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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텐인텐[10년 10억 만들기] 원문보기 글쓴이: 복you(김보규연구소)
(내용을 조금 보완해서 다시 올립니다. 2012년12월30일 22:00)
Choice!
평생 돈의 노예로 살 것 인가,
아니면, 돈이 나를 위해서 일하게 만들 것인가?
나는 지난 20년간 한 가지만 생각하고 살아왔다. 돈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렇다. 지난 20년간 나는 돈의 노예로 살아왔었다. 사회에 나와서 처음 5년은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면 돈 문제도 자연히 해결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돈을 많이 벌수록 돈 문제는 늘어났다. 그리고, 점점 더 돈에 구속되어 가는 나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한때 잘나가던 사업가였다. 그러나, 내가 중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집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우리 집은 청담동에서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집으로 이사해야 했고, 아버지는 충격으로 병을 얻고 쓰러져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무순 재배 농장에서 일했지만, 아버지 병원비와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어느 날 밤 빚쟁이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어머니는 그들에게 돈을 벌어 꼭 갚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빚쟁이들이 가고 난 뒤 어머니가 방 구석에서 흐느껴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에 반장이 수학여행 회비를 안낸 사람이 나뿐이라면서 빨리 내라고 독촉을 했다. 수업 시간에 서예 준비물이 있었는데 두 번 연속 준비물을 사오지 못하자, 선생님이 복도에 나가 서있으라고 했다. 복도로 나가는데 반 친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규네 집 망했다면서. 수행여행 회비도 안내더니. 준비물 사올 돈도 없나 봐.”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어제 빚쟁이들에게 어머니가 시달린걸 본 후라서 학교에서 필요한 돈을 달라고 하기가 죄송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말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에 오시기 전에 밥이라도 해놔야지 하면서 쌀독을 열었는데, 쌀이 떨어져있었다. 순간 눈물이 났다. 더 이상 어머니만 고생 시킬 수는 없었다. 그때 나는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했다. 빨리 큰 돈을 벌어서 어머니께 잘 해드리고 싶었다.
어머니는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대학에 가기를 바랬지만,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공고에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되어, 어머니 모르게 수도전기공고에 시험을 쳐서 합격했다. 그 후 친한 형의 부모님이 하는 중국집 배달 일을 시작했다. 눈이 오는 날 군고구마가 불이 나게 팔려나가는 걸 보고, 배달 일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군고구마 장사를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큰 돈을 벌고 싶었다.
장사를 시작하면 금방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생각만큼 돈을 벌기가 쉽지 않았다. 군고구마는 눈 오는 날만 잘 팔렸다. 봄이 되면서 나는 강남의 한국학원 앞에서 어묵과 핫도그를 파는 포장마차를 했다. 방과 후에만 장사를 해서 제약이 있었지만, 밤 늦게까지 장사를 하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애썼다. 하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아서 계획을 세워서 돈을 모으기가 힘들었다.
1995년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운이 좋게 아남반도체(당시 대기업) 실습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첫 월급이 38만원으로 적었지만, 열심히 일해서 정직원이 되면 월급이 올라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성실이 일했고, 결국 정 직원이 되었다. 그 후 나는 회사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충성했다. 무엇보다 평생 직장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고, 회사 일만 성실히 하면 잘 살게 되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어도 우리 집은 재정 상태는 나빠져만 갔다. 월급을 타서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 집 월세를 내고 나면 통장잔고는 늘 바닥이었다.
그러던 중 IMF의 시련이 닥치면서 믿었던 평생 직장의 꿈이 사라졌다. 회사가 창사이래 30년 만에 구조조정이 들어가면서, 내가 큰형님 같이 의지하던 K과장이 구조조정 되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봤을 때, 회사에서 가장 성실히 일했던 분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1세.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두 명 있었다. 그 때 짐을 챙겨서 나가던 그의 쓸쓸한 뒷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후 2년여 만에 K과장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몰골이 수척해져 있었다. 회사 근처에서 고깃집을 하다가 갑자기 문을 닫고 소식이 끊겼던 터라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구정조정 할 때 받았던 위로금과 퇴직금으로 장사를 시작했는데 다 까먹고 빚까지 졌다는 것이다. 재 취업도 어렵고,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에서 회사만 믿고 20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그 결과가 이럴 줄은 몰랐다고 했다. K과장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K과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동안 내가 믿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버린 것 같았다. 부모님도, 회사도,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다 잘되겠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나 자신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버지, K과장, 그리고 나는 모두 돈의 노예였다는 것을. 그들의 길을 답습한다면 결국 미래의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들까지도 돈 때문에 고통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당신도 돈의 노예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카드 값, 애들 학원비, 할부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즉, 돈을 벌기 위해서 출근하지 않았나?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 후 나는 돈에 지배 당하지 않고, 돈을 통제 하면서 살기 위해서 노력했다. 버는 돈을 모두 쓰지 않고, 소득의 70% 이상을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 위해서 투자했다.
그렇게 애 쓴지 15년 후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 내가 일하지 않고, 잠을 잘 때도 회사에 다닐 때의 월급에 해당하는 돈 정도가 들어오는 경제적 자유 파이프라인이 완성된 것이다.
경제적 자유란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매월 필요한 만큼의 돈이 평생 나오는 시스템. 이를 통해서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서 쓰지 않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가치 있는 곳에 쓰면서 살아가는 것>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직접 돈을 벌지 않는 순간 소득이 없어진다면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고 말할 수 없다. 높은 소득을 믿고 경제적 자유를 얻기도 전에 지출이 늘어난다면, 그럴수록 더욱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 자유를 얻고도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을 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돈의 노예라고 볼 수 있다.
아래와 같은 경제적 자유 파이프라인 우화가 있다.
어느 마을에 물이 필요해서 강에서 물을 길러오는 사람들을 구했다. 브르노와 파블로는 그 마을에서 물통을 지는 일을 하고 물 한 통에 1페니의 돈을 받았다. 브르노는 그 일이 안정적이라 생각하여 만족하고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해서 소득이 많았지만, 술집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술을 돌리는 등 번 돈을 대부분 과소비로 탕진했다.
한편, 파블로는 물통을 지고 돈을 버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통을 길어오는 시간을 줄여서 파이프라인을 설치하기로 결심했다. 브르노는 자신보다 물을 반밖에 길어오지 못하고 궁핍하게 사는 파블로를 비웃었다.
파블로는 파이프 라인을 구축하는 일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미래의 비전을 생각하면서 인내했고 마침내 파이프라인을 완성했다. 브르노는 매일 힘겹게 물통을 지느라 건강이 나빠졌고, 더 이상 물통을 질 수 없게 됐다. 반면에 파이프라인을 완성한 파블로는 물통을 직접 지고 다니지 않고도 점점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다. 그는 자신이 파이프라인을 완성한 노하우를 알려주며 더 많은 사람들과 성공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버크 헤지스의 <파이프라인 우화>(아름다운 사회, 2003)
뒤 늦게 대학을 나와서 어렵게 들어간 (과거 내 꿈의 직장이었던)삼성전자 전략마케팅 팀을 그만두고, 2009년 <경제적 자유 연구소>를 시작한 것은 내 선배, 후배, 그리고 친구들에게 우리가 돈의 노예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시간이 갈수록 돈에 구속되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내 연구소 옆에 삼성전자 사원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을 지나면서 보면 하루가 다르게 외제차들의 수가 늘고 있다. 백화점에는 평일에도 차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쇼핑백 하나에 수백 만원을 하는 명품 매장에도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할 정도이다. 신혼시절 내집마련을 위해서 아끼던 모습도 사라졌다. 좋은 집에 전세로 살면서 외제차, 명품 백부터 사들인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폭락이라는 홍역을 겪고 나서, 오히려 사람들은 재테크에 대한 흥미를 잃고 소비 열풍에 휩쓸렸다. 당신도 내집마련의 꿈, 재테크 대박의 꿈이 사라지자 ‘미래를 준비하기 보다는 지금이라도 잘 쓰고 잘 살자’라며 과소비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값비싼 외식, 명품, 외제차가 진정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내 가치를 높여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돈을 쓰면 쓸수록 돈에 구속되고, 준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도 커질 것이다. 은퇴가 다가오는 게 두렵고, 점차 회사에 목을 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막상 은퇴가 닥치면 두려움이 현실이 되어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젊어서 돈을 많이 쓴 사람일수록 은퇴 이후의 삶은 고달프다. 은퇴 전까지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한다면, 평생 돈의 노예로 은퇴 이후에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4년간 약 1,000회의 경제적 자유 상담과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돈 걱정 없는 풍요로운 미래를 꿈꾼다는 것을. 그리고, 누구나 꾸준히 노력하면 은퇴 전까지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주말마다 백화점 쇼핑에 외식을 하고, 좋은 차를 타면서 대출을 얻어서라도 좋은 집에 거주 하면서 현재만을 바라보며 살던 사람들이, 나를 만나서 한 푼이라도 아껴서 미래를 준비해나가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기쁘다. 젊어서 아끼는 건 궁상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이다. 젊었을 때는 아무거나 입어도 예쁘고, 값싼 음식으로 한끼를 때워도 괜찮다.
지금 선택하라!
평생 돈의 노예로 살 것 인가,
아니면, 돈이 나를 위해서 일하게 만들 것인가?
일하지 않고, 잠을 잘 때도 돈이 나오는 시스템
앞으로 연재할 글에는 재테크를 통해서 단기간에 일확천금을 만들거나 큰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없다. 투기 열풍을 조장하는 내용은 더욱 아니다. 지출의 통제와 저축을 통해서 장기간에 걸쳐서 꾸준히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내용이다. 그럼, 이렇게 묻고 싶어질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하라고? 당장 큰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없어? 물론, 사업이나 투자를 통해서 단기간에 큰 부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당신이 얼마나 빨리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가는 소득의 몇 %를 위해 비축해 놓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소득의 100%를 쓰는 사람에겐 미래는 없다. 결국 모든 것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내 경우에는 10년 동안 소득의 70%를 꾸준히 미래를 위해서 투자했고, 10년이 지난 지금 내가 말한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 앞으로 내게 남은 50년 이상의 시간을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쓰면서 살아갈 것이다. 누구나 소득의 절반 이상을 꾸준히 미래를 위해서 투자한다면, 언제 가는 꿈에 그리던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일하지 않고, 잠을 잘 때도 돈이 나오는 시스템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음에 이어질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경제적 자유를 얻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책 또는 노래 등의 저작권을 통해서 얻는 방법,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를 통해서 얻는 방법,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사업을 통해서 얻는 방법, 부동산 임대 소득을 통해서 얻는 방법, 연금 소득을 통해서 얻는 방법 등 다양하다.
그 중 노후에 가장 안정되고 편안한 시스템은 무엇일까? 바로 연금이다. 내 결혼식 주례를 봐주신 은사님은 부부가 모두 교사로 정년 퇴임을 했다. 두 분 합쳐서 연금이 매월 700만원이 넘게 들어온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연금 액이 올라가고, 세금도 내지 않으며, 돌아가실 때까지 연금이 보장되어 있다. 정말 관리도 필요 없는 최고의 경제적 자유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물었다. “가장 갖고 싶은 경제적 자유 파이프라인은 뭐에요?”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은 때에도 여전히 1위는 임대소득이었다. 임대소득은 대다수의 경제적 자유인들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나는 여러분이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파이프라인을 준비할 것을 권한다. 은퇴 이후가 점점 길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소득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사업 소득이 있는 사람은 임대소득으로 보완을 하고, 임대소득이 있는 사람은 연금소득으로 보완을 하라. 경제적 자유 파이프라인은 다양할 수록 좋다. 이를 통해서 은퇴 후 40년에서 50년 동안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성을 쌓아야 한다.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 부동산 임대자산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임대자산을 보완하기 위해서 국민연금, 퇴직연금, 공무원 연금, 개인연금을 미리 계획을 세워서 보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도 다룰 예정이다. 이 두 가지는 필자의 전문분야이기도 하지만,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고 쉽게 경제적 자유를 얻는 길이라는 생각에서 선택했다. 임대 자산은 젊을 때 빠른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 적합하고, 연금은 나이 들어서 부동산을 관리하기 힘들어 질 때 좋다.
그럼,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임대자산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하락할 때도 모든 부동산이 폭락하는 것은 아니다. 2007년~2012년 5년간 부동산 경기가 하락할 때에도 가격이 반 토막이 된 곳이 있는 반면에, 50%나 상승한 곳도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 났는지를 살펴보고,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을 때도 꾸준히 수익을 내면서 안전하게 임대자산을 쌓아 나갈 수 있는 노하우를 소개한다.
부동산 임대를 위해서는 큰 돈이 필요하지 않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1,000만원으로도 은행 대출 없이 부동산 임대 사업자가 될 수 있다. 소액의 종자돈으로 임대사업자가 되고, 지렛대 효과와 시간을 통해서 임대 자산을 복리로 불려나가는 나만의 필살기, 필자가 경제적 자유를 얻은 핵심 전략이 공개된다. 이 전략은 과거 30년이라는 기간을 거쳐서 검증된 것이고, 향후 15년 이상은 유효한 전략이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필자와 함께 경제적 자유로의 여행을 떠나자.
여러분이 경제적으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 할 수 있기를 바라며……
<12년 겨울 김보규연구소 집필실에서, 福 You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