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화사업, 그린마일리지로 돌아오다
한 학생이 복도를 지나가다 교사가 학생에게 몽둥이찜질을 가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 학생은 ‘몽둥이’를 붙잡으며 한마디 던집니다. “선생님, 이제 그만하시죠.” 그 다음에 이 학생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어렵지 않게 예상하셨을 겁니다. “이토록 오만불손한 학생은 우리 학교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학교는 학생 하나를 쫓아냈습니다. 2년 전 한 고등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학생의 위치에서 권력자인 교사가 휘두르는 몽둥이를 직접 붙잡는 일은 보통 용기로는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자기가 당하고 있었더라면 홧김에라도 이런 행동이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 칭찬받아 마땅한 용기 있는 행동은 ‘싸가지 없는 행동’‘심각한 교권 도전’‘교내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례를 한 학교에서 일어난 예외적 사건이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학생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통제하고 벌줌으로써 정신을 길들이는 학교규율의 횡포, 그 규율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질문은 허용하지 않는 학교, 자유의 공기를 흡입하기 힘든 학교, ‘허위 교권’이 학생인권 위에 군림하는 폭력적 질서가 지배하는 학교의 본질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봐야 합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학생인권 담론이 이제는 교육당국의 정책문서에도 등장하는 공식 언어가 되기는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학생인권 존중 의무를 학교장과 설립자 등에 부과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까지 이루어지기도 했지요. 그러나 학교의 현실은 여전히 이 모양 이 꼴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학교가 행사하는 폭력에 ‘합리성’과 ‘법치주의’라는 더욱 세련된 가운을 입히기 위한 제도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린마일리지 디지털 시스템’(아래 그린마일리지제)이 바로 그것입니다.
더욱 촘촘해진 학생 ‘녹화사업’의 그물망
그린마일리지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 국정과제로 내건 ‘규칙과 약속이 살아 움직이는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정책으로 전국적으로 시범운영에 들어가 있는 제도입니다. 서울에서만 110개교가 시범운영 중입니다. 이미 일선 학교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던 상벌점제를 보완하여 시범운영한 뒤 이르면 내년부터 전국으로 시행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교과부의 계획인데요, 칭찬받을 행동에는 상점(Blue Point)을 주고 규칙을 어기면 벌점(Red Point)을 주되, 벌점이 어느 정도 쌓인 학생은 봉사활동 등을 통해 얻은 점수(Green Point)로 벌점을 만회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제도가 기존 상벌점제와 구분되는 점은 상벌점이 학교전산망에 일일이 기록되고, 학생이 상벌점을 받을 때마다 보호자에게 문자서비스로 통보하도록 한 점입니다. 또 선도위원회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는 학생자치법정을 열어 준법정신을 고양하겠다는 계획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네이스(NEIS)와 결합해 초·중·고 상벌점을 통합해 축적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제도가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는 그 이름에서부터 뚜렷이 알 수 있습니다. 그린 마일리지(Green Mileage)는 녹화사업할 때의 ‘녹’(綠)과 포인트 적립을 의미하는 ‘마일리지’(Mileage)를 합해서 만든 말입니다. 말 그대로 학생들이 삐딱해질 틈을 없애고 이미 삐딱해진 학생은 얼마나 순종적으로 개량되었는지를 점수화, 계량화하겠다는 것이 그 핵심이지요. 생활태도를 점수화한다는 것은 학생통제에 합리성의 외양을 둘러친다는 의미이고, 규칙 위반 시 학생이 처해질 운명을 다만 암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명시화한다는 의미이고, 점수의 힘으로 학생의 ‘자발적 순종’까지 유도해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학생의 도덕성이나 생활태도가 ‘객관적’ 점수로 제시되다 보니 쉽게 반박하기 힘들고, 교사의 훈계나 체벌보다는 각종 시상이나 학생대표 피선거권, 학교 추천 등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을 미치게 되니 점수에 더 민감한 학생의 경우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이지요.
교과부와 각 시도 교육청이 내세우고 있는 기대효과에서도 이 제도의 도입 목적은 잘 드러납니다. 학생들의 자율성과 준법정신 함양, 디지털 시스템을 통한 생활지도의 효율성과 책무성 증대, 가정-학교-지역사회 네트워크가 연계된 생활지도체제 구축 등이 바로 그것인데요, 전산화가 이루어지면 학생의 벌점 기록이 누적 기록될 뿐 아니라 매월, 매년 통계를 통해 벌점자가 많은 반이 어디인지, 어떤 교사가 맡은 반이 계속 벌점자가 많은지도 비교, 분석이 가능해집니다. 보호자 역시 학생의 상벌점 기록을 문자로 통보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 조회할 수 있게 돼 학생 통제의 고삐를 더욱 죄게 됩니다. 한마디로 학생의 ‘순종 태도’를 점수로 계량화하여 자발적 규칙 준수를 유도하는 한편, 생활지도에 소극적인 교사나 보호자까지도 일상적 학생통제에 가담하도록 함으로써 학생통제망을 더욱 촘촘히 짜겠다는 발상인 것입니다.
시범학교 운영 과정에서 학생들 의견이 무시된 것은 언제나 있어왔던 대로니 따질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린마일리지제가 낳는 실질적인 효과입니다. 수업태도가 좋고 학교행사 도우미 등 봉사활동을 한 학생에게는 상점이 부여됩니다. 교사의 심부름을 해주거나 다른 학생의 규정 위반을 신고한 학생에게 상점을 주는 학교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들이 상을 받는 이유가 되다 보니, 불성실한 수업태도는 학생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만 치부됩니다. 수업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찾아보려는 교육적 탐색은 멈춰섭니다. 학생을 부리고 친구를 팔아 밀고하는 일이 외려 칭찬받을 일로 둔갑합니다. 몇몇 학교에서는 학생 선도부에 벌점 부여 권한까지 쥐어주고 선도활동의 대가로 상점을 부가하니, 학생들이 알아서 규칙 위반 학생을 적발하는 일이 버젓이 행해집니다.
상점보다 훨씬 더 많은 이유들이 나열돼 있는 벌점은 또 어떨까요? 두발·복장규정과 흡연, 휴대전화 소지, 외부 행사 참여, 정치 관여 행위 등 교칙이 금하고 있는 조항들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질문은 사라진 채 위반 학생에게는 벌점 딱지만 붙습니다. 교사에 대한 언행 불손, 지도 불응, 학교명예 훼손 등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기 쉬운 자의적 조항들이 점수로 둔갑해 학생들을 더욱 옥죕니다. 벌점이 많이 쌓인 학생들은 ‘푸른교실’(방과 후 문제학생들을 따로 남겨 얼차려, 뺑뺑이 등을 돌리는 활동)로 보내져 녹화교육을 받거나 봉사활동을 하고 반성문을 써냄으로써 점수를 만회해야 합니다. 그래도 개선 가능성이 없다싶은 학생은 전학 권고나 자퇴 등의 형식으로 학교 밖으로 내몰립니다. 상벌점제가 가혹하게 시행된 수원의 한 학교에서 지난해 자퇴나 전학 등의 형식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학생은 무려 70여 명에 달합니다. 부천의 한 학교에서는 올해 3개 반을 줄여 새학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벌점이 쌓인 학생들을 몰아낸 결과입니다. 이렇게 쫓겨난 학생들은 더 변두리 학교로 옮겨가거나 받아주는 학교가 없어 떠돌아다니고는 합니다.
1980년대 전두환정권 아래 맹위를 떨쳤던 대학 녹화사업이 대학내 운동세력 말살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면, 현재 그린마일리지제는 학생을 더욱 순치시키고, 학교규칙에 의문을 품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고 솎아내는 제도입니다. 교칙 조항들이 과연 인권적으로 타당한지 여부는 따지지도 않고, 학생의 권리는 이야기하지도 않은 채, ‘준법’의 의무만 오롯이 남게 됐습니다. 결국 그린마일리지제를 통해 구현하겠다는 ‘규칙과 약속이 살아 움직이는 학교’는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사회’라는 이름으로 전체 사회에 재갈을 물리고 이단자들을 추방하고 있는 이명박식 법치주의의 학교판인 셈입니다.
학교규정에 대한 의문을 봉쇄하는 상징폭력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그린마일리지제를 시범운영하면서 첫 번째 단계로 학생이 공감할 수 있는 학교생활규정으로 제·개정하고 학생과 보호자에게 규정을 상세하게 알림으로써 자발적 준수를 유도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이 절차를 충실히 따른 학교가 얼마나 될까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경남지부가 지난 7월 시범학교 1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상벌점 항목 등에 학생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답한 학생이 67.7%인 반면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답한 학생은 4.2%에 불과합니다. 학교생활규정을 전면적으로 손질하려는 시도는 찾아볼 길 없는 상태에서 그린마일리지제만 보급되는 모양새입니다.
사실 학생이 공감할 수 있는 학교생활규정이 만들어진다면, 학교생활규정에서 인권침해적 요소가 사라진다면, 그린마일리지제는 도입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학생의 인권을 박탈하는 통제규정들을 빼꼭히 만들어두다 보니 위반 학생이 생겨나고, 위반 학생을 기존의 통제방식으로는 모두 순치시키지 못하다 보니 그린마일리지제와 같은 제도가 추가로 요청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전에는 규정위반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체벌이나 강제이발 등 가시적인 폭력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그때마다 그 폭력의 정당성은 물론, 근거가 된 규정의 정당성까지 함께 도전받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점수’로도 충분히 학생을 제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근거 규정이 객관성의 외피를 입고 정당화되는 상징폭력까지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사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학생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고 학생 스스로 자유를 반납하도록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교육당국이 그린마일리지제의 도입 명분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체벌대체 효과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린마일리지제 도입으로 체벌대체 효과가 발생했느냐의 문제는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체벌이라는 봉건적, 가시적 학생통제 방식이 ‘순종의 점수화’라는 근대적, 비가시적 통제 방식으로 전환되었다고 해서 본질이 바뀐 것도, 통제가 줄어든 것도, 근거가 되는 반인권적 규정이 사라진 것도 아니니까요. 차라리 체벌이 훨씬 더 인간적이었다, 기록에는 남지 않으니 학생에게 더 유리하다와 같은 어이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린마일리지제는 반인권적 학교생활규정에 맞서왔던 학생인권 요구의 입지를 더욱 줄이는 효과까지 낳을 것입니다.
인권이 사라진 자리엔 교육도 없다
앞서 말했던 아수나로 경남지부의 설문조사 결과 그린마일리지제가 학생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한 학생은 79%에 달합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지난 10월 서울의 시범학교 3곳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해본 결과에서도 학생들 절반 이상이 생활태도를 점수화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거나 현행 그린마일리지제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점수 때문에 알아서 기게 되지 행동 개선 효과는 없다, 교권 남용의 수단이 된다, 사람의 인격을 점수화한다, 학교가 싫어진다 등 다양한 이유들을 학생들은 짚어냅니다.
이에 반해 그린마일리지제에 대한 일선 교사들의 문제의식은 상당히 희박한 편입니다. 더욱 효과적인 학생생활지도 방편이 생겼다고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학생인권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던 교사들조차 체벌대체 효과를 이유로 내심 환영합니다. 특히 힘으로 학생을 제압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여교사들이 벌점제를 더 반기고 있다는 후문도 들립니다. 체벌로 발생할 수 있는 시끄러운 문제들을 피하면서도 현장에서 학생통제의 고삐는 그대로 유지하고픈 교사들의 잘못된 욕망이 여전히 강력한 탓입니다. 반면 그린마일리지제가 더욱 교묘한 살인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꿰뚫어보는 교사는 많지 않습니다. 그린마일리지제는 억압적 학교생활규정을 전제로 학생통제와 순치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된 만큼 근본적으로 반인권적일 뿐 아니라, 반교육적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권이 사라진 자리에 싹튼 교육이 교육다울 수 있을까요? 게다가 그린마일리지제는 학교가 응당 감당해야 할 교육적 소통의 자리에 객관화된 점수라는 괴물을 들어앉힙니다. 학생 행동의 이면에 자리잡은 이유들을 살피는 교육, 그 무수한 차이와 예외성을 인정하고 기다려줄 줄 아는 교육, 학생의 지적·정서적 도전을 반기는 교육, 삶에 대한 열정이나 불안이 자유롭게 소통되고 보살펴지는 교육은 점점 더 학교현장에서 멀어집니다. 점수와 점수를 부과할 힘을 가진 자의 호령만이 합리성이란 의자에 앉아 학생을 부립니다. 보호자와 상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할 시간에 ‘딩동~’ 벌점 부과를 알리는 문자가 날아갑니다. 학생과 얼굴을 마주봐야 할 시간에 교사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상벌점 기록을 입력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미치는 문제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동료 학생을 괴롭힌 잘못을 쓰레기를 줍거나 동료 학생을 밀고하여 용서받습니다. 자기 양심을 기만한 채 선처를 미끼로 던져지는 반성문을 제출하고 점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잘못에 대한 성찰 대신에 벌점 관리라는 당장의 이익에 먼저 눈을 돌립니다.
그린마일리지제는 그 외양이 사뭇 합리적이기에, 체벌과 같은 구시대적 통제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그린마일리지제는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폭력입니다. 자유는 무책임을 부른다는 오랜 인식에 맞서, 자유 없이는 책임도 없고 자유야말로 책임감을 기르는 가장 훌륭한 배움터임을 보여주고자 했던 이들이 그린마일리지 시행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