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적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런 두리뭉실 복잡한 심경으로....,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한 글을 여기 옮겨 봅니다
,
------------------------------------------
,
Q,
[이만감독이 새롭게 시도하려 했던 영화문법이 무엇인가요?]
.
제가 고등학교 졸업 할때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영화팬들을 굉장히 들뜨게 했던 영화감독이 한분 계셨는데
국내에서 최초로 AIDS 를 영화의 소재로 다룬 '뻘'이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영화의 소재때문에 흥미를 끈것이라기 보다는 기존영화(안방드라마같이 과장된 다일로그 위주의 영화)에
식상한 저희들에겐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 영화로 기억 납니다
그 당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이라는 영화도 영상의 느낌이 굉장히 새로웠던 걸로 기억 납니다
[이만감독의 뻘]이라는 영화는 또 다른 신선함으로 다가 왔는데..,
대사중심으로 진행하는게 아니라 이미지(장면,컷,소품 등)에서 나오는 상징적 메시지를 영화에 차용했다는
것 입니다. 이런 영화에 길들여지지 않은 기성세대 관객들은 시큰둥하기도 하였지만
저를 포함한 감성이 강한 젊은세대들에겐 하나의 충격으로 전해 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당시 이만감독님이 시도하신 영화문법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Visual Communication) 에 주력하는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그리고 영상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 못하는 안방 드라마 같은 영화들, 횟칼이나 몽둥이등을 동원하며
폭력을 향락적 유일수단으로 사용하는 영화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런면에서 이만감독의 영화는 소재와 주제도 특이 할뿐더러
(Fight AIDS, Not People With AIDS / 에이즈 바이러스를 미워해야지
에이즈 걸린 사람을 미워하지마라)는 줄거리는 영화를 통해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여실히 엿보이면서, 영상을 통해 의사소통을 즐기는 감성세대들에게 어필하는 상징적 이미지를
동원하는 작가주의적 영화감독이라는걸 알수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이 질문을 올리는 이유는 이만감독 같은 한시대에 획을 그을 예술가들은 대부분 나타나자마자
곧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왜 독창적인 예술가들은 단명하는 것인지요. 사회적 질시와 배타적 냉정때문인가요?
그점도 무척 궁금 합니다
요즘같은 감성시대엔 바로 이만감독같은 사람이 빛을 볼텐데.., 너무 일찍 나오셨다가 사라져버린게
이만감독을 기억하는 사람입장에서는 못내 아쉽습니다
혹시 이 질문을 접하시분중에 전에 아트센타를 경영하시던, 시각디자이너이신 이만감독을 좀 아시는 분이
계시면 저의 궁금중 좀 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11.11.12 11:25
| 조회 569 | 신고
나도궁금 답변하기
글꼴조정
===============================================
,
A).
이만감독은 그당시 영화와 디자인의 2개 분야에서 이슈가 많았던 사람이였지요
그는 미국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현지에서 약 1년 정도 실무를 쌓은후 귀국해서
숙대입구(남영역 근처)에서 국내최초로 본격적인 디자인 인스티튜트(학원)으로서,
'아트센타'를 설립하고 국내 대학 재학생 내지 졸업자들에게 재교육의 교육사업을 하면서
종전의 디자인방식을 컴퓨터 툴로 전환시켜 작업과 교육을 시켰던 마인드가 앞서갔던 사람입니다
(그당시 대학에서는 디자인을 미술에 종속된 작은집 정도로 취급하는 수준의,
일제잔재 용어인 도안課, 응용미술課 등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음)
그가 가르치던 시각디자인은 교육이론도 매우 독창적이고 실무와 밀착되어 쇼킹했었지요
소위 '신시각언어의 구조론'이라는 디자인 솔루션 이론을 제창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죠지케피스의 시각언어의 구조론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시대적으로 너무 진부했기에 그 조지케피스의 디자인 이론을 수정보완하여
새롭게 정립했던 사람입니다
디자인을 시각언어로 개념설정을 하고, 그 시각언어는 시각어가 모여서 완성된다는 이론은
조지케피스나 이만감독이나 같은 생각이였던 걸로 압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조지케피스의 시각어의 범주와 이만감독의 시각어의 범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저분들이 제시하는 이론은 너무 전문적인 얘기라서 이것은 이 정도로 하고..)
그러나 이만감독의 신시각언어의 구조론은 그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았지요
심지어 모대학에서는 디자인 기초교육과정에서 이만감독의 신시각언어의 구조론을갖고 학생교육을
시켰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울 받았던 사람들은 그동안 디자인 솔루션에 대해 혼돈스러웠던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경험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사람은 또 '디자인저널'이라는 디자인 포트폴리오 잡지를 발행하며, 세계각국의 나라마다
국가별 디자인특집을 월별로 기획하여 전세계 70 여개국에 배포하였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런 업적으로 남미의 알젠틴에서는 10월 첫째주를 DESIGN WEEK로 선포하였고
스페인과 중국에서는 그를 초청 하기도 한 일화가 있습니다
심지어 세계 그래픽 총회라 불리는 ICOGRADA (텔아비브,이스라엘) 회의에서 디자인저널에 대한 언급(칭송)이
있었으며, 체코의 브르노 그래픽에서도 심사위원으로 초대받기도 했었던걸 로 생각 납니다
그리고 국내최초로 철의장막(舊, 소련) 과 竹의 장막(중국)을 뚫고 그런 나라의 폐쇄되었던 디자이너와
포트폴리오를 국가특집으로 전세계에 알리는 일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자유롭게 왕래하지만..)
이렇게 아트센타 인스티튜트와 디자인저널의 왕성한 사업을 펼쳐가던중,
미국 유타주의 파크시티에서 개최된 선댄스 영화제를 참관한후, 인디펜던트 영화에 감동을 받아,
그 사람은 영화에도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역시 그 답게 제작,감독,원작,각색,소품,아트디렉션,촬영일부,편집일부,카메오출연,음악등
세계 영화역사상 일인 10 역으로 최다 기록을 세우고, 대종상 신인감독상과 촬영상,백상 예술대상등을
첫 작품에서 거머쥐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영화문법 역시 이미지와 이미지를 타고가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에 주력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여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젊은 층으로부터는 무척 신선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일화지만, 그 당시 충무로 영화계의 기성파워들은 그 사람을 질시하고 음해하는
일들이 많았었습니다 . 그의 '충무로는 없어져야 한다'는 폭탄 선언 때문인걸로 압니다)
그후 영화작업을 계속하려고 미국 아리조나에 헌팅을 갔다가 그곳의 자이언트 선인장에 흠뻑 반해서
그 거대한 선인장을 컨테이너로 국내에 반입하여 청계산 기슭에다 아리조나 선인장 테마팍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후에도 정신대를 주제로하는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즈음 활동이 조용하는가 싶더니 그가 이민가버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것은 잘못 와전된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즈음에 그 사람은 미국계 테마팍(Theme park) 전문 시공회사와 송도에 테마파크를 위한
컨텐츠 기획을 의뢰 받고 그일에 7년 가까이 두문불출하고(압구정동의 작업실에서 있었다 전해짐)
이미지 컨텐츠 작업에 매달렸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때 만들어진것이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진행할 미국의 51번째 洲로 탄생한,
팝문화 클러스터의 조지스테이트(GEOREGE STATE) 입니다 (www.georgestate.com)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기획은 신성일씨의 부탁으로 진행하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그분이 정치계에서 은퇴하시는 바람에 이만감독만 7년의 작업이 물거품화 될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물론 7년여의 세월에 수입 한푼 없이 지출된 경비도 꽤나 많았던 걸로 전해 집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때 기획해 놓은 '이미지 컨텐츠'가 어마어마하게 축적되어 있어서
그 자료가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병가지상사가 되어, 그래픽 어패럴(티셔츠 테마팍) 사업에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미지(그래픽) 작업물을 접한 많은 분들은 매우 독창적이고 풍자적인것들로서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았다고 함>
그는 재능이 다양하여 언젠가는 훌륭한 사업을 들고 우리곁에 불쑥 튀어 나올것입니다
이글을 올린 저도 그 사람의 다양한 감성지능을 다시 한번 보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묻는 질문에 유익한 답변이 되셨는지요?
,
,
뻘
[ Mud flat ]
- 에이즈에 걸려 방황하는 한 남자의 최후를 그린 1991년 제작된 이만 감독의 멜로드라마 영화.
국가 | 대한민국 |
---|
제작년도 | 1991년 |
---|
장르 | 드라마 |
---|
감독 | 이만 |
---|
각본 | 이만 |
---|
출연 | 이영하, 민복기, 이정은, 김옥경, 무세중, 윤일봉, 진봉진, 허진, 김형자, 김길호 등 |
---|
상영시간 | 120분 |
---|
수상경력 | 제30회 대종상 영화제[1992년, 신인감독상(이만), 신인기술상(박현국)], 제28회 백상예술대상[1992년, 영화부문 특별상(이만)] |
---|
제작사 | 이만모션픽쳐 |
---|
1991년 이만모션픽쳐에서 제작하였다. 각본과 감독은 이만이고, 이영하, 민복기, 이정은, 김옥경 등이 출연하였다. 상영시간은 120분이다.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고 방황하는 한 남자의 최후를 그린 멜로드라마 영화이다.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한 여인 질(민복기 분)과 지나(이정은 분)는 동일 인물인 사진작가 로저를 통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반강제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질은 로저에게 깊은 분노를 느끼고, 그를 찾아가 총을 겨눈다.
로저를 죽이고 한국으로 도피한 질과 역시 한국에 온 지나는 다가올 죽음의 고통을 나누며 의지하던 중, 에이즈를 퍼뜨리기로 한다. 한국에 에이즈 환자가 늘어야 그에 맞는 치료법이 더 빨리 개발될 것이라는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지나는 사진작가 박무중(이영하 분)을 첫 대상자로 삼고, 그를 유혹한다. 사랑하던 연인과 이별한 무중은 혼란스러운 감정과 술기운에 지나와 관계를 갖는다. 다음 날, 깨어난 무중은 지나가 거울에 붉게 써놓은 에이즈라는 글자를 보고 경악한다. 그리고 모든 일을 단념하고 불안감에 이리저리 지나를 찾아다니던 무중의 생활은 엉망이 된다.
그러나 지나를 찾은 무중은 자신 역시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확인하고 절망한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나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의 죽음을 지켜본 무중 역시 체념한다. 그는 바닷가로 출사를 떠나 마지막 작품 사진을 찍으며 다가올 죽음을 기다린다.
영화 <뻘>은 제2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특별상을, 제3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기술상과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뻘 [Mud flat]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