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수사>(하성란)
다이제스트: 경지혜 |
그해 여름 할머니가 죽었다. 전보가 왔을 때 엄마는 여름배추로 김치를 담그던 중이었다. 엄마는 양념 묻은 손으로 전보를 받아들었다. 엄마는 딱 두 마디만을 했다.
“각중에....... 복중에.......”
느닷없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이 ‘각중에’ 찜통더위 속에서 치러야 할 초상 걱정이 ‘복중에’란 말에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너덧 번밖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시골변소에는 들고나는 구멍정도만 있을 뿐 걸쇠가 달린 문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할머니는 인기척도 없이 널빤지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검고 축 늘어진 성깃성깃한 털 몇 가닥 남지 않은 할머니의 거기를 다 보고 말았다. 할머니는 낄낄 웃었다.
“니 아배도 고모덜도 다 이 구녕에서 뽑았다 아이가.”
그 뒤로 나는 할머니, 하면 제일 먼저 할머니의 거기가 떠올랐다. 할머니의 거기에서 아버지와 고모들이 국수면발처럼 뽑아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있는 D시에도 전화기가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아버지는 전화를 놓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종종 필요한 용건들을 편지로 썼다. 전보는 열자까지가 기본요금이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걸 열자로 줄였다. 엄마의 시끄러운 마음을 열자로 요약해 쳐내고 쳐내니 딱 모친사망부산항낼열시, 라는 문장이 가지를 정리한 정원수처럼 날씬해져서 서 있었다.
여객선의 터미널은 사람들로 부산했다. 열시가 되자 피서객들과 촌부와 촌로들을 태운 여객선이 항구를 떠났다. 엄마는 재우쳐 물었다.
“열 시, 분명히 열시라고 했냐?”
아버지는 이번 전보 또한 앞의 무수한 전보들처럼 엄마의 엄포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린 듯했다.
엄마는 다시 막내를 들쳐 업었다. 버스 뒤칸에 일렬로 앉은 우리는 목에 스프링을 댄 인형처럼 버스의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며 D시로 가고 있었다.
빠리 의상실. 돌출된 쇼윈도 안에는 얼굴과 사지가 생략된 상반신 마네킹이 전라상태로 놓여있었고, 넓지 않은 점방은 실패와 천 조각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가게 안쪽 의자에 앉아있는 아버지는 곤로에 감자를 찌고 있었다. 보지 못한 반년 사이 깡말라 두 눈이 움푹 꺼졌다.
감자 끝에 살짝 정백당을 묻히려는 순간 아버지의 눈이 점방에 들어선 엄마의 눈과 마주쳤다. 엄마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는 떼쟁이 아이처럼 두 다리를 바동거리면서 울었다.
4년만의 귀향. 아버지는 4년 전 여름 가족을 다 데리고 섬으로 들어왔다. 할아버지를 구슬려 가산을 정리하려는 속셈이었다. 아버지는 해수욕장 길목에 자리 잡은 할아버지의 집에 눈독을 들였다. 일일 생활권으로 교통이 편리해지면 서울에서도 피서객들이 몰려들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할아버지는 말도 꺼내기 전에 발끈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우리를 데리고 할아버지 집을 나왔다.
불과 4년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버지의 예상은 적중했다. 관광객 수는 해마다 늘고 있었다.
상복으로 갈아입은 엄마와 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문상객들을 맞았다. 상복에 쓸린 목덜미가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사사건건 아버지와 엄마는 부딪쳤다. 아버지는 고모들과 한통속이 되어 엄마의 부아를 돋우기도 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술상을 놓고 앉아 있었다. 술을 따르면서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넌지시 떠보았다.
“이제 어떡하실랍니까? 어무이도 안 계시니 조석도 걱정이고...”
담장 밖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뒤에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작은 고모가 쿡쿡 웃었다.
“어디 것들이고? 충청도가? 아따 멀리도 왔네.”
우리는 숨죽이고 연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간지러운 말들, 아버지도 듣고 있던 모양이었다.
“들으셨지예? 아부지도 들으셨지예? 참 멀리서도 오지예?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예. 일일 생활권이 되가 하루면 몬 가는 데가 없어예.”
할아버지는 잔에 남은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할아버지는 그 이듬해 집을 팔고 서울로 왔다. 그 집은 관광상품점이 되었다가 여관이 되었다가 러브호텔로 바뀌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나는 아버지에게 전보를 쳤다. 어느 날 엄마가 말한 내용을 찢어버리고 ‘당신이너무보고싶어요’라고 보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리느라 수년을 떠돈 사람처럼 아버지가 돌아왔다.
나는 멀어지는 상여를 보며 서 있었다. 나도 할머니처럼 거기로 국수 뽑듯 애 여섯쯤 낳고 나면 시원하게 빗장 풀 듯 두 다리를 열게 될까. 그렇게 할머니는 마지막 길을 떠났다. 총총총총총총이만총총.
Copyrightⓒ 독서학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