풀고 있었다.
"여인이여,
당신의 업은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 있는것이오."
지족은 다시 눈을 흡뜨고 어두운 천정을쳐다보았다.
이 여인은 제 입으로 기생임을 밝히며
색에서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수십 년간이루어온 것은 무엇인가."
"스님. 부처님께서도 야수다라비와 꿈같은 밤을
나누었답니다.
그러니까 아들도 낳았겠지요.
어디그뿐이겠어요?
명색이 황태자였는데,
어떤 여인인들 겪어 보지 않으셨겠어요?
부처님이야 이미 온갖 종류의 색을
경험해 보시고나서 한 말씀이지만,
스님께서는 한번 겪어보시지도못하고
부처님이 저 놈이 적이다 하고 정해 놓으니까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나쁜 놈이라고생각하고 계신 것 아니옵니까.
스님 몸으로 직접겪으시고
정말 계율로 다스려야 할 것이라면
그때가서 다스리십시오.
저는 후회도 않고 미련도 안가집니다.
날이 새면 그저 떠날 뿐입니다."
"오, 어찌 내게 비수를 들이대는가."
허공, 오로지 뜨거운 여인의 숨결만이
허공을메우고 있었다.
지족의 가슴에 올려놓은 황진이의고운 손에서
피가 송긋송긋 뛰었다.
지족은 사십 년동안 닦아온 도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이미 네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대중에게설법중 경계하는 말을 할 때
네 이름을 들어 말한적도 있느니라."
"저도 중생입니다.
스님께서 저를 안아주시면
저또한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는
인연을 짓는것이겠지요.
아무리 누추한 집이라도
왕이 한번거처하면귀한 집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스님 같은대덕의 손길을 한번 받으면
소녀 같은 기생도불심(佛心)을 가질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지족은 황진이의 마음이
그렇게 열려 있지않음을 알았다.
황진이는 자신의 재주로
세상을비웃고 시험하는 것일 뿐이었다.
"무엇이 더러운지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여자란더러운 것입니까?"
이 말에는 한 가닥 진실이 배어 있었다.
"그렇구나. 여인이여
당신이 무엇 때문에괴로워하는지 알겠소.
그러나 각자의 몸이란 전생의업이오.
결코 뿌리칠 수 없는 것,
당신이몸부림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아닐세.
나 역시 남자일진대 어찌 여자를 더럽다하겠는가."
지족은 가슴에 놓인 황진이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가슴이 금시 터질 듯 부풀어올랐다.
고행을 하다 간간이 작은 깨우침을 얻을 때 느끼던 희열은
비교도되지 않을 만큼야릇한 흥분으로 온몸이 긴장되었다.
지족은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추스릴 수 없음을
알수 있었다.
무너져 보리라.
알 수 없는 이 욕망의 정체가무엇인지
무너져 보리라
설령 무(無)밖에 남는 것이없다 할지라도
내 발로 끝을 향해 걸어가 보리라.
교접술이란 태초에 인간의 몸과 함께 주어진것일까.
어디서 배운 것도 본 바도 없었다.
그런데도지족은 경험 많은 뭇사내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손을 놀렸다.
지족은 여자의 몸을 취하고 있었다.
쓰다듬다 보면
머물러 만져야 할 것이 저절로 솟아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뿌리는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당겨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황진이는 지족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받아들였다.
뭇사내가 스쳐간 몸이지만
더없이고결하고 순결한 처녀처럼
부끄러움과 자랑으로빛나고 있었다.
황진이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그의 몸은언제나 본능적으로 남자를 원했다.
그렇지만 지족은 역시 사십 년을 선만 닦아온
큰스님다웠다.
그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깊고 그윽한 손길로
작은 기쁨 하나도놓치지 않았다.
지족은 황진이를 쓸고 닦았다.
평생 단 한번의교접에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모두 내던질듯이.
지족은 서서히, 그리고 집요하게
희열의 극으로달려가고 있었다.
빗소리는 끈질기게 문풍지를 두드렸다.
아침이 밝았다.
지족은 황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황진이의 얼굴은 그대로 완전했다.
그렇게 지족의눈에서 살아 움직였다.
세상에서 더없이 평화롭고맑고 정결했다.
황진이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찍 일어났다.
지족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가
새벽송으로반야심경을 독송했다.
새벽송을 따라도는 동자승들이키들거렸다.
늦은 밤에 웬 여인이 방장에 들어가는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족은 아는 체도 하지않았다.
지족이 방장으로 돌아왔을 때
황진이는 이미 떠나고없었다.
이불도 어제 그 자리에 정갈하게 개켜져 있었다.
황진이가 다녀간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않았다.
"후-."
지족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족은 바랑을 꺼내 짐을 꾸렸다.
지족이 떠난 뒤 송도에는
지족에 관한 소문이무성하게 퍼졌다.
지족이 황진이 앞에 무릎꿇었다더라.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도력 깊은 지족선사가 무너졌을 리 없다.
아니다. 그때 충격을 받고절을 떠났다.
그게 아니다, 파계한 스승을 수좌들이 내쫓았다.
아니다, 황진이를 찾아나선 것이다.
소문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가 속절없이 스러졌다.
김치에 나물 한 가지뿐인 단촐한 식사가 끝나자
부산하게 밖으로 나간 지족은 술상을 차려왔다.
"웬 술입니까?"
"허허. 일이 워낙 고돼서 입에 대기 시작했소.
지금은 꽤 늘었습니다."
술이 한 순배 돌았다.
"화담 선생님도 한 잔 드시지요."
지족이 화담에게 술잔을 건네었다.
"아니오. 난 술은 안 할라오."
"저, 선생님은 아무것도 잡숫지 않습니다.
스님께서한잔 더 하십시오."
지함이 얼른 술잔을 잡아 지족에게 권했다.
박지화와 지함은 황진이와 지족의 일을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선사께서 천불천탑을 쌓고 계실 줄이야,
정말뜻밖이외다."
"아니올시다. 내가 일으킨 일이 아니올시다.
내가이곳에 들렀을 때 그분은 이미 세상을 뜨고 없었소.
소승도 소문이야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터,
우연히들렀다가 절을 지키는 이도 없이
비바람에 스러져가고 있길래
소승이 뒤를 이었을 뿐이지요."
"처음에 쌓던 분은 돌아가셨군요."
"글쎄요. 그렇다고 하는 말도 있고,
중도에 어디로 가셨다는 말도 있고…"
박지화는 지족의 얘기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황진이 얘기를 꺼내고 싶어 하는게 역력했지만
너무도담담한 지족의 태도에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 저 불사(佛事)는 언제나 끝나게 됩니까?"
"그분이 구백불 구백탑을 조성했으니
제 몫은 백불백탑입니다.
난 이미 기력이 쇠해가고 있소.
여생동안 끝을 낼 수 있을런지 모르겠소이다.
우둔한머리로 금생 성불(成佛)은 이미 때를 놓쳤으니
내생인연이나 지어놓고 떠날 생각입니다."
"선사께서 그처럼 불사에 노심초사하니
반드시이루어내시겠지요.
설령 못하신들 또 어떻습니까?
누군가 선사의 뒤를 잇겠지요.
그런데 구백불구백탑이나 쌓은 분은 누구시길래
저런 엄청난 불사를일으켰답니까?"
화담이 계속 말꼬리를 이어갔다.
"가난한 농사꾼이었답니다.
땅만 파서 먹고 사는무지렁이 백성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해 겨울
이운주사 뒷산에 땔나무를 베러 왔었지요.
그때 미륵의 현신(顯身)을 만났답니다.
미륵이 지금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불상을 툭 던져놓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내 이미 신라 적에 이 땅에 다녀갔다.
그렇지만 불법을 받을 중생이 없어
헛수고만 하고 돌아갔느니라.
여태껏 내가 어떤모습으로 세상에 나가야 할지생각만 하다가
하도답답해서 내려왔다.
그런데 자네 뜻이 금강 같고,
끈기가 강물 같아서 내 맡길 일이 하나 떠올랐다.'"
"미륵이 나타나셨다… 거 참 신기한 일이로군요."
"미륵이야 이미 여러 차례 세상에 났었지요."
"그래요?"
"여러 모습으로 여러 세상에 나셨지요.
하지만지혜를 지키려는 중생의 힘이 너무 약했지요.
미륵을알아보기는커녕
때려서 내쫓거나 죽이려고 덤벼들기나하더랍니다.
그래서 나무꾼에게 나타나 천불천탑을쌓으라고 했지요
미륵이 세상에 나오기를 바라는
중생의 염원을 모으라 한 것이지요.
석가의 도수(度數)가 시작되어야 할 때인데
아직미륵의 시대도 열지 못했으니 미륵의 마음이 급하셨던게죠.
미륵이 오지 못하면 석가의 시대도 없고
중생은도탄에 빠지고 업장은 더욱 두터워져
극락 정토의꿈도 꾸지 못할 테니까요."
"그래서 자꾸 선비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건지…"
박지화가 혀를 찼다.
"그래서 그 나무꾼이 천불천탑을 쌓기 시작했군요.
벌써 선천(先天), 후천(後天)이 얘기되고 있었군요."
화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필이면 미륵은 왜 무지렁이 농사꾼을 골라
현신하셨을까요?"
지함의 물음에 지족은 빙긋 웃음을 머금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미륵의 현신을 바라는 중생의마음을 모으는 일인데
무지렁이 농사꾼만큼 적격이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절밥을 먹어보았습니다만
중생의 마음을 제 마음처럼 헤아리는 스님들이
많지않지요.
중생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준비하라는
미륵의 깊은 자비 아니겠습니까?"
지함은 그제사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법당에 놓인 미륵 불상이
그래서그렇게 중생과 같은 고뇌에 잠겨 있는 거로군요
벌써저 먼 신라적부터."
"그럴 테지요. 그 미륵불이 바로 현신하신 미륵이
농사꾼에게 던져준 불상이랍니다.
선사는 미륵이현신한 터에 법당을 짓고
천불천탑을 쌓기시작했지요.
언젠가 미륵이 오실 날을 위해서말입니다."
토정은 사화가 끊일 새 없는 조정을 보고
분기를토출하던 것이 갑자기 부끄러웠다.
벌써 천년 전에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미륵이든, 석공이든 그네들은 이미 중생에대한 사랑이
그렇게 깊었던 것이다.
그것이었다.
화담이 이곳 운주사로 지함을 데려온뜻은.
"그런데 저, 선사께서 송악사를 떠나신 후
들리는말이 하도 여럿이라서 도무지…"
박지화였다.
박지화가 잠시 말이 끊긴 틈을 타
지족에게번개같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천불천탑 얘기보다
지족과 황진이에 얽힌 소문에관심이 쏠려 있었던것이다.
지함도 화담도 궁금한 얘기이긴 했다.
그렇지만 지족의 묵은 상처를 건드릴까 싶어 모르는체 했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어떻게든 알고 지나야
발을 뻗고 잠을 자는 박지화가 그만
눈치없이물어버린 것이었다.
지함은 자못 긴장하면서도 호기심을 어쩌지 못하고
지족을 응시했다.
"허허. 오늘 아무래도 못된 손님을 치르게 된 것같습니다.
기다리시지요.
과실이란 저절로 익어떨어지게 마련이고
꽃도 시들면 지게 마련이랍니다."
지족은 술을 제법 능숙하게 들이키고는
손가락으로김치 한 조각을 집어들었다.
"무엇을 알고 싶으신 게요?
설마 고명한 화담선생의 제자께서
세속 사람들의 호기심으로 묻는 것은아닐 테지요."
곧바로 치고 들어오는 말에 박지화의 얼굴이시뻘개졌다.
재미 섞인 호기심이 없지 않았던지함까지도 얼굴이 붉어졌다
화담이 말 한마디잘못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박지화를 보며 빙그레웃었다.
"세속 사람들의 입방아가 아마 대부분 옳을 것이오.
자, 무엇을 더 알고 싶으시오?"
박지화는 여전히 상기된 얼굴로 말을 꺼내지못했다.
"사람의 호기심이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오.
내 말한마디에 중죄인처럼 쩔쩔맬 것 없소.
설령 그대가단순한 호기심으로 물었다 해도.
호기심이란 무엇이요?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욕망이아니겠소?
내 그대에게 자신을 의심할 기회를 잠시 준것뿐이오."
지함은 술 몇 잔에 조금 흐트러진 자세를바로잡았다.
저녁 어스름을 등지고 나타났던 지족의
그림자만 보고도 손을 모았던 것처럼.
"그렇소. 내 입으로는 누누히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되뇌어 왔지요.
그러나 막상 색을 눈앞에 대하고 나니
사십 년 수도가그야말로 공(空)이었소.
그 아이가 내게 말합디다.
당신은 부처가 누군가를 가리켜 도적이라 하면,
알아보지도 않고 그에게 손가락질부터 하겠느냐고.
그것이 옳고 그른지 당신 발로 직접 걸어보라고합디다.
내가 사십 년 수도를 통해서도 깨닫지 못한것을
한낱 기녀인 그 아이는 알고 있었던 게지요.
내가 육체의 욕망 때문에만 무릎을 꿇었던 것은아니오.
그쯤이야 뿌리칠 수도 있었소.
그 아이의말이 내 가슴을 찌릅디다.
부처가 색즉시공이라고 했을 때는
나처럼 색 앞에눈을 감으라는 뜻은 아니었을 게요.
색을 색으로 볼줄 아는 것도 진리가 아니겠소.
색을 색으로이겨보려고 했던 거지요.
그러나 남은 건 외려 공입디다.
나는 그날 그 아이를 통해서
공즉시색색즉시공의 의미를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