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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의 정신’(Spirit of St. Louis)이 파리로 날아갈 때,
비행은 발명의 차원에서 유용성의 차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공중의 정복’ 이 시작된 셈이었다.
당시의 안전을 위한 조치는 오늘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안개가 잔뜩 끼어 있으면, 비행사는 계기판이 아니라 땅으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오직 자신의 감각으로 상황을 읽어야 했던 것이다.” (찰스 린드버그의 책의 서문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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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였다.
대서양 바다 위를 날기 시작한 지 하루가 지난 것 같음에도 그곳이 그곳인 것 같았다.
마침내 육지가 보이기 시작할 때 찰스 린드버그는 성공을 예감하기 시작했다.
1927년 5월 21일 밤 에펠탑의 불빛은 구원의 신호였다.
린드버그의 삶과 모험을 그린 빌리 와일더 감독의 영화 「The Spirit of St. Louis」(1957년)를
한글 제목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 로 한 것은 의미 있는 것이었다.
불과 80여 년 전이었음에도 당시의 비행기는 우리가 현재 이용하는 항공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고도계며 계기판도 없는 것은 물론, 사실상 추위나 비, 안개 등 악천후에도 속수무책인 비행기였다.
이 모든 악조건을 딛고, 뉴욕의 루스벨트 비행장에서 파리의 르부르제 비행장까지
장장 5,815km의 거리를 33시간 32분에 걸쳐 한번도 쉬지 않고 비행한다는 것은 무모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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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5월 15일 라파예트 호텔 경영자인 레이먼드 오티그는 특별한 상을 제정하여 공표했다.
뉴욕과 파리간 무착륙 비행을 성공한 조종사에게 상금 25,000달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역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 상이었지만,
그것은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상이었다.
1924년까지 도전자가 없자 오티그는 기간을 5년 연장했다.
도전자 중에 찰스 린드버그는 나이도 젊고 비행 경력도 별로 없는 편이었다.
첫 번째 도전자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적기를 75대나 격추한 르네 퐁크였다.
1926년 9월 21일 루스벨트 비행장에서 시도한 도전은 비행기가 이륙하지도 못하고 폭발하면서 끝난다.
르네 퐁크는 가까스로 피했지만, 두 명의 승무원이 목숨을 잃었다.
린드버그가 도전하기까지 6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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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버그는 비행기가 오래 견디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료와
최소한의 무게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승무원 없이 혼자서 탑승하기로
했고, 최소한의 식량에 모든 구명장비를 생략했다.
목숨을 버릴 각오로 임한 과감한 조치였다.
대신 2,750파운드의 충분한 연료를 구비할 수 있었다.
린드버그의 비행기 이름은 그 비행기를 사는 데 자금을 대준 세인트 루이스의 사업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세인트 루이스의 정신’ 이라고 붙였다.
린드버그가 대서양 횡단 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1919년 5월 글렌 커티스가 설계한 NC-4 비행정이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비행체였다. 그 해 6월14~15일에는 영국의 비행사 존 앨콕과 아서 브라운이 한번도 쉬지 않고
대서양을 횡단했다.
최초의 대서양 무착륙 횡단 비행은 앨콕과 브라운이 기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들은 뉴펀들랜드에서 아일랜드까지
약 3,030킬로미터의 최단거리를 16시간 27분 비행했다.
린드버그는 앨콕과 브라운에 비해 훨씬 먼 거리를 긴 시간에 걸쳐 ‘단독으로’ 비행했다는 데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린드버그의 정확한 판단력과 목숨을 건 도전 정신은 인류의
장거리 비행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으며,
이후 항공기와 비행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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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파리 논스톱 단독 비행에 성공한 린드버그의 비행기가 에펠탑을 지나 파리하늘을 날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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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오거스터스 린드버그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일곱 살 때 부모가 이혼한 것은 약간의 시련이었다.
그는 1902년 2월 4일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미네소타 주의 리틀 폴스와 워싱턴 D.C.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1907년부터 1917년까지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어머니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의 미국 참전을 반대하였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린드버그도 반전주의자가 된다.
학교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기계를 만지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아주 좋아했다.
191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농장에서 일한 후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의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2년의 교육을 마치자 그는 비행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22년에는 링컨 비행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하늘을 나는 꿈을 꾸게 된다.
그해 4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짜릿한 추억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변화무쌍한 세상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는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가는 것을 꿈꾸어 보았다.
하늘을 꿈꾸는 것, 그것이 곧 린드버그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링컨 학교에서의 순회비행을 통해 그는 평생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이 세상을 마음껏 날아다니리라 마음먹는다. | |

대서양 횡단 단독 비행을 마친 뒤 비행기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린드버그(1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