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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지해회(蓮池海會) 원문보기 글쓴이: 박병규
나무아미타불
두 번째 역경법사(譯經法師) 구마라집(서기 344-413)에 대한 강의
요진삼장법사구마라집역(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譯)에 대하여
강의: 불멸후 이경이 인도에서 결집된 이래 중국에는 요진(姚秦)시대에 전래되었는데, 요진(姚秦)이라 함은 기전체(紀傳體)식의 시대표시로서 이는 부견(符堅)의 진(秦)나라가 아니라 요흥(姚興)이 재위(在位)한 진(秦)나라시대(서기 402-412)를 말하는 것으로서 일명 후진(後秦)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하여 전진(前秦:)이라 함은 서기 351년 부건(符建)이 장안(長安)을 공격하여 도읍을 삼고 지금의 협서(陜西)지역을 할거(割據)하여 왕(王)을 칭(稱)하면서 세운 나라로서 일명 부진(符秦)이라고도 한다. 전진은 서기 372년 고구려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유명한 제3대 부견(符堅) 때 가장 융성하였으나 부견왕은 385년 동진을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대패하여 세력이 약화된 후 부하장수 요장에게 시해당하였고,서기 394년에 전진은 완전히 멸망하였다.(강의원문에 일부 역사적 사실을 보충하여 번역하였음을 밝힙니다.)
그런데 전진(前秦)시대 부견왕 재위시(357-385)에 그 나라 서북방면에 신이(神異)한 별이 매일밤 나타나 하늘을 밝게 비추자 그 나라 태사(太史:史官중 제일 우두머리인 사람)가 부견왕에게 “저별은 마땅히 큰 지혜와 덕을 갖춘 사람이 그 곳에 있다는 것이니, 이 사람을 우리나라에 모셔와 나를 보(輔)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부견왕은 “짐(朕)도 구자국(龜玆國){지금의 중국 신강성 고차현(新彊省 庫車縣)에 있던 작은 나라}에 구마라집 법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그 큰 지혜와 덕을 갖춘 사람임에 틀림이 없으리니 내 어찌 이 사람을 얻지 않을 수 있으리요.” 라고 하면서 바로 기병(騎兵) 장수 여광(呂光)을 시켜서 병력을 이끌고 구자국을 치게 하였다.
그러나 부견왕은 여광의 출정(出征)직전에 여광에게 “짐은 구자국의 영토를 탐내서 출병을 명령한 것이 아니니 그대는 출병하더라도 구마라집법사를 얻게되면 바로 병력을 철수시키고 법사는 역참(驛站)을 통해 왕궁으로 뫼시도록 하라.”고 일렀다. 이에 이러한 여광의 출병의도를 알고 있던 구자국의 왕은 나라의 위난을 피하기 위하여 구마라집 법사를 설득․권유하여 진(秦)나라로 가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약소국인 구자국은 국난을 모면하게 되었고, 여광은 법사를 맞이하여 진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서경(西京)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여광은 부견왕이 부하장수인 요장(姚萇)에게 시해(弑害)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광은 진나라의 왕궁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서경(西京) 지역을 점거하여 스스로 삼하왕(三河王)이라고 칭하고 독립하였다.
그러자 요장(姚萇)도 구마라집 법사의 명성을 익히 듣고 있던 지라 삼하왕 여광에게 사신을 보내서 법사로 하여금 진나라로 들게 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여광은 이를 받아 들이지 아니하였다. 그후 요장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요흥(姚興)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 다시 법사에게 국사(國師)의 예를 갖추어 진나라의 왕궁에 들 것을 청하였으나 여광은 역시 이를 거절하였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여광은 사망하고 그의 조카인 여융(呂隆)이 왕위를 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요흥(姚興)은 바로 출병하여 여융의 경국(京國)을 쳤다. 당시 경국은 작은 나라로서 진나라의 병력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투항하고 말았고 따라서 법사를 받들어 보내드려 진나라에 들게 하였다.
이에 요흥(姚興)은 법사를 환영하여 장안(長安)으로 모셨고 국사(國師)의 예를 갖추었으며 다시 대사가 머물 장소인 서명각(西明閣)과 소요원(逍遙園)을 지어 법사에게 바치고, 중국내의 대덕사문(大德沙門) 팔백여인(八百餘人)을 모집하여 법사를 따라 대승법(大乘法)을 배우도록 하였다.
그리고 대사께서는 그당시까지 중국에 번역되어 있던 많은 경론(經論)들이 그 문장의 뜻은 깊고 광대하나 범어로 된 원전과는 그 뜻이 맞지 않은 것을 보시고는 다시금 경론을 번역하셨다. 법사께서는 약 13년여 동안 98부(部:같은 내용의 경론등을 한 부로 묶은 것.예컨대 반야부등) 390여권을 번역하셨다. 이경(불설아미타경)도 법사께서 번역하신 것 중의 하나이다. 그때가 요진(姚秦)시대였으므로 요진삼장법사라고 표현한 것이다
삼장법사(三藏法師)란 현덕(顯德:덕이 아주 많은 분)을 말한다. 삼장(三藏)에는 첫째 수다라장(脩多羅藏) 즉 계경(契經)으로서 이는 세존께서 설하신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말하며 이는 참마음(一心)을 깨달아 밝히는 정학(定學)의 장(藏:갈무림․저장)이며, 두번째로는 비내야장(毘柰耶藏), 즉 선치(善治) 또는 계(戒)를 의미하는 계학(戒學)의 장(藏),세번째로는 아비담장(阿毗曇藏) 즉 무비법(無比法) 또는 논(論)을 의미하는 혜학(慧學)의 장(藏)이 있다. (역자:경율론 삼장에 통달한 이를 삼장법사라 한다.)
법사(法師)에는 두가지 뜻이 있다.
첫번째로는 삼장(三藏)의 법(法)을 나의 스승으로 삼는다는 것이니, 이는 바로 불법(佛法)에 의지하는 것으로써 스승을 삼는다는 것이다.두번째로는 삼장의 법에 깊이 통달하여 스스로의 수행에 힘쓰고 다른 이들을 교화함으로써 사람들의 스승이 된다는 뜻이다. 구마라집법사께서는 삼장에 널리 달통하고 칠불(七佛)이래 역경(譯經)에 힘써 왔으므로 가히 삼장법사라고 불리우는데 아무 손색이 없다.
구마라집은 법사의 이름인데, 원래의 이름은 구마라기파집(鳩摩羅耆婆什)이었다. 이는 동수(童壽:애늙은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며,어리지만 덕을 좋아한다는 것을 말한다(謂童年而有耆德也).
법사의 이러한 이름은 법사의 부모님의 이름을 결합한 것이다. 즉 부친의 이름은 구마라염(鳩摩羅琰)이며, 모친의 이름은 기파(耆婆)였습니다. 집(什)은 중국문자(한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역(譯)이라 함은 바꾼다(易)는 뜻인데, 부연하면 범어(梵語)를 중국어(華語)로 번역한다는 말이다. 중국의 주(周)나라등 고대(古代)에는 나라주변 사방(四方)의 언어를 담당하는 관직(官職)의 명칭이 달랐는데, 북방(北方)의 언어를 담당하는 관직의 명칭을 역(譯)이라 하였다{참고로 남방언어의 담당관은 상(像),동방언어의 담당관은 기(寄)라고 하였음}.
그리고 한(漢)나라 때에는 북방언어 담당관들인 역관(譯官)들이 서방(西方)의 언어에도 능통했으므로 후한 명제(後漢 明帝)때 불교(삼장)가 전래되자 역관들에게 그 번역을 청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연고로 역(譯)이라 한 것이다.
법사의 부친 구마라염은 중천축국(中天竺國) 재상(宰相)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재상의 자리를 포기하고 여러나라를 유람하며 다니다가 구자국(龜玆國)에 이르렀는데 그 나라의 왕(王)은 그의 학덕(學德)을 존경하여 그를 궁전으로 모셔 국사(國師)의 예를 갖추어 우대하였으며 왕의 여동생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그리하여 위 두사람 사이에서 법사가 태어나셨다.
그런데 법사가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모친은 출가수도하여 소승 초과(初果)를 증득하였으며,법사가 7세에 이르자 모친은 역시 법사를 출가시켜 하루에 게송(偈頌)을 천개씩을 염송(念誦)하게 하였다.
하루는 법사께서 모친을 따라 어떤 절에 가게 되었는데, 그절 불상앞에 놓인 쇠로 제작된 발우(鐵鉢)를 보고는 기뻐서 목앞에까지 번쩍들어 올렸다. 그런데 잠시후 법사께서는 갑자기 발우는 무거운 것이고 나는 아직 힘약한 어린이에 불과한 데 어떻게 이 철발우를 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발우를 든 손의 힘이 버겁게 되면서 발우는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 말았다. 이때 법사께서는 만법유심(萬法唯心)의 대진리를 활연(豁然)히 깨닫게되었다. 이와 같이 법사께서는 어릴때부터 지혜가 출중(出衆)하셨다.
9세때는 모친을 따라 인도 계빈국(罽賓國)에 가서 그곳의 반두달다(槃頭達多)법사에게 소승경론(小乘經論)을 배우고 12세에 구자국으로 되돌아 오길에 월저북산(月氐北山)에 이르렀을 때 영이(靈異)하게 보이는 나한(羅漢) 한분을 보았는데 그 분은 법사의 모친에게 “이 아이를 마땅히 잘 키워야 합니다. 이 아이가 35세가 되도록 계(戒)를 범하지 아니하면 우바국다존자(優波麴多尊者:부처님의 법을 전해받은 제4대조사이며 아육왕의 스승으로서 아육왕에게 불법을 설하여 귀의케 하고 엄청난 교화를 하셨음)에 못지 않은 큰 교화를 할 것이고, 만약에 계를 범하게 되면 다만 재주가 밝고 예술에 뛰어난 법사가 되어 브라만의 리그베다둥 4가지 성전과 성명(聲明),공교명(工巧明),의방명(醫方明),인명(因明),내명(內明)등의 5명(明) 및 음양(陰陽),성산(星算)등 여러 방면에 널리 달통하여 그 오지(奧旨)를 철저히 깨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후 법사는 다시 수리야소마(須利耶蘇摩)법사에게 대승법(大乘法)을 물어 그의 가르침을 받아 종전에 자신이 배운 소승법은 궁극의 가르침이 아님을 알고 그곳에서 대승법을 배우고 습득하여 다시 대승법의 중요한 핵심요지를 널리 통달하였다. 그후 다시 법사께서는 계빈국에 들어가서 종전의 스승 반두달다(槃頭達多) 법사에게 일승묘리(一乘妙理)를 상세히 설하여 달다법사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에 달다법사는 법사에게 스승의 예를 올렸으나 법사는 이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이에 달다법사는 “나는 그대의 소승법 스승이며, 그대는 나의 대승법 스승이니 그대가 나의 예배를 받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후 법사는 다시 구자국으로 돌아왔는데 이때부터 법사의 명성은 주변 여러나라에 널리 떨치게 되었다. 법사의 모친은 구자국의 국운이 쇄미하여 감을 알고는 소승의 삼과(三果)를 증득하기 위한 수행을 위하여 인도로 떠나기 위해 법사와 헤어지면서 “네가 부처님의 대승(大乘)의 방등심교(方等深敎)를 진(秦)나라의 수도에서 마땅히 천명(闡明)하여야 하나, 이것이 너 자신에게는 다소 이롭지 않은 일이니 이일을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하자 법사는 “보살은 중생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신상의 어려움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오니,큰 교화를 위하여는 가사 제가 용광로(鎔鑛爐)에 던져지는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어떠한 원한도 품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대로 구자국의 신왕사라는 절에 머무시다가 얼마후 진나라의 청을 받아 중국으로 들어가셔서 일생동안 수많은 삼장을 번역하셨고,법사께서 번역하신 삼장들이 모두 세상에 널리 유통되었다.
당나라 때 도선 율사(道宣 律師)가 천인 육현창(天人 陸玄暢)에게 구마라집이 번역한 삼장들이 어찌하여 지금까지 널리 수지독송되는 지에 대하여 묻자,육현창은 “구마라집 법사는 칠불이래(七佛以來)의 세세생생 역경(譯經)법사였으며 먼저 깨달음을 얻은 후 (경전속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뜻을 제대로 파악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법사께서 임종때가 되자 스스로 다짐하기를 만약에 내가 번역한 경론들이 부처님말씀의 의지(意旨)에 위배되지 않았다면 나의 육신이 다비에 부쳐지더라도 나의 혀만은 타지 않으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과연 다비후 법사의 육신중 오로지 혀만이 타지 않고 그대로 남게 되었다. 이것은 법사의 혀가 육방(六方)의 모든 부처님의 장광설상(長廣舌相)과 다르지 않다는 증표(證票)이니,법사께서 번역하신 이경 역시 부처님의 뜻에 꼭 합치되게 번역되었음을 응당 믿어야 한다.
이로써 역경법사에 대한 강의를 마친다.
(역자 주:구마라집 법사가 지범개차(持犯開遮)법에 의하여 계를 범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진나라 왕 요흥이 처음엔 법사를 공경하고 받들었는데 언젠가 서역에서 어느 사문이 「선바라밀경(禪波羅蜜經)」을 수지하고 진에 도착, 법사와 그 사문이 서로 마음이 계합되자 요흥이 서역사문을 진나라에 머물게 하고자 했지만 그는 그대로 떠나 버렸다. 이에 요흥이 노하여 은밀히 밀사를 파견해 관(關)밖에서 그를 살해하였다. 또한 왕은 대사도 언젠간 떠날 것을 의심해 궁녀를 대사에게 하사하면서 부처종자를 잇도록 했고,이로써 법사의 혹시나 떠나려는 뜻을 꺽으려 했다. 그러자 법사는 오히려 이러한 왕의 의도를 역(逆)으로 새겨 오히려 전법(傳法)을 위한 결정적인 계기로 삼아 궁녀를 받아 들여 왕의 의심을 풀어 주었다.
대사가 이 경전을 번역하기 위해 처음 초당(草堂)에 머물 때 (왕으로부터의) 위험과 의심이 이와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사는 전법을 위하여 그 의심을 모면하기보다 이와 같은 법연(法緣)을 짓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옛 어른이 자기자신을 돌보지 않고 불법을 위해 몸을 바쳤으며 불법을 위해 막심한 간난(艱難)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은 감산대사의 《묘법연화경통의》에서 인용한 것임)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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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