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 붉은 동백과 함께 피어나는 완도는 물빛 곱고 깨끗하기로 유명한 다도해해상공원의 대장 섬이다. 일주도로를 도는 데 1시간도 채 안 걸리는 작은 섬이지만 통일신라 때 신라, 당, 왜 3국의 뱃길을 호령하며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장보고의 전초지인 청해진 유적지와 섬 하나가 통째로 상록수림인 주도, 전국 제일의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완도항, 구계등 몽돌해수욕장 등 다양한 볼거리를 품고 있다. 보길도, 청산도 등 주변의 비경 섬들도 완도를 쉬이 떠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 글·박희선 편집차장(vada@carvision.co.kr) 사진·정진호 기자(jino@carvision.co.kr)
'나는 가끔 후회한다 /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 그 때 그 사건이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 더 열심히 말을 걸고 /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 더 열심히 사랑할 걸 /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 우두커니처럼 /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정현종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때는 맞춘 듯이 입춘(立春). 코발트빛 206CC를 몰고 봄의 전령사라도 된 듯 남으로, 남으로 내달리면서 시작의 의미를 되새긴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라는 시인의 깨우침처럼 우리의 짧은 생은, 알고 보면 매번 시작이었다. 그러나 시작일 뻔하다, 혹은 그런 줄도 모르고 놓쳐 보낸 날들이 또 얼마나 많은 게 생인가. ‘다시 태어나면’이라는 전제 하에 풀어내는 사람들의 많은 꿈, 퇴행성 계획들은 아직 유효하다. 살아 있는 한, 꽃처럼 살아 있는 한 늦은 일이란 없는 법. 망울 틔우기 힘겹다고 그냥 지는 꽃을 보았는가. 삶이 힘겨워 주저앉고 싶다 생각될 땐 한겨울 추위를 뚫고 피는 저 동백에게서 생에 대한 진지와 확신을 배울 일이다. 3월, 남쪽 섬 완도를 붉게 물들이는 동백은 10~2월의 찬바람을 작고 여린 봉오리 하나로 버텨낸 정직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장보고의 진지 있던 해상 전략지
길이 암만 좋아졌대도 완도는 여전히 멀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종점(목포)까지 타고 내려가 영암·해남을 거쳐 완도에 닿기까지는 꼬박 6시간 반이 걸렸다. ‘뭍의 최남단’이라는 땅끝 이정표가 있는 해남군의 오른쪽 귀퉁이에 두 개의 연육교(가운데 달도라는 작은 섬을 디딤돌 삼아 남창교와 완도대교가 있다)로 연결된 완도는 섬이면서 육지 같다. 비단 교통의 편리함 때문이 아니라, 중앙의 상황봉(644m)을 비롯해 내륙의 산세를 그대로 이어받은 선 굵은 지형이나 주위에 튀밥가루처럼 흩뿌려져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섬, 섬, 섬들 때문이다. 완도는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도 안 걸리는 작은 섬이지만 군내에 보길도, 청산도 등의 크고 작은 부속 섬 210개를 거느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대장 섬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통의 외따로운 바닷가 마을처럼 갈매기 하나 줄을 끊고 날아가는 한가로운 수평선은 구경할 수 없지만, 1년 내내 봄날인 양 따사롭고 살가운 어촌 풍경을 담아올 수 있다.
동으로는 고흥·여수, 서로는 진도, 남으로는 제주도를 경계로 두고 오밀조밀한 섬들 속에 박혀 해상 출입이 자유로운 완도는 그 옛날 바다 영웅 ‘장보고’의 활약지로도 유명하다. 완도대교를 건너 왼쪽 해안도로를 타고 완도읍 쪽으로 15분쯤 달리다 보면 아담한 어촌마을과 함께, 그 앞에 헤엄쳐서도 건널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떠 있는 작은 섬 하나가 보인다. 섬이라곤 제주도밖에 가본 적 없다는 사진기자가 “태어나서 이렇게 작은 섬은 처음이야” 하고 탄성을 지었던 이 섬의 이름은 장도(將島). 통일신라시대 신라, 당, 왜 3국의 뱃길을 호령하며 바다를 통한 해외 개척의 신기원을 이뤘던 장보고 장군의 해상전초기지, 청해진 옛터가 바로 이 섬이라고 추정된다. 1991~2001년 8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그 가능성을 확신한 완도군은 유적복원 작업이 끝나는 대로 이 섬을 ‘청해진 역사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장도를 마주보고 있는 장좌리 청해진 유적지 입구에는 현재 기기묘묘한 수석 170점과 동백, 철쭉, 해송 등으로 꾸며진 청해진 수석공원이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청정해역에서 낚아 올린 전국 제일의 맛
장보고에 이어 완도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은 역시 싱싱하고 풍부한 해산물. 대형 수산물센터가 밀집하고 크고 작은 낚싯배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 완도항에 가면 그 참맛을 볼 수 있다. 완도 일대의 바다가 세계적인 청정해역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물빛도 고운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놀래미며 감성돔 등 싱싱한 자연산 활어들은 전국적으로 맛이 제일이라 소문나 있다. 수협 활어공판장에서 매일 두 차례 경매가 끝나면 푸짐한 생선을 실은 활어 차들이 전국 곳곳으로 흩어지고, 공판장 부근의 직판 좌판에서 횟감을 사 근처 횟집에 가져가면 양념비만 받고 회를 떠 준다. 8kg은 족히 되어 보이는 자연산 돔을 두 손에 들어올려 “10만 원!”을 외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촌스런 여행객의 눈이 번쩍 뜨인다. 신선도로만 쳐도 서울보다 두 배는 더 받아야 마땅할 것을 그 반값도 안 되게 부르니, 어찌 안 놀랄까. 한편,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국 생산량의 80%를 책임졌던 완도의 김 양식은 이후 미역, 톳, 다시마 등으로 종목을 넓혀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완도항이 품은 또 하나의 명물은 항구 바로 앞에 말뚝처럼 박혀 있는 작은 섬, 주도다. 축지법을 쓰면 열 걸음에도 닿을 만큼 가까이에 온통 아름드리 나무만을 가득 인 이 섬은 그 자체가 천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상록수림. 그 안에 137여 종의 상록수가 자라는 온대식물의 보고로서, 국내 식물생태 연구상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등걸이 휘고 틀린 모습까지 리얼하게 들여다뵈는 작은 원시림은 꼭 한 덩이의 ‘브로콜리’ 같기도 하다.
이밖에 완도 내에서 들를 만한 곳으로는 검은 갯돌이 ‘9개의 계단을 이룬 비탈’이라는 뜻을 지닌 정도리 구계등(명승 제3호)의 몽돌해수욕장과 동·서·남 3면의 아름다운 다도해가 한눈에 펼쳐지는 상황봉 정상, 680여 종에 이르는 아열대 식물을 구경할 수 있는 완도수목원(☎ 061-552-1544), 2002년 5월 개관해 바다와 어촌 풍속에 관한 모든 것을 펼쳐놓은 어촌민속전시관(☎ 061-550-5558) 등이 있다. 유명한 동백은 2월 말~3월 중순에 만개한 모습을 섬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고, 청해진 유적지 바로 아랫마을인 죽청리와 상황봉을 넘어 그 반대편(서쪽) 해안인 당인리 일대에 특히 많다.
보길도·청산도 등 210개의 주변 섬들
완도까지 가서 완도만 보고 오면 조금 발품이 아깝다. 구경이야 그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지척에 비경의 섬들을 수두룩히 두고 냉정히 발길을 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 완도에 갈 때는 일정을 적어도 3일 이상으로 잡아 뱃길로 닿는 섬 한 곳쯤은 들러서 오자. 완도와의 연계 관광지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섬은 보길도다. ‘어부사시사’를 읊으며 말년을 보낸 고산 윤선도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는 이 곳은 한국 정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세연정의 동백 풍광으로도 유명하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1시간~1시간 반 간격으로 배가 뜨고 1시간 운항에 어른 7천 원, 승용차를 갖고 가면 2만 원이다.
영화 ‘서편제’의 무대로 유명해진 청산도는 완도항에서 40분 거리에 있다. 하루에 4번 배가 뜨고 어른 6천50원, 승용차를 가지고 들어갈 때는 왕복 4만2천 원을 받는다. 모두 완도보다 작은 섬이니 차 없이 들어가 맘껏 걷다가 정 힘들 땐 ‘지프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밖에도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촬영지인 소안 당사도, 파도가 모래에 씻겨 울리는 소리가 십리 밖까지 들린다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있는 신지도, 이순신 장군 유적인 충무사가 있는 고금도…… 등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작고 예쁜 섬들이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현재 진행중인 완도-신지도 구간에 이어 신지도-고금도, 고금도-(장흥군)마량리 간의 연육교 공사(국도 77번)가 모두 마무리되면 진도-해남-완도-장흥을 한 코스로 돌아보는 ‘다도해 종합여행’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취재 협조: 한불모터스 ☎ (02)545-5665
drive memo
서울에서 완도로 갈 때는 일단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종점인 목포까지 간다. 목포 톨게이트를 나와 영암·강진 방향 2번 국도를 찾아 달리다 대불방조제로 우회전, 이어 진도 방향 표지판을 따라 영암·금호방조제를 건너면 완도 방향 77번 국도를 만난다. 금호방조제를 건너기 전 해남읍을 통하는 완도 방향 이정표(지방도 806번)가 나오지만, 이를 무시하고 진도 쪽 길을 택하는 것이 거리로나 시간으로나 낫다. 진도대교 앞을 지나쳐 계속 77번 국도를 달리다 방축리에서 완도로 직행하는 13번 국도로 갈아타면 어느새 완도대교 앞에 다다른다. 진도대교에서 완도대교까지는 약 30분 거리. 완도 내에서는 13번과 77번 국도가 각각 동서로 갈렸다가 완도읍에서 만나며 해안일주도로를 형성해 어느 방향으로 돌든 완도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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