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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65
1183독, 돌아갈 귀(歸) - 두 번째
부처님 오신 날, 축하드립니다. 모두 부처님의 자비 광명을 듬뿍 받으시길 빕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자비로 오시고 광명으로 오신다고 한다면, 굳이 부처님 오신 날에만 오셨던 것은 아닐 터입니다. 오늘도 오시고, 내일도 오시고 ---. 순간순간 오셔야 하는 것이 옳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1년에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것도 좋지만, 매일 매일을 ‘부처님 오시는 날’로 축하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참으로 부처님께서 오셨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4월 30일. 먼 길을 향해서 첫발을 떼어놓았습니다. 정토문헌학회 공부방에 몇몇 동행(同行)들이 모여서 ‘무량수경 번역결사’의 입재식 및 제1강을 하였습니다. 법보신문의 이지윤 기자의 동행취재 덕분에, ‘인터넷판 법보신문’에도, ‘종이 법보신문’에도 보되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주셨으니까, 못 오신 분들은 한번 보셨으면 합니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2496
또 저로서는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좋습니다. 동행들이 둘러앉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시는데, 그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고서, 누구 말대로 “ 정말 좋았습니다!” 다음번에도 사전에 일시를 알려드릴 것입니다. 시간 되시면, 함께 동참해 주시길 빕니다.
그건 그렇고, 이런 저런 일로 ‘정신게 공부’를 오래 쉬었습니다. ‘돌아갈 귀’에 주목해서 「정신게」를 한 번 읽겠습니다.
귀명무량수여래(歸命無量壽如來) ⟶
나무불가사의광(南無不可思議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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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보살인위시(法藏菩薩因位時) ⟶
재세자재왕불소(在世自在王佛所)
도견제불정토인(都見諸佛浄土因) ⟶
국토인천지선악(國土人天之善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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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무상수승원(建立無上殊勝願) ⟶
초발희유대홍서(超發希有大弘誓)
오겁사유지섭수(五劫思惟之攝受) ⟶
중서명성문시방(重誓名聲聞十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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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무량무변광(普放無量無邊光) ⟶
무애무대광염왕(無碍無對光炎王)
청정환희지혜광(淸淨歡喜智慧光) ⟶
부단난사무칭광(不斷難思無稱光)
초일월광조진찰(超日月光照塵刹) ⟶
일체군생몽광조(一切群生蒙光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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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명호정정업(本願名號正定業) ⟶
지심신요원위인(至心信樂願爲因)
성등각증대열반(成等覺證大涅槃) ⟶
필지멸도원성취(必至滅度願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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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소이흥출세(如來所以興出世) ⟶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海) ⟶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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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발일념희애심(能發一念喜愛心) ⟶
부단번뇌득열반(不斷煩惱得涅槃)
범성역방제회입(凡聖逆謗齊回入) ⟶
여중수입해일미(如衆水入海一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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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심광상조호(攝取心光常照護) ⟶
이능수파무명암(已能雖破無明闇)
탐애진증지운무(貪愛瞋憎之雲霧) ⟶
상부진실신심천(常覆眞實信心天)
비여일광부운무(譬如日光覆雲霧) ⟶
운무지하명무암(雲霧之下明無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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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신견경대경희(獲信見敬大慶喜) ⟶
즉횡초절오악취(卽橫超截五惡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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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선악범부인(一切善惡凡夫人) ⟶
문신여래홍서원(聞信如來弘誓願)
불언광대승해자(佛言廣大勝解者) ⟶
시인명분타리화(是人名分陀利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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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불본원염불(彌陀佛本願念佛) ⟶
사견교만악중생(邪見憍慢悪衆生)
신요수지심이난(信樂受持甚以難) ⟶
난중지난무과사(難中之難無過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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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천지론가(印度西天之論家) ⟶
중하일역지고승(中夏日域之高僧)
현대성흥세정의(顯大聖興世正意) ⟶
명여래본서응기(明如來本誓應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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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능가산(釋迦如來楞伽山) ⟶
위중고명남천축(爲衆告命南天竺)
용수대사출어세(龍樹大士出於世) ⟶
실능최파유무견(悉能摧破有無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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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대승무상법(宣説大乘無上法) ⟶
증환희지생안락(證歡喜地生安樂)
현시난행육로고(顯示難行陸路苦) ⟶
신요이행수도락(信樂易行水道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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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념미타불본원(憶念彌陀佛本願) ⟶
자연즉시입필정(自然卽時入必定)
유능상칭여래호(唯能常稱如來號) ⟶
응보대비홍서은(應報大悲弘誓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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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조론설(天親菩薩造論說) ⟶
귀명무애광여래(歸命無碍光如來)
의수다라현진실(依修多羅顯眞實) ⟶
광천횡초대서원(光闡橫超大誓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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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유본원력회향(廣由本願力廻向) ⟶
위도군생창일심(爲度群生彰一心)
귀입공덕대보해(歸入功德大寶海) ⟶
필획입대회중수(必獲入大會衆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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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지연화장세계(得至蓮華藏世界) ⟶
즉증진여법성신(卽證眞如法性身)
유번뇌림현신통(遊煩惱林現神通) ⟶
입생사원시응화(入生死園示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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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담란양천자(本師曇鸞梁天子) ⟶
상향란처보살례(常向鸞處菩薩禮)
삼장류지수정교(三藏流支授淨教) ⟶
분소선경귀락방(焚燒仙經歸樂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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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론주해(天親菩薩論註解) ⟶
보토인과현서원(報土因果顯誓願)
왕환회향유타력(往還廻向由他力) ⟶
정정지인유신심(正定之因唯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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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염범부신심발(惑染凡夫信心發) ⟶
증지생사즉열반(證知生死卽涅槃)
필지무량광명토(必至無量光明土) ⟶
제유중생개보화(諸有衆生皆普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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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작결성도난증(道綽決聖道難證) ⟶
유명정토가통입(唯明浄土可通入)
만선자력폄근수(萬善自力貶勤修) ⟶
원만덕호권전칭(圓滿德號勸專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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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삼신회은근(三不三信誨慇懃) ⟶
상말법멸동비인(像末法滅同悲引)
일생조악치홍서(一生造悪値弘誓) ⟶
지안양계증묘과(至安養界證妙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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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독명불정의(善導獨明佛正意) ⟶
긍애정산여역악(矜哀定散與逆惡)
광명명호현인연(光明名號顯因緣) ⟶
개입본원대지혜(開入本願大智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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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정수금강심(行者正受金剛心) ⟶
경희일념상응후(慶喜一念相應後)
여위제등획삼인(與韋提等獲三忍) ⟶
즉증법성지상락(卽證法性之常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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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광개일대교(源信廣開一代教) ⟶
편귀안양권일체(偏歸安養勸一切)
전잡집심판천심(專雜執心判淺深) ⟶
보화이토정변립(普化二土正弁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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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악인유칭불(極重惡人唯稱佛) ⟶
아역재피섭취중(我亦在彼攝取中)
번뇌장안수불견(煩惱障眼雖不見) ⟶
대비무권상조아(大悲無倦常照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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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원공명불교(本師源空明佛敎) ⟶
연민선악범부인(憐愍善惡凡夫人)
진종교증흥편주(眞宗教證興片州) ⟶
선택본원홍악세(選擇本願弘惡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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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래생사륜전가(還來生死輪轉家) ⟶
결이의정위소지(決以疑情爲所止)
속입적정무위락(速入寂靜無爲樂) ⟶
필이신심위능입(必以信心爲能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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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대사종사등(弘經大士宗師等) ⟶
증제무변극탁악(拯濟無邊極濁悪)
도속시중공동심(道俗時衆共同心) ⟶
유가신사고승설(唯可信斯高僧說)
(『교행신증』 제2권)
지난 편지에서는 「정신게」를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귀명무량수여래’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바로 ‘귀명무애광여래’를 말씀드립니다. 그 구절이 나오는 맥락을 파악하기 위하여, 다시 앞뒤 구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천친보살조론설(天親菩薩造論說)
귀명무애광여래(歸命無碍光如來)
의수다라현진실(依修多羅顯眞實)
광천횡초대서원(光闡橫超大誓願)
천친 보살을 찬탄하는 3송 중에서 첫 번째 게송입니다. 앞부분의 두 구절은 “천친보살은 논설을 지어서 / 무애광여래에게 귀명하고서”라는 말입니다. 이때 ‘논설’은 바로 천친(=세친)보살이 지은 무량수경우파제사원생게를 가리킵니다. 이 논서는 줄여서 정토론 또는 왕생론이라 일컬어집니다. 이 논서에 대해서, 다시 중국의 담란스님이 주석을 달았으니, 정토론주 또는 왕생론주라고 약칭되는 것입니다.
천친보살은 무량수경에 기반 하여 아미타불의 정토에 가서 태어나기를 원하는 원생게(願生偈)라는 이름의 정토시를 먼저 짓습니다. 신앙고백입니다. 모두 24송(=행)입니다만, 그 첫 번째 게송에 바로 ‘귀명무애광여래’가 나옵니다.
세존아일심(世尊我一心)
귀명진시방(歸命盡十方)
무애광여래(無碍光如來)
원생안락국(願生安樂國)
원래 뜻으로 보면, ‘귀명진시방무애광여래’라는 10자가 이어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5자씩 맞추느라 끊었을 뿐입니다. “시방(에 끝이 없지만 끝이 있다고 하다면, 그) 끝에까지 다 (존재하시는) 무애광여래에게 귀명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정토진종에서는 이를 ‘10자 명호’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로로 쓴 10자 명호를 법당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명호본존(名號本尊)입니다.
그렇다면, 무애광여래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로 무량수경입니다. 무량수경에는 아미타불의 다른 이름이 12개 더 제시됩니다. 바로 12광불(光佛)인데요. 「정신게」에서 그 12광불은 이렇게 노래되었지요.
보방(普放) :
무량무변광(無量無邊光) : 무량광여래, 무변광여래
무애무대광염왕(無碍無對光炎王) : 무애광여래, 무대광여래, 염왕광여래
청정환희지혜광(淸淨歡喜智慧光) : 청정광여래, 환희광여래, 지혜광여래
부단난사무칭광(不斷難思無稱光) : 부단광여래, 난사광여래, 무칭광여래
초일월광(超日月光) : 초일월광여래
조진찰(照塵刹) :
일체군생몽광조(一切群生蒙光照) :
무량수경의 12광불을 「정신게」에서 노래한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신란스님은 ‘빛’을 중시했습니다. 그 12광불 중에서, 천친보살은 ‘무애광’여래에 특별히 마음이 갔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무애’라는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무애’라는 말은 우리나라 불교에서도 많이 쓰입니다만, 그 경전의 근거는 화엄경에 있습니다. 80권본 화엄경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에 보면 문수(文殊)보살과 현수(賢首) 보살 사이에 문답이 나옵니다.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현수보살에게 여쭈었다. “모든 부처님세존들께서는 다만 일도(一道)로써 해탈(出離)을 얻으셨는데, 어찌하여 이제 모든 불국토의 모든 일 들이 가지가지 다 같지 않음을 보게 되는 것이니까? 이른바 (모든 부처님세존들 의) 세계, 중생, 설법, (중생들에 대한) 조복(調伏), 수명, 광명, 신통, 모임(衆會), 교의(敎儀), 법이 머무는 (기간) 등에 각기 차별이 있음에도 모든 불법을 갖추지 않은 것이 없어서 위없이 높고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있으니, (어찌 된 일입니 까?)
그때 현수보살은 게송으로써 답하였다.
문수사리보살이여, 진리는 항상 하는 것이니
법왕은 다만 한 가지 법이 (있을 뿐이다.)
모든 걸림 없는 사람들은
한 가지 길로써 생사를 벗어나는 것이다.
일체의 모든 부처님 몸은
오직 한 가지로 법신일 뿐이며,
한 가지 마음이고 한 가지 지혜이니
(열 가지) 힘이나 (열네 가지) 두려움 없음 역시 그렇다.
다소 길지만, 중요하므로 다 인용해 보았습니다. 현수보살의 대답 중에 앞부분의 두 게송만 옮겼습니다. 뒤로 여덟 게송이 더 있습니다. 밑줄 그은 부분의 한문을 그대로 적으면 ‘일체무애인(一切無礙人) /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가 됩니다. 여기서, 무애(無礙)는 무애(無碍)와 서로 통하는 글자입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문수보살의 질문을 고려하면서 현수보살의 게송을 이해해 본다면, 모든 부처님들은 한 가지 방법(一道)으로써 생사해탈을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마다 여러 가지 개성이나 차이가 없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를 이루는 데는 다른 방법을 취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방법이 다른 것 같아도 다 통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한 가지 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되겠습니다. 이에 대한 고찰을 위해서, 우리는 천친보살의 정토론에 대한 담란(曇鸞)스님의 주석서인 정토론주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 화엄경의 게송 중, 제가 밑줄 친 그 두 구절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맥락에서 인용하느냐 하면, 범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anuttara-samyak-sambodhi)’를 ‘무상정변도(無上正遍道)’라고 옮긴다고 해놓고, ‘무상정변도’를 주석하는 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도’라는 것은 걸림 없는 도이다. 경에서 “시방세계의 걸림 없는 사람은 /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난다(十方無礙人 / 一道出生死)”라고 말씀하셨다. ‘한 길’은 걸 림 없는 길이며, ‘걸림 없다’는 것은 생사가 곧 열반임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이렇 게 둘이 아닌 법문(不二法門)에 들어가는 것이 걸림 없음의 모습이다.
일도는 무애도이고, 무애도는 불이법문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모든 부처님세존들께서는 다 둘이 없는 진리의 세계를 깨달음으로써 위없이 높고 올바른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님세존이 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미타불의 다른 이름으로 ‘걸림 없는 빛을 가지신 분’이라고 하는 별명은 별명으로서는 참으로 적절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화엄경에서 출발하는 ‘무애’라는 말이 정토불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점을 천친보살이나 담란스님을 통해서 새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바로, 신란스님이 「정신게」에서 ‘귀명무애광여래’라는 말을 다시 천친보살을 찬탄하는 맥락에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또 더 있습니다. 교행신증과 탄이초에서도, 신란스님은 화엄의 무애라는 말을 염불과 관련짓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교행신증 제2 행권(行卷)에서는 정토불교에서 말하는 ‘행’의 개념, 즉 칭명염불의 개념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란스님은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담란스님의 정토론주의 말씀을 길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인용은 교행신증 제3 신권(信卷)에서 한 번 더 나옵니다. 이번에는, 제가 앞에서 인용한 현수보살의 대답 두 게송, 즉 8구절이 그대로 인용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인용하는 맥락을 살펴보면, 일승(一乘)을 이야기하는 맥락입니다. 앞서 담란스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은 칭명염불이라는 행에 초점을 두고서 ‘무애’에 집중했습니다만, 여기서는 ‘일도’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일승이 곧 일도이고, 일도가 곧 일승이니까 말입니다. 하나 덧보탤 것은, 이 화엄경 게송의 인용 바로 앞에서 신란스님은 열반경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역시 ‘일도’를 말하는 문장들입니다.
다음으로 탄이초를 보겠습니다. 제7조입니다만, 그 첫머리에 “염불이라는 것은 무애의 일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살펴본 ‘무애’와 ‘일도’가 나오지 않습니까. 교행신증은 신란스님 자신이 직접 집필한 책이고, 탄이초는 신란스님의 평소 말씀을 제자인 유이엔(唯円)이 기억했다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탄이초에 기록된 신란스님 말씀 중에는 실제로 유이엔의 말인 것들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점은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지만, 제7조의 이 말씀은 확실히 신란스님의 말씀이 맞다고 저는 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무애’와 ‘일도’ 모두 교행신증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신란스님은 ‘무애’라는 말, 또 ‘일도’라는 화엄경의 말을 가져와서 염불을 정의했습니다.
이 편지를 마치기 전에, 여러분들 중에도 원효스님을 떠올리는 분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삼국유사의 원효불기(元曉不羈)조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원효스님은 – 인용자) 우연히 광대가 춤을 추며 큰 박을 두드리는 것을 보았 는데, 그 형상이 괴이하였다. 그 형상을 본받아서 도구를 만들었으니, 화엄경의
“일체에 무애한 사람이 /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난다”라고 한 말씀에서 (힌트를 얻 어), ‘무애(박)’이라 이름 하였다. 이에 다시 노래를 지었으니 (지금도) 세상에 유 통되고 있다. 일찍이 이를 지니고서 천촌만락(千村萬落)을 다니면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면서, (염불을) 읆조리면서 (아미타불게) 귀의하였다. 나무꾼, 독짓는 사람, 그리고 사냥꾼의 무리로 하여금 모두 부처님의 이름을 알게 하여 함께 ‘나무 ---’라고 그 이름을 일컫게 하였으니, 원효의 교화가 컸으진저.
원효스님의 염불 권진에도 화엄경의 ‘무애’가 등장하고 ‘일도’가 등장합니다. 원효스님과 신란스님의 생애는 오백 년 넘는 시간적 차이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만, 그분들의 정토신앙에 화엄경의 사상을 받아들여서 실천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입니다.
오늘은 ‘귀명무애광여래’에 나오는 무애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긴 편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귀명무애광여래.
(2024년 5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