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위향교
향교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성리학자들이 건국한 조선에서는 유교적 도덕질서를 확립하고, 유학과 행정관료에게 필요한 실용적 학문을 교육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따라 각 고을마다 향교를 설치하고 교관을 파견했으며 재정을 지원하여 운영하도록 했다.
향교에서 교생들을 교육시켰던 교육자를 교관(敎官)이라고 하였다. 교관은 교수(敎授), 훈도(訓導), 교도(敎導), 학장(學長)이라고도 불렀다. 이들 가운데 교수, 훈도, 교도는 중앙 정부에서 파견되는 정식 교관이었고, 학장은 지방의 행정 책임자가 임명했다. 경국대전이 완성되는 성종 때에 이르면 교도직이 없어지고 큰 고을에서는 교수(敎授), 작은 고을에서는 훈도(訓導)만 두었다. 1785년에는 향교의 교관제도가 완전히 폐지되면서 고을에서 ‘스승이 될 만한 인물’을 교임(校任)으로 뽑아 교육은 물론 향교의 운영을 담당하도록 했다. 교임은 서열에 따라 도유사(都有司), 장의(掌儀), 유사(有司)로 구분되었다. 향교의 교장이랄 수 있는 도유사는 지역별로 전교(典敎), 교장(校長), 재장(齋長), 훈장(訓長), 재수(齋首)로 부른다.
향교의 경제기반은 나라에서 지급한 향교전과 노비가 있었다. 향교전은 대체로 향교말의 백성들에게 역(役)을 면제하고 경작하도록 했다.
향교는 고을의 크기에 따라 규모와 정원이 정해졌다. 경국대전에는 부(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에 90명, 도호부(都護府)에 70명, 군(郡)에 50명, 현(縣)에 30명으로 규정되었다. 입학 연령은 지역에 따라 15세에서 20세로 다양했지만 보통 15세 내외에 입학했다. 학생들은 소과(향시, 생진시)에 합격하면 성균관으로 진학했다. 향교는 양반뿐 아니라 중인, 평민들도 입학할 수 있었다. 교생들은 청금록에 이름이 오르면 국역(國役)이 면제되었으며 과거(科擧)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받았다.
향교의 교육내용은 시문(詩文)을 짓는 사장학(詞章學)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경학(經學)으로 나뉘었다. 경학은 유교 경전뿐만 아니라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四書)를 함께 공부했다. 또 소과 응시를 준비하기 위해 제술(製述)도 중시되었다. 경국대전에는 향교 교생이 독서한 일과를 매월 말 수령이나 관찰사에게 보고하면, 관찰사가 순행하면서 고강(考講)하고 일련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때론 관찰사가 고강(考講)을 할 때 낙강하면 교생신분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교재는 소학과 사서오경, 제사(諸史), 근사록, 심경 등이다.
진위향교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병자호란(1636) 때 완전히 불에 타버렸고 이 과정에서 대성전의 위패는 향교말의 하리(下吏) 최응수가 꺼내어 화를 면했다. 전란 뒤 초가집 두어 칸을 지어 보관하다가, 1644년(인조 22) 현령 남두극이 대성전을 중수하면서 이곳에 모셨다. 1660년(현종 1)에는 현령 송박이 대성전의 대청을 다시 지었으며, 1839년(헌종 5)에는 현령 황종림이 명륜당을 중건했다. 1889년(고종 26)에 전면적인 개보수를 실시했으며, 1987년 동, 서재를 다시 지었고, 2007년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진위향교의 공간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다. 다시 말해서 문묘를 뒤에 두고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앞에 두었다. 대성전에는 중앙에 공자를 주향(主享)으로 오성위(五聖位)가 모셔졌으며, 동무와 서무에는 주자, 정숙자, 주돈, 정백자 등 송나라 4현과 최치원, 설총 등 우리나라 18현이 모셔졌다. 명륜당은 강학(講學)공간이다. ‘명륜당(明倫堂)’이라는 현판은 맹자(孟子)의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에서 온 말이다. 이곳은 교수관이 거처하는 곳이며 도서관 격인 존경각이 함께 있기도 하다. 강학은 대체로 조선 전기에만 실시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강학보다는 문묘배향이라던가 진위 유림들이 모여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음력 8월 상정(上丁)에 석전제가 거행되며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분향한다.
평택향교도 조선 초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불탔고 조선 후기 여러 차례 중수했다. 공간배치는 진위향교처럼 전학후묘다. 가장 오래된 건물은 17세기 중엽 중수된 대성전이며 명륜당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19세기 중엽에서야 중건됐다. 음력 8월에 석전제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