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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사이펀문학토크: 김수우-김참 시인
‘초록 거미’와 ‘뿌리주의자’의 세계
▪초대시인: 김수우, 김참 시인 ▪대담: 박대현 문학평론가
박대현: 오늘 계간 《사이펀》 주관으로 김수우 시인과 김참 시인 두 분을 모시고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김수우 시인은 작년에 뿌리주의자(창비, 2021)를, 김참 시인은 올해 초록 거미(신생, 2022)를 출간하셨습니다. 한국 시단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을 하고 계신 두 시인을 이 자리에 모시고 두 분의 시 세계에 대한 말씀을 나누게 되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두 시인의 이력을 살펴보면 공교롭게도 등단 시기가 비슷합니다. 김수우 시인께서는 1995년 《시와 시학》을 통해 등단하셨고, 김참 시인께서는 같은 해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하셨습니다. 김참 시인은 1995년 겨울에 등단한 걸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김수우 시인이 조금 더 문단 선배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1995년은 27년 전입니다. 30년에 가까운 아주 긴 세월입니다. 27년 동안 김수우 시인은 6권의 시집과 산문집 십여 권, 호세 마르티의 번역시집 1권과 호세 마르티의 평전까지 번역 출간하셨습니다. 김참 시인 또한 만만치 않으신데 6권의 시집을 내놓으셨습니다. 시집 출간 수만 놓고 보면 역시 두 분 시인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시작이 데뷔 연도인 1995년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95년을 전후한 두 분 시인의 삶의 풍경이 궁금해집니다. 습작기를 벗어나 본격적인 시인의 삶을 살게 되었던 그 시기의 풍경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을는지요?
김수우: 1995년 그 무렵엔 제가 외국에서 13년 만에 귀국하여 다시 학업을 시작한 즈음입니다. 전 부산진여상 문예부장 출신입니다. 청소년 시절 전국 백일장을 전전하며 보냈고, 시인이 될까, 소설가가 될까, 저도 고민하고 주변 선생님도 고민해주었지만 결국 가정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잠깐 했지만 스물셋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서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모리타니)으로 떠났죠. 조선 시대도 아닌데, 아버지가 가라고 간 결혼이었어요. 남편은 누아디부라는 항구도시에서 현지 어업기술보조로 근무했었는데, 원양어선을 타던 아버지 배가 그곳에 머물렀다가 딸을 그냥 거기에 팔아버린 것이죠. 멋모르고 데이트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아버지가 가란다고 간 그 사막에서 2년 반을 살면서 첫아들을 낳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결정이었는데, 어쨌든 나중에 세 번째 시집 『붉은 사하라』가 태어난 모티프이기도 합니다.
김참
다시 스페인 카나리아제도로 이사해서 다시 십 년을 지나고 한국에 돌아온 게 93년도입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게 문학 공부였습니다. 본격적인 습작을 시작했고, 학사고시를 통해 국문학을 공부하는데, 서점에 가서 괜찮은 문학 잡지를 뒤지는 게 그즈음의 중요한 일과였어요. 2년을 뒤지다가 제 마음에 든, 지금도 가장 오래된 시 전문 계간지인 《시와 시학》을 선택했고, 투고하게 되었죠.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은 엄마처럼 제 문학에 부끄럽지 않고 싶어 시작한 공부는 3년 만에 학사를 받아내었는데, 이어서 경희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늦깎이 공부로 허겁지겁 좌충우돌, 헤맨 시절입니다. 대전에 살았고, 아이들 키울 때라, 어찌 그 시간을 넘겼는지, 서울까지 어찌 통학했는지 저도 그 시절이 참 아득하네요. 지금은 그리 못할 것 같아요.
김참: 등단한 1995년도는 제대 후 복학을 한 2학년 때였습니다. 그동안 쓴 시를 《현대시사상》에 투고했는데 최종심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얻어 다른 시들을 《문학사상》에 투고했는데 당선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대시사상》도 《문학사상》도 이승훈 선생님이 심사하셨더라고요. 이승훈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아직 문학청년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등단 이후에 원고 청탁을 받지 못해서 잡지 몇 군데에 시를 투고했는데 실리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1년 뒤인 1996년 겨울부터 잡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문단 선배들과 교류가 전혀 없었는데 「청동시대」 동인 활동을 하면서 여러 문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를 쓰던 이찬, 손택수, 최갑수, 평론가 하상일, 허정 등이 동인이었어요. 이때가 1998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후에 허만하, 최영철, 김형술 선생님을 비롯한 부산의 여러 선배 시인들과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박대현: 두 분의 등단 시기를 전후한 삶의 풍경에 대해서 들어보았습니다. 시를 꿈꾸거나 시를 써오신 분들이라면 시인의 등단 시기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가질 듯해서 여쭤본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 시인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지 듣고 싶네요. 듣기로는 김수우 시인의 어린 시절은 책을 읽으면 혼나는 다소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던 것 같고, 김참 시인 역시 시를 쓰기 시작했던 10대 시절이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시인과 예술가들, 그리고 특별히 아꼈고 지금도 아끼고 있는 시집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수우: 제가 생각해도 초등학교 때부터 유별난 독서광이었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문제는 그 시절은 책이 귀하던 때죠. 영도 산복도로 단칸방에서 대여섯 식구가 사는 가난한 환경이라 책은 구경도 하기 어려웠고, 겨우 만화방 들락거리는 것도 사치였어요. 떠올려 보면 제 독서는 참 비굴하게 출발했죠. 훔치거나 빌려보는 게 다였는데, 책이 있는 곳이면 그 언저리를 뱅뱅 돌며 눈치를 보았죠. 책이 있는 친구들만 따라다니구요. 전 대신동 중앙여중을 다녔는데, 그 무렵 가족들이 영도에서 양정 하마정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제법 먼 길을 통학해야 했어요. 영도에 살 때는 대신동에서 영도까지 걷는 게 괜찮았어요. 하지만 하야리아 부대 넘어서 있던 하마정까지 대신동에서 걷는 건 무리였어요. 그런데도 그 길을 제가 걸어 다녔어요. 엄마가 준 버스비는 책 대여비로 나갔죠. 당시 좌석은 15원, 입석은 10원이었는데, 그 돈 아껴 책 빌려보느라 그 먼 길을 걸었던 거죠. 구덕운동장을 지나 영주동 터널을 지나 범일동을 지나 범내골을 지나 양정까지였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연히 학교 성적은 엉망이었구요. 그땐 전깃불도 아끼던 시절이라 책 읽느라 밤에 불을 켜 놓은 일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는데, 그것도 도둑질처럼 모든 사람이 다 잠든 밤까지 기다려 살금살금 불을 켜 읽곤 했죠. 그러다 쥐어박히고. 학교에서 IQ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데 성적이 나쁜 아이 순번에 끼여 상담실에 자주 불려 다녔어요. 결국 상담교사는 제게 병명을 붙였는데, ‘무분별한 독서로 인한 정서장애’였어요. 엄마가 학교로 불려왔고, 학교 선생님들까지 제 독서를 감시하게 되었어요. 책을 뺏기고, 책으로 뒤통수를 수도 없이 맞았죠. 제 말이 너무 길었군요.
그렇게 십 대를 보냈는데, 그 당시에 특별히 영향을 받은 작가는 없었던 것 같고(모두가 좋아하던 윤동주가 있긴 하지만), 늦깎이로 공부하면서 제게 문학인의 자세를 보여준 어른은 있어요. 전 방외인 김시습의 문학과 학문, 모두 다 좋아합니다. 김시습 하면 『금오신화』를 떠올리지만 전 『매월당 시집』을 아낍니다. 2,200수 가량 되죠. 특히 김시습의 진지한 탐구정신은 학문이든 시든 소설이든 매우 자유로운 형식을 입고 있죠. 그보다 제게 울림을 준 건 그 대작가가 늘 고독과 고뇌 속에서 방랑했다는 겁니다. 전 늘 그의 절망과 의기와 고독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힘들 때마다 김시습이 응시했을 그 어딘가를 떠올려 보곤 하죠.
박대현: 예, 말씀 감사합니다. ‘무분별한 독서로 인한 정서장애’라는 말이 인상 깊네요. 어린 시절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이런 종류의 장애 아닌 장애를 가질 법도 합니다. 다른 아이들과는 아무래도 남다른 면이 있어서 일반적인 시선에서는 이상하게 보일 법도 하겠지요. 이제 김참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실까요?
김참: 중학생 때까지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대부분 소설이었죠. 그림을 제법 잘 그려서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화가가 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록 음악에 빠져서 친구들과 음악감상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많이 들었죠. 화가의 꿈은 접었고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습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옆자리의 친구가 시를 썼는데 자기가 한 줄 쓰더니 저 보고도 한 줄 써보라고 해서 쓰기 시작했죠. 처음엔 심심풀이였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했던 습작이 꽤 많습니다.
영향을 준 시인은 많아요. 고등학교 시절엔 이상과 옥타비오 파스를 좋아했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는데 군대에서는 시를 쓰기 어려웠습니다. 주특기가 무전병이었는데 상병이 되고 나서는 무전실에서 틈틈이 시집을 읽을 수 있었어요. 이기철, 홍영철, 김혜순, 기형도의 시집을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끼는 시집은 많습니다. 특히 1970-80년대에 대구‧경북에서 활동했던 시인들의 시집 중에 좋은 시집이 많죠. 잘 알려진 시집들 외에도 박정남, 정화진, 백미혜, 박기영 시인의 첫 시집을 좋아합니다. 그중에 박기영 시인의 『숨은 사내』는 추천하고 싶은 좋은 시집입니다.
시 쓰기에 영감을 많이 준 건 시보다 음악이었습니다. 예술이 추구하는 건 아름다움인데 시보다 음악이 더 아름답게 다가왔거든요. 특히 즐겨 들었던 아트록은 일반적인 록 음악보다 훨씬 아름다운 편이었습니다. 훨씬 실험적이기도 했죠. 60년대와 70년대에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에서 활동했던 아트록 밴드의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박대현: 김참 시인은 시를 즐겁고 행복하게 쓰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를 쓰는 게 행복하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음악 애호가를 넘어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갖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역시 시에도 음악성이 다분히 녹아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다음 질문은 이번에 출간하신 시집 제목에 대한 것입니다. 김수우 시인의 시집 제목이 뿌리주의자입니다. ‘뿌리’는 일상적인 비유체계 속에서도 근원, 근본을 의미합니다. 시인의 시적 정체성에 관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시집을 뿌리주의자로 하신 이유와 그 의미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김참 시인의 시집 제목은 독특하게도 초록 거미입니다. 색채 이미지와 구체적인 동물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이 이채롭습니다. 초록 거미를 시집의 표제작으로 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참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해주시겠는지요?
김참: 시집의 표제는 「공명」이라는 시에 나오는 초록 거미에서 따왔습니다. 이 초록 거미는 상상 속의 거미입니다. 바위에 나선형의 구멍을 뚫고 사는 거미는 없으니까요. 이 시에서는 거미 이미지보다는 나선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소라고둥에 귀를 대면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나선형의 사물은 소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을 할 수 있죠.
초록 거미가 사는 그 집의 입구에 귀를 가져다 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귀도 나선의 형태를 갖춘 데다 달팽이관까지 있으니 두 방향의 소리가 이중의 나선 공간에 갇혀 소용돌이를 일으키지 않을까요. 그런 상상을 하며 쓴 시입니다. 나선은 또 우주의 형상이기도 하죠. 시는 내가 사는 세계와 우주에 대한 받아쓰기라고 할 수도 있고요. 시집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가 바로 초록 거미가 사는 나선형 집과 제 귀의 나선, 이 두 개의 나선이었기 때문에 이 시를 표제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김수우: 여섯 번째 시집을 준비하는 5년 내내 제가 염두에 둔 제목은 ‘해골’이었습니다. 시집을 읽은 분은 알겠지만, 전반적으로 죽음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뼈’ ‘뼈다귀’ 등이 많이 나오죠. 삶의 뿌리는 죽음이지 않습니까. 다섯 번째 시집인 몰락경전에서 하강 또는 몰락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면 뿌리주의자에서는 하강의 더 아래, 가장 밑바닥인 죽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죽음의 지혜라고 할까요. 그런데 출판사와 주변인이 모두 ‘해골’을 반대하더군요. 나름 궁여지책으로 뿌리주의자로 했어요. 이 시대가 뿌리를 회복했으면, 생명의 뿌리, 인류의 뿌리가 무엇인지 등의 질문이 담겨 있다고 할까요. 뿌리가 건강하면 둥치도 줄기도 잎도 건강한 법이니까요. 죽음에 대한 지혜가 먼저 있어야 삶의 지혜가 생기지요. 죽음을 이해하지 않으면 삶도 이해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박대현: 두 분 말씀을 들어보니 시집 제목에 대한 이해가 확연해집니다. ‘초록 거미’는 시인과 자연의 조화롭고 신비로운 공명을 상징하는 제목이 드는군요. 김참 시인이 추구하는 음악성이 아무래도 우주의 율동에도 맞닿아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우 시인의 시집 제목이 원래 ‘해골’이었다는 말씀을 듣고 보니, 이 시집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어떤 절망감이 비로소 이해가 되는 듯도 싶습니다. ‘해골’이 상징하는 죽음이 우리 삶의 뿌리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뿌리주의자’는 원래의 제목인 ‘해골’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다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야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현실에 대한 절망은 삶의 새로운 희망을 위한 진정한 뿌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시인의 시 세계 변화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시인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라면 역시 시집 출간입니다. 두 분 모두 등단 이후 6권의 시집을 출간하셨으니, 적어도 4~5년마다 1권씩 출간하신 셈입니다. 4~5년의 작업이 시집 한 권으로 나오는 것에 대한 소회는 늘 남다를 것 같습니다. 시인의 시집 출간은 시인의 내적 성장, 즉 시 세계의 변화와 심화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뿌리주의자와 초록 거미가 변화와 심화의 측면에서 이전 시 세계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는지요?
김참: 초록 거미는 그동안 제가 시집으로 묶은 시와는 다른 성향의 시를 묶은 시집입니다. 다수의 시가 일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제 기억과 체험을 담고 있습니다. 기존에 출간했던 5권의 시집이 대부분 환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록 거미는 앞서 출간된 시집과 성향이 다릅니다. 자기 체험과 일상이 담긴 시들을 묶어서 시가 변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동안 환상적인 시만 써왔던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소재의 시도 종종 써왔습니다. 시집으로 묶지 못하다가 이번에 한 권으로 묶게 된 셈입니다. 그래도 일상적인 내용을 담은 시를 최근 들어 많이 썼고 그런 시들이 많이 수록되었으니 어느 정도 변화가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김수우: 앞의 이야기와도 연계가 되겠군요. 세 번째 시집 붉은 사하라에서는 모래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사막의 모래가 다 어디서 왔냐는 거죠. 그것도 다 뼛가루이고 우주의 근원적인 원소죠. 근원에 대한 존재론적인 고민을 담았다고 할까요. 네 번째 시집이 젯밥과 화분인데, 여기서는 제의의 회복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인류의 미래는 제의를 회복하는 방식에 있다고 믿어요. 제의는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것들이죠. 우리 민족의 뿌리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접화군생(接化群生)’, ‘시천주(侍天主)’ 사상 모두 제의의 형식이죠. 다섯 번째가 몰락경전인데, 인간이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겁니다. 몰락하는 법을 말하고 싶었죠. 지속적인 성장을 멈추고 겸허하고 낮게 엎드리는 방식과 그 절실함을 고민했어요. 그리고 뿌리주의자가 나왔습니다. 계속 죽음에 접근하고자 했어요. 죽음은 가장 큰 존재의 수원지이죠. 그러다 보니 ‘자발적 가난’과 ‘청빈’이 전체의 줄기가 되었어요. 그러고 보면 주제어는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계속 존재가 심화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박대현: 두 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눈이 다소 밝아진 느낌입니다. 초록 거미는 김참 선생님의 시적 경향이 달라서 평소에 써둔 시들 가운데 시집에 넣지 못한 작품들을 시집으로 엮었거나, 아예 시적 경향을 달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두 가지 추측이 있었거든요. 김수우 선생님의 말씀은 지금까지의 시 세계에 시적 의미의 심화와 지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다소 가벼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6권의 시집 가운데서 독자들에게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자신의 시집과 새로 출간하신 시집 중에서 반드시 읽고 작품에 대한 깊은 음미를 해주셨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김참: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시집 『미로 여행』을 아끼지만, 이 책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어요. 시의 완성도 면에서는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초록 거미에서 음미해 주셨으면 하는 시는 마지막 시 「눈이 내린다」입니다. 이 시에서는 버스에서 담배 피우는 남자의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예전에는 기차에서도 버스에서도 담배를 다 피웠잖아요. 이제는 카페에서도 술집에서도 담배를 못 피웁니다. 요즘엔 길에서도 눈치가 보여서 담배를 피우기 어렵죠. 그런데 시에 나오는 이 남자는 몸만 현재에 있고 정신은 과거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공 시절도 아닌데, 눈길에 멈춘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까요.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엔 법규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는 기이한 남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버스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던 그 시절, 기차에서 맥주를 마시던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저는 시가 우리를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어떤 곳으로 데려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이 내린다」는 그런 제 생각을 담아낸 소품입니다.
김수우: 몰락경전에 있는 「뒤」와 뿌리주의자에 담긴 「겹」을 권하고 싶습니다. 앞만 바라보고 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요. 전 행복도, 돈도 다 뒤에서 오고 있다고 믿습니다. 묵묵히 행동하다 보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앞에 있지 않고 뒤에 있지요. 앞에 있다고 열심히 좇아가다 보면 절대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갈증만 있죠. ‘진인사대천명’ 같은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삶이, 생명이, 가치가, 시간이 얼마나 무수한 ‘겹’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보자는 말입니다. 보이는 것들은 그야말로 환(幻)입니다. 이미지만 있지 실체가 없습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를 실재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말이지요. 전 매사 이 보이지 않는 잣대를 이용하는 편입니다.
박대현: 두 분 선생님의 시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이 있다면, 방금 이 말씀들을 꼭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질문을 두 분 시인께 하나씩 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김수우 시인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김수우 시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열쇠 말은 생명, 죽음, 노동, 연대, 그리고 혁명일 것입니다. 시인의 쿠바에 대한 애착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사회적 약자가 존중받고 연대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대한 열망이 무척 큰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뿌리주의자 역시 그러한 맥락을 관통하고 있는 시집으로 여겨집니다. 무엇보다 시인께서는 시인의 주체가 단일한 개별자로 놓여 있지 않고 뭇 생명과 존재들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시인의 주체관은 「훈장」에서 명징하게 드러납니다. “이번 생은 수천 생을 바쳐 받아낸 훈장입니다.”라는 문장이 암시하듯이, 시인의 생명과 그 이전 모든 생명 사이에 내재한 관계의 실체를 직관적으로 감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체관과 생명관은 결국 모든 생명체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지고 있고 사회적 약자, 즉 노동자에 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인간 존재의 근원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차가 시를 쓰시고 산문집을 내시고 백년어서원을 운영하시는 사유의 총체를 이루는 근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김수우: 전 오래전부터 ‘왜 문학은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는가?’를 고민해왔습니다. 문학인이 이리도 많고, 시인과 예술가들이 넘쳐나는데 왜 사회는 극단적인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걸까요? 오히려 보이지 않는 폭력이 더 넘쳐나고 있지요. 내가 쓰는 시가 그런 비인간적인 환경을 조금도 개선하지 못한다는 게 고통스러웠어요. 결국 문학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었지요. 김수영 스터디를 3년 정도 한 적 있는데, 사회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는 자위적인 문학에 대해 반성했어요. 그런 성찰 끝에 <백년어서원>을 열었습니다. 누군가와 문학의 책무를 함께 고민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쿠바에 가서 조금 가까운 답을 얻었습니다. 호세 마르티라는 시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의, 너무나 머나먼 남의 나라 시인이지만, 그가 고민한 것이 ‘문학의 소명’이었어요. 그는 이런 말을 했죠. “억압받고 있는 국가에서 시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혁명 전사가 되는 것뿐이다.” 지금 우리는 억압하고 있는 것은 자본이라는 독재자죠. 그는 ‘사랑의 사도’라고 불릴 만큼 사랑과 자연, 자유를 강조했지만, 혁명가로 살 수밖에 없었죠. 그게 문학이었으니까요. 그는 스페인 식민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는 독립전쟁을 준비하고 일으키고 그 전쟁에서 42살로 전사하지만, 가장 문학적인 실천을 보여준 시인이죠. 시인에게 사랑이란 그러한 인간을 억압하는 것과 투쟁하는 힘이 아닐까요. 그것이 그의 모든 작품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까닭이겠지요. 지금 시대는 아무리 훌륭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그저 소비재로 만들죠. 문학도 예술도 인문학도 사람들은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 소비를 존재로 바꾸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문학이 그 맨 앞줄에 서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영혼을 움직이고 성찰과 실천에 이르도록 말입니다. 그러려면 문학이 행동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문학과 행동이 다르면 사람들은 문학을 믿지 않고 소비하고 맙니다.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닌가요.
박대현: 김수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선생님의 시 「천수천안(千手千眼)」이 떠오릅니다. 어느 시집에 실려 있죠?(김수우: 몰락경전입니다.) 이 시는 민중의 심성을 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에 빗대고 있습니다. 조셉 캠벨이 인류의 신화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 보살 신화는 입멸의 단계에 접어든 보살이 중생의 고통에 찬 소리를 듣고는 자신의 해탈을 포기하고 다시 중생의 세계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계에 고통받는 존재가 단 하나라도 있는 한 자신의 입멸을 포기하겠다는 것인데요. 혁명과 문학의 근원은 모두 이러한 보살의 대자대비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 개의 손이 갈라져 나오고 그 손마다 눈이 돋아난다는 건 민중의 고통을 잘 들여다보고 위무한다는 의미가 있겠지요. 오늘날 문학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에는 김참 선생님께 질문하겠습니다. 김참 시인을 규정하는 오래된 열쇳말은 꿈과 환상입니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는 놀랍게도 환상이 일상적 서정으로 변화되는 국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은 환상의 농도가 옅어져 일상의 풍경이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 시집에서 잘 볼 수 없는 장소가 언급되고 있는 사실도 이채롭습니다. 「북창선」, 「밤의 중사도」, 「낙동북로」, 「밀양」, 「절영도」처럼 시인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장소들이 형상화되어 있기도 합니다. 특히 「밤의 중사도」와 「절영도」는 무척 아름답습니다. ‘중사도’는 예전에 시인이 언급한 적도 있어서 가본 적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하중도였습니다. 영도의 옛 이름인 「절영도」 역시 시인의 이전 시에서는 보기 힘든 정서가 발견됩니다. 아련한 과거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 말입니다. 김참 시인이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일까요? 전반적으로 마음 뭉클한 서정이 시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언급 역시 시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환상의 무중력 상태에서 지상의 중력으로 되돌아온 듯한 느낌도 듭니다. 거기서 새롭게 탄생한 이미지로 가득한 시집이 초록 거미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이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김참: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들 가운데 대부분은 양식(style)적인 면에서 교술시입니다. 자기 체험을 시에 담아낸 것이죠. 허구가 개입되지 않은 이 시는 일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저는 그동안 이런 시들도 종종 써 왔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이런 시들을 좀 더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일단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 아이가 시 속에 들어온 것이 그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게다가 아이 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하는 과정에서 2년 가까이 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생활했는데 그동안 아이와 둘이서 살았어요. 「나비」, 「거미」 같은 시들이 그 무렵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집에는 그동안 이사하면서 살았던 장소에 관한 시들도 제법 있습니다. 「북창선」은 10살 때 1년 동안 살았던 남해의 섬 창선을 배경으로 쓴 시입니다. 집 밖의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로 비탈진 밭들이 있고 그 아래 펼쳐진 바다와 아침이면 울리던 뱃고동 소리를 기억하면서 쓴 시죠. 「사라진 마을」은 중학교 다닐 때 살았던 만덕동을 배경으로 하는 시입니다. 저는 만덕 2동에 살았는데 친구들이 살았던 만덕 1동은 재개발로 옛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죠. 저랑 친한 친구가 살아서 자주 놀러 갔던, 지금은 사라진 만덕 1동의 옛 모습을 상상하며 쓴 시입니다. 시집에는 그 외에도 부산에서 이사 와서 처음 살았던 화명동, 고등학교 시절부터 살았던 덕포동을 배경으로 쓴 시도 있습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진 김해에 살고 있는데 김해를 배경으로 쓴 시가 가장 많죠.
말씀하신 「중사도」는 몇 해 전까지 즐겨 산책하던 작은 섬을 배경으로 쓴 시입니다. 중사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부산이지만 김해에 더 가까운 섬입니다. 고즈넉해서 산책하기 좋은 섬이죠. 그곳에서 산책하며 본 것들과 생각했던 것들을 옮긴 시입니다. 「밀양」은 신문사 연재 산문을 쓰기 위해 경남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중 얼음골 사과밭에서의 보낸 시간을 생각하며 쓴 시입니다.
「절영도」는 소설가 조갑상 선생님의 산문집 『이야기를 걷다』를 읽다가 깜짝 놀랐던, 호랑이 이야기를 시로 써보고 싶어서 태어난 시입니다. 불과 100년 전에 범내골에 살던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바다를 헤엄쳐 건너 영도에 말을 잡아먹으러 갔다는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절영도는 영도의 옛 이름이죠. 그림자가 끊어질 정도로 빠른 말들이 살았다고 해서 절영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호랑이들은 산꼭대기에서 돌아다니다가 바다 건너 섬에 돌아다니는 먹잇감을 발견한 겁니다. 옛날엔 영도에서 제주도처럼 말을 방목해서 키웠는데, 배고픈 호랑이들이 용기를 내어 바다를 건너간 거죠. 영도에 있던 옛날 전차 종점 이야기도 인상적으로 읽었던 터라 「절영도」를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것들에 초점을 맞춘 셈인데, 이번 시집엔 그런 내용이 제법 많습니다.
이런 시들 때문에 환상의 무중력 상태에서 지상의 중력 상태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셨다면 맞는 말일 겁니다. 그러나 완전히 내려 온 건 아니라서 다음 시집은 또 무중력의 세계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박대현: 개인적으로는 무중력과 중력의 세계를 절묘하게 오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초록 거미가 보여주었던 일상의 풍경과 서정이 묘한 환상적 아름다움이 매우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환상시를 써왔던 시인이 일상을 주목하게 되었을 때 발생하게 되는 예기치 않은 시적 울림은 색다른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시문학사에서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하시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시인의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말씀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김수우: 지금 나이가 되니까, ‘마음을 비우자’ 생각하는 것도 욕심이더군요.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든 철학도 모든 문학과 예술도 결국 윤리, 우주적 윤리를 깨닫기 위한 것이더군요. 타자의 윤리를 향해 나가지 않으면 어떤 새로움과 어떤 아름다움도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글하고 삶하고 똑같았다는 소리를 듣는 작가이고 싶어요. “자기가 글 쓴 대로 사는 사람 처음 봤다”는 말을 누군가 하길래, 정말 그런 작가로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지요. 쉽지 않겠지만. 그리고 전 ‘부지런하다’는 걸 중요하게 여겨요. 게으름이 미덕이 된 사회지만 부지런하지 않으면 타자를 향해 나아갈 수가 없죠.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챙기는 부지런한 문학, 하고 싶어요. 그게 혁명이라고 믿으니까요.
김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라 답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기억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먼 훗날에도 누군가 제 시를 읽으며 가끔 제 생각을 하는, 그런 시인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박대현: 예, 오늘 귀한 말씀들 고맙습니다. 이것으로 김수우, 김참 선생님과의 대담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