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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 구간 : 농바우 마을-밀재-고모치(재)-조항산-갓바위-청화산-정국기원단-늘재(270/370m)-장암2리 마을회관(늘티 마트)
▣ 일시 및 날씨 : 2015. 05. 31.(일), 맑음/미풍, 16~ 29도, 능선 체감온도 26도
▣ 농바우 민박집(m, 번 지방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619-5; 여기서 민박함-15-4-25일 구간 땜빵 위해
▣ 늘재(370/380m, 49/32번 국도): 충북 괴산군 경유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462번)와 화북면 장암리 경계-날머리
▣ 택시: 장암2리 마을회관/늘티 마트까지 걸어 가 탈수 해소를 위해 음료수 사 먹고, 씻은 후 화서택시 불러 화서(화령)터미널에 도착, 석식 후 20:00 시외버스로 청주 도착, 21:45 청주 - 서울남부터미널 시외버스 승차
◈ 주요 구간 도착 시간
▶ 농바우 민박집 출발-07:18, 늘재 도착-17:45, 장암2리 늘티마트-18:40, 화령터미널 도착-19:16, 청주터미널-21:38, 서울남부터미널- 21:07, 집 도착-23:59, 덕환이가 터미널까지 태우러 옴(맥버거 4 Sets 사가지 옴)
백두대간 속리산 구간 남서진 : 농바우-밀재(662/680m)-849봉-854봉-사매봉(950m)-고모치(재)-조항산(951m)-갓바위(769m)-청화산(970/984m)-정국기원단(일본어야스쿠니...)-늘재(380m)-장암 2리 / 늘티마트 구간 코스 거리 : 20.9kmkm 접속구간 7.5km 포함
◆ 출발 :
◆ 동행 : 막둥이, 아내, 나
◆ 막둥이와 우리의 도전: 그랜드 미데아 대장님의 도움을 받아 황장산 구간 통과하고, 송백 들국화 수석대장, 이선두대장 및 귀요미 전담 도움미 대원님과 참여 대원님들의 도움과 격려 속에 늘재-문장대, 버리미기재-대야산 구간 종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맘 전합니다. 그 기적은 도움 주신 분들의 정성과 땀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대야산 구간 종주 마친 다음 날 해외여행 때문에 4. 25.(토) 빠졌던 늘재-청화산-조항산-농바위 구간의 난코스 구간을 3식구가 도전하여 힘들게 완주하였다.
- 막둥이가 조항산에서 청화산으로 가는 2번째 암봉을 올라 단애가 보이는 바위 귀퉁이를 돌아 가는 길에서 주저 앉아 버린다. 그 공간이 너무 좁아 3 식구가 앉을 자리도 마당하지 않았다. 아마 어제 대야산 직벽을 오르면서 80~100m 가까운 단애를 보면서 큰 공포를 넘어 "외상후 장애"로 남았었나 보다. 떨고 있는 막둥이 배낭을 벗겨 하네스를 꺼내고, 조립하여 그 좁은 암봉 정상 근처에서 입혔는데 제 모양이 아니다. 긴장된 상태여서 겨우 3번만에 제대로 입힌 후 내 배낭에서 로프를 꺼내어 막둥이 하네스에 묶고 나서 나의 배낭에 부착한 자일에 로프를 묶고, 막둥이 배낭까지 들고 그 단애를 돌아 정상에 오른 후 막둥이 배낭과 내 배낭을 내려 놓은 후 로프를 가지고 단애를 건너야 하는 지점에 와 왼 손엔 바위에 둘러 친 로프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막둥이 손을 잡아 그 구간을 통과했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거리에 많은 암벽을 오르내려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아 맘이 무겁기 그지 없었다.
- 하지만 하네스를 차고 난 후부터 막둥이의 걷는 속도와 암벽 오르고 내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 우리가 따라 갈 수 없었다. 무릎이 아픈 나나 피로감이 누적된 아내나 따라 갈 수 없기에 앞서 가다 막둥이가 길을 잃거나 다칠까봐 천천히 가라고 아내가 아무리 소리 쳐도 소용이 없다. 마냔 달려 가다 안 보이면 빨리 오라고 소리친다. 들국화대장, 이대장 따라 선두를 가다 보니 엄청나게 기량이 향상된 것 같다. 특히 단애가 옆으로 보이지 않는 (조항산-청화산 구간의) 수 많은 10~20m 수직 암벽을 오르고 내릴 때 거침이 없었다. 더 놀란 것은 조항산에서 늘재로 내릴 때 바위와 마사토로 이루어진 급경사 구간에서는 감히 우리가 따라갈 수도 없을 만큼 빨리 달린다.
- 종주산행 3년이 안되는 기간에 조금 급한 경사가 있는 육산에서도 울고 내려 오지 못하던 막둥이가 백두대간 3대 난코스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기적에 가까운 산행 실력과 속도를 보이고 있다. 어떤 것이나 10 ~ 20년을 가르쳐도 쉽게 습득할 수 없는 우리 막둥이가 7정맥 종주 마치고, 백두대간을 산악회 따라 하면서부터 그 실력과 역량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발리 발전하고 있다. 이 것은 신의 축복이거나 기적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발달장애 2급인 우리 막둥이에게 이를 계기로 다른 분야에서도 그와 같은 진전을 이루길 기도하고 또 그리 될 것이라 믿는다.
- 농바우 마을 밀재 조항산 청화산 늘재 구간을 3식구가 때빵 산행을 하는 동안 막둥이를 오롯이 지켜 보면서 맘 고생도 많았지만 너무나 놀랍고 또 고맙다. 4계절 쉬지 않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산길을 찾아 한 구간 한 구간 이어 하나의 정맥을 마친 후 또 다른 정맥에 도전하여 7정맥 종주를 마치고, 드디어 기나긴 대간 종주에 나설 때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안고 도전에 임했었는데... 이젠 거의 백두대간 3분의 2 이상을 걸었다.
- 저녁을 먹고 차를 탈 때부터 통증이 심해지고, 걷기가 힘이 든다. 왼발 발목 때문에 계단 등을 오르고 내리거나 차를 타고 내릴 때 손으로 가이드 같은 것을 잡니 않고서는 걷는데 제약을 느낄 정도였다. 집에 와 샤워 후 01:00시 넘어 잠자리에 든 후 다음 날(월) 일어 나니 발목이 퉁퉁 부어 있고, 통증과 걷기다 더 힘이 든다. 회사에 와 앉아서 일을 하니 왼다리가 마비되는 것 같다.
- 점심을 먹고 다리 근육도 풀기 위해 천천히 걸어 1km 이상 떨어진 신흥시장 인근 경희한의원에가 찜질, 물리치료, 부항에 이어 침을 맞고 인근 약국에 들러 제통환 46포(@ 500 = 23,000)를 사가지고 회사에 와 잔무처리하고 퇴근하였다. 역시 통증이 심하고, 걷기가 힘든다. 다음 날 오후부터 통증이 조금씩 풀렸다. 수요일(6. 3.일)엔 Save Zone 건너편 빌딩 5층에 있는 도원한의원에 가 촉진 후 외쪽 발목과 오른쪽 무릎 치료를 위해 침, 뜸 치료를 받고, 소화제와 근육, 관절, 뼈 등에 좋은 환약 1병씩을 사가지고 회사에 와 잔무처리 후 내 생일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저녁을 같이하기 위해 퇴근하였다. 수지 최고손짜장집에서 5식구 모드 모여 탕수육, 누룽지탕, 짜장, 볶음밥, 짬뽕 등을 먹고 집에 와 약을 먹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빨리 치유되어 6. 6.(토) 죽령-도솔봉-단양온천 대간길을 걷기를 소망하면서~
1) 화령터미널 앞 불고기집 : 청주 가는 차가 20:00여서 19:19분에 불고기 식당에 들어 가 가장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문하니 냉면이란다.
- 조식 및 숙박비 : 민박 60,000에 포함
- 기타 : 중식은 어제 송백 회갑잔치 후 싼 밥과 김치로 대신
- 석식 : 3 @ 6,000 = 18,000 + 1,000 = 19,000
- 택시비 : 30,000(장암2리 - 화성), 화서-청주 : 19,000원, 청주-서울남부터미널 : 20,700원
- 늘티마트에서 탈수 해소용 음료수 4개 : 8,000원, 막둥이 청주터미널 커피 1 @ 4,000 = 4,000 ; 합계 12,000
- 민박집 : 마즙 2박스 @ 30,000 = 60,000 + 택배비 5,000 = 65,000
2) 산행 특징 :
- 조항산에서 청화산 구간은 칼바위 능선과 거의 암벽으로 이어진 4.2km 구간이라 시간과 체력 소모가 많았다.
- 갓바위 지나 암릉 내릴 때 작은 돌을 왼발로 밟았는데 발목이 접질러 진다. 시큰한 소리와 동시에 느낌이 그간 접질러 진것과 다른 통증과 아픔을 주어 쉬어 가자고 소리 질러 앞 서가는 아내와 막둥이를 세우려다가 조금 걸어 보니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걸어 가다가 조금 넒은 곳이 나와 깔판 깔고 쉬면서 점심을 먹은 후 진통제 먹고 출발하였다.
- 그 후에도 여러개의 암봉을 오르 내려 청화산에 도착하여 인증사진 찍고 늘재로 내리는 2.8km 구간이 직벽에 가까운데다 바위와 마사토로 되어 있어 힘이 들었다. 특히 오른쪽 무릎 치료 중인데다 왼족 발목까지 접질러진 상태에서 지나 온 암벽 구간도 무리가 되었는데 이런 급경사 내리막은 더욱 고통스럽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 월요일 아침이 되니 발목이 붓고, 통증이 엄청 심해 쩔둑 거리며 회사에 출근하여 한의원에 가 치료를 받았다.
▼ 주요장소, 도착 시각 등을 정리한 산행기록표이다. 우리 3가족+2인 기록이고, 선두대장은 ?분 빨리 내렸다.
주요장소 | 도착시각 | 해발고도(m) | 시작점부터 거리 | 비 고 |
삼송리 농바우민박(32번에서 분기함) | 07:16, 07:17 | m | km | 누적거리/시간 |
중대봉 분기점 밀재(치) | 07:52 09:12 | m 662/680m | km 5.5km | km /0:35분 5.5km/1:55분 |
사매봉(마귀할멈 통시바위 분기점) | : | 950m | km | km/분 |
고모재(치) | 11:03 | m | 3.4km | 8.9km/3:46분 |
조항산 | 12:42 | 951/953.6m | 1.4km | 10.3km/5:25분 |
갓바위 청화산3거리 청화산 정국기원단 늘재 장암2리 마을회관 (늘티 마트) | 13:51 16:07 16:19 17:17 17:45 18:40
| 769m m 970/984m m 380m m
| 1.2km 3.4km 0.2km km 2.8km 2km
| 11.5km/3:22분 14.9km/7:50분 15.1km/8:02분 km/10:00분 17.9km/10:28분 19.9km/11: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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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17 인증 사진, 07:18분 출발: 농바우 민박집 명함 및 사진 – 2015. 5. 30.(토) 14:00까지 이슬 비, 그 후 갬
▼ 07:52 중대봉과 밀재 갈림길에 도착하여 인증하고, 마즙도 마시며 배낭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 하는데 막둥이는 힘이 드는지 트쟁이도 하고 또 시무룩 하다. 아내 뒤로 오르면 중대봉을 거쳐 대야산으로 가는 길이다. 중대봉의 대 슬랩 구간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로 유명하다는데~~ 언제쯤 와 볼꼬?
▼ 07:52 중대봉 갈림길 이정표도 담아 보고.... 얼마나 느긋하게 걷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민박집에서 여기까지 34분이나 결렸으니...
▼ 09:12 밀재에 도착하여 막둥이를 기다리는 아내와 주변 풍경도 담아 보고.... ㅎ 3번을 쉬면서 오다 보니 1:54이나 걸렸네~ 최소 24분 이상은 쉬어서 왔군~
▼ 밀재에서 고모치(재)로 가는 길은 여러개의 암봉을 넘어야 하는데... 그 중 하나인 바위를 배경으로 선 막둥이와 아내도 담아 보고...
▼ 밀재에서 고모치(재)로 가는 길은 여러개의 암봉을 넘어야 하는데... 또 다른 바위 위에서 만세를 부를는 아내도 담아 보고...
▼ 밀재에서 고모치(재)로 가는 길에 임 맞춤 하는 엄마 곰바위와 세끼 곰바위도 담아 보고...
▼ 사매봉(950m) 정상 오르기 직전의 전망암에서 고모치를 넘어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담아 보고...
▼ 사매봉(950m) 정상 오르기 직전의 전망암에서 바라 본 사매봉 정상의 암봉 위로 나무들이 덮여 있네...
▼ 11:03 드디어 고모치에 도착하여 안내판도 담아 보고... 어제 송백종주대는 이 곳에서 농바우로 내렸었지~
▼ 고모치(재) 성황당과 농바우로 가는 길을 배경으로 선 막둥이와 아내도 담아 보고... 여기서 깔판을 깔고 푹 쉬어서 간다. 마즙, 떡, 과일 등을 먹어 무게를 줄이기 위해...
▼ 고모치(재)에서 고모샘으로 물을 뜨러 가는 아내...안내판을 잘 못 보는 바람에 괴산군 농바우쪽으로 가는 바람에 500를 내려 갔다 다시 올라 오는 알바를.... 결국 물은 반대편으로 내려가 내가 떠 왔었지~ 고모샘은 문경쪽 에 있음
▼ 고모치(재)에서 쉴 때 막둥이가 속이 좋지 않은지 걱걱 거려 걱정 하면서 급경사를 올라 만나는 이정표도 담아 보고...
▼ 급경사를 올라 안부를 살짝 지나 조항산 정상 직전에 뒤 돌아 담아 본 지나 온 대간 길; 좌측 바로 앞 뾰족 봉이 고모치에서 된비알로 치고 올라 온 봉우리이고, 그 봉우리에서 우틀하여 고모재를 거쳐 사진 우측의 사매봉으로 이어진 대간길은 다시 사매봉에서 좌틀하여 854봉과 849봉으로 이어진다. 849봉에서 우틀하여 밀재를 거쳐 대야산으로 뻗어 가는 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849봉 뒤에 우뚝 솟은 대야봉(큰 검 또는 칼봉), 대야봉 좌측의 중대봉이 멋진 육체미를 자랑한다. 중대봉 뒤 좌측으로는 군자산이, 사매봉 뒤로 멀리 희양산 등이 조망된다.
▼ 고모치(재)에서 조항산 정상으로 오르면서 정상 직전의 암릉을 지나면서 담아 본 조항(새 목아지)산 뒤의 직벽도 담아 보고...정상석은 저 암봉 위에 서 있다.
▼ 12:42/5:24분 걸어 조항산 정상(951m)에 올라 정상석 뒤에 선 막둥이와 아내도 담아 보고...막둥이는 속이 무척 안 좋은가 보다... 표정이 어둡다.
▼ 12:42/5:24분 걸어 조항산 정상(951m)에서 뒤 돌아 보니 마루금은 좌로 뻗어 뾰쪽봉에서 우틀하여 사매봉에 이르고, 거기서 좌틀하여 854봉을 거쳐 849봉에 도착하여 다시 우틀하여 밀재를 거쳐 대야산으로 이어 가는 모습니 한 폭에 담긴다. 사매봉과 대야산 중대봉 뒤로 다음 구간 가야할 대간의 주요산들과 봉우리들이 조망된다. 어제 부슬비 때문에 조망 없이 대야산을 지났는데.... 오늘 그 멋진 조망을 허락하여 주네~~~
▼ 12:42/5:24분 걸어 조항산 정상(951m)에서 뒤 돌아 매봉쪽을 담아 보니 사매봉 뒤 살짝 우측부터 장성봉, 구왕봉, 희양산, 이만봉, 주흘산 등이 한 폭에 담겼네~~~ 앞으로 가양할 대간길의 험난한 여정을 생각해 보면서...
▼ 12:42/5:24분 걸어 조항산 정상(951m)에서 청화산으로 가며선 넘어야할 암봉들도 담아 보고... 이 떄까지만 해도 4.2km가 대부분 암봉이라는 것을 알 지 못 했지 글구 막둥이가 대야산 넘은 후휴증으로 그리 힘들어 할지 상상도 못했었지...
▼ 조항산 정상(951m)에서 급경사를 내려 첫번째 암봉에 올라 V자를 하고 있는 막둥이와 아내도 담아 보고...막둥이는 아직도 속이 많이 안 좋은가 보다. 표정이 ~~
▼ 조항산 정상(951m) 지나 첫번째 암봉에서 뒤 돌아 본 대간길; 조항산 정상은 우측에 있어 짤려 있지만 대간길이"之"자로 이어져 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앞에 설명한 산들도 모두 한 폭에 담기는 멋진 조망처 ~~
▼ 조항산 정상(951m)에서 급경사 내려 도착한 첫번째 암봉에서 뒤 돌아 본 조항산과 막둥이 모습 ~~되게 체했난 보다...
▼ 첫번째 암봉에서 앞으로 가야할 대간길과 암봉도 담아 보고... ㅎ 앞의 암릉선을 어떻게 넘지? 이 때는 저 암릉 정상부 직전에 단애를 도는 지점에서 막둥이가 겁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주저 앉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지..."S"자로 뻗어 가는 대간길은 앞쪽 제일 높은 청화산으로 이어 지는 구나~~ 청화산 뒤 우측으로는 지나 구간 지나온 속리산 천왕봉부터 문장대를 거쳐 관음봉까지 장성처럼 우뚝 서 있네...
▼ 암봉 정상에서 V자 표시를 한 막둥이와 아내도 담아 보고... 이 때까지는 좋았었지~
▼ 막둥이에세 하네스를 비 좁은 암봉 정상 직전의 공간에서 입히고, 많은 시간을 들여 발판이 좁은 단애를 건넌 후 조심스럽게 내린 암봉도 담아 보고....가장 많은 시간과 고생을 했던 암봉의 모습 뒤로 조항산이 보이고~~ 2번째 큰 암봉을 넘은 후부터 늘재까지 막둥이는 하네스를 입고 걸었다. 심리적 안정감 때문인지 이 암릉 넘고, 갓바위재 전 안부에서 오바이트를 한 후 컨디션이 회복 되었는지 달리기 시작하였다. 따라 가기 힘들었지~~
▼ 2번째 암봉 정상에서 가야할 청화산 마루금도 담아 보고... 저 부드러운 옷 속에 그 많은 암릉과 암봉이 있을줄이야~~~ 좌측 뾰족한 암봉이 시루봉이고(오복동천 환종주 길에 속함) 우측 제일 높은 봉우리가 청화산이군...
▼ 방금 전 내려 온 암봉 우측(문경쪽) 인간세도 담아 보고... 저런 단애를 보면서 좁은 발판을 휘돌아 건너는 곳에서 막둥이는 주저 앉아 버렸구나~~ 아마 대야산 직벽 오르던 공포가 너무 강하게 남아 있었나 보다...
▼ 청화산으로 가면서 앞의 있는 암봉에 올라 뒤돌아 막둥이가 가장 고생산 그 암봉 전체를 담아 보고...정말 쉽지 않은 구간이구나~~~
▼ 13:51 갓바위(769m)에 표시기도 담아 보고...정말 고마습니다. 표시판 부착해 주신분~~~ 여기 도착전 안부에서 막둥이는 오바이트를 했었지~~~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었지.... 여기서 점심을 먹고 충분히 쉬어서 갔다. 금방 청화산 정상에 도착할 것이라 새악하고???
▼ 갓바위에서 청화산으로 가면서 뒤 돌아 본 조항산으로 달리는 마루금도 담아 보고... 저 속에 앞에 본 암릉을 감추고 있다니??? 길은 늘 "S"자
▼ 갓바위에서 청화산으로 가면서 만난 암벽을 오르기 전에 괴산 청천면 의상저수지도 담아 보고...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숲 이었는데 이런 암릉을 수도 없이 넘어야 청화산에 오를 수 있다니???
▼ 갓바위에서 청화산으로 가면서 만난 암벽을 올라 가야할 마루금을 담아 보니 앞으로도 저렇게 날카로운 암벽을 얼마나 더 넘어야 하지? 글구 막둥이가 잘 오르고 내릴지 걱정이 많았었는데.... 막둥이와 아내가 아니라 내가 이 곳 지나서부터 체력도 바닥 나고, 왼발 발목도 접질러진 상태여서 산행을 하다 보니 힘겹게 막둥이를 따라 갔었지... 2일치 옷가지, 비품 및 식량 등을 질머지고 가는 배낭의 무게가 더 해져 체력 소모를 가속 시키나 보다. 역시 마루금은 "S"자로 이러 간다. 청화산은 사진 좌측 높은 봉우리(좌측부터 2번째, 첫번째 봉우리는 청화산 3거리봉)
▼ 암벽을 오르면서 뒤 돌아 본 조항산으로 이어진 마루금도 담아 보고...
▼ 갓바위에서 청화산으로 가면서 넘어야 할 암벽의 기상과 기괴한 모양도 담아 보고...
▼ 갓바위에서 청화산으로 가면서 아직도 작은 암벽 뒤에 크 암벽이 버티고 서 있는 암벽을 오를 생각을 하니 힘이 빠진다. 이 사진을 찍을 땐 이 봉우리 오르면 청화산 정상이 좌측에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막심을 썼는데... 청화산은 한참을 더 가야 하다니~~~
▼ 갓바위에서 청화산으로 가면서 암벽을 오르는 아내를 담아 보고... 어떻게 이런 암릉을 넘었는지 막둥이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아내가 천천히 가라고 해도 마냥 달린다. 정말 기적이다. 나도 넘기 힘든 구간을 이리 잘 넘어 달린다니~~~ 이 암봉 보다 훨씬 힘든 암봉 몇 개를 오르고 내려야 청화산에 갈 수 있다.
▼ 16:07분 청화산3거리 이정표도 담아 보고...무척 힘들어 하는 표정이 역력한 아내~
▼ 16:19분 청화산3거리에서 청화산 정상(970/984m)비를 찍으면서 먼저 도착한 아내에게 이 비석을 보았냐고 물었더니 그런게 있었냐고 반문한다. 다시 올라 와 정상 표지석 뒤에 선 아내도 담아 보고... 막둥이는 찍지 않겠단다.~~ 이정표에 있는 높이와 정상석에 있는 높이의 차이가 무려 14m라니???
▼ 16:07분 청화산 정상 지나 서 있는 이정표 옆에 선 막둥이도 담아 보고...ㅎ 표정이 한결 밝아진 막둥이~ 이정표에 있는 높이와 정상석에 있는 높이의 차이가 무려 14m라니???
▼ 16:07분 청화산 정상에서 청화산농장쪽으로 내리면 의상저수지로 내릴 수 있나?
▼ 16:07분 청화산 정상에서 동쪽을 보니 시루봉의 암봉이 선명하게 들어 온다. 우복동천 승지 환종주 구간은 청화산에서 우틀하여 시루봉, 도장산, 속리산, 백악산 지나 청화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한국에서 3파수이면서 승지에 속한 곳은 아마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 청화산 정상에서 늘재쪽으로 조금 진행하니 만나는 헬기장...
▼ 청화산 정상 근처 헬기장에서 바라 본 문장대; 왼쪽 뾰쪽한 천왕봉부터 비로봉, 신선대, 문수봉, 문장대에서 곧를 내리면서 작은 암봉 몇 개를 지나 맨 우측에 노적처럼 보이는 관음봉까지 병풍처럼 서 있네...
▼ 청화산 정상 근처 헬기장에서 조금 동남쪽으로 앵글을 돌려 보니 인간세인 화북면 민가와 도로가 좌측의 봉황산과 우측의 형제봉 사이의 비조령으로 뻗어 가는 모습도 담아 보고... 멀리 연무속에 구병산이 보인다.
▼ 헬기장을 자나서부터 늘재로 내리는 길은 대부분이 너덜에 마사토로 구성된 급경사 길이라 오른 무릅이 고장나 있고, 외 발목 마저 접질러진 나로써는 고행의 머나먼 길이었다. 위에서 내려 찍으니 각도가 죽어 보인다. 70~80도쯤 되어 보이는 급경사지에 로프가 있다. 막둥이는 너무나 쉽게 그리고 빠르게 잘 내린다.~~~
▼ 17:17 정국기원단도 담아 보고... "맑고 청결한 나라를 이루게 해 달라는 기원을 담은 기원단"이라는 비석의 뜻에 어떤 다른 의도가 있다면 이 것을 어찌하누? "靖國"은 일본어로 "야스쿠니"라고 발음한다. 2차세계 대전 전범들과 막부 말기 낭인무사들이 중심이 되어 명치유신을 일으켜 현재 천왕 중심의 일본을 만들었다. 그런 사람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보관한 곳이 바로 야스쿠니신사 이다. 만약 개인이 사비를 들여 삼파수이자 우복동천이며 남한의 중심지인 이 곳에 "정국(야스쿠니)제단"을 세웠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이기를 바란다. 만약 이 제단이 일본의 야스쿠니신사처럼 남한 땅의 배꼽이자 한강, 금강, 낙동강의 물을 가르는(삼파수) 이 명당터에 대동아국을 꿈 꾸던 일본 낭인출신 침략/제국주의 정치가들의 목표와 정신을 계승한 일본 우익 정치지도자들이 150년 전의 소원성취를 빌고, 일본인들의 구심점을 만들어 반도침탈의 의도를 담고 세웠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심원한 뜻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의 누군가가 한국의 개인을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이런 제단을 이리 험한 청화산 4부 능선에 세웠다면 이는 또 다른 신사를 이 땅에 새운 것과 같다. 개인을 통해...
진정으로 순수한 의미에서 한민족의 부흥과 발원을 위해 세운 제단이라면 "야스쿠니=靖國"이라는 생소한 단어 대신 "한민족 부흥 기원단 또는 한민족 부흥 제단" 정도로 제단 비석의 문구를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대간 길 너무 멋진 곳에 세워진 제단의 비문을 보고 "21세기"에도 이 땅의 대간 명당터에 야스쿠니 신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산림청, 보훈처 및 광복회 관계자는 신속하게 이 제단 설립자 조사를 통해 이를 시정해야 한다. 가능하면 신속하게~~~
▼ 늘재 0.4km 이정표도 담아 보고...
▼ 17:45 드디어 늘재에 도착하여 거대한 대간 이정표 아래 선 막둥이와 아내도 담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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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5 드디어 늘재에 도착하여 좌측부터 시계 방향으로 성황당의 시조 건물, 백두대간 늘재-조항산 등산안내도, 출입금지 안내판, 발원문 비석 등도 담아 보고......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숲 이었는데 이런 암릉을 수도 없이 넘어야 청화산에 오를 수 있다니???
▼ 늘재에 도착하여 탈수와 씻기 위해 내려 온 장암2리 마을회관과 늘티 마트, 여기서 음료수 4병을 사서 먹고 우측에 있는 샘터에서 주인 할머니가 씻으라고 해 3식구는 씻고, 옷을 갈아 입고, 주민이 불러 준 화서(화령)택시를 타고 화령터미널로 가 저녁으로 냉면을 먹은 후 청주 가는 버스 타고 청주터미널에 내려 남부터미널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 타고 도착하였다. 덕환이가 마중 나와 그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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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창건 신사 중에서 무엇보다 야스쿠니신사와 구스노키사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대해 살펴보자. 현재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동경 시내 중심부의 치요다구 구단(九段)에 위치하고 있다. 1869년 건립 당시에는 동경초혼사(東京招魂社)라 불렸으며 1879년에 야스쿠니신사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잠시 이 신사의 풍경을 구경해 보자. 구단시타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야스쿠니신사의 첫 번째 도리이를 지나면 앞에 커다란 동상이 하나 서 있다.
메이지 육해군 창설의 최대 공훈자인 오무라 마스지로(1824~1869)를 기념하기 위해 1892년에 동경 최초로 세워진 이 동상은 지금까지도 야스쿠니신사의 명물 중 하나로 유명하다. 그런데 야스쿠니신사 경내에는 다른 신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시설이 하나 있다. 경내 오른쪽에 있는 유슈칸(야스쿠니회관 혹은 보물유품관)이 그것이다. 1882년에 건립된 유슈칸은 일본에 있는 유일한 군사, 전쟁 박물관이자 일본 최대의 도검 진열장이다.
여기에는 야스쿠니신사에 봉납된 각종 보물들을 비롯하여, 과거 메이지 천황군이 막부군에게 탈취한 전리품, 동경초혼사 관계 자료,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도검 총포류, 기타 전쟁 관련 유품 5만 5천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 중 자살 병기들을 진열한 코너가 특히 눈에 뜨인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이 사용했던 인간 어뢰, 잠수부가 직접 가지고 뛰어들었다는 수뢰, 악명 높은 가미카제 비행기, 핏자국이 선연하게 남아 있는 마후라 등이 그것인데, 옆의 비문에는 6천여 명이 이런 자살 병기와 함께 장렬하게 순국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과 유슈칸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야스쿠니신사가 다른 신사들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 군국주의 및 천황제 국가신도 체제와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야스쿠니신사에는 현재 막말이래 무진내전(1868년 발발), 서남내전(1877년 발발), 청일전쟁(1894년 발발), 러일전쟁(1904년 발발), 만주사변(1931년 발발), 중일전쟁(1937년 발발), 태평양전쟁(1941년 발발) 등에서 죽은 군인과 군속 등 245만여 명이 제신으로 모셔져 있다. 이와 같은 야스쿠니신사의 특수한 성격은 패전 후 현대 일본 사회 및 아시아 제국에서 여전히 정치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의 전신은 동경초혼사인데, 그 동경초혼사는 막말유신기에 각지에 산재해 있던 초혼사(1936년에 호국신사로 개칭됨)의 센터였다. 그런데 이 동경초혼사의 성립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1853년, 미 페리제독의 내항으로부터 시작된 서구 열강의 위협 및 막부를 옹호하는 개항파와 막부 타도를 외치는 존왕양이파 사이의 유혈 정쟁으로 어지러웠던 에도시대 말기에 '초혼'이라는 새로운 관념이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된다. 여기서 '초혼'이란 죽은 자의 영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불러내어 위로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초혼 혹은 위령 관념의 형성은 중세에 생겨난 '원령 신앙'이나 막말기의 정치 상황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야스쿠니신사 (일본의 신사, 2005.7.15, ㈜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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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하다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누군가는 힘들게 이 길을 걷고 있고
누군가는 편하게 힘들게 간 길을 보고 있노라니~~
박수와 함게 은근 시샘도 납니다.
백두대간 여정 답습니다.
대단합니다. 짝짝짝~~^^
들꽃향기님도 같이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