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선시불심(禪是佛心)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다
선시불심(禪是佛心)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말. 보통 교법(敎法)은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교시불어 (敎是佛語)와 짝을 이루어 선종의 관점에서 선교일치 (禪敎一致)를 나타내는 성구가 된다.
『연종보감(蓮宗寶鑑』 권2에
"교(敎)는 부처님의 눈이요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다.
마음이 눈을 지니지 않는다면 마음은 의지할 대상이 없을 것이며, 눈이 마음을 지니지 않는다면 눈은 볼 대상이 없을 것이다.
마음과 눈이 화합하여야 비로소 동쪽과 서쪽을 구분하듯이 선과 교가 융합하여야 통하거나 막히는 기운을 잘 분별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敎是佛眼 禪是佛心 心若無眼 心無所依 眼若無心 眼無所見 교시불안 선시불심 심약무안 심무소의 안약무심 안무소견
心眼和合 方辨東西 禪敎和融 善知通塞. 심안화합 방변동서 선교화융 선지통색
☞ 선시불심(禪是佛心)
禪 참선 선. 물려줄 선. 是 이 시. 옳을 시. 佛 부처 불. 心 마음 심.
출처 :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 ------------------------------------------------------------------------------------------------------------------
선시불심(禪是佛心), "禪은 부처님의 마음이다."의 핵심은 선(禪)과 교(敎)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 나의 진리를 이루는 두 축이라는 데 있습니다.
'선시불심(禪是佛心)'은 선은 부처님의 깨달은 마음을 직접 체험하는 수행이며, '교시불어(敎是佛語)'는 경전 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로 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선(禪)은 마음으로 진리를 체득하는 길이고, 교(敎)는 말씀으로 진리를 배우는 길입니다.
둘은 어느 하나만으로 완전하지 않으며, 함께할 때 바른 수행과 바른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선종의 가르침입니다.
『연종보감』에서는 이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교(敎)는 부처님의 눈과 같아서 바른 길을 보게 해 주고,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과 같아서 그 길을 실제로 살아가게 합니다.
눈만 있고 마음이 없으면 제대로 볼 수 없고, 마음만 있고 눈이 없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눈이 하나가 되어야 동서남북을 분별할 수 있듯이, 선과 교가 하나가 되어야 바른 수행과 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라 하겠습니다.
쉽게 비유하면 교(敎)는 지도이고, 선(禪)은 직접 길을 걷는 것입니다.
지도만 들여다보고 걷지 않으면 목적지에 이를 수 없고, 지도 없이 무작정 걷기만 하면 길을 잃기 쉽습니 다.
따라서 배움과 실천, 경전과 수행이 함께할 때 비로소 부처님의 길을 올바르게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수행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경전을 배우되 글에만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참선과 수행을 하되 경전의 바른 가르침을 떠나지 말아 야 합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고, 실천한 것을 다시 가르침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선과 교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 지혜와 자비가 함께 자라납니다.
🌿 선이란 부처님의 고요한 마음이고,
교법은 부처님의 맑고 밝은 눈이라네.
선과 교 하나가 될 때 올바르게 나아가리.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눈이라 하였으니 교(敎)와 선(禪)은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날개 하나만으로는 하늘을 날 수 없고, 바퀴 하나만으로는 수레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 습니다.
마찬가지로, 교는 바른 길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되고, 선은 그 길을 직접 걸어가는 실천이 됩니다. 배움과 수 행이 함께할 때 비로소 지혜가 완성되고, 깨달음이 생활 속에서 꽃피게 됩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 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배움과 수행이 함께하는 맑고 향기로운 법향(法香) 가득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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