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개봉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5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국내 역대 뮤지컬 영화사상 최고 흥행을 기록하고 있고 이에 힘입어 소설 '레미제라블' 완역본 역시 개봉 이후 2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한국어 초연 뮤지컬 공연도 성황중이다. 이처럼 레미제라블은 영화, 책, 공연 등 문화계 각 장르 안에서 흥행의 새로운 마크를 창조해가며 한국 사회 안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왜 레미제라블인가. '장발장'으로 대표되기도 하는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문학의 거봉'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작품으로 '인간의 구원' '용서' '희생' '사랑' '헌신'과 같은 인류애적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혁명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19세기 프랑스 민중들의 빈곤한 삶과 권력의 횡포, 이에 맞서는 젊은이들의 희생, 그리고 이 같은 배경 안에 벌어지는 장발장의 헌신과 사랑, 용서의 삶을 드러내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비롯되는 휴머니즘의 감동이 힐링(치유)이 열쇳말이 될만큼 팍팍한 현실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인간애'에 대한 그리움을 상기시키고 치유와 위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평이다.
레미제라블은 그런 주제의 힘 만큼 가톨릭 신자들에게 던져주는 교회적인 메시지도 강하다. 또 신앙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들도 상당하다.
그렇다면 레미제라블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신앙적인 내용들과 가치들은 무엇일까. 이를 뮤지컬 영화의 주요 장면 및 대사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인용된 대사 내용은 상영 중인 영화의 자막 표현과 다를 수 있음)
# "기억하게 형제여, 높디 높으신 분의 뜻에 따라 이 귀한 은식기로서 새 사람이 되게나. 하느님께서 자네를 어둠에서 구했으니, 자네 영혼을 그분께 맡기게나."
: 미리엘 주교가 은접시를 훔친 장발장을 경찰로부터 구해준 후 은촛대를 건네며 당부한 장면이다. 여기서 은촛대는 장발장이 앞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코드로 작용한다. 영화를 보면 장발장이 도피하는 상황을 맞았을 때 우선적으로 은촛대를 먼저 챙기는 모습을 살필 수 있는데, 그만큼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회심의 과정에서 은촛대가 장발장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새 사람이 되라'는 표시로 주어졌던 은촛대는 결국 '신의 뜻을 받들어 선행을 하며 살라'는 표징이라 할 수 있다. 온갖 파란을 겪으며 삶을 이어나가는 장발장이 눈물로 약속했던 '변화'의 신념을 지켜가게 하는, 늘 하느님의 뜻을 염두에 두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 "내 인생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지…사슬에 묶어 죽게 내버려 뒀어. 빵 한덩이 훔친 죄로. 하지만 주교의 말이 내 영혼을 어루만지고 사랑을 가르치는 건 어째서일까. 내게도 영혼이 있댔어. 그가 어떻게 알지. 어떻게 해야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 장발장은 은촛대를 내놓으며 관용을 베푼 미리엘 주교의 사랑에 혼란을 느끼는 가운데 십자가 앞에서 타락해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마주한다. '예리한 칼처럼 수치심이 날 찌른다'는 말로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심정을 눈물로 토로하는 부분이다. 세상에 대한 앙심만 가득했던 장발장은 이 사건 이후 "장발장의 세계로부터 벗어날 것"이라는 말로 결정적인 '회심'의 모습을 드러낸다.
장발장을 변화시킨 동기로 작용한 미리엘 주교는 영화의 경우 초반과 마지막에 잠깐 등장하지만 원본 소설 속에서는 112쪽이나 다뤄질만큼 중요한 인물로 비춰진다. 그만큼 미리엘 주교가 갖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 "어제는 혼자였는데 오늘은 네가 내 옆에 있구나…갑자기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구나…과거는 사라지고 새로운 여정이 열리는 구나."
: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와의 만남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난 후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전환점을 드러내는 모놀로그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실수로 일자리를 잃고 비참한 창부의 삶을 살다 병을 얻어 죽어간 판틴의 딸 코제트를 돌봐주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 대사는 코제트를 데리고 파리로 이동하는 마차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사랑의 힘을 느끼는 마음을 잘 보여준다. 미리엘 주교로부터 받았던 '자비' '사랑'으로 말미암아 새 인생을 가질 수 있었던 장발장이 어린 코제트에게 부모와 같은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는 이 모습은 사랑하며 사랑을 배우고, 신뢰를 받으며 삶의 믿음을 배우는 장발장의 여정을 보여준다.
# "나 대신 잡힌 자 내겐 기회일지도 몰라. 진실을 말하면 그날로 난 끝이야…침묵을 지키면 난 저주 받겠지. 거짓말을 한 채 사람들을 어찌볼까. 오래 전 주님을 만났지 절망 끝에서 주님은 희망을 주셨어. 난 누구인가."
: 과거를 숨긴 채 시장의 자리에서 덕망과 명성을 쌓아가고 있던 장발장이 어느날 전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체포됐다는 얘기를 듣고 번민하는 장면이다. '난 누구인가'(Who am I?)라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하느님과 약속했던 바를 떠올린다. 결국 무고한 희생자를 내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버리고 법정에 신분을 드러낸다. 장발장에게 있어 또 하나의 극적인 전환이며 세상 속에 살며 하느님의 정의를 드러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결단을 시사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 "떠나게. 자넨 자유야. 조건은 없어. 흥정할 생각도 없네. 자네를 원망하지 않아. 자네는 자네 임무를 다했을 뿐, 그뿐이니까."
: 평생 자신을 뒤쫓아 왔던 자베르 경감을 처형하지 않고 풀어주며 장발장이 남긴 대사다. 장발장은 혁명군들에게 적으로 간주되어 처분을 기다리고 있던 자베르를 자신이 맡겠다고 한 후 후미진 곳으로 끌고가서 '떠날 것'을 권한다. 그리고 허공에 총을 쏘며 달아날 것을 재촉한다. 여기서는 그간 자신을 끊임없이 추격하며 괴롭혀온 자베르 경감을 총이 아닌, 사랑과 용서로 대하는 장발장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총에 맞서 총으로 응징하는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응징하는 하느님의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 "영원한 사랑을 기억해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임을…어둠은 결국 끝나고 태양이 밝아오리니…그대가 염원하는 세상이 바리케이트 너머에 있네…내일은 오리라."
: 자신이 헌신을 다해 양육한 양녀 코제트와 그의 남편 마리우스 곁에서 생을 마감하는 장발장을 미리엘 주교와 판틴이 천상으로 인도하는 마지막 장면의 대사다. 그리고 혁명을 위해 죽어갔던 젊은이들과 장발장, 판틴 등이 모두 함께 합창을 하는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구절이다. 이 부분의 '내일'은 레미제라블이 쓰여진 당시의 혁명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나, 신앙의 관점에서 들여다 본다면 절망 그 너머의 진정한 부활의 모습으로도 간직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분노와 저항을 화해와 사랑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대화합을 꿈꾸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 '레미제라블'은 '인간의 구원' '용서' '희생' '사랑' '헌신'과 같은 인류애적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어, 신앙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들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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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린 시절 부터 많이 들어왔던 장발장 이야기
전설님 감사합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한번 더 접하면 감회가 새롭겠네요, "레미제라블"
감사합니다 모래시계님~^^
아직 못 봤는데 꼭 봐야 겠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황정순데레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