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인물설교]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사도 안드레
요한복음 1:35~42
요절:“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 1:40~42)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경의 인물은 베드로의 동생인 사도 안드레입니다. 안드레의 출생 배경은 그의 형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갈릴리의 벳새다가 고향입니다. 그도 역시 형 베드로와 더불어 어부가 직업입니다. 그가 사도로 부름받을 때 결혼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안드레가 이미 결혼한 형 베드로와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집에는 그의 장모까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안드레까지 결혼해서 한 집에서 살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안드레는 성격이 형 베드로와 달리 차분하고 온유한 것 같습니다. 형 베드로는 성격이 직선적이고 격정적이고 매사에 주도적인 반면에 그의 동생인 안드레는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성실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반면에 안드레는 뒤에서 조용하게 따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안드레가 모든 일에 있어서 수동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믿는 바를 분명히 나타낼 줄 아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믿는 바를 목숨을 내걸고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첫째, 안드레는 형제를 주님께 인도한 전도자였습니다.
안드레는 원래 진지한 성격이어서 세례 요한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어느날 한 다른 친구와 더불어 세례 요한 곁에 있을 때에 세례 요한이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크게 외쳤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 말을 듣자 그는 세례 요한의 진지한 권면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뒤따라 갔습니다. 함께 갔던 오늘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다른 제자는 아마도 사도 요한일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요한복음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한과 안드레는 함께 고기를 잡는 갈릴리의 동업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안드레는 그 날 몇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증거처럼 하나님의 어린양 곧 오신다고 약속된 메시야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혼자 이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곧장 자기 형 베드로를 찾아나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형제 전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조차 예수님의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놀랍게 그 고집세고 자기 주관이 강한 베드로가 동생 안드레의 말을 듣고 곧장 예수님을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장차 게바라 하리라 는 복된 예언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 때부터 예수님을 함께 따라다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안드레가 훗날 한번에 삼천 명, 한번에 오천 명을 설교로써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위대한 전도자를 건져내는 위대한 개인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안드레가 없었다면 베드로로 없을 것입니다. 만약 주일학교 선생님 킴볼의 전도가 없었다면 구두수선공이자 성공에 목말랐던 과부의 아들 디 엘 무디는 결코 예수님을 전하는 그 위대한 전도자가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 작은 계집 종의 확신있는 전도가 아니었다면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문둥병에서 고침받지 못했을 것이요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한 조용한 전도자가 한 위대한 전도자를 건져낸 것입니다. 안드레는 조용한 개인전도자입니다. 그는 위대한 설교가는 아니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데 능숙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베드로와 같은 위대한 설교자는 될 수 없지만, 안드레처럼 위대한 개인 전도자는 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안드레처럼 늘 사람들을 주님께로 개인적으로 이끌어오는 성실한 전도자들이 되십시오. 베드로가 누구의 말도 들을 성격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조용한 중에 성실했습니다. 그의 말은 늘 신중하고 진실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믿는 바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동생이라도 그 말을 믿을 수 있었고, 그의 권면을 뿌리칠 수 없어서 주님께 나왔던 것입니다.
전도할 때 우리의 말만으로는 전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말을 잘하는 성격이라고 해서 전도되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의 성격과 같이 말을 크고 활발하게 잘한다고 해서 전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안드레처럼 내성적이면서도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할 때 그 사람이 주님께 완전히 붙잡히는 역사가 많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나는 전도할 수 없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십시오.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성격이 아무리 내성적이고 조용할지라도 사람을 주님께로, 교회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저를 맨처음 교회로 인도했던 고등학교 1학년 친구 신승훈이라는 친구는 진짜 말이 없는 친구였습니다. 일년 내내 있으면서 거의 말을 많이 나누지 못했던 친구였습니다. 차분한 얼굴, 조용한 말투, 신중한 모습이 조용히 내 마음안으로 신뢰를 쌓았기에, 그 친구가 자기와 함께 교회에 나가보자고 했을 때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 나갔다가 고향에서 어머님이 전주까지 올라와서 나를 심하게 나무래서 더 이상 교회에 나갈 수 없었지만 후일에 제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 친구의 고마움을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조용한 성격의 사람, 성실한 성격의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차분하게 대해주는 전도자가 되십시오.
성도 여러분, 올해 여러분이 전도할 사람들을 명단에 기록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면서 끊임없이 접촉하십시오. 안드레처럼 차분하게 개인적으로 전도합시다. 반드시 한 사람 이상의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안드레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한 소년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벳새다 광야에서 설교하신 후 수많은 백성들이 배고픈 것을 아신 예수님이 제자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이는 빌립이 어떻게 하나 시험하고자 한 것입니다. 빌립은 인간적으로만 계산했습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은 원래 계산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이성이 믿음보다 훨씬 더 강한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빵을 먹일 수 있는 길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용한 사람 안드레가 그 곁에 있었습니다. 성경에 안드레는 정종 빌립 곁에 함께 호명되곤 하였습니다. 그는 그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다가 군중 속으로 잠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한 소년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 손에 들린 한 도시락을 받아서 예수님께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실제로 그것은 소년의 점심 한 끼 식사용입니다. 매우 적은 것입니다. 하지만 안드레는 자기가 부름받았을 때 두 배에 가득 채우는 풍어의 기적을 베푸셨던 주님의 기적을 기억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록 적지만 예수님의 손에 올려놓으면 분명 어떤 기적이 일어나 그 많은 군중들의 먹을 것을 다 채워주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안드레의 믿음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소년의 도시락 한 개를 가지고 남자만 오천명의 사람들 약 이만 명의 사람들을 다 먹이셨던 것입니다.
그는 한 소년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 소년의 식사용 도시락으로 위대한 표적을 드러내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구약 시대에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그 하늘의 임금이라는 것을 드러내주신 것입니다. 안드레는 조용했지만 믿음마저 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조용하지만 굳건한 믿음, 위대한 믿음, 차가운 계산적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살아 있는 뜨거운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때로 조용한 성격, 차분하고 말이 없는 성격의 사람들이 더 큰 능력의 통로로 쓰임받습니다. 우리들도 안드레처럼 말보다는 내면의 뜨거운 믿음, 헌신의 사람들이 다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육간의 축복을 나누는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안드레는 포용력 있게 이방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왔습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중 몇 헬라인이 예수님을 뵙고자 하였을 때 그들이 빌립을 찾아 청하였습니다. 빌립은 또 안드레에게 와서 상의하자 안드레는 빌립과 더불어 와서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만일 빌립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와서 상의했으면, 요한은 당장 거절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로 펄쩍 뛰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의 말을 들은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그는 이방인에게도 마음을 열었던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가족도 인도했고, 한 소년도 인도했고, 이제는 이방인들까지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이 됩시다. 저 사람은 안된다라고 말할 때 우리들은 포용력 있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자가 됩시다. 결정은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넷째, 안드레는 두 번째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로 불리워집니다. 독자적인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만큼 그는 베드로에게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있음을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사도의 귀한 직분을 잘 감당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가려져 이 세상에서나 교회에서 빛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안드레처럼 아낌없는 협조자가 됩시다.
교향악단에서 빛나는 주연 연주자들은 피아노나 바이올린 정도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역할을 조용히 감당하므로 위대한 하모니, 웅장한 소리를 내어 멋진 감동을 안겨줍니다. 안드레처럼 우리도 교회에서, 가정에서, 조용히 섬김의 길을 갑시다.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더 빛나게 해주십시오. 그리할 때 주님이 기억하시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안드레의 최후에 대한 내려온 이야기는 그가 아가야 지방에서 전도하다가 순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아가야 지방은 고린도 교회, 아덴 교회, 겐그리아 교회 등이 있던 지역입니다. 그가 그곳에서 핍박을 받아 x 형태의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하였기에, 엑스 표시의 십자가는 사도 안드레에 대한 표시로 취급되어 옵니다. 끝까지 전도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안드레는 조용하지만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한 분으로 모든 성도의 본보기가 됩니다.
비록 앞에 나서서 위대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위대한 일들이 일어나도록 뒤에서 협조했던 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조용히 협조자로서 일했던 주님의 나라에서 깊이 사랑받는 분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안드레처럼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묵묵히 성실히 최선을 다하여 헌신 봉사 전도하는 삶을 살다가 이긴 자로서 주님의 상급 심판대에 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