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63년 전인 1841년 공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한 신부가 빈민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미사를 드리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신부는 불량한 인상과 허름한 옷차림을 한 채 성당에 들어온 아이를 성당지기가 쫓아내는 것을 만류하며 처음 보는 그 아이에게 “내 친구”라고 말했다.
그 아이는 곧 다른 아이들을 데려와 신부에게 소개했고, 신부는 골칫거리로 전락해가는 도시 빈민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 신부의 이름은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시한 성 요한 보스코. 가톨릭에서 돈 보스코(‘돈’은 신부라는 뜻)라고 불리는 성인이다. 돈 보스코는 평소 존경하던 프란체스코 살레시오 주교의 이름을 딴 ‘살레시오 수도회’를 1861년 설립했다.
‘청소년 교육’을 카리스마(성령의 은사)로 정한 살레시오 수도회가 한국에 들어온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한국 살레시오회 50주년을 맞아 관구장인 황명덕 바오로 신부(57)는 “한국 살레시오회는 지난 50년간 소외된 청소년들의 교육에 힘써 왔다”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 한 편에는 강남의 학원가와는 거리가 먼 청소년이 많다”고 말했다.
이착륙을 하는 비행기가 손에 잡힐 듯 굉음을 내며 뜨고 내리는 김포공항 바로 옆 신월동에 황신부가 머무는 한국 살레시오회 본부가 있다. 청소년 교육회관과 불우청소년들이 생활하는 나눔의 집이 함께 ‘살레시오 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야 하는 이곳뿐 아니라 전국에 퍼져 있는 살레시오 분원은 모두 가난한 동네에 터를 잡고 있다.
“한국에 살레시오 수도회를 전파한 분은 일본 선교사였던 아르키메데 마르텔리 신부님입니다. 당시 광주에 가장 먼저 터를 잡았는데, 그 때문에 광주에 살레시오 중·고등학교가 세워진 것이지요.”
어릴 때부터 살레시오회 신부가 개척한 서울 도림동 성당에 다니던 황신부도 당시엔 신부가 될 학생만 교육했던 광주 살레시오 중학교로 유학을 갔다고 한다. 서울과 광주 이외에도 대전과 춘천, 그리고 멀리 중국 옌지 등 모두 12곳의 살레시오회 분원이 있다.
살레시오 중·고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연길 국제합작기술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두 직업교육을 시키는 학교들이다. 또한 서울 10곳을 비롯해 광주·춘천·대전에 있는 ‘나눔의 집’은 여러가지 이유로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는 청소년들이 신부나 살레시오회에서 파견한 ‘이모’ ‘삼촌’들과 5~7명이 한 가족을 이루며 생활하는 곳이다.
“올해는 1년 내내 50주년 기념행사가 있습니다. 50주년 기념음반이 나왔고, 어린이날에는 기념체육대회를 했습니다. 몽골과 동티모르로 청소년 봉사단이 파견되었고요. 또한 한국 살레시오회 50년사가 연말쯤 출판될 예정입니다. 또한 다음달 17일에는 4박5일 일정으로 전세계 살레시오회 수장인 파스칼 차베스 총장 신부가 방한합니다.”
예수회, 프란체스코회와 함께 가톨릭 3대 수도회로 손꼽히는 살레시오회는 전세계 128개국 1만6천6백92명의 신부와 수사(성무를 하지 않고 오로지 수행에만 힘쓰는 수도자)를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1,871개의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글 이무경기자·사진 박민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