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성당 제25기 예비신자 교리반 부산오륜대 순교자 성지 순례기
2017년 4월 8일은 4월 15일 부활절 전야에 세례를 받는 25기 예비자들과 함께 부산 '오륜대 순교자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 예비자 15명 봉사자 6명 총 21명이 함께 했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출발했다. 나는 제대로 봉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예비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보다 훨씬 축복받은 하루였다.
먼저 순교자 묘지에 가서 기도를 드렸다.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 때 순교하신 이정식 요한과 양재현 마르티노는 최근 한국에서 추진하는 제2차 시복시성운동인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에 포함되어 시복이 되어 복자품에 오른 분들이었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된 것이다. 그 이외에도 여섯 분의 순교자들이 함께 묻혀 있었다. 또 성당 제대 뒤에는 한국 순교자 103위 가운데 26위의 유해 일부를 모셔 놓았다고 했다.
평일미사인데도 신부님 세 분께서 미사를 주제하셨다. 오륜대 순교자 성지를 관장하시는 전수홍 안드레아 신부님과 피정을 오신 부산교구 가톨릭 문인협회 지도신부님과 특히 가톨릭방송국에 관여하신다는 신부님과 함께 온 성가대원들이 아름다운 성가로 미사를 거룩하게 했다.
점심은 꿀맛이었다. 로사리아 회장님을 비롯한 자매 봉사자님들이 준비하신 도시락은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입에 딱 맞았다. 더욱이나 벚꽃이 만개한 꽃그늘에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먹는 밥이라 더욱 좋았다. 내가 밥을 한 그릇 더 퍼 오니 정치명 스테파노 대자(代子)가 한마디 하신다.
“교장 선생님! 밥을 더 먹는 모습은 처음 보내요.”
그 말 뒤에 내가 또 한마디 거들었다.
“앞으로는 교장이라 부르지 말고 ‘대부님!’이라 부르든지 아니면 세바스찬 형님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 스테파노는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단다.
점심을 먹고 ‘순교자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이 박물관도 천주교 신자라면 꼭 한 번 순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설하시는 자매님도 약 40분에 걸쳐 조근 조근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잘 하셨다. 이 박물관도 차근차근 둘러보려면 두어 시간은 필요해 보였다. 시간이 쫓겨 허겁지겁 박물관을 나오니, 안내를 하시는 할머니 수녀님께서 ‘천천히 더 둘러보시지요.’ 라며 친근한 미소를 보내신다. 그 동안 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이곳에 정착하여 약 50년을 관리해 왔단다. 그러다가 부산교구에 복자(福者)품이 탄생하면서 그 관리권이 부산교구로 넘어왔단다. 2013년 10월 교구 사제로 전수홍 신부님이 성지에 부임해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계셨다.
4월인데도 박물관 안은 서늘했다. 언 몸을 따뜻한 봄 햇살에 녹여 신부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실도 역시 서늘했다. 오래된 강의실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기에 50년 세월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 모든 것을 새롭게 개발하여 편안한 피정의 휴식처가 되게 하려는 신부님의 어깨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신부님의 특강 내용을 대략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종교는 계시종교와 자연종교가 있다. 계시종교는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 시작된 종교이고, 자연종교는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시작된 종교이다. 계시종교의 대표는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이다. 자연종교는 불교와 무속 등이다.
* 그리스도교(기독교)는 로만가톨릭과 동방정교회, 프로테스탄트라고 하는 개신교, 영국에서 비롯된 성공회가 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교의 음역이기 때문에 개신교의 고유 명칭이 아니다.
* 1054년에 분파된 동방정교회는 동로마 제국이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자 황제와 로마에 있는 교황이 분리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거리가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교황보다 황제가 전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교황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틈을 타서 새로운 형태의 그리스도교가 발생된 것이다. 우리 천주교와 다른 점은 신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미사를 보고, 미사 시간이 세 시간 가량 되고, 교구 신부는 장가를 갈 수 있고, 성체는 이스트를 넣어 부풀린 빵을 사용하는 것 등이다. 그리스와 러시아와 동유럽 여러 나라에 분포되어 있다.
* 16세기 루터에 의해 시작된 프로테스탄트는 ‘오직 성경, 오직 신앙, 오직 은총’이라는 기본 원리를 주장하며 형성된 그리스도 공동체이다. 프로테스탄트는 ‘대항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루터는 처음에는 가톨릭의 훌륭한 신부였다.
‘프로테스탄트’라는 단어는 1529년 독일 스파이어 회의의 판결에서 루터가 로마 가톨릭 세력에 저항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11세기 이후 로마가톨릭의 내부가 부패하는 모습을 보였다. 1122년의 보름스 협약을 통해 교황이 성직자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면서 교황의 권위가 절정에 달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중세인의 생활,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하였다. 16세기 초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의 개축을 위해 면벌부(고해성사 이후에도 남아 있는 잠벌을 면제해 주는 증서)를 판매하기에 이르렀는데, 이에 대하여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였다. 칼뱅도 성서 중심주의와 예정설을 주장하며 스위스에서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는 교파가 몇 개나 되는지 아마 하느님도 모를 것이다.
* 성공회(聖公會)는 16세기 중엽 영국 왕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그녀의 시종이었던 앤 볼린과 재혼하려는데 이혼을 금지하는 천주교 교회법에 걸리기에 천주교에서 빠져나가 만든 교회이다. 이 캐서린 왕비도 애초에는 헨리 8세의 형수였다. 영국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며 그래서 영국국교회라고도 한다. 성공회에서도 천주교처럼 성체도 모시고 신부라는 용어도 쓰지만 천주교에서는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신부는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한다.
언젠가 부산 용두산 공원을 지나는데 로만 칼라를 한 신부가 어린 아기를 목마 태우고, 부인과 함께 다정하게 외출하는 모습이 놀랍고도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 가톨릭의 신앙의 원천은 성경(聖經)과 성전(聖傳)이다. 개신교는 이 두 번째 성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 신부와 수녀가 독신으로 사는 것, 신기(神氣)가 없는 형상인 예수님을 비롯한 성인들의 형상을 만들어 세웠지만 우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 일곱 가지 성사 등이 천주교에서 내려오는 성전(거룩한 전통)이다.
* 가톨릭은 주교와 신부(부제 포함)와 평신도로 이루어져 있다. 수녀님도 엄밀히 말하면 평신도에 속한다. 추기경(樞機卿)은 주교 가운데 교황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 분을 지칭한다.
* 가톨릭교회의 시작은 성령강림절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이고, 승천하신 후 열흘째 되는 날이다.
* 종교는 부유해지면 타락하는 것이 정설이다. 재산만으로 따지면 아마도 스님들이 평균해서 가장 많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재산 때문에 한 번씩 이판사판으로 싸운다.
* 가톨릭교회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使徒)로부터 이어온 교회이다. 가톨릭은 보편적이라는 의미이다.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고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16대이다.
* 세례를 받았다고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매사에 감사하며 제대로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잘 살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비교에서 교만과 열등이 생긴다. 지금 세례를 받지만 회의가 생기고 또 뜻하지 않은 상처로 교회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세 번을 배신한 베드로처럼 다시 햇빛 속으로 걸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 여호아가 아닌 야훼가 바른 표현이다. 여호아를 쓰는 '여호아의 증인'은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이다. 미국의 몰몬교도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 전수홍 신부님은 일반대학을 졸업하시고 신학대학을 가셨는데 신학대학을 간 이후에도 꼬박 18년을 공부를 하셨다고 했다. 그 중 8년은 로마에서 공부를 했는데 공부를 마칠 즈음 동기들과 약 60일간 전 유럽 지역을 돌아다니며 졸업 여행을 하셨단다. 그 가운데 프라하에 들렀을 때 미사를 드리자니 전병이 다 떨어졌다. 그 쪽 성당에 들르니 로마의 같은 대학 출신인 할배 신부님이 계시더란다. 신부 증서를 보여드리고 전후 사정을 말씀 드리니, 다짜고짜 미사를 한 번 봉헌해 달라는 부탁을 하시더란다. 그래서 '내가 라틴어, 이태리어, 프랑스어, 영어는 배웠어도 슬라브어는 몰라서 어떻게 하느냐?'고 곤란해 하니 '무엇이 걱정이냐? 당신의 한국말로 해도 모두 알아듣는다.'는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미사 전례가 가톨릭은 전세계가 공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단다. 그래서 그 날은 라틴어로 미사를 봉헌하니 모든 신자들이 너무나 좋아하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