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델리 시내를 관광한다.
한 나라의 수도라고는 해도 완전 무질서 그 자체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사방에 쌓여있고
도로에는 자전거와 오토바이, 릭사, 소를 비롯한 각종 동물들, 자가용,
트럭, 버스, 사람들이 한꺼번에 흙먼지 속에서 귀가 찢어질 정도의 경적을 울리며 경주라도 하는 듯이 이동한다.
운전 솜씨는 어느 나라 사람들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조금 틈만 생기면 비집고 들어오는 정도다.
차창 밖을 보니 위험하게도 어린 소녀가 차들이 달리는 좁은 틈바구니사이에서
물구나무를 서며 서커스 묘기를 보여주며 구걸을 하고 있다.
저렇게 어린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물건을 팔며 살고 있단다.
노슥자와 거지들의 가족들이 길거리에 즐비하다.
우리 나라의 60년대 수준이라 생각하면 딱이다.
버스 이동하며 보이는 길거리 풍경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저렇게해서라도 살아야 되는 안타까운 목숨들이다.
인도에 와서 인생을 배우는구나.
결코 웃음이 없는 그들의 얼굴에서 행복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델리를 대표하는 상징물 꾸뜹 미나르로 이동한다.
우뚝 솟은 거대한 승전탑이 화려하여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나무도 아니고 종이에 그린 것도 아닌데
돌에다 어쩌면 저렇게 섬세하고 아름답게 조각을 할 수가 있을까?
새삼 그들 조상들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무려 72미터의 높이에 5층탑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사암과 대리석으로 각 층의 색깔이 구별되어 있다.
또한 1층은 흰두의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2,3층은 이슬람의 양식으로 지어져 그 독특함과 매력적인 조각이 인상적인 탑이다.
꾸뜹이 델리를 정복했다는 승전의 기념으로 지은 승전탑으로 예전에는 내부까지 구경이 가능했으나, 높은 곳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불미스러운 사고로 현재 내부는 공개되어 있지 않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 화장터 추모공원을 들러 경건한 마음을 표현하고
다음은 인도에서 가장 큰 이슬람사원인 자마 마스지드.
복잡하고 지저분한 시장과 민가를 통과해 겨우 도착했다.
인도는 어느 사원이든 사원을 들어 갈때는 꼭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덧버선으로 갈아 신고 큰 사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옷차림도 검색한다.
특히 여자들은 입구에서 대여해주는 천을 두르고 입장하였다.
우리 일행도 금방 인도 여인네가 다 되었다.
발이 시려웠지만 엄숙하고 큰 규모의 사원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이 사원에는 한번에 2만여명에 달하는 이슬람교들이 예배를 드릴수있는 규모라고 한다.
무굴제국 시대의 왕도인 델리의 명소 랄 낄라(붉은성)과
영국식민지 때 총독관저로 사용되다 현 대통령궁으로 쓰고 있는
대통령 궁을 버스로 이동하면서 스쳐가고
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대로 참전한 인도군인을 위해 영국인이 건립한 인디아 게이트로 이동했다.
얼핏보기에는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켰다.
한쪽에서는 군대 사열 연습이 한창이었다.
밤 기차가 연착이라고 연꽃사원을 더 관람하기로 했다.
인도의 바하이사 사원(연꽃사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중의 하나.
하얀 대리석으로 27개의 연꽃 입을 표현한 높이 35m 사원으로
연꽃이 반쯤 핀 모습을 영상화하고 있다
이제 기차를 11시간 타고 바라나시로 이동을 해야한다.
일찌감치 저녁 식사를 하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미 밤안개가 2,3미터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기차가 연착되어 저녁 8시쯤 출발 예정이란다.
어스름 밤이 되었다.
버스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서
기차역 가까운 트럭 하치장 같은 곳에서 버스 속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누군가가 어디서 튀어 나올지도 모르는 어두컴컴한 곳,
사방에서 오줌 냄새가 나고
쓰레기 더미와 낡은 트럭들로 둘러 싸여 길이 알 수 없는 그 곳.
밤이 되자 추위도 함께 몰려왔다.
어젯밤 추위에 떨며 한잠도 못 잔 상태에서
하루 종일 관광한다고 돌아다녔더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이 나라 버스도 난방이 안 된다.
버스 속에서 또 다시 추위와의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따뜻한 옷을 잔뜩 입고 오리털로 몸을 감싸고 버스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잠을 청해 보았다.
이리뒤척 저리 뒤척.
기차가 밤 11시 30분이나 되어야 온다고 가이드가 전해준다.
이 나라는 시간 관념도 없나? 오면 오고 말면 마나? 급한 것도 없다.
더딤의 미학? 여유의 미학? 좋은게 좋다고 여기까지는 좋게 이해해 보자.
몇 시간을 버티다 보니 추위가 뼈 속까지 파고든다.
화장실이 급하다.
사방에서 무섭게 생긴 인도인들이 언제 덮칠지 모를 상황이라
가이드를 따라 손잡고 단체로 화장실로 이동했다.
악취나는 화장실 안쪽 바닥에도 거적을 덮고 누워자는 사람이 있었다.
인도 화장실은 화장지가 없다.
볼일을 보고나서 한쪽에 있는 물을 손을 사용해서 뒤를 닦고 나오게 되어 있다.
무서움에 떨며 볼 일을 보고 일행 모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화장실 이용료를 내고 나왔다.
또 다시 새벽 1시 30분쯤에 기차가 온단다.
아무도 기차가 어디쯤 오고 있는 지 언제 도착할 지 알 수 없는 상태란다.
천근만근 늘어진 몸으로 그래도 버스에서 추위에 떨면서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몇 시간을 더 참아본다.
다시 새벽 4시 30분쯤으로 연착한단다. 아예 포기하고 잠을 청하는 수 밖에 없다.
잠깐 살픗 잠이 들었나 보다.
기차가 30분 후에 도착한다고 가이드가 잠자던 우리들은 급히 깨웠다.
드디어 출발하나 보다.
새벽 4시다. 시간이 급하다. 얼마 남지 않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일행은 버스에서 급히 짐을 챙겨 길도 없고 더럽고 아주 어두운 그 곳을
온 힘을 다해 빠른 걸음으로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차역까지는 꽤나 멀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에서 큰 짐을 이끌고
일행에서 이탈될까봐 일사불란하게 우리는 움직였다.
잘못하면 국제 미아가 되는 상황.
찬 바람을 가르며 높은 기차역 계단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무거운 가방을 끌어 올려가며 뛰다시피 선로 옆 승강장에 도착했다.
누구하나 한 마디 말도 없었다.
기차가 이제 저 쪽에서 달려오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기차 침대에서 11시간을 자면서 가면 되는 것이다.
기차 속은 좀 따뜻할까?
그제서야 철로를 따라 짙은 안개 속에서
수많은 인도 사람들이 짐을 베게 삼아 얇은 천만 덮고 누워자면서
기차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추위에 안제 올지도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며 노숙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
인생이 뭔지 또 한번 생각케 한다.
그런데 그 곳에서 30분을 기다려도 한 시간을 기다려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노상이라 너무 많이 추웠다.
입이 얼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발도 감각이 없다.
더운 나라 인도에서 얼어죽었다는 세계 뉴스거리가 되겠다.
첫댓글 여행기를 책으로 보는 느낌이네요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닌듯.......고생한 만큼 더 기억속에 많이 남는게 여행인거 같아요.
사진은 단체 사진이 많아 개인정보 및 초상권 침해가 될 것 같아 올리지 못해 많이 아쉽네요.
누난 초상권 침해 당해도 괜찮아
역시 국어선생님이라 글솜씨가 남과 다르다는...ㅎ 좋은여행기 감사드립니다~
글을 보니 이전에 카페지기님 여행기랑 사진에서는 푸우푸우님 여행기가 떠올라요.. 겹치는 부분이 있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부분은 다르니까요~내용이 길어서 속독으로 읽었네요. 시간날때 정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