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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사순절기 전 주일예배(2025. 3.2)
+ 제 목 : "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하셨습니까?(1)"
+ 본 문 : 마태복음 13장 44절 - 48절 (신약성경 22쪽)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아멘!
2025년 고난주일은 4월 13일이고, 부활주일은 4월 20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부활주일 전날까지 40일 동안의 사순절기는,
3월 5일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사순절기 전에 드리는 주일예배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사순절기 동안에 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하셨습니까?” 하는 설교제목으로 삼았습니다.
+ 옆에 분들과 인사합시다. / “0 0 0 을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합시다. 아멘!”
스위스를 여행 중에, 스위스의 유명한 시계 가게를 쇼핑한 적이 있습니다.
명품은 너무 비싸기에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시계는 사실 사지는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스위스는 시계 제조의 성역을 누려 왔던 게 사실입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 시계 시장의 80%가 그 좁은 땅 스위스에서 제조된 시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말, 한 발명가에 의하여 새로운 한 시계가 디자인되었습니다.
이 발명가는 자기가 고안한 시계를 가지고, 스위스의 한 시계회사를 방문했습니다.
새로운 디자인 된 시계 제조를 깨끗이 거절당했습니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렇게 스위스에 있는 모든 시계 회사들은, 이 사람의 고안된 시계를 거절했습니다.
그것 아니더라도 우리는 시계로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는 오만함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발명가는 그 시계를 가지고 일본을 방문했고, 세이코 회사가 그 시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시계가 바로 디지털시계입니다. 지금 이 디지털시계는 세계 모든 시계 시장에,
80% 내지 90% 이상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보물을 잃어버린 스위스는 이 때부터,
시계산업의 사양길을 걷게 되었고, 디지털시계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가 무엇을 보물이라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의 값어치가 달라집니다.
보물이 찾아왔을 때, 그 보물을 얻을 수 있느냐? 아니면 그 보물을 잃었느냐에 따라서,
성공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고, 실패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물을 얻기 위해서, 당당히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가를 지불하기를 꺼려하다가 머뭇거리게 됨으로 실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장 귀한 보물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거짓 보화에 속아 살면 안 됩니다. 이제 눈을 떠야 합니다. 참된 보화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감추인 보화비유” “더 값진 진주 비유” “그물 비유” 는,
천국이라는 보화를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이 시간 말씀드리려고 하는 설교 주제는, 44절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값진 보화를 발견했다.” 는 아주 짧은 멘트의 말씀이 나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아멘!“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돈을 벌어도 맡겨둘 만한 마땅한 은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땅속 깊은 곳에 보물 항아리를 묻어두고, 보물이 생기면 거기에 넣기도 하고,
필요하면 끄집어내 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나 국가적인 대 변혁이 심했던,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주인 없는 보물 항아리가 종종 발견되곤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발견 된 보물항아리는 법률에 따라, 발견한 사람이 그 보물 항아리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보물항아리가 남의 땅에 숨겨져 있으면, 아주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남의 밭에서 일하던 품꾼이, 땀을 흘리며 밭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마어마한 보물항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너무나 놀랬습니다.
그는 급히 보물항아리를 다시 묻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일을 계속하였지만,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습니다. 일을 마친 일군이 밭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어르신네 계십니까? 저 아무개 머슴입니다." "이 깊은 밤에 자네가 웬일인가?"
"주인님 뵙고 부탁도하고,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 "들어 오게나."
"주인님, 어제 제가 일했던 그 밭을 오랜 시간동안 소작으로 일구다보니 그 밭이,
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인님이 허락하시면 그 밭을 제가 그 밭을 샀으면 합니다.“
그렇게 흥정이 되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밭 값을 치르고 소유로 삼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말하고 있는 보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천국이 무엇입니까?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앞을 봐도,
예수님입니다. 뒤를 봐도 예수님입니다. 오른쪽에서 봐도, 왼쪽에서 봐도 예수님입니다.
위에서 내려다 봐도, 밑에서 올려다봐도 예수님입니다. 속을 뒤집어 봐도 예수님입니다.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목사님은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묻습니다. “너 어떻게 영광스러운,
이 나라로 왔느냐?”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너 어떻게 살아갈래?”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처럼 살겠습니다.” “너 어떻게 죽을래?”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 손 꼭 붙들고 죽겠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시작과 마침, 알파와 오메가는 예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꼭 가져야 할 최고의 보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보화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밭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밭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보이는 우리교회라는 예수 공동체를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는데, 예수님을 모신 저와 여러분의 심령의 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보화가 밭에 감추어 있었다는 것은, 보화이신 예수님이 우리교회와,
우리 심령의 성전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화이신 예수님을,
우리교회라는 영적 밭에서, 우리 심령의 영적 밭에서 발견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한 이 교회를 ‘내 교회’ 라고,
말하면서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화이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심을 발견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고, 자기 안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교제하므로, 천국에서 사는 것과 같은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와 우리 심령은, 보화이신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 우리교회는 천국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신 내 심령은 천국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보화를 발견한 품꾼은 그 보화를 자기 소유로 삼기 위해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샀습니다.” 천국보화이신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는,
땅의 것들을 팔아야 합니다. 때론 즐기던 취미도, 소중히 여기던 기쁨도 팔아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도 내다 팔아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제도 팔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화이신 예수님이 계신 밭인, 이 교회와 내 심령을 주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것보다 보화이신 예수님이 계시는 성전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대부분 예수님이라는 보화보다, 썪어 질 세상 보화를 얻기 위해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보화이신 예수님이 계시는 성전을 멀리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살지 못합니다.
보화이신 예수님은 영원하지만, 세상에서 얻는 보화들은 모두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온갖 보화를 다 소유했고, 모든 세상의 부귀영화도 다 누려 보았던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 세상의 보화를 다 가져 보았으나,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평안을 얻지 못했다는 고백입니다. 그에게 보화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소유해야 할 보화는 이 성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반드시 소유해야 할 보화는 우리 심령에 영접한 예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세상 것에 눈이 어두워지면, 진정한 보화이신 예수님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신 교회를 와서도 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하지를 못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발견하지도 못했기에, 심령의 밭에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 심령 속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고, 세상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눈을 감고 영원을 향하여 눈을 떠. 영원한 줄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보화이신 예수님이, 내 눈에 확 들어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보화가 묻혀있습니다. 그 보화를 보는 눈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 시간, 보화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만나고, 영접한 사람은,
보화이신 예수님이 계신 주님의 집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보화이신 예수님이 계신 이 교회를 그리워하고 사모하게 됩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주의 궁정에서 거한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아멘!
그렇습니다. 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주님의 집인 이 교회를 사모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예수님이 계시는 이 교회를 얼마나 사모하십니까?
한 주간 살아가며 주일이 기다려지십니까? 예배가 그립고, 목장모임이 기다려지십니까?
교회의 신비, 복음의 능력, 성령 충만의 맛을 알고 살아가시느냐 하는 말입니다.
구경하는 예수님, 흉내 내는 신앙으로는 안 됩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이 있어야 됩니다.
교회는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보화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곳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 가족이 된, 행복을 체험해야 하는 곳입니다.
셀 목장 모임은 내가 만난 예수님을 나누며, 천국가족을 체험하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의식이 아닙니다. 관계입니다.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가 깨어졌습니까?
교회는 소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과 복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십니까?
적어도 보화가 묻힌 밭을 산 사람, 보화이신 예수님이 계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심장 뜨겁게 모시며,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과 사랑으로 섬기며 살아갑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의 전도내용은 자신의 심장 뜨겁게 모신 "예수 천당" 이었습니다.
그 ‘예수 천당’ 때문에 가난해도 좋았고, 배고파도 좋았습니다. 핍박도 이겨냈습니다.
순교의 현장 속에서도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저 하늘에는 이별이 없네. 저 하늘에는,
고통이 없네. 저 하늘에는 죽음이 없네." 승리의 찬송을 부르며 천국 길을 걸어갔습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렇게 참된 보화이신 예수님을 알고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순교의,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신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십자가의 고개턱이 제아무리 어려워도 주님가신 길이오니 내가 어찌 못 가오리." 아멘!
그런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보화이신 예수님이 교회 안에 계시는데도,
보화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썩어질 세상 보화에는 눈 동그랗게 뜨고,
생명 걸고 덤벼들면서도, 참된 보화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 채 참된 보화이신,
예수님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 채,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간다는 게 무엇입니까?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고 살아가고, 세상 사람들이 듣지 못한 복음을 듣고,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보화이신 예수님을 가졌다는 행복으로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예배드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보화이신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보화이신 예수님을 누리지도, 간직하지도, 그 행복, 그 축복을 나누지도 못합니다.
뇌성마비 천재 시인 송명희 씨의 찬양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없으나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 나 남이 보지 못한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으며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으나 / 나 남이 없는 것 나 갖게 하셨네.
내가 가진 보화가 예수님이심을 아는 사람은 내가 얼마나 부요한 사람인가를 압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압니다. 내 인생의 값어치를 얼마나 큰가를 압니다.
우리가 가진 보화이신 예수님의 값어치는, 세상 모두를 주고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보화를 여러분은 보았습니까? 만났습니까? 심장 뜨겁게 모시고,
살아가십니까? 참된 보화이신 예수님을 보고, 만나고, 심장 뜨겁게 모신 사람들은,
“이 지구상에 있는 80억 인구가운데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2025년 사순절을 앞둔 예배드리는 지금,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아멘!“ 아멘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밭” 은 우리교회입니다. 예수님을 모셔야 할 우리 심장입니다.
우리교회와 우리 심장의 밭에 감추어진 보화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합니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을 만큼,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도 다 버렸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겐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 다함께 찬양합시다. / 찬송가 102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그리고 이어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찬양 부를 때, 봉헌하겠습니다.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