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리 군이 제시한 고조선 영토 추측도는,
쓰레기 수준의 개엉터리이고,
이러한 글을 계속 올리는 저의를 추측해 보자면,
군은 아무래도 정신착란 중이거나
혹은 아둔하고 비열한 나머지 국뽕에 취한 멍청한 한국인을 꾀려고 던진 낚시질로 보인다.
<관자><설원><회남자><한서><요사><청사고> 등에 의하면,
서기전 7 세기 초반 제나라 환공이 산융을 정벌하고 고죽국을 공격하려고 건넌 물길은,
당시 요수로 불렸고 전한 시기부터는 난수濡水로 불렸으며 송.요 시기부터는 란하로 불린 물길이니라.
1911 년 청국이 멸망한 해까지 이상없이 잘 흐르던 그 란하는,
현 중국전도에 표시된 상류 부분 곧 물음표 ? 의 굴곡진 부분만 남아 있다.
그 이유는,
일본명치왕 참모부놈들이 조선 역사 강역을 왜소하게 만들려고,
굴곡진 란하 상류 부분을 란하에서 동쪽으로 200 리 내외 쯤 지역을 나란히 흐른 아래 <우적도>의 요수 곧 <한서/지리지>의
대요수이며 송.거란부터 개칭된 <요사/지리지>의 황하 중류와 연결시켜 란하라고 명명했고 황하가 흘러든 요하 곧 <한서/지리지> 현토군 서개마현을 경유한 염난수까지도 지금의 란하 지류가 된 것이니라.
이후의 작업은 당연히 <청사고/지리지> 기록에 대략 맞추어 황하를 변조하여 동류하는 지금의 서요하로, 요하도 동쪽으로 3000 여 리 쯤 이동시켜 지금의 요하로 표시하고 유역의 모든 지명까지도 이동시킨 강 유역에 적적하게 재배치하였느니라. 즉 현 중국전도의 란하는 중국 2600 여 년의 란하.황하.요하가 합쳐진 것이다.
송 시기 석각된 <우적도> 잘 보거라.
어쨋든 저러한 지리였기 때문에,
조선.왕검조선과 단군의 제위를 이은 부여 또는 단군부여 및 단군부여의 남쪽 제후국인 준왕조선과 그들의 후예인 고구려.백제의 서쪽 국경선이 위 <우적도>의 요수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니라.
근거는 <사기/흉노열전> 동호 기록이나 <삼국지/오환.선비동이전> 선비 주석 등과 같이 동호의 후예인 선비의 동쪽이 요수와 접했기 때문이니라.
첫댓글 우적도는 AD 1000년 이후에 작성된 고지도다 그냥 남송학자들의 뇌피셜 소설로 보아야 한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하북성 지명위치를
당나라가 북쪽으로 천리가량 이동 시킨 내용을 근간으로 우적도가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BC 800~ BC 200까지의 춘추전국시대 또는 한나라 시대, 고구려 시대
♥지명의 정확한 위치 ♥ 화이도 지도 위치에서 천리 남쪽이다
어찌 남송학자가 상상으로 작성한 서기 1000년 이후의 지도로
BC 2-300년 경의 지명 위치를 찾는 어리석음을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누군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중국 남송 때인 AD 1136년에 제작된 고지도로. 중국 전역을 기록한 지도로서는
현존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지도가 화이도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한 년도가 AD 1145년이니
최고로 오래된 중국 고지도인 화이도는 고려시대 삼국사기 편찬 년도와 비슷한데
AD 1000년 이후에 작성된 우적도로
BC 2~300년의 춘추전국 시대 지명 위치인 1400 ~ 1500년 전의 지명 위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고대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위만조선 낙랑군 당대기록인 사마천 사기나 한서, 후한서, 정사 삼국지의 정확한 고찰을 통해 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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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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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청사고> <통전>이니 하는 것들이 말하는 춘추시대부터 한나라까지의 내용은
먼 후대 학자들의 개인적인 의견이니 단지 참조만 해야 할 것이며
중국 고지도의 위치를 맹신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1) 요사(지리지 포함)는 AD 1344년 만들어진 거란의 요나라 역사서이고
2) 청사고(지리지 포함)는 AD 1961년에 만들어진 청나라 역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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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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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재군은
자기글 조회수 늘리고 관심 받으려고 엉터리 내용으로 생쇼를 하는구먼 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