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공의 이름으로 재산권 침해
프랑스의 교육철학자 자크 마리탱은 “인간 본성의 가장 원초적인 목적은 존재를 보존하는 공동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모든 인간이 바라는 ‘공동선’은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선’이 윤리적으로 선한 것이며, 인간의 발전에 바탕이 되는 것이다.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도 “법은 공동선을 목적으로 공포된 이성의 질서”라고 밝혔듯이 ‘공동선’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일반적 조건인 셈이다.
하지만 ‘공공선(公共善)’은 ‘공동선(公同善)’과 다르게 구분된다. 영어로도 ‘공공선’은 ‘Public Good’으로 표기하고, ‘공동선’은 ‘Common Good’으로 표기된다. ‘공공선’이 ‘공동선’의 아류라고 할 수는 있지만 엄격히 따지만 ‘공공선’은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일을 하면서 사적 선 또는 사적 이익을 도외시하는 측면이 있다. 다시말해 공익을 위한다며 개인의 이익을 침해할 수도 있는 것인데, 최근 대표적인 사례가 ‘공공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개인의 사유재산권 침해다.
종로구 숭인2동 1169번지 일대는 지난 2021년 3월, 공공 재개발 후보 예정지로 선정되어 지난 2년간 공공 재개발 지구 지정을 위한 작업이 전개됐다. ‘주민봉사단’이라는 단체가 구성되어 공공 재개발 지구 지정을 받기 위한 주민 67%의 동의율을 얻기 위해 지난 2년간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는 가운데 동네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사실 ‘주민봉사단’이라는 이름도 제도권에서는 생소한 편이다. 다시말해 공적으로 인정되는 단체도 아닌 셈이다. 본래 ‘주민대표협의체’를 구성했어야 하지만 주민 참여 정족수가 미달되는 등 여타 사정으로 급조한 것이 ‘주민봉사단’이다. ‘주민봉사단’은 지난 2년간 치열한 주민 포섭에 나섰다. 공공 재개발 사업 추진을 위한 지구 지정을 받기 위해 일반 주민을 상대로 온갖 감언이설로 주민을 회유하기도 했다.
여기서 공공 재개발 사업의 시행자 격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지원 속에 ‘주민봉사단’이 그동안 금품 관련, 여러 편법을 동원하고 종로구청 공공개발팀과 밀착하여 허위 전수조사 등을 벌인 부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더라도 향후 공공 재개발 사업에 대한 지역 주민의 우려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지역 주민의 개인 재산권 침해다. 공공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개인의 사유재산권 침해는 인간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공공의 폭거로 보인다. 주민의 재산권 침해 배경은 공공 재개발로 원주민의 아파트 입주율이 매우 저조하다는 전망 때문이다. 현재 LH 측이 제안하고 있는 공공 재개발의 경우 평균 자산평가대로 한다고 해도 30평 이상의 토지를 보유한 주민은 겨우 간신히 아파트 입주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 이하 25평 이하의 토지주들은 아파트 입주가 불가능한 양태다.
물론 땅이 작은 주민은 아파트 입주 분담금을 내면 입주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곳 주민들의 형편상 입주 분담금을 내고 아파트를 차지할 수 있는 주민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공공 재개발 사업을 벌인다고 해도 원주민 입주는 30%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보일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공공 재개발인가? 이는 ‘공동선’이 아니라 ‘공공선’의 맹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형국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공공 재개발 구역 지정이 돼도 자산평가 청산 시 자산가치 저평가가 큰 걸림돌로 남아 있다. 전국적으로 공공 재개발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데, 가까운 예로 종로4가 세운4구역 재개발의 경우를 감안 해도 충분히 예상된다. 세운4구역도 SH(서울도시주택공사)라는 공기업이 시행을 하고 있지만 10년이 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아직도 시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SH공사는 지주들 이익보다도 개발비용과 공사비 회수에만 치중한 가운데 오랜 세월 지연된 금융 이자만 크게 늘어나 지주들이 손실을 모두 끌어안게 되어 극단적 선택도 나타난 경우다.
숭인2동 1169번지 공공 재개발도 마찬가지다. 구역 지정이 돼도 자산가치 저평가로 아파트 입주가 불가능해지면 공공 재개발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송이 발생되고 그로인해 사업이 지연되면서 사업경비만 늘어 날것이 뻔하다. 주민은 공공 재개발 지구로 묶여 부동산 매매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심각한 재산권 침해가 발생될 수도 있다.
주민의 재산권은 근대 자연권 사상에 따른 기본권에 해당된다.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권을 추구하면서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한 것이고, 그러한 사조가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인 셈이다. 더군다나 오늘날에는 개인의 재산권이 곧 생명권처럼 인식하는 시대다. 재산 때문에 생기는 숱한 생명침해와 극단적 자해 사건이 바로 그 반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공동선’이 아닌 ‘공공선’을 이유로 공익을 앞세운 공공 재개발이 무리하게 진행되면 많은 영세 주민들의 재산권은 무참히 침탈될 수도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가 그래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상으로 치부되는 판에 다수 주민에게 불행을 안기는 공공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공공 재개발 사업은 철저하게 검증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