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권력과 돈에 매이고 순종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매이고 순종 - 진정한 자유인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 (갈 5:13)
"저 사람 잘 ~~ 산다" 라고 하면 돈 많은 부자를 의미한다
잘(well)사는 것은 부자(rich)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자중에서 자살하거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며 잘못사는 사람도 많다
그 만킄 우리는 모든 것을 돈과 재물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는 사고와 행동은 돈에 구속되고 매여 있다
- 세상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하나님을 믿는 교회인지 돈을 믿는 교회인지 헷갈릴때가 있다
어떤 행사를 하느냐 안 하느냐를 결정할 때 하나님께 묻는 것이 아니라 회계에게 예산이
되는지 묻는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돈이 결정하고, 돈에 매여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돈을 믿고 사는 것 아닌지?
내가 가진 유가증권 만큼 자유롭고, 내 통장 잔액만큼만 자유롭지 않은가
- 여러분이 원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행한다면 자유로운 선택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강한 갈망이 정원에서 걷는 다면 하나님의 자유의지는 그 갈망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만약 그 갈망이 그 것을 강요한다면 그 결정은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 악한 자들은 그 들의 악함을 그 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자발적으로 행합니다
인간의 자유, 즉 우리의 선택과 결정은 신적주권인 하나님의 통치와 상반
되지 않습니다
Δ 성서에서 받은 영감
- 영국 정치인 윌리엄 월버포스 : 노예제 폐지 운동
- 영국 정치인 새프츠베리 백작 7세 :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 마틴 루터킹 목사 : 인권운동. 인종차별
"법대로 해라" - 법 이행에 대한 자신감, 법을 잘 지키고 있다
"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라라 하느냐?" |
그들이 누구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그들은 종노릇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 했다. 또 바벨론에서 종살이 했었고, 수리아의 종노릇도 했었다
또 그들은 당장 로마의 속박 아래 있었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한 번도 정복 당했던 적이 없었다. 애굽도, 바벨론도, 수리아도, 로마도 그 어느 누구도 유대인의
정신을 파괴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곧 그 모든 생각을 윤리적인 차원으로 높여셔서, 그들에게 자신이 물질적인 영역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언제나 물질적인 차원에서 사고하였고 무엇보다도 육체에 관하여 생각하였다.
그래서 주님은 언제나 그들의 생각의 차원을 높여서 영적인 차원, 의의 차원에서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자유」
1520년 말에 쓴 이 문서에서 루터는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주신 자유를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적으로 묘사한다.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더 할 수 없이 자유로운 만물의 주인으로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지만,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더할 수 없이 충실한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된다."
인간은 신앙을 통해서만 의롭게 되며 하나님의 자유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자유로운 것이다. 또한 이 신앙은 사랑을 통하여 밖으로 작용하며,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자신의 행위나 실천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자신이 받아들여졌음'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선물인 이러한 자유는 내적이며 영적인 인간의 자유이다. 그러나 루터가 이 자유를 인간의 내면성에 제한시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루터의 다음과 같은 말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이웃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신앙으로 주 안에서 살고 사랑으로 이웃 안에서 산다. 신앙을 통해 그는 자신을 넘어 하나님에게 이르며, 사랑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자신을 낮추어 다시금 이웃에게 이른다. 그는 항상 하나님과 그의 사랑 가운데 머문다. 보라, 이것이 참된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 |
<<야고보서 4장 17절>> :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지 아니하면 죄니라." --- 안다는 것은 행하는 것
<<호4:1 :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
-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고 사람들을 죽이고 거짓말하고 간음하고 폭력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호세아는 이런 행위를 보고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찾으나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을 보니, 사실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호6장 3절, 6절)
-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 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롬1:21)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고전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진리를 위해 기독교(교회)를 선택한 것이지, 기독교를 위해 진리를 선택한 것이 아님
누가 복음에 '탕자의 비유'가 나온다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뛰쳐나와 자유와 행복을 누릴것 만 같았지만 재산을 모두 탕진한 아들이 돼지치기가 되어 돼지먹이로 쓰는
쥐염나무 열매를 먹으려 하다가 " 아, 이제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고 께닫는 것은 세상에서 방황하고
억압받고, 굶주려 본 사람만이 발길을 하나님(진리)께로 향합니다
자유의지로 생명의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제멋대로 사는 인류가잘못을 회개하고,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찾아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살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세상의 탐욕과 두려움에 얽매여 노예처럼 구속과 속박속에 사는 걸 깨달았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과 권위를 벗어나 스스로 일탈한 시도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죄의 본질이다.진정한 자유를 부정하는 자유까지
보장받지는 못한다
-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다 -
(피에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