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독서편지 -1,403
<서로 믿고 함께 하는
마을을 꿈꾸며>
6학년 담임을 하면서 사제멘토링 행사를 하러 한 달에 한 번씩 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극장, 서점, 식당, 동네 놀이터(?) 외에는 별로 생각나는 곳이 없었다. 결국 시내에서 아이들 손에 이끌려 노래방, 까페, 화장품 가게까지도
가 보았다. 13살 아이들의 놀이 문화가 30대인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 중심에 돈이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그
장소는 자기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발휘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수동적인 곳이라는 것 또한 아쉬움을 더하게 했다. 어린 내 자녀가
13살이 되면 저렇게 놀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머리가 아팠다. 저 무리에 끼지 않는 아이들은 그 시간에 학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최근 사교육이 불평등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보도가 많이 나온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학원 교육을 받지 않으면 학업을 따라갈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교 수업 이외에 ‘선생님’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든 가지
않으려는 아들 덕분에 난 다시 치열하게 고민해야했다. 휴직을 하고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바라보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스스로 30분씩
영어책을 보고 수학문제집 2-3쪽 풀게 하는 것 이외에는 본인 스스로 시간을 운용하게 했다. 동네 아이들과 몰려 다니기에 우리집을 아지트로 장소
제공을 하였고, 한두달 지나 심심해 보일 때 자발적인 독서 동아리를 운영을 제안했더니 흔쾌히 동의했다. 컴퓨터 게임, 텔레비전만 통제했음에도
아이들의 삶은 자연스레 프로젝트 학습이었다. 처음 한 달은 각자 좋아하는 소재의 책 만들기에 몰두하다가 보드게임, 체스만 한동안 하기도 하고
곤충탐구에 몰두하기도 한다. 한 주제에 몰두할 때 관련 서적을 주면 외우도록 그 책만 보고 관련 활동들을 해내느라 종일 바쁘게 보낸다. 물론
놀이터에서 살기도 하고 한동안은 멍 때리기도 하지만 모든 시간이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인 것 같았다. 아이의 학교 생활은 더 좋아지고 아이와
나의 만족도 또한 높아졌다.
이게 가능한 것은 학원을 보내지 않고 종일 내게 아이들을 보내주는 부모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믿고 함께 하지 않으면 애당초 불가능하다. 답답한 것은 난 곧 일을 해야 하는데 내가 일을 할 때 이 그림이 그려지기 참 힘들다는 사실이다. 이
시도를 할 수 있는 나의 상황 자체가 축복이란 현실을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읽은 공릉동 꿈마을 이야기는 내게 희망을 주었다.
마을이 가장 큰 학교라는 생각아래 주민들이 도서관에 만들어진 청소년센터를 활용하여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사례를 풀어놓고 있다. 이 공간에서 도서관, 구청은 지원자이며 자녀를 맡긴 부모들과 청소년들이 주체이다. 갈수록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라는 것이 가진 한계를 많이 느낀다. 특히 교육문제에서는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할지 모르겠다. 진정한 전문가는 본질을 꿰뚫고 세상 넓은 부분에 대한 많은 경험과 이해를 가지고 통합할 수 있는 사람이지 한 분야에만
남들보다 조금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공공기관이 ‘전문가’를 동원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서비스가
많아질수록 무책임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건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가 있는 노원구에 산다. 책을 읽으며 우리 아이가 13살이 되면 노원구 주민 상대로 만들어진 청소년센터에 문을 두드려볼 것을
꼭 추천해 주고 싶다. 실질적으로 마을의 일에 참여하며 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실천해보는 곳이 있다는 것이 기쁨이자
안심이었다.
아이의 이런 생활이 학업의 상승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동기부여, 자기 주도성 등으로 인해 학업도
좋아질 거라 믿지만 혹시 내 아이가 현재 단계의 학업수행에 미진한 부분이 있더라도 괜찮다. 그것은 다음해나 혹은 그 다음해에 익힐 것이고, 만약
못 익혔으나 꼭 필요한 부분이라면 성인이 되더라도 분명 익히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교육의 목표가 입시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와 내 아이가
참여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의 존재만으로도 즐겁다.
-『우리가 사는 마을』, 이승훈, 학교도서관저널, 2016.
이젠, 읽을 때!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독서연구팀장 오여진
서울 상원초 교사,
jjangtnt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