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달라이 라마14세
/ 운월스님-백운선방
이번 존자님의 뉴욕법회는 콘글라 라토 린포체와 영화배우인 리차드 기어의 주선으로 9월 17일 -21일까지 맨하탄 74가에 있는 Beacon 극장과 센츄럴 공원에서 열렸다. 비콘 극장은 아름다운 조각과 은은한 실내장식의 고전적인 모습을 한 극장으로 3층까지 있는 영화에 나와는 오페라 극장같은 곳이다.
존자님의 법회는 항상 그렇듯이 용맹정진의 법회이다. 아침 10-12시, 오후 2-4시 까지 특별히 준비된 교재로 법회는 시작되었다.
태풍 이사벨 때문에 혹시 사람들이 모이자 않을까 했던 걱정은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았다. 3층까지 자리는 만원이라 3천 석이 넘는 자리는 서서 듣는 관중까지 꽉 차 있었다.
한국인들 같으면 한창 일한 시간에 이렇게 모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옆을 둘러보니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불교와는 다르게 남녀의 숫자는 균형을 이루었다. 전통적인 서양인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예상외로 인도인들도 많이 보이고 중국인 정확하게는 대만인들도 보였다.
불교에 심취한 서양인들은 세련된 매너와 아름다운 눈빛으로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업에서 잠시 해방된 사람도 있고 은퇴한 사람도 있고, 가르침을 위해 시간을 낸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이렇게 한 마음이 된 극장 안은 그대로 극락세계 같았다.
배우들이 공연하는 무대에서 법회하시게 된 존자님을 뵈니 인생은 배우뿐만 아니라 누구나 연극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극본이 진실인가 하는 다름만 있을 뿐이라는-----
무대 중앙에 대형 괘불이 걸렸고, 그 안에 법석이 준비되고 티벳 스님들도 150분 정도 무대를 장엄하고 법문을 들으려 모였다. 뉴욕의 특성에 맞게 스님들도 태국, 대만 일본 등 다양하게 모였다.
존자님이 법석에 오를 때 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히고 양손을 합장하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스승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눈의 서양인들이 티벳의 전통 예절을 갖추고 스승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존자님은 언제나 그렇듯이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면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셨고 중앙에 3배를 한 후 법석으로 올랐다. 3년전 인도 북서쪽 스피띠에서 열린 '칼라 차크라'대회를 마지막으로 뵌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뉴욕에서 뵙게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작년에 시킴에서 독살 당할 번 했다가 회복하였다는 말을 쏘모를 통해 듣긴 했지만 세월이 존자님을 그냥 두지 않아서 전보다 수척하고 여윈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법문을 하는 목소리는 더욱 확신과 청아함이 돋보였다.
이번 법회는 인도 철학의 각파에서 주장하는 것에 대해 그 타당성을 검토하면서 불교와 차이점을 밝히는 내용으로 인도 철학의 10학파가 모두 거론되는 매우 깊이 있고 난해한 내용이었다. 특히 실상(實相)과 공(空), 자아(自我), 불성(佛性), 중도(中道) 등 불교의 기초 개념들이 총망라되며 각 파의 주장과 차이점이 검토되었다.
존자님은 티벳어로 법문하고, 티벳인이 영어로 통역하였으며 그 옆에는 리차드 기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존자님은 통역자가 통역을 잘못하거나 잊어버리면 곧 교재의 위치를 찾아주셨는데 아마 모든 내용을 외우고 계신 듯 했다. 연세가 70이 가까운 존자님도 여전히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는 것을 뵐 때 우리들의 게으름이 부끄러웠다.
대중들은 노트를 준비해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면서 고요하게 경청하였고, 때로는 박수로 응답하고 환호성으로 반응하였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부부들이 책과 노트를 들고 진지하게 공부하는 자세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으로 보였다.
법문 중간에 지루하지 않도록 가끔 씩 좌중이 폭소가 터지도록 하셨는데 소위 고급유머를 사용하셨다.
불교의 기본 진리인 4성제를 시대 맞는 관점으로 풀이하셨는데, 단순히 고(苦)와 고의 원인(集)과 고의 소멸(滅)과 고에서 벗어나는 길(道)을 문자대로 법문하는 것이 아니라, 고(苦)는 바르게 인식되어야 하고, 집(集)은 그 원인이 어디에서 발생했는가를 고찰되어야 하며, 고의 멸(滅)은 실천되어야 하고, 고를 멸하는 길(道)은 계발되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이러한 지적이 불교가 이 시대를 깨우치게 하는 가르침으로 거듭나기 위한 본보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불교를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종교라고 사람들을 왜곡시키지만, 깨달음의 관점에서 윤회를 종식시키려는 성인의 가르침은 나고 죽는 것을 거듭하며 업에 끌려 돋고 도는 우리 모든 중생들의 삶의 모습이 바르게 인식되어야 하고, 특히 뉴욕에서와 같이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시대적인 어려움도 그 원인을 고찰해 봐야한다는 날카로운 지적인 것으로 들렸다.
센트럴 공원에서 법문은 마지막 날 102가에 단이 마련되었고 법문 전에 티벳스님들의 염불과 범패가 공연되었으며 무대는 대형 꽃 장식으로 장엄되었고 존자님은 의자에 앉으셔서 법문하였다.
마침 화창한 일요일이라 극장에 오지 못했던 모든 뉴욕의 불교 수행자들이 운집되어 그대로 한 세계가 형성되었다. 그 숫자는 어마어마해서 한 도시의 인구가 모두 모인 것 보다 많았는데 뉴욕에 이렇게 많은 숫자의 불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원에서의 법문은 이 시대 중생들의 오류를 맹렬하게 꾸중하시는 것으로, 우리 모두는 피부 빛깔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단지 인간일 뿐이며, 전쟁은 불법적(不法的)인 폭력이라고 지적하시면서 '비폭력' 대처 방안을 촉구하였다. 신에게 공양하는 가장 으뜸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을 때, 법회에 모인 대중들은 모두 기립 박수로 환호하였다.
인간의 양면성, 특히 감각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에서 인간의 잠재력을 정신적인 것의 계발에 역점을 두기를 강조하면서, 그 까닭은 인간의 행복은 감각에만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정신적인 면이 더 우수하며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윤회의 원인이 되므로)
또한 세상은 하나이며 한 몸이라 남을 해치는 것은 곧 자신을 해치는 것이고 진정 세계의 평화를 원하다면 가슴에서 나오는 자비로 상대방을 대해야 하며, 인간의 두뇌를 파괴적인데 사용해서는 안되고 건설적인데 써야 한다고 하셨다.
인간은 이기적인 성향이 기본이지만, 다른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무관심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행복을 창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발원하였다.
좀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이나 이념을 강요하는 단체가 아니라, 세상의 불의와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평화적인 단체를 만들어서 당신도 불러주면 동참하겠다고 하였다.
세계의 빈부의 차에 대해 잘사는 국가들이 탐욕만 부리지 말고, 인간의 고통을 제거시키기 위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미국내에서도 빈곤층들을 방치하지 말고 교육의 기회를 주고 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전정 미국을 위하는 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스스로 진리대로 실천하는 존자님의 법문은 대중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존자님의 법문은 막을 내렸다. 이 시대의 가장 정의롭고, 깊이 있고, 해박하며 자비롭고 아름다운 정신을 뵙고 가르침을 듣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었다.
존자님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며, 먼길에 오셔서 가르침을 주신데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2003년 10월 150호]
첫댓글 한국불교대학 회주이신 우학스님께서도 7월에 미주포교를 위해 떠나신다 합니다...저희들에겐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스님의 큰 원력에 의해서 많은 눈푸른? 납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증득하리란 생각을 하며, 부디 한국에서처럼 포교의 큰 성공을 거두시길 진심으로 부처님께 빕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