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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과 관련한 내용 |
비고 |
1 |
대덕 |
갈전동 |
성채(성째, 성재)〔산〕 〔위치〕독좌수 남쪽, 성채골 북쪽, 개머리봉 동남쪽 사이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198.5m이다. 〔유래〕옛날에 적과 싸우던 성이 있었으므로 성재라 하였다. 지금도 성터가 남아 있다. 〔풀이〕성재가 ''성째''로 되는 것은 경음화 현상이고, ''성채''로 되는 것은 격음화 현상인데, 유추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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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대덕 |
읍내동 |
읍내네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북쪽에 堂山(해발 137.4m)이 위치하고 있는데, 당산성은 이 당산의 정상부에 축조한 석성으로 알려져 있다. 현장조사시석성의흔적은정상부의동쪽에서일부확인되었는데,최대1m높이에 길이는5m정도의 석축렬이 남아 있었다. 이외 다른 지역에서는 이러한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헬기장이 설치된 정상부(社稷壇터)에서 동쪽 소로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민묘 1기가 자리한 100여 평 정도의 평지가 나타나는데, 이 곳에 토기, 자기, 기와조각 등이 산재해 있었다. 초석 등은확인되지 않았으나 건물지가 자리하고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당산성은 대전 관내의 삼국시대 산성들과 달리 그 규모나 양상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북쪽으로700m정도 떨어진 곳에 百濟의 雨述城으로 비정되는 連丑洞山城이 자리하고 있어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당산성 |
3 |
대덕 |
평촌동 |
평촌동의 서당골 이곳 서당골에는 옛날 백제 때 마을 뒤 성재에서 적군에게 부상을 당하여 신음하는 군사를 극진히 간호하고 드디어 그 아내가 된 마을 처녀와 그 처녀의 다정한 친구가 우정으로 뭉쳐 그 한 남자를 일생동안 이어서 섬겼다는 두 처녀의 인정가화(人情佳話)를 담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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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동구 |
상소동 |
곡남산성〔산〕 〔위치〕상소동의 동남쪽에 위치한 산의 이름이다. 곡나미(골남이, 골나미, 곡남(谷南))〔마을〕 〔위치〕곡남골짜기 북쪽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곡남산성의 근처에 있으면서 상소동의 남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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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동구 |
하소동 |
북성(북재, 북재말, 북성촌(北城村))〔마을〕 〔위치〕절골의 서쪽에 있다. 〔유래〕옛날에 북성(北城)이라는 성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절골(사동(寺洞))〔마을〕 〔위치〕하소동의 북쪽편에 위치한다. 〔유래〕옛날에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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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동구 |
사성동 |
성터〔터〕 〔위치〕어두니 뒷산 충북과 경계선상에 있다. 〔특이사항〕성은 막돌로 쌓았는데 현재는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다. 일설로는 백제군이 신라군과 대치했던 국경선에 있던 성이었다고 한다. 어두니(어둔이)〔골〕 〔위치〕꾀꼬리봉 북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다. 〔유래〕꾀꼬리봉이 남쪽을 막고 있기 때문에 항상 어둡고 그늘로만 있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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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동구 |
낭월동 |
성싼날망〔고개〕 〔위치〕낭월동에서 옥천 군서로 넘어가는 고개로 충청북도와 충청남도의 경계가 되는 날망이다. 성터〔터〕 〔위치〕성싼날망에 있는 성터이다. 〔특이사항〕 옛날 봉화를 올렸다고 한다. 곤룡산〔산〕 〔위치〕낭월동과 충북 옥천군 군서면에 걸쳐 있다. 〔유래〕산높이 327미터의 산으로, 산의 모양이 마치 곤룡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곤륜산보루 추정 |
8 |
동구 |
대성동 |
식장산 토성 식장산 정상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백제 동성왕이 쌓은 토성이라고 한다. 동성왕이 이곳에서 성을 쌓다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빙성이 없다. 현재는 방송통신시설 주위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망경대산성 추정 |
9 |
동구 |
삼정동 |
탄현성(炭峴城) 충북 옥천군 군북면 자모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위치한 성이다. 옛날 백제의 요충지로 성 바깥쪽은 옥천으로 향하고 안쪽에는 성터가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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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동구 |
소호동 |
성뚝〔터〕 〔위치〕숫골 안쪽에 있는 옛성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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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서구 |
갈마동 월평동 |
성재(매봉재)〔고개〕 〔위치〕뒷산 너머에 있다. 〔유래〕옛날 두 남매가 서로 겨루면서 이곳 성을 쌓았다고 한다. 마봉(馬峰)(매봉재(鷹峰))〔산〕 〔위치〕월평 산성 남쪽에 위치한 해발 193m의 산이다. 〔유래〕산형이 매처럼 생겼다 하여 매봉(鷹峰)또는 매봉재라 부르다가 매봉이 마봉으로 와전된 것 같다. |
마봉재보루 추정 |
12 |
유성 |
계산동 |
빈계산(牝鷄山)(빙게산)〔산〕 〔위치〕계산동의 원계산 마을 서쪽에 있는 415m 높이의 산이다. 〔유래〕계산동과 성북동(城北洞)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써, 산의 모양이 암탉과 같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특이사항〕이 산에는 산성터가 남아 있고, 성안에서 우물터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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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중구 |
무수동 |
국사봉(國師峯)〔산〕 〔유래〕옛날에 국사가 이 봉우리에 올라서 지방을 살펴보던 산이라 유래된 지명으로 이 산정봉에는 능성이 있다.
국사봉보루 ㄱ)지형 및 주변환경 무수리(無愁里) 마을 뒷산에 해발 240m 되는 국사봉(國師峰)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다. 유적은 산 정상에 직경 6m 8m 가량되는 장방형의 석루(石壘)이다. 이 유적은 서남쪽으로 약 2㎞ 떨어져 있는 사정성(沙井城)과 서로 대하고 있고 또한 주변 지역에 대한 경계가 양호한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비록 이 유적이 일반적인 산성의 형태와는 그 양상을 달리 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사정성의 주변에 설치된 보루(堡壘)로서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ㄴ)체성(體城) 석루는 대체로 붕괴되어 원상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북쪽 석루에 일부 잔존해 있는 부분은 길이 3m, 석축 5단으로 높이가 1m가량 남아 있다. 즉 자연석을 막쌓기로 조잡하게 축조하였는데, 대체적인 석재의 크기는 50㎝ 20㎝에서 30㎝ 15㎝ 정도였다. 한편 석루 부근에서 분청사기편과 백자편 수점을 수습할 수 있었다. (大田直轄市, 《大田의 城廓》, 1993) |
국사봉보루 추정 |
14 |
중구 |
장척동 |
성재〔고개〕 〔위치〕안산날망에 있는 석성으로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안산〔산〕 〔위치〕장척리 앞에 있는 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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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중구 |
정생동 |
서당봉산성 중구 정생동에 있는 성인데 백제 때 쌓은 것으로 추측되는 석성이다. 성의 주위는 약 70미터가 되는 산성으로 사정성의 외곽성으로 추측된다. 서당골〔골〕 〔위치〕정생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유래〕옛날에 선비가 여기에 서당을 짓고 후학을 길러내던 곳이었다 하여 서당골이라 한다.
국사봉(國師峯)〔산〕 〔유래〕옛날에 국사가 이 봉우리에 올라서 지방을 살펴보던 산이라 유래된 지명으로 이 산정봉에는 능성이 있다. |
첫댓글 2009-2010년 산성트레킹에 포함된 곳도 있고 포함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대전에 산성이 많다보니 1-2년에 끝날 일이 아니군요... 혹, 산성탐험대를 별도로 만들어 확인해봐야 할듯합니다.
아주 좋은 자료입니다. 만일 산성탐험대 만든다면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유산위원회 논의 후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망경대산성 추정을 만경대로 잘못표기하여 바로 잡았습니다.
트레킹 또는 탐사 코스를 만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