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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강산의 아름다움 원문보기 글쓴이: 한강산
처음 법정 스님이 대원각 기증 제안을 받았던 것은 1987년의 일. 하지만 법정 스님은 "평생 주지 노릇은 해본 일도 없고, 앞으로도 주지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며 한사코 김영한 보살의 제안을 거절했다.
훗날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이끌며 시민운동에 앞장선 법정 스님이 대원각 시주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모임의 근본 도량을 만드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 8년의 기다림, 네 차례의 사양 끝에 전한 긍정의 답변이었다.
길상사는 사찰로 치면 아직 엄마 젖도 떼지 못한 유년기의 절에 가깝다. 오래된 절에서 풍기는 시간의 냄새 대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한결 충만하게 흘러나온다. 열정은 다치기 쉽고 위험하다는 말은 다행히 길상사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법정 스님이 입적한 후 세상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이곳은 여전히 동요하는 기색 없이 차분하게 법문을 읽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기쁨이나 슬픔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의 무소유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강인하게 서려 있다. 아름다운 침묵, 텅 빈 충만이 고요하게 흐르는 사찰이다. [ 황희연 영화·여행 칼럼니스트 ]
-------조선일보 기사 끝--------
김영한 공덕주가 생전에 백석의 시를 읖조리며 머물렀던 계류 건너에 있는 단아한 한옥이 품위 있다. 백석 시에 등장하는 나타샤는 바로 김영한 여사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운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운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학창 시절의 백석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인 백석은 삼팔선이 갈려 더 이상 김영한 여사를 만나러 서울로 오지 못했다.
고향(故鄕)
백 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삼천리 문학』 2호, 1938. 4)
김영한 여사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백석을 기다리다 생을 마감했다. 남북분단이 낳은 비극의 로맨스가 길상사에 오면 떠오른다.
조문객들은 극락전 앞에서 자원봉사자들에 타주는 커피와 녹차를 마신다.
길상사 산문 바로 앞에는 <효재>가 있다. 일본 관광객들이 매우 붐빈다.
<효재> 안은 온통 일본 사람들이다. 피아니스트의 부인이 운영하는 침구 페브릭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일본인 관광 책자에도 소개된 명소이다.
성북동에는 <비둘기길>이 있다. 중동고등학교 출신의 고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가 여기를 배경으로 1960년대 발표되었다.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월간 문학」, 1968.11)
길상사에서 한성대입구역으로 내려오면 조지훈 시인이 약 30년간 살았던 집터가 있다. 지금은 다가구 주택이 새로 지어져 있다. 성북구에서 표석을 만들어 놓고 시 <승무>를 적어 두었다.
얇은 사(紗) 하僧 舞
趙 芝 薰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薄紗 고갈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臺에 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 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하늘 한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듯 두방울이야
世事에 시달려도
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거룩한 합장인양 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三更인데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성북동 문학 기행은 끝내고 택시를 타고 <성북구민회관>으로 갔다.(기본 요금 지불)
하늘한마당에 도착했다. 고려대학에서 예까지 오는 길도 있었다.
나는 오늘 <하늘한마당>에서 <창의문>까지 걷기로 했다. ㅡ<북악하늘길>을 종주하기로 했다.
<하늘한마당>에선보현봉과 인수봉, 백운대가 보였다.
출발점인 하늘한마당이다.
생태연못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스카이산책로> 방향으로 간다.
생태연못으로 내려가는 나무데크 계단.
위 사진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가 성북구 구간이다.
곰의집 앞을 지난다.
성북동 길상사 쪽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난다. 길 아랫쪽에는 대사관저도 있다.
하늘마루까진 2.4킬로 남았다.
북악골프연습장 쪽으로 보니 보현봉과 형제봉 능선이 보인다.
골프연습장 너머 정릉동이 보인다.
<북악팔각정>까진 2.5키로 남았다.
하늘마루 방향(다모정 방향)으로 간다.
드디어 <하늘마루>다. 여기서 성북구 구간이 끝나고 종로구 구간이 시작된다.
성북구 구간 안내도다.
종로구 구간 안내도다. 나는 북악팔각정 거쳐 창의문까지 간다.
종로구 구간 안내도
하늘교는 3월 20일 개통한다.
하늘교가 개통되면 김신조의 루트의 마지막 봉우리가 41년만에 개방된다.
드디어 종로구 구간이 시작된다.
첫댓글 덕분에 산책 잘하고 갑니다,, 아름다운 봄의꽃 영춘화를 이제야 알고갑니다,,감사합니다,,
개나리와 다른 영춘화를 눈살미 있게 살펴봐 주신 님께 꽃 안내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길상사에 얽힌 김영한님의 슬픈 이야기와 조지훈의 승무는 그동안 많은 것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따뜻한 봄날, 낯설지 않은 시들이 마음속의 고향을 그리게합니다. 잠간의 여유를 주신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산행부대장님 곰배령이나 대덕산(분주령) 꽃 산행 한번 갈까요? 한국등산연합회나 한국등산중앙연합회에서 검색, 여기를 가는 산악회 있는지 검색해 봅시다. [산악회 관광버스 타고 번개 산행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
꽃님과 함께 하늘마루 걷고, 막걸리 한 잔에 세상사 다 잊고...............
초보 등반이나 걷기 좋아하시는 분에게 자신 있게 권할 만합니다. 선배님 오전에 볼일이 있어 산행을 못한 날 오후나절 이 코스를 택해 보십시오.
한선배님, 곰배령이나 대덕산 산행을 6월 두째주에 준비해보겠습니다.
빨리 번개 고지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