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생방송과 알찬 재방송
-대전 동구 국회의원 후보자 방송토론회에 다녀와서
기획/취재 : 대전작가회의 총선 르포작가단
대전 동구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방송토론이 열린 날은 4월 1일이었다. 이날은 봄의 문턱을 넘은 4월의 첫날이기도 하거니와 3월 31일 시작된 공식선거운동기간의 둘째 날이다. 이때 지역에서 열리는 후보자 방송토론회를 찾아 나선 걸음은 막 시작된 선거운동의 생동감과 열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이번 총선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 여야 할 것 없이 공천과정에서 불거진 기대 이하의 잡음과 어우러져 지역의 선거 판세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짐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CMB 대전방송에서 주관한 방송토론회는 오후 1시부터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방송일은 평일인 금요일이고 중촌동 고가도로 옆에 위치한 CMB 스튜디오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곳이었다. 여기에 기온도 평년 기온을 웃돌아 일반인이 토론회 현장을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역의 판세에 관심이 있는 유권자는 텔레비전으로 토론과정을 지켜볼 터이지만 몇몇 언론사나 관계자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는 의미가 있었다.
12시 30분경 방송사 현관 앞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은 방송사 직원이었고 정장차림의 남자 몇은 후보자들과 동행한 선거참모들로 보였다. 로비로 들어서자 헤드셋을 끼고 바쁘게 오가는 방송관계자 몇을 제외하고는 밖의 풍경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긴장된 기색 없이 잡담을 나누고 있는 각 후보 측 관계자들을 지나 스튜디오로 다가가자 방송사 직원이 상황을 알려준다. 생방송 시작 전에 후보자들의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으며 방송이 시작되면 모두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이나 열기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운 분위기이다.
아담한 스튜디오 안에는 카메라와 조명, 출연자 자리 등 익숙한 토론회 세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토론의 주인공인 국회의원 후보의 자리가 둘뿐이었다. 분명히 대전 동구에는 새누리당, 더민주당, 국민의당, 이렇게 세 정당 모두 후보를 냈으며 무소속도 두 명 입후보했다. 스튜디오 안에서 만난 기자의 전언이다.
“지금 동구의 현역 의원이자 새누리당 후보인 이장우 씨는 방송토론회에 불참을 통지해왔습니다. 방송토론회가 강제사항은 아니에요. 참석하지 않고도 벌금 조금만 내면 선거운동에 아무 지장이 없어요.”
선거의 쟁점이 오고 갈 토론회에 별다른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는 나른한 봄날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역 의원이자 여당의 후보자가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말은 팽팽하게 끈을 잡아줄 한쪽 손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끈은 바닥으로 늘어질밖에.
흔히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 우리 제도는 간접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이 정치적 사안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많은 사람에게 선거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선거는 정치적인 축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후보자들은 유권자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정책을 펼쳐 보이고 유권자는 선거라는 행위로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하는 자리인 것이다.
선거가 재미있는 이유는 또 있다. 불구경, 싸움구경이라는 말이 있듯 거칠게 말하자면 싸움구경이기 때문이다. 사회 안에서 수많은 생각과 정책이 공존한다.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사상과 정책들이 현실의 표면에서 공공연하게 서로를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선거이기도 하다. 지역구에서 발생한 일에 관해서도 다른 정치적 시각으로 다른 대안을 가지고 논리를 펴는 일이 공약이고 선거운동이다. 그런 발전적인 싸움을 보면서 유권자가 선택의 한 표를 내주는 것이 선거이다. 그러니까 발전적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후보자들의 역할이다.
현대 선거에서 후보자와 유권자의 소통의 장은 그리 많지 않다. 거리에서 한번 손을 잡는 일로는 어떤 정보나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지 못한다. 전단이나 연설, 인터넷의 자료처럼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시하는 방법 외에 후보자 간 소통으로 종합적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은 방송토론이 거의 유일하다. 그렇기에 자신의 유, 불리를 따져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는 일은 현대 민주주의의 발전에 역행하는 일이자 유권자에게는 발전적인 싸움을 즐길 권리를 빼앗는 일이다.
예상대로 토론회는 맥없이 진행되었다. 대학 선후배이자 얼마 전까지 같은 당에 몸담고 있었던 더불어 민주당의 강래구 후보와 국민의 당의 선병렬 후보 사이에 날 선 공방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거의 모든 칼날은 새누리당의 이장우 후보를 향해 준비된 것으로 공직자로서 부당한 행위였다고 의심받는 사안에 대한 질문과 공격이었다. 그러나 방패가 없는 칼날은 허공을 떠돌다 힘없이 사라졌다.
대전의 관문으로 역할을 하지만 다른 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구를 개발해야 한다는 방향에 이견은 없었으며 개발 정책도 대동소이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 또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었지만 원칙적인 합의 이상의 현실적 방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예정된 50분은 빠르게 지났다. 정책과 대안을 가진 토론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먼저 시간이 너무 짧았다.
토론회의 형식 또한 너무 딱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두 명의 유능한 사회자가 진행을 맡았지만 토론회는 기계적이었다. 딱딱한 틀 안에서는 부드럽고 유연한 결과를 찾기 어렵다.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사람이라면 도덕적 품성, 사회적 관계와 이를 풀어가는 능력, 또 현실을 바라보는 정신적 깊이 모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 편안하고 부드럽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비판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여유와 유머라는 덕목이자 또한 검증의 과정이다.
방송은 끝났고 몇몇은 악수를 나누고 몇몇은 담배를 꺼내 물었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는 흩어졌다. 방송토론회는 녹화되어 여러 번 재방송될 것이다. 그때마다 공허함만이 재방송되지 않는 선거는 결국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고 말하면 너무 식상한 얘기일까?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