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싸움 일기 / 박종영
오월 첫날, 밥풀 같은 웃음을 달고
탱글탱글한 탱자꽃이 날 가시 웃음을 앞세워 으스댄다
봄볕이 가시에 찔려 빛의 길을 닦는다
오죽이나 가기 싫은 봄바람이었으면
저리 뾰쪽하게 머뭇거릴까
생 가시울타리 너머에서 후닥닥 소리 들릴 때마다
뽀얀 먼지가 풀썩거린다
가만히 살펴보니 칼 발 앞세워 붉은 볏 낚아채는
우리 집 수탉과 옆집 수탉의 사랑싸움이 한창이다
오랜만에 보는 진정한 닭싸움이다
그 옆에는 암탉 한 마리 두려운 눈치로 비켜서서 조바심이다
아마 마음에 두는 승자를 점치는 것일까
어느 때쯤 투쟁의 시간이 지나고
승리의 홰를 치는 소리 듣고 뒤뚱대며 달려온
다른 집 암탉이 비겁하게 궁둥이를 들이대며
꼬꼬고 짝짓기 울음으로 승자의 깃털을 빗질한다
패배의 눈물을 흘리는 우리 집 수탉을 안고 돌아오는 길
내가 수탉의 날개에 쌓여있는 낡은 세월을 그대로 둔 것이 후회다
언제나 상대의 전술이 위험하다는 것을 가볍게 여긴 것은
헛된 세상을 살아온 징표이거늘 다만,
패전의 이유를 내 게으른 훈련 탓으로 돌리고 찢긴 볏을 어루만져 준다
흘러내리는 검붉은 분노가 단단하게 조여오고
닭똥 같은 눈물 훔치며 콕콕 손등을 쪼아대는
우리 집 수탉의 분노를 위로하며
슬그머니 오월의 파란 하늘을 가져와 눈물에 섞는다.
첫댓글 오월의 탱자꽃 흩날리는 영상 감사합니다.
건승하십시오.